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240DBF465774E1F611)
우리나라 6.25처럼 이념에 따른 동족상잔 전쟁이었던 스페인 내전은
공화파를 지원하던 소련과 파시스트를 지원하던 독일 이탈리아의 대리전이였고
![](https://t1.daumcdn.net/cfile/cafe/217D36465774E1F61F)
히틀러는 콘도르 군단을 파견해
![](https://t1.daumcdn.net/cfile/cafe/2568A4465774E1F733)
슈투가 폭격기나
![](https://t1.daumcdn.net/cfile/cafe/21140F465774E1F70A)
88mm 대공포등 2차대전 주요 무기를 시험하기도 했으며
![](https://t1.daumcdn.net/cfile/cafe/27721F465774E1F729)
독일군의 폭격은 "게르니카"라는 작품으로 나오기도 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4694F465774E1F733)
그렇다면 왜 유럽의 수 많은 국가 중 스페인에서 내전이 터졋을까?
![](https://t1.daumcdn.net/cfile/cafe/2467CE465774E1F834)
스페인 마지막 이슬람 거점인 그라나다를 점령하는 이사벨여왕
스페인 내전의 근본적인 원인은
1492년 스페인내 마지막 이슬람 거점인 그라나다 점령부터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슬람 세력과 싸우면서 카스티야왕은 "전사 계급"인 귀족과 교회에 땅을 주었고
그들의 지원을 받아 마드리드 중심의 카스티야는 발전할 수 있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10FF6465774E1F80E)
이슬람과의 전쟁이 끝나자 귀족과 교회는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점령했고,
카스티야 정부는 보답으로 귀족에게는 더 많은 땅을 교회에는 국가의 교육을 맡겼고
![](https://t1.daumcdn.net/cfile/cafe/246BBF465774E1F830)
이베리아 반도의 소국들은 카스티야에 흡수되어
스페인의 한 지방으로 전락해버렸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312DF415774E1F90B)
한편 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는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지만
무력으로 점령한 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금은 국내 산업발전이 아닌
군대와 교회에 쓰일수 밖에 없었고
스페인이 자랑하던 군대는 영국과 프랑스에 패배했고
교회는 낡은 봉건제의 유산으로 남아 다른나라가 산업혁명이네 뭐네 하면서 발전할 때 발목을 잡는 장애물로 전락했어.
15세기 1400만인 인구는 18세기말 낙후된 스페인을 떠나 700만으로 감소했고
1788년 인구조사에서는 성인 남성의 절반이 귀족이라던가
군대 또는 교회와 관련된 사람으로 생산적인 직업에 종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어.
놀고 먹는 사람이 많으면 국가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퇴보하겠지?
![](https://t1.daumcdn.net/cfile/cafe/2309D3415774E1F912)
이런 절망적인 스페인에 19세기초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와 함께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왔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25D19415774E1FA32)
1812년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헌법이 공포 되었으나
![](https://t1.daumcdn.net/cfile/cafe/265C61415774E1FA33)
1차 카를로스 내전 중 빨간색 베레모를쓴 카를로스파 군인
변화에 반대한 기득권층의 반발에 무너지고 종교재판소가 등장하는 혼란한 상황속에
1833년~1850년 사이 자유주의자와 보수세력인 카를로스파와 내전이 있었고
자유주의자들은 내전에 승리해 정권을 잡을 수 있었어.
진보와 개혁을 외치던 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스페인은 발전했을까?
![](https://t1.daumcdn.net/cfile/cafe/2618E0415774E1FB06)
답은 노
권력을 잡은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지지하던 국민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정치가 혼란해져
![](https://t1.daumcdn.net/cfile/cafe/235715415774E1FB35)
1814~1874년 사이에 무려 37번의 쿠데타가 발생하고
자유주의자에 실망한 국민들은 1873년 국민 투표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부를 수립했으나
공화정부도 1874년 군대와 귀족 교회 세력에 의헤 무너지고
다시 왕정을 도입해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62CC8405774E1FB0A)
1874년부터 1936년까지 약 50년 동안 귀족과 교회는
스페인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어.
선거는 있었지만 형식적이었고
농민들이 투표소에 가서 투표라도 할라고 하면
위 짤에 있는 몽둥이를 들고 있는 깡패들이 두들겨 패서 투표도 마음대로 못했다고 해.
![](https://t1.daumcdn.net/cfile/cafe/23755D405774E1FC2F)
농민들은 귀족과 교회의 착취에 시달렸고
반항이라도 한다면 땅을 내놓아야만 했어.
관리들은 부패했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법정은 귀족과 교회의 편이었지.
![](https://t1.daumcdn.net/cfile/cafe/2625F6405774E1FC10)
20세기초 스페인의 상황에 실망한 사람들은
1900~1910년 1850만명의 인구 중 50만명이 아메리카로 이민을 떠낫으며
문맹률은 64%, 기대수명은 35세에 불과해
서유럽 사람들은 스페인을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로 취급했다고 해.
![](https://t1.daumcdn.net/cfile/cafe/217D94405774E1FC2A)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스페인은 중립을 선포했는데
전쟁동안 농산물과 원자재수출, 산업생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경제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고 세계3위의 금보유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237AA405774E1FD01)
하지만 1차세계 대전이 끝나자 스페인 경제는 다시 악화되었고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
1923년 21만명이던 노동자연맹의 회원수는 1932년 50만명으로 늘었고
1919년 70만명이던 무정부주의자는 1930년에는 100만명으로 증가했으며
노동자들은 공장을 장악해 "소비에트 러시아만세"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대낮에 총리가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하고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지.
![](https://t1.daumcdn.net/cfile/cafe/2420C7405774E1FD14)
스페인정부는 모로코를 침략해 전쟁의 승리로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오히려 1만명의 병사가 죽고 4천명이 포로로 잡혀 대패했고
또 다시 보낸 군대도 7천명이 전사하고
장교들은 쇠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했고
1931년 왕정이 폐지되고 스페인은 다시 공화국이 되고 말았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62CE4405774E1FD0A)
공화정부는 지주가 소작농을 내쫓지 못하게하는 법률과
하루8시간 노동같은 농민과 노동자를 위한 법들을 제정했고
병사는 18만명에 불과하지만 장군은 400명이 넘는 기형적인 스페인 군대를 개혁했어.
또한 교회의 재산을 국고에 귀속했으며 귀족들이 보유한 토지를 몰수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571603D5774E1FE0E)
기득권 세력은 과연 가만히 있었을까?
귀족과 군대는 쿠데타를 계획했지만 실패하자
1933년 선거를 지켜보기로 했는데
1933년 스페인 총선에서 우파가 대승을 거두자 쿠데타 계획을 중단했고
우파정부는 귀족들의 토지몰수 법안을 폐지했고
이에 반발한 좌파는 총파업을 일으키거나
폭동을 일으켜 우파정부에 대항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4803D5774E1FE24)
좌파 조직은 과격해졌고
"혁명이 성공하냐 실패하냐는 얼마나 많은 폭력을 끌어내느냐에 달려있다" 같은
과격한 구호를 외쳤고
좌파 국회의원들 조차
"스페인에서 계급투쟁은 사라져야한다! 그렇기 위해선 한 계급이 사라져야한다!"같은
과격한 발언을 하면서 스페인내 부르주아 계급을 말살시키자고 주장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2605D3D5774E1FE1E)
1934년 폭동을 진압한 스페인 치안대
좌파들은 무기고를 털거나 몰래 외국에서 무기를 수입해 와
비밀 무장단체를 조직했고
혼란속에 의회는 해산됐고 1936년 다시 총선을 시작하기로 결정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25B2A3D5774E1FF21)
좌파는 총선을 앞두고 "만약 우파가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답은 내전 밖에 없다."라고
선언했고 우파도 "좌파가 승리한다면 폭동이 일어나 은행과 공장이 불타고
재산과 토지는 약탈당할것이다."라고 선언해
선거기간 동안 좌우간 엄청난 충돌이 있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4E53D5774E1FF26)
"좌파가 승리한다면 러시아에서 벌어진 일을 똑같이 스페인에서 할것이다.
스페인 사회주의와 러시아 공산주의는 같다."-좌파신문 엘 소시알 리스타지 칼럼
좌파와 공산주의자들은 선거를 통해 승리하면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기로 결정했어.
하지만 일반인들이 공산주의에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 아나키스트 기타 사회주의단체들은
인민전선을 조직해 우파에 대항하기로 결정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A3E3D5774E1FF22)
스페인 공산당의 투표 독려 포스터.
(어째 좌파 새끼들 포스터는 하나같이 호전적이노?)
"공산주의자에 투표해 스페인을 마르크스주의에서 구하자"-인민전선의 슬로건
![](https://t1.daumcdn.net/cfile/cafe/2346053D5774E20031)
1936년 2월 선거에서 좌파는 15만 표차이로 승리했고
좌파가 승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군중들은 우르르 교도소로 몰려가 죄수들을 석방했고
경찰관들을 폭행했으며 무기고를 습격해 자체무장을 시작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3611B3D5774E2001D)
좌파정부는 귀족들의 토지 몰수를 선언했고
그 동안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실직한 모든 노동자들의 복직을 결정했으며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회사가 감당할수 없는 높은 임금을 요구했고
자본가들이 응하지 않을 경우 공장을 점거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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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250BC3435774E20004)
빨간색 베레모를 쓴 카를로스파
위기를 느낀 우파도 자체 무장을 시도했지만
좌파정부는 좌파 단체가 무장한 경우 넘어갔지만
우파 단체의 무장은 허락하지 않았고
많은 우파 단원들이 불법무기 소지죄로 체포당했어.
겨우 카를로스파만 6천정의 소총과 기관총 450정을 구할 수 있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401F4435774E2010F)
농민들은 그 동안 지주에게 당했던 분풀이를 하고
지주들의 땅을 빼앗고 교회에 불을 질렀고 사제들을 살해했어.
이런 상황 속에서 유럭 좌파 정치인 라르고 카바예로는
"혁명은 오직 폭력만으로 이룰수 있다"면서 폭력을 옹호했고
![](https://t1.daumcdn.net/cfile/cafe/216E87435774E20122)
기회를 포착한 바스크나 카탈루냐 갈리시아 지역에서는 자치 의회을 선포했고
독립을 준비하기 시작했으며
급변하는 변화 속에서 좌파의 영향을 받은 여자들은
"아이는 YES, 남편은 NO"라고 외치고
수백년간 존재한 전통적인 사회 체제는 무너지기 시작했어.
그럼 스페인 좌파정부는 뭘하고 있었을까?
뭘 하긴 뭐해 병신 마냥 엑윽거리고 있었지.
인민전선을 실질적으로 이끌던 공산당은 정부 각료는 온건 좌파들을 전면으로 내걸고
뒤에서는 파괴와 폭력을 일삼아 사람들이 좌파 정권에 거부감을 느끼면
정권을 탈취할 목적이었고
실세인 공산당이 정권탈취에만 관심이 있으니
인민전선은 무능할 수밖에 없었음.
![](https://t1.daumcdn.net/cfile/cafe/237F27435774E20211)
![](https://t1.daumcdn.net/cfile/cafe/246CE3435774E20224)
좌파정권은 군대에도 끄나풀을 심었고
위협이 될 만한 프랑코장군은 카나리아제도로
고데드 장군은 발레아레스 제도로 좌천시키고 군사 쿠데타를 방지하고자 했고
![](https://t1.daumcdn.net/cfile/cafe/2550DD435774E2023F)
스페인 곳곳에서 공산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를 숙청하고
러시아처럼 공산정권을 설립한다는 소문이 돌았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609C0455774E20206)
스페인 장군들은 공산당이 정권 탈취를 하기 전 먼저 쿠데타를 일으켜 좌
파 정권을 몰아내기로 결정하고
1936년 7월 17일 "코바동가"라는 암호문과 반란은 시작됐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75883455774E20337)
"영웅적인 아프리카 군단에 영광 있으라!
승리하리라는 믿음을 가져라! 스페인 만세!"
-반란이 시작되고 프랑코가 스페인 군부대에 보낸 전문
![](https://t1.daumcdn.net/cfile/cafe/2508DB455774E20307)
노동자! 농민! 안티 파시스트! 스페인의 애국자들이여! 파시스트의 군사 반란에 직면하여, 모두 스스로 일어서 공화국과 인민의 자유 그리고 민중이 이루어낸 민주적 위업을 수호해야 합니다! 정부와 인민전선의 성명을 통해 인민 여러분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습니다.
모로코와 카나리아 제도에서는 노동자들이 아직 공화국에 충성하는 세력과 연합하여 파시스트 반군에 대항하는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파시즘은 지나가지 못한다! 10월의 교수 집행자는 통과하지 못한다!'라는 기치 아래 스페인 모든 지역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공화국의 적에 대항하기 위한 투쟁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카탈로니아, 바스크, 갈리시아의 인민들이여! 모든 스페인인들이여! 우리의 민주 공화국을 수호하고, 우리가 2월 16일에 이룩한 승리를 확고히 합시다. 공산당은 당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특히 노동자들, 농부들, 지식인 여러분이 공화국과 민중의 자유의 적들을 타도하여 최후의 승리를 이루어 낼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싸워주길 원합니다.
인민전선이여 영원하라! 안티 파시스트 연합이여 영원하라! 민중의 공화국이여 영원하라! 파시스트들은 지나가지 못한다!
-1937년 7월 19일 공산당 의원 돌로레스 이바루리의 라디오 선언문
![](https://t1.daumcdn.net/cfile/cafe/247BFE455774E20314)
스페인 외인부대
스페인 반란군의 주력은 북부 나바라 지방의 카를로스파 6만명과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모로코에 배치된 외인부대를 포함한
아프리카 군단 4만명이 주력이었고
카나리아제도에서 모로코로 비행기를 타고간 프랑코는 순식간에 모로코를 점령했고
모로코인 용병 7만명을 소집하는데 성공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604C4455774E2040C)
세비야를 점령한후 라디오로 점령 선언을 하는 케이포 데 야노
헌병 사령관 케이포 데 야노는 소수의 병력으로
스페인 좌파의 심장인 세비야를 점령했으며
![](https://t1.daumcdn.net/cfile/cafe/2309EE455774E20406)
쿠데타 입안자였던 에밀리오 몰라
에밀리오 몰라 장군은 카를로스파의 도움으로 나바라 지방을 점령했고
전통 복고주의자던 나바라지방의 바스크인 카를로스파들은
"5월 들판에 핀 꽃보다 더 많은 빨갱이를 죽이리라"
"그리스도 왕 만세"라고 외치면서 반란에 동참했어.
![](https://t1.daumcdn.net/cfile/cafe/247FE7455774E20410)
모로코를 점령한 프랑코는 아프리카군단과 모로코인 용병대, 스페인 외인부대를
본토로 상륙시키려 했지만 공화정부를 지지하는 해군 수병들의 저항으로
수송선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유럽 파시즘 지도자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연락했지
![](https://t1.daumcdn.net/cfile/cafe/241F94405774E20415)
프랑코가 연락한 파시즘 지도자는 바로 히틀러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