47 章 진정한 兇手.
가지약은 순간 긴장되었던 마음이 풀어지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다가 남궁청우의 품속에 안겼다.
"그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 혼자서 아이를 기를 테니까요. 당신은 항상 총각이어도 좋아요. 엄마의 노릇은 저 혼자서 할 테니까요."
남궁청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글쎄...... 그게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가지약은 문득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그것을 보고 남궁청우는 다시 물었다.
"아니 왜 웃는 거요?"
가지약은 반쯤은 울고 반쯤은 웃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저는 당신이기뻐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정말로 당신이 이렇게 기뻐해 주시니, 호호...... 저는 참으로 기뻐요.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행복이예요."
(......)
남궁청우는 묵묵히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다시 물었다.
"어머니께는 말씀을 드렸소?"
가지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께 가장 먼저 말씀드리는 거예요. 어머님께는 내일 말씀드리도록 하겠어요."
남궁청우는 문득 그녀의 입술에 짙은 입맞춤을 하고는 미소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매우 기뻐하실 것이오."
(......)
가지약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남궁청우는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가......? 아니 내가 이제 영락없는 애아빠가 되고 말았는데, 그 일을반드시 기뻐해야만 한다는 말이오?"
(......?)
가지약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그를 바라보다가 일순 그의 가슴을 두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 남궁청우는 느닷없이 그녀의 몸을 안아들고서 격렬하게 입맞춤을 하면서 침상위로 뒹구는 것이었다.
......
두 사람은 잠시 동안 깊은 황홀감 속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가지약이고개를 들고서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저어,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
남궁청우는 그녀의 가녀린 몸을 부드럽게 애무하다가 문득 그 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들고서 물었다.
"무엇이오?"
가지약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그 증소저(曾小姐)를 본가에서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남궁청우는 잠시 의아해 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것은, 당신이 아이를 가진데 대한 상(賞)을 달라는 말이오?"
가지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저는 지금 당신의 아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 만족해요. 더 이상의 욕심은 화(禍)를 부르게 될 것 같아서 불안해요.저는 단지 그녀와 친자매처럼 지내자는 것이지 그녀를 나의 시종으로 부리려는 것은 아니예요."
남궁청우는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것을 원하고 있을까?"
가지약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녀는 그것을 원하고 있어요. 비록 말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그녀가 당신을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요?"
(......)
남궁청우는 어이가 없는 듯이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럼, 당신은 그녀를 나의 첩실로서 들어앉히려는 것이라는 말이오?"
가지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사실상 천하에 그와 같이 하는 여자는 다시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저 자신이 당신을 완전히 내조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왕이면 저와 마음이 통하는 그녀를 당신에게 소개하려는 거예요. 어차피 당신은 이미 그 심낭자(沈娘子)를 첩실로 맞이하기로 한 것이 아닌가요?"
남궁청우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만에...... 그럴 리가 있겠소?"
가지약은 나직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래요? 호호...... 과연 그럴지 앞으로 두고 볼까요?"
(......)
남궁청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득 얼른 다시 그녀의 몸을 안고서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런데 가지약은 그의 손길을 밀어내고는 신형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잠깐만요. 저는......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가지약은 실내의 불을 끄고는 천천히 걸어서 욕실 쪽으로 나갔다.
남궁청우는 그것을 보고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켜서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여아홍을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 * *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고마워요, 동생! 나는...... 나는 결코 이 은혜를 잊지 못할 거야."
"상관하지 말아요."
"하지만...... 나는 왠지 두려운 생각이 들어. 나는...... 나는 과연 잘 생각하고 결정한 것일까?"
"그것은 언니의 생각이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생각이 달라졌다면 어서 얘기하세요."
"아니야...... 나는,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나중에 어떤...... 어떤 결과가 닥친다고 해도...... 나는 굳게 마음먹을 수 있어."
"그렇다면 다행이예요."
"저어...... 동생! 이 일은 모두에게 비밀로 해주었으면 좋겠어. 누구라도 그러한 일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본가(本 에게 있어서 중대한 화(禍)를 자초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모든 일이 잘 되어 가기를 바래요."
"동생의 마음은 정말로 누구라도 흉내 낼 수가 없을 거야. 그런데...... 정말로 그가 이미 곯아떨어졌을까?"
"나는 그의 여아홍에 음양화합산(陰陽和合散)이라는 것을 섞어놓았어요. 아마도 그는 지금 제 정신이 아닐 거예요."
"나는 반드시 죄(罪)를 받고야 말거야.“
* * *
가지약은 비교적 한참 후에야 비로소 침실로 다시 돌아왔다.
남궁청우는 여아홍을 거의 다 비우다시피 하고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윽고 몽롱한 의식속에서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그는 가지약이 돌아온 것을 보았고 그리고 그녀를 껴안았다. 가지약은 늘상 그랬듯이 아주 순종적이었다. 그녀는 남궁청우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고 그리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다만 오늘밤은 왠지 가지약의 몸은 약간 차갑게 식어 있는 것 같았고 혹은 지나치게 뜨거워져 있는 것 같았다.
약간 경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녀의 몸을 남궁청우는 무의식중에 느꼈지만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몽롱한 의식 속이었기 때문에 이내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날 밤의 정사(情事)는 아주 뜨거웠다. 가지약은 처음에는 다소 긴장하는 것 같았으나 이내 뜨거운 열정속으로 스며들어가기 시작하는 것 같았고 그리고 한없이 욕정(慾情)을 불태웠다.
아마도 그녀는 아이를 갖게 되어서 더욱 성의 쾌락(快樂)에 눈을 뜨게 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밤새도록 서로의 육신을 탐하면서 쾌락을 불태웠고 그리고 그것은 거의 새벽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오랜만에 크게 만족한 남궁청우는 이내 깊은 잠속에 빠져들어 버렸고 가지
약은 약간 창백해 보이는 표정으로 침상위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는 나직한 음성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는...... 이제는 마음놓고 떠날 수가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당신의 분신(分身)을 갖고 싶었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다시는 당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비록 우리의 아이가 생겨난다고 해도...... 흑흑, 그때는 나는 이미 머리를 깎고서 중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희미한 여명이 밀려드는 가운데 가지약의 몸은 마치 안개와도 같았다.
천천히 의복을 걸친 그녀는 이윽고 창문을 열고 소리 없이 그 여명속으로사라져 갔다.
이슬과도 같은 차가운 눈물을 뿌리면서......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가지약이 창밖으로 떠난 이후에 뜻밖에도 다시 방문이 조용히 열리면서 또 한명의 가지약이 나타나서 침상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아까의 그 가지약과 거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지금의 가지약의 몸에서는 아까의 그 질탕한 욕정의 냄새가 풍기지 않았고 순결한 기운과 촉촉히 젖은 듯한 어둠의 빛깔이 묻어있는 것이었다. 가지약은 천천히 의복을 모두 벗더니 완전한 알몸이 되어서 남궁청우의 옆자리에 누웠다.
(죄송해요, 정랑!)
내심으로 그렇게 외치면서 가지약은 약간 물기가 어린 시선으로 남궁청우의 품속으로 조용히 파고 들려고 했다.
헌데 느닷없이 남궁청우가 다시 몽롱한 표정으로 눈을 뜨더니 아까 그 욕정을 다 풀지 못했는지 이번에는 그 가지약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었다.
가지약은 이내 아득하게 녹아드는 듯한 강렬한 황홀감 속으로 젖어들면서 눈가의 이슬이 마르고 입으로는 무의식중에 교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 * *
남궁청우는 다소 늦은 아침에 일어나서 침상을 벗어났다.
그는 침상 위가 대단히 어지러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몇 군데의 혈화(血花)마저 보이는 것을 보고 의아해져서 이미 한쪽에서 의복을 입고 앉아 있는 가지약에게 물었다.
"아니, 대체 이것이 어찌된 일이오? 내가 어젯밤에 그렇게도 심하게 취했었단 말이오?"
(......)
가지약은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예...... 그리고 마침 어제가 저의 그날이었기 때문에......"
남궁청우는 일순 자신의 뒤통수를 툭툭 쳤다.
"아이쿠, 그런데도 내가 그만 주착을 부렸던 것이었군. 쯧쯧......"
* * *
남궁청우는 아침식사를 마친 다음에 곧장 집무실로 가서 사대당주를 불렀
다.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사대당주가 일제히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남궁청우는 가볍게 답례한 다음에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오늘 바로 삼성맹(三聖盟)으로 떠날 생각이오. 그래서 여러분들을 이렇게 부른 것이오."
가백령 등은 다소 놀라며 물었다.
"아, 삼성맹으로요?"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어차피 이 일은 한번 겪어야만 하는 일이었소. 따라서 나는 내가
없는 동안에 사대당주가 서로 합심하여 본가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이오."
가백령은 남궁청우의 뒤에 시립하고 서 있는 사대호위를 바라보면서 다시 물었다.
"그럼 이번에도 저들과 함께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무공도 이미 제법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기 때문에 나에게 큰 불편한 일은 없을 것이오."
좌현보가 말했다.
"웬만하시면 백호당주를 대동하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궁청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나는 사대호위로만도 충분하며 만일에 다른 일이 생긴다면 내가 따로 그들에게 시켜서 여러분들을 부르도록 하겠소."
......
이윽고 사대당주가 공손히 인사를 마치고 나서 물러가자 사대호위 가운데 에서 가우왕이 입을 열어 물었다.
"지금 바로 떠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의 일은 중대하여 사방에 광고를 하고서 떠날 입장이 못 되오. 따라
서 그대들도 어서 가서 준비를 하고 오도록 하시오."
* * *
남궁청우가 느닷없이 세가를 떠나서 삼성맹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
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 남궁청우의 행사가 추측을 불허하고 신비(神秘)로워서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궁청우는 일단 다시 내당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인 가심의에게 떠나는 인사를 올리고 나서 가지약을 만나보고서 밖으로 향했다.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가 세가의 정문을 빠져나갈 때에 특별히 섭섭한 표정으로 전송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남궁청우의 두 명의 누이들인 남궁석약과 남궁완청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가우왕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가인(佳人)의 전송이 저렇듯 애툿한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다,
가주님."
가우왕과 방덕승은 마부석에 앉아서 마차를 몰고 있었고 좌선비와 서무구는 남궁청우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좌선비와 서무구는 그것이 자신들을 보고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는 은근히 안색을 붉히면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남궁청우가 잠자코 있자 이윽고 서무구가 어렵게 입을 열어 말했다.
"저어, 가주님.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서무구가 부탁을 한다는 일은 그다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남궁청우는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무슨 부탁인가?"
서무구는 다소 붉어진 안색으로 대답했다.
"그것은...... 약매(弱妹)를 저에게 시집보내달라는 것입니다."
남궁청우는 다소 눈을 크게 떴다.
"나의 둘째누이 말인가?"
서무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
남궁청우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윽고 말했다.
"그런 일이야 당사자들의 감정이 중요한 것이지, 나의 둘째누이도 그것을
원한다고 하던가?"
서무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들은 이미 서로 간에 약속을 하였습니다."
남궁청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자네들이 이미 그렇게 하고자 한 것이라면 내가 어찌 말리겠는가? 그것은 이번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논의(論議)하도록 하세."
남궁청우의 말에 서무구는 긴장되었던 한숨을 내려놓으면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가주님."
앞자리에 마차를 몰고 있던 가우왕이 그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선비, 자네는 왜 가만히 있는가?"
(......)
좌선비는 묵묵히 있다가 웃으며 대꾸했다.
"무슨 말인가?"
가우왕은 말했다.
"자네와 본가의 셋째소저와의 사이를 어째서 가주님께 말씀드리지 않느냐는 말이네."
좌선비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지금 바로 얘기할 생각이었으니 상관하지 말게."
이어 좌선비는 남궁청우를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가주님, 만일 이번에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면 저의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남궁청우는 웃으며 물었다.
"나의 셋째누이 말인가?"
좌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와 그녀 역시 이미 장래를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남궁청우는 말했다.
"자네들이 이미 그렇게 언약을 하였다면 내가 구태여 말릴 이유도 없겠지. 허나 나의 누이들이 과연 자네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가 있을까?"
서무구와 좌선비는 거의 동시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면서 절을 했다.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앞자리에서 가우왕이 다시 웃으며 소리쳤다.
"선비, 무구! 자네들은 이제 국수를 먹게 되었으니 한턱을 내야할 것이 아
닌가? 게다가 상대가 보통사람도 아닌 본가(本 의 대소저들을...... 자,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텐가?"
서무구가 다소 붉어진 얼굴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일은, 나중에 돌아가서 하기로 하세. 지금은 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가우왕은 득의하게 웃었다.
"흐흐흐, 자네들은 지금은 발뺌을 해서 그저 넘어가려는 모양인데, 일단은 내가 참더라도 나중에는 결코 허술하게 넘어가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게."
서무구는 그만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알겠네."
일행은 그것을 보고 한차례 낭소를 터뜨렸다. 이어 좌선비가 정색을 하고 남궁청우에게 물었다.
"가주님께서 지금 삼성맹으로 가시는 것은 역시 그 군자검(君子劍) 남궁용천(南宮龍天)을 벌하기 위해서입니까?"
남궁청우는 그를 향해 되물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좌선비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만일 단순히 그를 처벌하기 위해서라면 구태여 가주님께서 이렇게 가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선비는 과연 나의 지기(知己)라고 할 수가 있겠군."
(......!)
가우왕이 문득 놀라며 물었다.
"아니 그럼 무슨 다른 이유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남궁청우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 이유를 역시 선비에게 물어보도록 하게."
가우왕은 마차를 몰다가 말고 고개를 뒤로 돌려서 좌선비를 바라보았다.
좌선비는 이에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단지 그렇게 추측했을 뿐이지 그 일에 대해서 완전히 알고 있는 것
은 아니네."
(......?)
가우왕은 다시 남궁청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가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좌선비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말했다.
"내가 지금 삼성맹으로 가는 것은 바로 흉수(兇手)를 찾기 위해서이네."
가우왕은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휴, 흉수라니요?"
남궁청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가짜가 아니라 진정한 흉수를 말하는 것이네."
(......!)
가우왕은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그럼 혹시......또 다른 흉수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 제왕각의 원로말고 말입니다."
남궁청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네. 기실 그 말고 다른 흉수가 있었지. 그는 자신을 주모자라고 했었지만 사실은 그는 가짜였네."
가우왕은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럼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남궁청우는 빙그레 미소하며 대답했다.
"거기에는 모두 세 가지의 이유가 있네."
가우왕은 놀라서 소리쳤다.
"세 가지나요?"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첫째, 그 필살유혼 등은 나의 작은할아버지를 한결같이 주모자라고 했었는데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네. 나의 작은할아버지는 당시에 연금상태에 있어서 최소한 나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러한 상황에서 그와 같은 모든 준비를 치밀하게 했다는 것은 거의 맞지 않는 일이지. 그리고 둘째는, 나의 작은할아버지의 능력으로 흑루의 살수인 잠마(潛魔)를 매수하여 본가의 제자로 들어오게 하고, 또한 그의 조직이었던 태호 도방 등을 사용하게 함은 물론이요 나중에는 필살유혼까지 등장하게 했던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지. 특히 필살유혼이 나중에 어쩔 수 없이 정당한 방법을 쓰지 못하고 암수를 사용한 것은 누구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는데, 과연 나의 작은할아버지의 능력으로 그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
가우왕은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세 번째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남궁청우는 미소하며 대답했다.
"사실상 이 세 번째의 이유야말로 가장 확고부동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나의 선친께서는 당시에 이미 대홍락의 경지에 들어 있었는데 어떻게 아직 백연탄의 경지에 머물고 있는 나의 작은할아버지의 암수에 걸릴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특별히 독(毒)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가우왕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가 당시에 그 필살유혼을 불렀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남궁청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시의 나의 선친의 무공은 필살유혼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가 그렇게 교묘하게 살수(殺手)를 펼쳤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
가우왕은 놀라며 다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보다 강력한 어떤 흉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좌선비가 말했다.
"그럼 역시 전날에 왕정안이 말했던 그 거대한 운명(運命)이라는 것과 그 진짜 흉수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군요?"
남궁청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렇네. 당시에도 이미 그 거대한 능력을 지닌 흉수는 활동을 하고 있었고, 나의 선친께서는 혼자서 그 세력(勢力)에 반기를 드시다가 그렇게 당하고 말았던 것이지. 물론 그 작은할아버지는 그들과 동조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단은 작은할아버지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이다."
좌선비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원로가 자진하여 그 죄를 뒤집어썼을까요?"
남궁청우는 대답했다.
"나의 작은할아버지가 저지른 죄도 역시 그에 못지않은 것이었다.게다가 나중에 그 거대한 운명이 도달하면 본가가 전복되고 자신들의 자식들이 다시 세력을 떨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지."
가우왕이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흉수는 어떤 자일까요? 혹시 본가(本 의 군자검, 그
사람이 아닐까요?"
남궁청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그것은 그를 한번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
잠시 좌중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과연 그 거대한 운명이라고 하는 흉수의 진면목(眞面目)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이번의 출정(出征)은 성공할 수가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