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7일 오늘의 역사
2023년 호주에서 산불 진화에 투입된 소방 항공기가 추락 탑승자 전원 생존하는 기적
2020년 코로나 폭로한 중국 의사 리원량(34세)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
2017년 서울행정법원 제11행정부 30년 설계수명 끝나고 3년째 가동중단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2022년까지 재가동 결정(2015.2.17) 취소판결.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다."
2016년 북한 로켓 광명성 4호 발사
2012년 필리핀에서 진도 6.8의 강진이 발생하여 43명이 사망
2010년 야구선수 임수혁 사망
2000년 경기 중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로 10년 가까이 투병해 온 프로야구 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 임수혁(41)씨가 2010년 2월 7일 오전 끝내 세상을 떠났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요양원에 있던 임씨는 이틀 전 감기 증세로 강동성심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날 오전 8시 25분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병원측은 사인(死因)을 급성 심장마비와 허혈성 뇌손상 합병증이라고 밝혔다.
임씨는 2000년 4월 18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트윈스와의 경기에서 1루에서 2루로 진루한 뒤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이 됐다. 지병인 부정맥이 원인이었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에 산소가 통하지 않아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9년 10개월간 투병해 왔다.
서울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임씨는 상무를 제대한 뒤 1994년 롯데에 신인 2차 지명으로 통해 입단했다. 입단 때부터 힘이 있는 대형포수로 주목받은 임씨는 2년째부터 주전자리를 꿰차고 공격형 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주전 첫해인 1996년엔 타율 0.311, 11홈런, 76타점을 기록했다.
1999년에는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뜨려 야구사에 기억될 만한 극적인 플레이오프전을 만든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000년까지 7시즌동안 통산 488경기에 출장해 1296타수 345안타, 타율 0.266, 홈런 47개, 257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다가 전성기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2010년 코스타리카 첫 여성 대통령 탄생
중미에서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2010년 2월 7일 코스타리카에서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현 부통령이자 집권 국민해방당(PLN) 후보인 라우라 친치야(Chinchilla) 후보가 유효 득표의 47%가량을 득표하며 압승을 거뒀다. 중미에서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2위인 시민행동당 오톤 솔리스(Solis) 후보는 25%를 얻는 데 그쳤다. 이번에 3번째로 대권에 도전했던 솔리스 후보는 중앙선관위의 1차 집계 발표 직후 패배를 인정했다.
친치야 당선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리아스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 선거운동 기간 내내 큰 우세를 보여왔다. 아리아스 대통령은 1987년 중미 국가들의 무력 충돌을 해소하는 평화안을 만든 공로로 그해 노벨상을 받았다. 친치야 후보는 당선이 확실시된 뒤, 수도 산호세의 호텔에서 지지자들에게 "코스타리카에 감사한다. 신뢰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친치야 당선자는 중도 성향이다.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나 아리아스 정부에서 법무장관과 부통령 등을 거쳤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에 현 정부의 자유시장주의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혀왔다.
2009년 호주, 사상 최악의 ‘산불’
2009년 2월 7일 발생한 호주 멜버른 북서쪽지방에 역사상 최악의 화재로 173명이 숨졌다. 9일부터 본격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화재는 4일여간 계속됐다.
거리에는 불타 죽은 야생동물 시체가 쌓여 있고, 시민 수천명이 대피시설로 피난한 가운데 화재로 고립된 마을들이 있어서 인명피해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한 주민은 마치 핵폭탄이 투하된 것 같다며 멜버른 북쪽 외곽에서 밀려오는 불길로 인한 피해를 우려했다.
경찰은 이번 산불 가운데 일부가 방화일 것으로 추정했다.
2009년 김연아, 피겨스케이팅 4대륙 선수권 대회 우승
피겨 요정’ 김연아가 2009년 2월 7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는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116.83점을 받아 지난 5일 열린 4대륙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받은 72.24점과 합계 189.07점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김연아는 4그룹 마지막 선수인 24번째로 제일 마지막 선수로 출전, 7일 오후 2시 40분 경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의상을 입고 등장한 김연아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배경음악에 맞춰 4분간 연기를 펼쳤다. 12가지 연기 요소를 환상적으로 선보여 퍼시픽 콜로시움 아이스링크를 찾은 관중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두 번째 요소였던 트리플 루프를 시도한 뒤 착빙하면서 넘어진 게 유일한 실수였다. 트리플 루프(loop·기본점수 5.0점)는 오른발 바깥 에지로 점프해 3회전 한 뒤 오른발 바깥 에지로 착빙하는 것.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이후 유난히 껄끄럽게 생각하는 점프였다.
한편 김연아의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19, 일본)는 주특기인 트리플 악셀도 한 차례 실수하는 등 합계 176.52점을 확보해 3위에 그쳤다.
2007년 英축구 리버풀, 美에 팔려 인수총액 4003억원
115년 역사에 잉글랜드 프로축구 18회 우승을 자랑하는 명문 클럽 리버풀이 미국 자본에 넘어갔다. 2007년 2월 7일(한국시각) 미 프로야구(MLB)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 톰 힉스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몬트리올 캐네이디언스 구단주 조지 질레트가 1억7400만 파운드(약 3180억원)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클럽 리버풀을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
이들은 리버풀의 부채까지 떠안기로 해 인수 총액은 2억1900만 파운드(약 4003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팬들의 반발을 염려한 듯 공동회장을 맡기로 한 힉스와 질레트는 “돈벌이 때문에 인수한 것이 아니며 승리의 열정과 구단의 전통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리버풀은 미국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가들이 소유한 세 번째 프리미어리그 팀이 됐다.
2007년 하버드대 30년만에 '교과 대수술'
2007년 2월 7일 미국 하버드대가 30년 만에 학부생들의 교양교육 과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종교와 문화, 과학을 강조하고, 학생들이 미국 중심의 편협한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다양한 사회와 가치를 다루는 과목을 교양필수과목에 편입시킨 것이 특징이다.
이 위원회가 발표한 개편 권고안에 따르면, 학부생들은 교양과정에서 과학·종교·세계 문화 등을 다루는 8개 부문의 과목 가운데 부문별로 최소한 한 과목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지난 30년간 활용된 현재의 핵심 교양과목을 대체하는 이들 8개 부문은 미학해석학 이해, 문화와 신앙, 경험적 추론, 윤리적 추론, 생명과학, 물리학, 세계의 다양한 사회, 세계속의 미국 등이다.
2001년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 언론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고 발언해 파문
2000년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사상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
핀란드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집권당인 사민당 출신인 현직 외무장관 타르야 할로넨이 그 주인공이다. 할로넨은 2000년 2월 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당의 에스코 아호 전 총리를 누르고 임기 6년의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됐다.
할로넨의 대통령 당선은 1994년 여성 국방장관이 대통령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뒤를 이은 도전에서 성공한 것이었다.
짧은 머리에 다소 큰 체격의 할로넨은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미소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진지함과 친근함을 느끼게 했다. 정통 사회민주주의자로 동성애자협회 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사회 소수세력들의 권리를 적극 옹호해 온 할로넨은 1979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법무-보건-외무장관 등을 역임하면서 현실주의적 시각도 잃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개인적인 매력과 함께 핀란드가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매우 활발한 나라라는 점도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는 배경이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공직 진출권을 인정한 나라로 2000년 당시 여성의원수가 스웨덴, 덴마크에 이어 세계 3위였다. 할로넨은 3월 1일 취임식을 가졌다.
1999년 후세인 요르단 국왕 사망
요르단을 46년간 통치해 온 후세인 이븐 탈랄 국왕이 1999년 2월 7일 오전 11시43분 타계했다. 시신은 수도 암만의 하셰미트 묘소에 안장되었으며 요르단 정부는 40일간의 공식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8일 열린 영결식에는 한국의 김종필 총리를 비롯, 클린턴 미국 대통령,옐친 러시아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후세인 국왕은 46년간의 통치기간동안 뛰어난 외교수완으로 `화약고` 중동의 평화를 이끌어 온 거인이었다. 1953년 17세에 왕위에 오른 후세인은 냉전과 40년에 걸친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약소국 요르단의 발전을 일궈냈다. 그의 왕위 등극은 험난한 인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1951년 조부 압둘라 국왕은 한 회교사원에서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에 의해 암살됐다.
후세인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로부터 1년 만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최대 시련은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집트 편에 선 것이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참패하는 바람에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잃게 된다. `평화의 중재자`로서 후세인의 면모는 1998년의 중동평화협상에서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후세인에게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후세인은 아픈 몸을 이끌고 중재에 나서 와이리버 협정을 성사시켰다.
1999년 한국-이스라엘, 투자보장협정 체결
1998년 일본 나가노에서 제18회 동계올림픽 개막식
1997년 압달라 부카람 에콰도르 대통령, 비상사태 선포
1996년 전경련, ‘기업윤리헌장’ 제정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기업경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기업윤리헌장이 제정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7일 오전 전경련회관에서 올 첫 이사회를 열고 기업윤리헌장 심의위원회가 상정한 윤리헌장을 심의, 의결했다. 기업윤리헌장은 오는 15일 전경련 정기총회에서 채택될 예정이다.
윤리헌장은 『우리 기업은 기업가정신을 발휘하여 경영과 기술을 혁신하고 투명한 기업경영을 통해 바람직한 정경문화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고 밝히고 『자유경제체제를 창달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장은 또 중점 실천항목으로 ▲기업시민으로 사회적 책임 ▲정당한 이윤의 창출 ▲공정경쟁 ▲대기업-중소기업간 협력 ▲소비자와 고객의 권익 증진 ▲기업구성원의 이익 향상 ▲환경친화적 경영 ▲지역사회 발전 기여 등 8개항의 규범을 담았다.
1996년 정호용, 허삼수, 허화평 의원 12.12및 5.18사건으로 구속기소
1995년 정명훈, 프랑스에서 94최고음악가상 등 3개상 수상
1992년 한국-투르크메니스탄, 국교 수립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 조인
유럽공동체(EC) 12개 회원국이 1992년 2월 7일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1991년 12월 EC 정상들이 합의한 EC 단일시장 및 단일통화-정치통합 실행을 골자로 한 유럽통화조약을 정식 조인했다.
마스트리히트 시청에서 거행된 이날 조인식에는 자크 들로르 EC위원장과 에곤 클렙시 유럽의회 의장을 비롯, 1992년 의장국인 포르투갈의 아니발 카바코 실바 총리, 1991년 하반기 의장국 네덜란드의 루트 루베르스 총리, 차기 의장국 룩셈부르크의 자크 상테르 총리와 각국 외무·재무장관들이 참석했다.
3백13페이지에 이르는 본문과 부속문서로 돼 있는 EC 통합조약은 늦어도 1999년까지의 역내 단일통화 도입을 규정하고 있으며 유럽의회의 권한증대, 외교안보 분야에서 회원국간 결속 강화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각국의 이견과 덴마크의 비준거부 등으로 비록 당초목표인 1993년 1월보다 10개월 늦은 1993년 11월 조약이 발효됐으나 EC 12개 회원국 3억4천6백만 유럽인들의 정치-경제적 운명은 이제 역사상 그 어느때 보다도 긴밀히 묶어지게 됐다.
발효와 함께 EC는 유럽연합(EU)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1999년까지 EU 회원국이 단일통화를 채택하고 정치적인 권한의 상당부분을 통합기구에 위임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어 각국의 반대가 심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1993년 10월 독일이 마지막으로 비준해 실효를 보게됐다.
1991년 아일랜드 공화국 소속 테러단 영국총리 관저에 박격포 공격
1991년 수서택지 특혜분양사건 조사
1986년 필리핀 17년 만에 대통령선거
필리핀의 미래를 결정할 대통령선거가 1986년 2월 7일 실시됐다. 마르코스로서는 대규모 반정부운동과 공산게릴라의 준동, 미국무성의 압력 등으로 마지못해 실시한 선거였다. 투표부터 개표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은 부정선거로 얼룩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민간 선거감시기구와의 개표결과는 큰 차이가 있었고 예상대로 마르코스는 재선됐다.
그러나 아키노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양측의 대립이 심각해져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22일에 이르러 사태가 급반전됐다. 마르코스의 측근이었던 엔리레 국방장관과 라모스 참모총장대행이 마르코스에 반기를 들었고 가톨릭의 신추기경도 반정부입장을 표명했다. 24일 마르코스는 필리핀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언했지만 아키노를 지지하는 흐름은 막을수 없었다.
1981년 소련 군용기 추락, 장성 등 70여 명 사망
1980년 미국 대 이란 경제제재를 동결
1980년 남북직통전화 3년 만에 재개
1979년 근현대 동양화단 채색화의 대가 김은호 사망
1977년 정부 스페인과 문화협정 체결
1974년 입시부정으로 인책된 김주만 전 경북교육감 자살
1972년 파월 청룡부대 귀국
1971년 스위스 국민투표, 여성참정권 인정
1968년 경전선 개통(진주-순천 80.5km)
1967년 신민당 창당
한국 현대사에서 `야당의 대명사`였던 신민당이 1967년 2월 7일 창당했다. 창당과 함께 당수에는 유진오씨가, 대통령후보에는 윤보선씨가 선출됐다. 민중당과 신한당의 합당 형태로 창당된 신민당은 이후 자유당과 한국독립당을 흡수해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적인 야당으로서 반독재 민주주의의 선봉에 나섰다.
1970년에는 40대 기수론의 한 사람이었던 김대중씨가 대통령후보로 선출돼 선거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그 뒤 유진산계와 반유진산계로 양분돼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1974년 김영삼씨가 총재로 선출되면서 대여 강경노선을 펼치던 신민당은 1976년 중도통합론을 주창한 이철승씨가 당권을 잡으면서 대여 온건노선으로 전환했다. 다시 1979년 5월 김영삼씨가 총재로 선출되자 신민당은 선명 야당을 기치로 내걸고 강경노선으로 선회했다.
1979년 10월 신민당사에서 YH무역 여공들의 회사폐업반대 농성은 유신체제를 와해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전면에 등장한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공포와 함께 해산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66년 박정희대통령 동남아순방 등정
박정희 대통령이 1966년 2월 7일부터 18일까지 12일간 말레이시아를 비롯, 태국과 자유중국 등 동남아 3개국을 공식 순방하고 상대국간의 우의증진과 경제협력문제 등을 논의했다. 박 대통령은 2월 9일 첫 순방국인 말레이시아의 국회의사당 귀빈실에서 라만 수상과 공식회담을 하고 월남사태와 관련된 자유 아시아의 공동방위문제와 양국의 경제협력문제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어 박대통령은 4일간의 태국방문 중 타놈수상과 한 정상회담에서 태국은 통한에 대한 한국정부정책을 지지했다. 또 월남을 지지할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문화교류에 관해서도 협의했다. 박 대통령은 마지막 순방국인 자유중국에서 장개석총통을 만나 자유아시아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긴밀한 협조를 통해 유대강화에 최선의 길을 모색할 것에 합의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65년 미국, 베트남 `북폭` 개시
1965년 한국, 브라질 문화협정 조인
1964년 한국-케냐 국교 수립
1964년 비틀즈 미국 상륙, ‘비틀즈 열풍’ 시작
1964년 2월 7일 낮 1시 30분, 미국 케네디 공항에서 영국의 4인조 그룹 비틀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20세기 청춘문화의 상징이 된 비틀스가 미국 정벌에 나선 것이다. 공항에는 비틀즈를 보기위해 3,000여 명의 소녀들이 몰렸으며 9일 밤 비틀즈가 출연한 TV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쇼’ 는 7,300만 명의 미국인이 시청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뤘다.
포크송과 트위스트에 식상해 하고 케네디 암살 후 새로운 영웅을 원하던 미국은 비틀즈에 열광했다. 영국 가수는 미국에서 성공 할 수 없다는 징크스를 깨며 2월 첫 주에 전미 히트 차트 1위에 오른 비틀즈는 4월 4일의 빌보드 차트 랭킹에서는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미국에 상륙한 1964년에만 18주동안 전미 차트 1위를 독점한 비틀즈는 미국 싱글 레코드 판매의 60%를 차지하고 자신들의 헤어스타일, 인형, 기타 등을 유행시켰다.
비틀즈는 1956년 고등학생인 존 레넌이 ‘퀴리멘’ 이라는 록그룹을 조직하면서 시작됐다. 존 레넌은 곧 폴 매카트니(1957년), 조지 해리슨(1958년)을 합류시켜 영국 리버풀과 독일 함부르크를 오가며 명성을 쌓았고, 마지막으로 링고 스타가 합류해 멤버가 갖춰졌다. 19~22살의 더벅머리 4인조는 1962년 EMI사와 계약을 맺고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데뷔 싱글 ‘Love Me Do’ 를 발표하며 등장했다.
1970년 4월 10일 해체하기까지 9년간 공식적으로 211곡을 발표하며 전 세계의 팬들을 열광과 흥분으로 몰아간 비틀즈는 해체와 함께 전설로 남게 됐다. 앨범 판매량은 20세기 최대 음반판매 기록인 1억 6,000만장이었다.
1962년 미국의 대 쿠바 전면금수 발효
1951년 한국전쟁 중 산청·함양 양민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1947년 구약성서 사본 『사해문서』 발견
1946년 남조선 국방경비대 총사령부 창설 초대 사령관에 미국의 마셜 취임
1944년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 사망
1929년 한국 동양화가 서세옥 출생
1919년 송진우 최린 등 비종교계와 종교계 합동으로 독립운동 불멸계획 추진
1906년 중국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 출생
1902년 덴마크와 수호통상조약
1898년 한국 독립운동가 민필호 출생
1894년 벨리에의 악기 제조인 아돌프 삭스 사망
1887년 영국 군함, 거문도에서 철수
1885년 미국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 출생
1870년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트 아들러 출생
1814년 미국 마취전문의 콜턴 출생
1812년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 출생
1799년 중국 청나라의 4번째 황제 건륭제 사망
1477년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마스 모어 출생
1410년 태종10년 주자소에서 서적 출판토록함
1151년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 사망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서 `삼국사기`를 편찬한 고려시대 대학자 뇌천 김부식(1075∼1151)이 1151년 2월 7일 사망했다. 경주가 본관인 김부식은 예종·인종 조에서 재상을 지내고 유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시인으로도 이름 높은 당대의 정치가·학자·문인이었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진압해 고려왕조 안정에도 기여했다. 인종 때 신진관료 8명과 함께 `삼국사기` 50권을 편찬해 한민족 고대사를 후세에 전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단재 신채호가 1925년 사론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대사건`을 발표, 묘청과 김부식의 대립을 독립사상 대 사대주의의 결전으로 해석한 이래 김부식은 사대주의의 대표격으로 비난받아 왔다.
또 일본 제국주의 사학자들은 한민족의 국가기원을 낮춰 잡느라 고의로 `삼국사기`를 믿지 못할 사서, 김부식을 역사왜곡자로 매도해왔다. 그 결과 김부식은 오랫동안 사학계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최근 몇 년새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인정되면서 김부식 자신도 새로 조명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