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사용설명서Ⅱ-스물세 번째 이야기】
세 개의 장면으로 읽는 유럽⑵
철학이 만든 제국/속도전이 빚은 근대/유럽연합
유럽을 흔든 두 개의 폭풍–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세계역사를 통해 큰 변혁을 겪는 인류는 짧지 않는 시기를 거치며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기를 거치고 근대에 진입하게 된다. 사상사와 철학을 다루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인류의 근대화는 두 R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르네상스(문예부흥Renaissance)와 종교개혁(Reformation)이다. 이 두 가지 정신사적 변화가 필연적인 인과과정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인위적으로 일어났다고 보기에도 방대한 사건이기도 하고 이 사건에 연루된 주인공들도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르네상스의 핵심은 커튼 뒤에 가려졌던 인간성의 자각과 회복이 중심과제였다. 가톨릭의 관점과 방향을 부정한 폭발이었다.
중세는 종교의 시대였고 모든 사상의 우위를 차지한 신앙이 절대적인 가치를 떠받들던 은총과 조화의 질서가 충분했던 기간이라는 가톨릭의 자체평가 위에 모든 철학과 사상이 떠받치는 학문이 신학의 그늘에서 성장했다. 학문과 예술은 종교적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였다면 인간은 신의 뜻과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이고 자연은 인간을 위해 창조된 신의 선물이면 되었기에 이성은 신앙의 보조수단이고 교회의 모든 사회제도가 무오한 모범이라고 믿고 따르는 것이 믿음의 실체라면 충분했다.
믿음과 실제의 괴리감에 의문을 품은 진취적인 학자들이 고대를 연구하기에 이르고 가톨릭 이전의 고대와 로마사회의 생생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르고 종교에 가려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되찾아야 하는 책임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 당대의 선각자인 인문학자들이 선두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 본질에 대한 고민은 본격화된다.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다루어도 좋은 관심거리이다.
그리스 로마에서 생성된 근대의 원형은 중세의 긴 휴식기를 거치면서 르네상스(14세기~16세기)라는 거대한 사상적 전환과 함께 종교개혁이라는 변화의 물결을 입으며서 거친 파도가 되어 세계를 덮친다. 16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종교개혁의 배경에는 알려진 대로 기존 교회에 대한 불만과 불일 듯 거세지는 비판의식이 강하게 일었다. 교회가 ‘신의 대리인’이 되어 신을 독점하면서 자유로운 신과의 대면을 방해하는 존재로 비쳐지기 시작한다. 당시 성서는 라틴어로 기록되었는데 당시에는 지배층을 제외하면 라틴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적었다. 신의 말씀조차 허락되지 않은 갇힌 제도 속에서 신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있었다.
독일의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가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시작된다. 기존의 면죄부는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서 일어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십자군에게 주어진 상(賞)이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빼앗긴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전제에 지속적으로 활동한 군사들에게 주는 일종의 혜택이었다. 시작부터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불만은 부족이 아니라 비교에서 온다. 혜택을 거부당한 이들에게 반발이 없을 리 없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면죄부는 팔리기 시작했다. 형편상 종군은 못하더라도 그들이 누리는 혜택은 공유하고 싶었던 이들의 욕구와 쉽게 돈이 되는 방법을 놓칠 수 없던 교회는 합의하에 불법을 종교의 이름으로 합리화했다. 교회에서 발행되는 면죄부는 본격적으로 교회의 수입원이 되고 교회의 사업이 되어 교회의 타락을 이끌었다.
1547년 루터는 <95개의 논제>라는 의견서를 통해 교회의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과 어긋난 교회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루터의 면죄부를 향한 비판은 당시 교회가 갖고 있었던 신과 인간의 중재자로서의 자격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교회가 나서서 저질렀던 철저한 위선과 부도덕함을 폭로한 것으로 당시의 교회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었다. 그는 반박문에 더해 ‘성서를 민중의 손에’라는 대담한 구호를 내걸고 교회의 근간이 되어 온 성서의 독점을 겨냥한 화살을 쏘아 올렸다. 그의 노력은 라틴어로 된 성서를 모국어인 독일어로 번역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모국어로 읽을 수 있는 성서는 더 이상 종교에 갇힌 신앙이 아니라 민중에게 다가 온 신을 의미한다. 비로소 민중들과 대면한 신의 등장이다. 언어로 독점했던 권력의 틈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교회 권력의 민낯이 언어의 독점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를 두고 20세기 철학자 미셀푸코는 ‘언어의 독점이 권력의 독점으로 이어진다.’고 간파했다. 나라들이 언어의 영역을 확장하기에 쏟는 저변에 자리한 권력의 원형이다.
언어로 지칭되는 지식 독점의 폐해는 정보의 소유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체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모르는 이에게는 돈이 되지 않지만 그것을 독점한 이에게는 질서체계의 앞자리를 선점할 수 있는 능력이 되고 가치가 달라지는 이치다. 그 시대의 ‘지식 독점’은 속도의 전쟁에 더해 정보 전쟁에 가속도를 더한 것으로 권력의 종착지를 뜻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그림과 조각이 글을 대신하며 정보와 지식이 된 이유도 신을 알권리와 지식의 향유에 있었다.
당시 유럽에 들불처럼 번진 사상의 변화는 신에 대한 지식의 향연이었다. 중세 이전에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철학이 모든 학문의 중심이고 기초였다면 중세에 와서 그 자리에 기독교에 대한 지식으로 대변되는 신학이 가장 가치 있는 지식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소유한 교회는 모든 권력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세를 거치는 동안 교회에서 사제가 읽어주는 성서가 전부였고, 더 알려고 노력해서는 안 되는 전적으로 사제에 의존하는 믿음을 귀하게 대접했던 교회는 무소불위의 위치에 있는 난공불락 요새가 되었다. 교회는 알지만 민중은 모르는 유럽의 교회의 본질은 오랫동안 그 방패막이가 있어 가능했다. 교회 위상의 본질은 수평적인 대화와 변증법적 사고가 끼어들 틈이 없는 막강한 권력이었다.
고대 철학에서 하나의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와 다양한 의견을 내며 한 차원 높은 개념을 만들어내는 지적 활동은 중세에서 오히려 퇴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시대 민중들의 현실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신의 대리자인 교황이나 사제들과의 대화조차 차단당하거나 불가능한 냉혹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중세 종교의 본질을 흔들고, 위선적인 교회 권력 구조의 부당함과 부패한 교회의 비리를 폭로하고 나선 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의 본질이었다. 당시 교회는 위험천만한 인물인 루터를 파문하게 되고 교회를 수성하기 위한 방어에 들어갔다. 그러나 민중들에게 신은 여전히 가깝지 않았다. 민중들은 곁을 허락한 신에게 가까이 가기에 신이 가진 엄격함과 신이 가진 중압감을 떨치기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이다. 교회를 지배했던 교회가 갑자기 친절한 교회 모습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란다는 것은 여전히 거리가 있던 시대정신이 지배하고 있었다. 잘 모르던 신은 더 엄격하고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프로테스탄트(기독교)에서 오롯이 개인으로 신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철저하게 개인으로 신 앞에 서게 된 개인에게 주어진 ‘금욕’의 의무와 책임은 또 다른 중압감으로 짓눌렀던 점을 생각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신 앞의 자유로운 왕래가 아니라 더 멀어진 규율과 교리에 매이게 된다. 오히려 중세교회가 가졌던 느슨함을 조이게 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는 19세기까지 이어지는 금욕과 절제 생활로 이어지는 사회적으로도 병적인 환자들을 양산하기에 이르고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 프로이트를 비롯한 여러 정신분석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문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중세의 교회는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인 기독교는 가톨릭과는 원류부터 다른 태생으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이는 종교가 확장되는 방법과 보수적으로 지켜가는 방법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준다. 가톨릭은 이제까지 유지하던 도덕적인 개념에서 달라진 것이 없지만 프로테스탄트들은 오히려 더 강조된 ‘금욕’과 ‘절제’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엄격한 세계는 흑백논리로 무장하게 된다. 그러한 기독교의 엄격함을 장착한 프로테스탄트의 세계는 또 다른 하나의 근대를 상징하는 자본주의를 낳는다. 자본주의의 반성은 훗날 마르크스에 의한 유물론으로 대척점을 세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은 대부분이 프로테스탄트의 나라들이다. 자본주의의 꽃을 피운 미국과 유럽의 나라들을 중심으로 원인을 분석한 이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활약한 사회학자이면서 경제학자였던 막스 베버다. 그가 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따르면 근대적 자본주의는 루터 뒤에 등장하는 칼뱅 신학을 받아들인 나라들에서 발전했다고 한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과 같은 칼뱅주의의 영향이 강한 나라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데 비해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가톨릭 국가나, 같은 프로테스탄트 국가라 하더라도 루터주의가 강한 독일에서 상대적으로 자본주의가 뒤쳐진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베버는 이 글에서 이러한 현상은 우연이 아니며 그는 칼뱅이 역설한 ‘예정설’이 자본주의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신이 모든 것을 예정했기 때문에 염세적이 될 것 같지만 신의 자비와 신의 완전한 계획을 믿는 이들이 열심히 살아야하는 것은 금욕적인 생활과 부단히 선행도 베푸는 삶이야말로 구원받을 사람의 태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럽을 지배했던 사유가 무너지면서 자본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금욕과 성결을 우선시하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가치로 탈바꿈하면서 그들이 축적하고 재투자한 물질은 엄청난 부를 재생산하기에 이른다. 그들에게 원하지 않았던 부富는 축복이었고 많은 것들을 바꾸는 힘으로 대체되었다. 베버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폐해도 크고 공평하지도 않지만 더 나은 방법이 없다는 딜레마는 근대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딜레마와 태생이 같은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로 진입한 유럽은 스스로 자초한 전쟁을 겪으면서 자력적인 정치 실험을 시도하게 되는데 세 번째로 맞닥뜨린 장면은 다시 연합하는 유럽이다. 신앙으로 결집이 가능하고 하나의 통화로 통제가 가능한 유럽을 관통하며 이어온 맥락은 유럽연합이라는 거대 제국의 모습으로 알렉산더가 꿈꾸던 제국의 원형을 다시 갖추며 인류 최초의 정치 실험을 시도하게 된다.
재현된 알렉산드로스의 원형-EU (European Union)
1991년 12월에 유럽의 12개국 정상이 유럽연합조약(마스트리히트조약) 체결에 합의한 일은 정치와 세계사에 관심이 없던 필자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들 나라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경제와 정치상황이 다른 나라들의 사정까지 보듬기 위한 연합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은 가졌지만 곧 사라졌다. 의문이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관심이 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동유럽을 여행하며 그들의 힘이 보이지 않으나 끝까지 연결된 그들을 묶는 끈이 견고할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알렉산더가 연결하려던 유럽의 생명력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느꼈다. 경제적인 일체감은 같은 통화와 언어에서 온다. 그들이 지향하는 정치 경제대국으로서의 진입은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ies)로 시작되었고 이제 자연스럽게 세력을 확장하고 그들이 원하는 유럽연합( EU; European Union)으로서의 면모는 갖추었다.
이제 유럽은 유럽연합을 말한다. 유럽연합은 1991년 12월 유럽공동체 12개국 정상이 유럽연합조약(일명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체결에 합의한 후 1993년 11월 동 조약이 발효됨에 따라 종전의 유럽공동체(EC)를 대신하는 지역공동체로서 1994년 1월 정식 출범하였다. 실질적인 목적이 분명한 유럽의 정치 경제 통합을 실현하기 위하여 1993년 11월 1일 발효된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따라 유럽 12개국이 참가하여 출범한 연합 기구이며 창설 목적은 ‘유럽내 단일시장 구축과 단일통화 실현을 통한 유럽의 경제와 사회발전 촉진, 공동외교안보정책을 통한 국제무대에서 유럽의 이익을 제고하고 유럽연합 시민권제도 도입으로 인한 회원국 국민의 권리와 이익 보호’라고 명시하고 있다. 세계의 어느 대륙과 인접한 나라들도 이루지 못한 연합이다. 자연스러워서 그들의 연합을 의심하지 않았고 힘을 더하는 유럽이다.
유럽연합의 주요 기구는 회원국 정상들의 회의체인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 각종 정책 입안 및 집행을 담당하는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회원국간 문제해결을 위한 장관들의 회의체인 각료이사회(CEU), 유럽의회(EP) 등이 있으며 유럽사법재판소, 유럽회계감사원, 지역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유럽투자은행 등을 산하에 두고 있다. 유럽의회가 입법부, 유럽사법재판소가 사법부, 집행위원회가 일반적인 국제기구와는 달리 독자적인 법령 체계와 입법 과 사법, 행정 기능을 갖추고 행정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유럽연합 가입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 민주주의, 인권 강조는 마스트리흐트 조약 제2관 공동 외교안보 정책 분야에 세계 인권 선언을 각국의 헌법 원리로 수용하고 명시적인 비준 동의를 할 것을 전제로 성립되어 있다. 또한 유럽연합은 FTA 체결 당사국에 일정 수준의 인권 수준 달성 및 보장을 원하며 그 일환으로 사형제 폐지도 원하고 있다. 한국이 EU와 FTA를 체결했을 때에 한국의 경우 존재는 하지만 사문화되어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해당하고, 범죄인 인도조약에서도 사전에 절대 사형을 선고 및 시행하지 않겠다고 EU 측에 약정함에 따라 한EU FTA가 가능했다. 반면 인도나 대만같은 나라는 인권 수준 미비와 사형제 존치를 이유로 FTA 협상이 결렬되었다. 그러나 베트남, 싱가포르등 사형 존치국가와도 FTA를 맺고 있어 항상 지켜지는 사안은 아닌 듯하다. 이렇게 세계는 EU에 연결되어 계약을 맺고 있는 형국이다.
회원국은 2023년 2월 기준, 가입국은 27개국이다. 27개국을 모두 합치면 인구는 약 5억, 경제 규모는 미국과 맞먹는 거대한 집단이라서 세계 주요 정치, 외교, 안보, 경제, 사회, 환경 현안에서도 EU 집행위원장은 강대국의 국가원수와 버금가는 대우를 받는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구속력 있게 단결되어 있는 국가연합이 유럽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유로는 특별인출권에서 미국 달러 다음으로 2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01년 9 · 11테러 사태 이후 폭락한 달러를 대신한 유로의 역할과 가치는 세계통화권으로써 위상을 확실히 하게 된다.
세계의 경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유럽연합이지만 현재 유럽연합은 세계에서 총 GDP 측면에서 가장 큰 경제권은 아니다. 창립 이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전체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능가하며 절대 무시 못할 영향력을 지녔었지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이후 유로존 위기로 이어지는 만성적인 경제 불황으로 인해 미국에 추월당했다. 브렉시트 이전인 2015년 시점에서 유럽연합 GDP는 이미 미국 GDP에 추월당한다. 게다가 2020년 1월 31일 영국의 탈퇴로 EU의 경제 규모는 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중국의 GDP와 비슷하다. 그러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품은 밑그림의 정체가 복원되고 있는 정치적인 시도가 아닐까.
에필로그-유럽을 읽는 3개의 장면을 불러 온 걷는 독서를 마치며
역사를 단절을 모르는 일관된 흐름이라고 한다면 단정 지을 수 있는 역사의 단락은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를 알기 위해 과거를 읽다보면 오늘이 어제의 미래였음을 인정하게 된다. 미래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 과거다. 유럽의 시원이 궁금했던 시작이 엄청난 벽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얽혀 있었지만 가닥을 잡고 일단의 매듭을 쥐고 보니 유럽이 진행 중인 정치 실험이 현재를 읽어야 하는 역사라는 생각이 분명해진 시간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한 철학을 붙들고 사유와 정치를 엮으며 제국으로 나아간 로마의 이야기로 가는 여정은 비교적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제국의 기원과 정치의 기원을 발견하는 과정이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세라는 벽은 이미 건드리기에는 갈래가 많았고 어느 종교와 국가로 가더라도 복잡다단한 연결고리는 명쾌한 결론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미 다루지 못한 십자군 전쟁의 이야기만으로도 세계사가 일가를 이루고 있음에랴. 또 하나의 폭풍인 르네상스의 장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면은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기에 종교개혁의 장에 집중했다. 종교와 결탁한 정치의 여정이 길었다.
로마가 뻗어나간 로마의 길은 확실한 유럽의 길을 다지고 닦았다는 것과 그 길에 헬레니즘문화로 길을 닦을 수 있는 초석을 깐 알렉산더의 영토가 오늘날의 유럽을 품고 있으며 다시 유럽은 유럽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와 정치적 논제를 다룰 기관과 법제를 가진 국가적 형태로 정치를 펼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시작된 유럽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오래전 중세 이전의 고대에 싹 띄웠던 근대의 정신은 정치적인 인물(플라톤)이 지향하는 철학자가 군림하는 정치 제국의 실현이었다. 고대 철학자의 꿈은 알렉산더의 꿈으로 환치되어 제국으로 실현되었고 그 철학을 입은 정치는 교회로 지붕을 얻게 되었으며 잔인한 시간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며 흩어진 꿈이 아니라 다시 그들이 공유한 정서와 역사가 묶여 유럽연합으로 다시 재현되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연합국기가 갖는 가치는 이미 세계를 향한 선언이다. 다른 이들과의 구별이 갖는 것은 차이이고 그 차이는 곧 차별이 될 것이다. 서양 세계의 파란 하늘에 대하여 유럽의 시민들을 의미하는 별들이 하나의 원을 이루고 있다. 별의 개수는 12개로써 불변하는데 이 상징의 완전함과 완벽함을 나타낸다. 12개의 금색 별은 유럽의 모든 시민을 나타낸다. 이는 아직 통합과 평화의 유럽을 만드는 데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이미 세계를 품은 EU다. 12는 신들이며 12제자이면서 그들의 조상들이고 그들에게 완전의 의미다.
인간이 보지 않은 것과 모르는 것을 소망하지 않는다. 알렉산더가 그린 밑그림이 그들이 품은 제국의 원형과 닮아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근대를 여전히 진행 중이고 닿지 못할 역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근대의 딜레마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제 품어야할 미래가 있다면 아직 갖지 못한 근대를 넘어 선 미래(post mordern)일지 모른다.
어느 지점에 머물다가 또 다른 새로운 질문과 문제가 나오게 된다면 걸음은 멈추게 되고 앞에서 다룬 역사의 질문에 하나의 판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읽을 판단이 더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의 이해와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관적인 판단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과 그 의미는 종교적인 방법과 철학적인 방법을 통해 역사적인 방법에 근접하는 욕구에 충실해지는 걷는 독서, 여행의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