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五 章 五雄五僧 4
이것은 도가의 지고의 공력과 외문 최상의 공력이 서로 부딪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천하 무림으로 하여금 현문 정통파가 더 세냐? 그렇지 않으면 비정통파(非正統派)인 외가의 공력이 더욱 세냐?
하는 것을 증명하게 하는 역사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목도장은 쉽게 이 공력을 받아 넘겼다.
그가 삽시간에 오행만라진의 배합의 위력을 받아 넘기며 선천기공으로 금은지를 접촉하여 귀신들이 울부짖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울리는 찰나에 또 운환마(雲幻魔)가 소리도 없이 일 장을 써서 쳐들어가고 있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청목은 다섯 걸음을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는 등 뒤에 일 장을 맞았으며 가슴 앞에도 일지(一指)를 찔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우뚝 서 있고 넘어지지를 않는다.
마침내 싸움은 끝난 것이다.
삽시간에 청쟁도인을 위시하여 도합 일곱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바위 위를 쳐다보니 바위 위에는 조그만 돌이 균형 있게 아홉 행(行) 아홉 개의 돌이 박혀 정방형을 이루고 있었으며 마지막 행의 끝에 또 하나의 돌이 박혀 있었다.
八十一초(招)!
청목도인의 창백한 얼굴에는 안심한 듯한 미소가 어리고 입과 코에서는 선혈(朝血)이 낭자하게 쏟아져 나왔다.
『八十一초라! 사부님 전 유명(遺命)을 욕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어 쉰다.
다섯 사람의 늙은 화상은 모두가 넋을 잃고 목석과 같이 서서 청목도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화상이 나지막한 소리로
『소도사, 자네가 이겼네!』
청목은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띠웠다.
그는 숨 가쁜 말씨로
『노선배!』
백용수 풍륜은 장엄하게 손을 내 저으면서 청목도인이 말을 잇기도 전에,
『자네의 훌륭한 솜씨에 우리가 진 것뿐이야! 이제 우리는 노선배의 자격도 잃었거니와 평배(平輩)로 돌아간 것이라네! 결국 우리는 전진파의 장문인(掌門人)에게 평배로서 도전한 것밖에는 뜻이 없게 되었어!』
청목도인은 희열에 빛나는 두 눈으로 마교오웅을 바라본다. 그러나 심신은 괴로움과 아픔을 견디기 어렵다.
『풍형! 겸사의 말씀을……』
청목도인의 코와 입에서는 선혈이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으니 한 줄기의 붉은 피가 발 밑의 붉은 꽃잎을 적신다. 그 가운데 청목도인은 백전노장과도 같은 품연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지난날의 마교오웅(魔敎五雄)!
오늘날의 투생오승(偸生五僧)!
이들의 거대한 그림자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바위틈을 돌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니 패전지장(敗戰之將)의 뒷모습은 처량하기만 하였다.
이들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던 청목도인의 가슴에는 억누를 수 없는 강력한 투쟁심이 솟아올라서,
『사제, 빨리 그들에게 알려라! 십 년 후에는 다시 전진 문하에서 다시 그들과 승부를 결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청쟁은 사형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의 강력하고 의로운 투쟁정신에 혼자 탄복하고 말았다.
청쟁은 몸의 진기를 돋구어 오승이 내려가는 골짜기를 향하여,
『오위 선배는 들으시오! 전진문하에서 다시 십 년 후에 동문이 선배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바랄 것이오.』
골짜기에서는,
『그 때는 우리 모두 정중하게 대접하여 올리리다.』
긴 여음을 남긴 대답이 적막을 깨뜨리고 청목도인과 청쟁도사의 귓전에 되돌아왔다.
이 오승의 대답을 듣고서는 청목도인은 온 몸의 힘이 빠져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그러나 그의 팔대혈맥(八大血脈)은 완전히 끊어져서 막혀버리고 있었다.
『아! 이제 이 일신의 무공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끝이 났구나!』
산 계곡을 시름없이 바라보는 청목도인의 눈에는 찬 이슬이 맺히며, 독백의 한탄 소리가 나직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 일전(一戰)으로 인하여 침사곡의 모임에 전진파의 대표로 참석한 것은 청목도인 아닌 청쟁도사였으나 이런 사실을 누구 하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청목도인과 청쟁! 그리고 투생오승을 제외하고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난 청목도인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자리를 옮겼다.
이 지나간 쓰라린 추억을 가슴에 숨겨둔 지 십 년!
이제 비로소 가슴에 맺힌 십 년 전의 회포를 털어 놓으니, 몸과 마음이 스스로 가벼움을 느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운학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청목도인의 발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날이 저물었구나! 저기 저 산 봉우리를 보아라! 만 갈래 금빛이 휘황하지 않으냐?…… 그러나 그것은 순간뿐, 노을은 곧 스러지느니라. 태양이 기울면은 일체의 모두가 무(無)로 돌아갈 뿐이니라.』
운학은 묵묵부답, 멀거니 서산에 지는 노을을 바라보다가 청쟁의 소식을 묻는다.
『사부님! 청쟁 사숙께서 그 침사곡에 가신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청목의 얼굴은 조용히 변한다. 그 목소리가 의외로 가라앉으면서,
『그것은 완전히 수수께끼가 되어 버렸어!』
운학의 마음에는 점점 의혹이 짙어간다.
『어떤 수수께끼입니까?』
청목도장은 긴 한숨을 내 쉬면서,
『천하 각파의 정예들이 모여 가기는 하였으나, 하루밤 사이에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으니 한 사람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단 말이야! 심지어는 그 천일대사까지도……』
운학이 깜짝 놀라면서,
『그 뒤에 왜 그곳에 가서 한 번 알아보지도 않았습니까?』
『바보 같은 소리! 각파가 거의 그곳에 가서 조사를 해 봤지! 그러나 그 고장 사람의 답사에 의하면 딴 곳으로 자리를 옮겨간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할 뿐! 오리무중이었다.』
운학은 청목도인의 말이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여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하룻밤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음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러자 그는 그 어떤 의문에 사로잡혀 안절부절 초조해진다.
청목도장은 운학을 바라본다.
『학아야! 어인 일이냐?』
운학은 듣지 못한 체 하다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한 가지 일이 무엇인가 새북(塞北)에 일어났던 일과 관련이 있는 것같이 생각이 되면서도……』
두 사제(師弟)는 잠시 침묵에 빠져 있다. 청목도장이,
『공연한 생각일랑 않는 것이 좋아! 이 스승이 삼년 동안 북량(北梁) 산정(山頂)에 진기를 단련하기에 극히 좋은 곳을 찾아 三년을 고행한 끝에 八대 혈맥이 막힌 가운데에서 一맥(脈)을 회복하여 경신술을 운통(運通)시킬 수 있게 되었으나 이대로 고행을 계속한다 하여도 공력(功力)의 회복은 가망이 없을 것 같다.』
이 때 운학이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를 높여,
『아! 기억이 납니다! 새북(塞北)! 침사곡!』
청목도인이 깜짝 놀라면서,
『네가 어떻게 아니? 음! 너는 내가 역경(易經)책 갈피에 끼워 두었던 한 장의 지도를 본 게로구나!』
운학이 말한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역경책 갈피 속에서 지도를 찾아 뒤적거리던 중에 그 새북 일대의 지형 중에서 침사곡이란 골짜기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침사곡 윗면에는 「×」 표가 두 개 그려져 있었습니다.』
『학아야! 너 내 말을 잘 들어라! 십 년 전에 네 청쟁 사숙이 전진파를 대표하여 그곳에서 실종된 뒤에, 나의 공력이 거의 소진하였건만 역시 새북에 가서 답사한 일이 있었느니라. 그러나 한 오라기의 흔적도 찾아내지를 못했어. 내가 그곳에서 두 해 동안을 보내면서 새북일대를 두루 편유하던 중에 침사곡에 이르러 십분 의심이 난 것은 사실이야. 그러나 나는 그때 공력이 전연 없어 도저히 침사곡을 건너가서 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어---』
운학이 말했다.
『그러시다면 사부님!』
그 때 돌연 배후에서 찬바람소리가 났다. 운학이 민첩하게, 마치 고양이처럼 재빠르게 엎디어 소리 나는 곳을 더듬었으나, 아무 곳에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청목도장의 얼굴에는 짐짓 의아해 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거운 어조로,
『학아야, 돌아오너라. 지금 그 사람은 벌써 멀리 달아났을 게다.』
그러나 운학은 어둠 속을 노려보면서 인기척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도대체 사부와 나와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의심이 들어 마음속이 개운하지 못했다.
운학이 놀랍고 한편 이상하여 사부를 바라보니 청목도장은,
『지금 그 사람의 공력을 앉아서 알아보니, 학아야! 너도 당대의 고수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구나.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굴까?』
하면서도 별로 깊은 관심을 표시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대단하게 여기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운학은 수모와 총애를 동시에 느끼면서 놀란 눈으로 사부를 바라보니 사부는 당대 제일 고수다운 엄하고 기괴한 표정이었다.
청목도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학아야! 내일 아침 일어나면 너는 나를 一대(代)의 조사(祖師)로서 중히 섬겨야 하느니라. 이제 나는 정식으로 너를 전진파(全眞派)의 제 三十三대 수제자(首弟子)로 삼는다.』
귀를 모아 듣던 운학은 전진파의 수제자란 말을 듣는 순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허공에 눈을 주고 있다가 다시 구름을 보니 눈앞에 금빛 장막이 휘황하게 눈을 끄는 듯 마음이 격동하였다.
청목도장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귀에 울려왔다.
『학아야! 너는 오늘부터 강호에 첫발을 내 놓는 것이야. 명년 팔월 중추에는 전진파 수제자의 자격으로 육반산(六盤山) 영총봉(英塚峰)에서 그 옛날의 마교오웅과 싸워야 하느니. 만약, 그들이 건재하고 있다면 너는 비룡십식(飛龍十式)의 초식을 써서 그들을 물리쳐야 하느니라.』
운학은 갑자기 일신상에 돌연 무거운 임무가 짊어지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순간, 그는 자기의 분명치 않은 출신이나, 부모의 원수가 있다든가 하는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학아야, 전진파 三十三대 수제자! 반드시 이겨야 하느니라!』
운학은 늠연히 결심한 듯 대답한다.
『사부님, 저는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청목도장은 계속하여
『학아야! 一년 후 다섯 사람과의 결전에서 이긴다면 너는 나에게서 천하 고수의 이름과 관록을 뺏는 것이니라. 그러하거니 너의 승리는 오직 너의 실력과 신념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니라.』
운학은 낮은 목소리로
『그러면 사부님께서는?』
노도인은 운학의 그 순진하고 때 묻지 않은 태도를 잠시 응시하고는 十년전 화장(火葬)터를 헤매고 있던 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장은 느린 음성으로 대답한다. 그 목소리에는 유유자적하는 맛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 一년 안에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많다. 너의 신상(身上) 문제와 부모의 원수를 알아내는 일……. 청쟁사제의 소식을 아는 일……. 침사곡에 대한 의문을 푸는 일…… 이 모든 의문을 풀어 보려는 것이야. 학아야! 너 내일 일찍 나를 찾아오너라…… 이제 나는 간다.』
청목도장의 경공법은 겨우 八할(割)밖에는 회복되지 못하였으나 그는 벌써 초범입성(超凡入聖)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기 때문에 펀듯 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운학은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의 허리를 잡고 있었다.
하늘에는 북극성이 밝은 빛을 내면서 온 천하를 비춰 준다.
운학은 조용한 목소리로
『침사곡! 침사곡이라……』
하며 되뇌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