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텅 비어있었다. 네 시 반 칠 교시가 끝나는 종은 친지 오래였고 종례까지 끝나 몇몇을 제외한 학생들은 전부 학교를 떠났다. 교무실도 다를 바가 없었다.
추워지는 시기라 해가 일찍 지기 시작해 하늘에는 벌써 발갛게 달아오른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교무실 구석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 하릴없이 창문 너머로 그런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내 앞에 앉아계신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꿈은 있니?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 건지 생각해 둔 것이 있냐는 말이다.”
선생님이 눈앞에 회색 종이를 들이밀었다. 검은색 잉크로 가정통신문에 쓰이는 갱지에 인쇄된 양식의 서두에는 ‘진로희망사항’이 크게 쓰여 있었다. 궁서체로 가지런히 쓰인 글. 구십도 각도에서 오차 일도 없는 정확한 직사각형. 얼마나 딱딱한 양식인가.
개인적인 생각으로 글은 삐뚤빼뚤 도형은 대충대충 그리는 것이 정감도 있고 생명력이 느껴진다. 인쇄기로 정확하게 찍어낸 글자 하나하나에는 사람들의 생명력이 절감된다고 생각한다.
오른쪽 위에 쓰인 이름 석 자는 분명 부모님이 지어주신 자랑스러운 내 이름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텅하니 비어있는 진로희망란이 있었다. 그 부분만 무언가를 썼다 지우개로 지우고 썼다 지우고를 반복한 흔적이 만연했다. 구멍이 뚫리기 직전까지 닳아있었다.
그럼에도 직사각형 안은 텅 비어있었다. 쓰려는 흔적은 있었지만 결국에는 공백이다.
“네. 있습니다. 나중에 꼭 되고 싶은 것이 확실히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검지로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미간을 좁혔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왜 이곳에 아무것도 써놓지 않은 거냐. 꿈이 있으면. 진로가 있으면 쓰란 말이다. 꿈이 없다고 말하면 몰라도 꿈이 있다는데 왜 쓰질 못한다는 거냐.”
교무실 책상에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옆에 분실물 상자에서 볼펜을 꺼내 건네주었다.
나는 물끄러미 종이와 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연필도 아닌 볼펜을 굳이 주는 것은 왜인가. 분실물 상자에 시선을 돌리자 샤프가 있었다. 볼펜보다도 몇 배는 많이 있었는데 거기서 왜 볼펜을 꺼내준 것일까. 단순히 우연일 확률이 높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 속에 의미가 담겨있을 것만 같았다. 예를 들어 이 볼펜으로 지울 수 없는 마침표를 찍겠다. 라는. 지울 수 없는 마침표. 마침표. 마침표. 단어가 머리에 빙빙 맴돌았다. 내가 지금 종이에 ‘없다’라고 쓴다면 어떻게 될까.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나는 꿈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꿈이 있었고 미래에 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고 포기하고 싶은 꿈이다.
고심하고 고민한 끝에 나는 펜을 조심스레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선생님을 향한 예의는 차리되 내 의견을 굽힐 수 없다는 강고한 의지표명이었다. 아직 꿈이 없다. 있다. 라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었다.
“못쓰겠습니다. 저는 꿈이 있어요.”
솔직히 말해 내가 선생님 입장이라도 어처구니가 없을 상황이었다.
천장을 바라본 선생님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허 참. 제자 한 명 가르치겠다고 이리 열심히도 하네. 대단하다 대단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선생님께 마음속으로 죄송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죄송합니다. 수고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마음으로 전한 목소리가 들렸는지 갑작스레 선생님이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내일 토요일이지?”
“네.”
“좋네. 이렇게는 안 되겠다. 너 집 가서 짐 싸고 내일 학교 앞으로 나와라.”
선생님이 종이를 아무렇게나 사무용 가방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즘 시대에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갈색 구식 사무용 가방이었다.
“무슨 짐을 싸란 소리에요?”
그 말에 선생님이 내 어깨를 거칠게 두드리고는
“여행이다. 여행. 너하고 나하고, 선생과 제자 간의 사제여행. 어디 있을지 모를 니 꿈 한 번 찾아보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집에 가 보니 방 한구석에 여행 캐리어가 꺼내져 있었다.
한껏 소리쳐 엄마를 불러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조용히 하고 짐이나 챙기라는 소리만 돌아왔다. 퉁명스레 돌아온 대답에 선생님이 이미 부모님께 연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대단한 행동력을 좀 더 가치 있는 곳에 써주었으면 할 따름이다.
가령 맛대가리 없는 급식에 불평하는 힘없는 학생을 대신해 학교 측에 건의해주던가. 전교권에서 놀아나는 소수의 학생에게 상을 몰아주는 짓거리를 중지해달라고 강력히 규탄하거나. 그런 것들.
문득 학생들에게 조그만 사회생활이자 배움의 전당이었을 학교가 왜 소수의 명문대 학생을 만들기 위한 사육장이 되어버렸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것은 누구의 탓인가. 상황이 이렇게 되는데도 침묵을 유지하는 학생인가.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깨어있는 학생을 잠재우는 학교인가. 아니면 그저 사회가 이렇다고 구차한 변명만 해대는 세상인가.
도통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옷과 속옷가지, 칫솔 등 여러 생필품을 캐리어에 욱여넣었다. 그러던 와중 옷장 속에서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다. 낡은 노란색 노트였다.
이왕 짐 챙길겸 작거나 이제는 입지 않는 옷을 정리하자는 마음으로 옷장 바닥까지 정리해나갔더니 가장 밑바닥에서 노트 한 권이 나온 것이었다.
누렇게 변한 속지에 옷장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배 얼마나 오래됐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표지를 넘기자 첫 페이지 중심에 악필로 한 문장이 쓰여있었다.
─부디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내 글씨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내 글씨체와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중학교 때의 글씨체는 분명 저 문장과 똑같았다.
중학교 시절 내 글씨였고 그 3년간 지겹도록 봐왔던 글씨였기에 바로 알 수 있다. 나에게는 오히려 지금의 글씨체가 더 낯설었다. 교정을 통해 그나마 봐줄 만한 글씨가 되었을 무렵에는 대부분의 숙제가 자판을 두드리면 끝났기에 나에게는 나조차 알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저 글씨가 더 정겹고 오래된 친구 같았다.
노트의 왼쪽 아래에는 조그맣게 소설 노트라고 쓰여있었다.
“전부 다 불태운 줄 알았는데, 남아있었네.”
내 꿈은 작가이다. 소설작가.
나는 아직까지 그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놀라거나 하는 마음은 일절 들지 않았다. 그저 이제는 닳고 무뎌져 무덤덤해졌을 뿐이다.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 시답잖은 문장이 있었다. 그것이 잔뜩. 왼쪽 위부터 시작해 오른쪽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전부 읽어봐도 가치는 무슨 이야기라 하기에도 부끄러울 조악한 것이었다. 이야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었건만 그때의 난 그것을 소설이랍시고 친구들이고 부모님께 자랑했지. 그들이 겉으로는 잘 썼다고, 재미있다며 웃으면서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그대로 노트를 덮었다. 꼴도 보기 싫어 신경질적으로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이만 캐리어를 닫으려다 멈칫하고 하던 행동을 멈췄다. 선생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어디 있을지 모를 니 꿈 한번 찾아보자’
분명. 지금에 와서는 생각하기도 싫지만. 분명.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작가였다. 소설작가.
어디 있을지 모를 니 꿈. 어디 있을지 모를 니 꿈.
쳇.
짧게 혀를 차고 쓰레기통에서 노트를 꺼내 캐리어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넣었다. 짐 정리는 이것으로 끝. 캐리어를 닫았다.
예전 가족여행을 간 때는 짐을 채 다 넣지 못해 몸으로 눌러가면서 잠갔지만 한 명의 짐을 담은 이번에는 오히려 반절도 채우지 못하고 쉽사리 닫혔다. 살짝 흔들어보자 내용물이 흔들림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다 채워 넣지 못한 공간에 부딪히고 구겨진다.
마치 내 마음 속 같았다.
중학교 시절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소설책을 한 권 찾았고 읽었다. 그저 어디에나 있는 별다를 바 없는 평범한 소설책이었다. 어쨌든 난 그 소설을 읽고 난생처음으로 꿈을 가졌다. 소설작가가 되자고. 그 날부터 노트 한 권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고 쓰고 끊임없이 쓰자 어느새 책장 한편에는 수십 권의 노트가 쌓였다. 노트가 한 권씩 쌓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글자로 새까맣게 물든 노트 한 권 한 권이 내 노력의 증거였고 꿈을 붙들어 매는 동아줄이었다. 또한,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 어떤 종류의 책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어떤 문장이 좋은지, 어떤 문장이 감동을 주는지. 배우고 알고 싶었다. 나는 글쓰기가 행복했고 그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었다. 매일 매일 연필은 노트를 메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생이 되었다.
투박한 연필이 세련된 샤프로 변했고 노트에는 이야기가 아닌 시험 범위가 적혔다. 읽은 책은 마음속이 아니라 종이에 적혀 생기부에 새겨졌다. 주위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시답잖아 즐거운 이야기가 아닌 성적과 대학에 대한 암울한 이야기뿐이었다. 나조차 성적과 대학이라는 불확실성에 천천히 변해갔다.
주위 환경이 변했고, 그에 따라 내가 변했고,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억지로 쓰고자 해도 잘 써지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써지지 않았다. 불안했다. 노력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만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불안감이자 절망이었다.
그렇게 또 어느 날이 다가왔다.
야자를 하고 돌아와 피로에 찌들어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울 때였다. 부모님이 문득 물어보셨다. 이제 소설을 안 쓰니? 요즘 쓰는 걸 본 적이 없구나. 그 말을 듣고서야 근 일 년 동안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쳤고.
그때 깨달았다.
아무것도 써지지 않았다. 백지장이 된 머리는 이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날, 나는 꿈을 포기하고자 마음먹었다.
다음 날.
무덥지만 약간은 쌀쌀한 동 하복 혼용 기간이었다. 반소매를 입기도 긴소매를 입기에도 애매한 날씨. 그것도 아침 9시. 평소라면 느지막이 늦잠에서 깨어나고 있을 시간에 나는 커다란 여행 캐리어와 함께 교문 앞에 서 있었다.
다시금 어제 선생님이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꿈을 어디서 찾는다는 거야. 이 시간에 공부하는 게 더 좋겠구만.”
말을 이렇게 하더라도 정작 토요일 이 시간이면 말했다시피 늦잠에서 깨어날 무렵이다. 원래 입으로 나오는 말에는 약간의 허세와 가식이 묻어있는 법이다. 조금 많이 묻어있을 수도 있고. 한치나 내민 입으로 투덜거리고 있자니, 운동장 구석에 주차된 승용차가 한 차례 경적을 울렸다.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고 털이 북슬북슬한 굵은 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생님이었다.
부릉.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고 운동장 외곽을 따라 교문 앞으로 운전해왔다. 선생님의 성격과는 대비되는 새하얗고 조그만 소형차였다.
“타라.”
“짐은요?”
트렁크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뒤에 같이 타! 트렁크 꽉 찼어.”
꽉 찼다니. 대체 뭘 가져왔길래 트렁크가 꽉 찰 정도가 되는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애초에 목적지도 모르는데 가져온 짐을 알 방도가 있을 리 없다.
그냥 잠자코 타기나 하자. 반소매를 입고 왔건만 날씨가 쌀쌀해 어딘가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네네.”
대충 대답하고 차 뒷문을 열어 캐리어를 먼저 집어넣고 그다음 몸을 집어넣었다. 차 내부는 미리 히터를 약하게 틀어놓기라고 했는지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좋았지만 차 내부에 밴 담배 냄새가 좋지 않았다. 택시 내부냄새가 떠오르는 퀴퀴함은 결코 좋다고는 하지 못할 냄새였다. 살짝 찌푸린 내 표정을 좀 선생님이 무심하게 분무기를 뒷좌석으로 가볍게 던졌다. 받아든 분무기에는 ‘페브리즈’라는 상표명이 붙어있었다.
“뿌려라. 좀 나을 거다.”
“감사합니다.”
여기저기 페브리즈를 뿌리자 그나마 담배 냄새가 잦아들었다. 컵홀더에 꽂힌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가 시선에 들어왔다.
“금연 좀 하시지 그래요?”
“잔말 말고 안전벨트나 매.”
그렇게 말하면서도 재떨이 뚜껑을 다는 것은 나름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로 보였다. 나는 사방에 연신 페브리즈를 뿌리며 쉬는 손으로 안전벨트를 맸다. 주위가 약간 축축해졌지만 그렇게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었고 되려 담배 냄새가 옅어졌기에 좋았다. 부릉. 차가 부드럽게 나아갔다. 교문의 단을 넘으며 한차례 차체가 흔들리고 검은색 아스팔트와 대비되는 순백색 자동차가 도로 위에 올랐다. 반듯이 나아가는 차선을 따라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빈틈없이 붙어있는 건물을 지나 어느새 드문드문 홀로 서 있는 주택과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 너머에는 연두색에서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벼가 서서히 고개를 숙여가고 있었다. 하늘을 가로막는 산이 품은 조그마한 논 중심에는 해진 옷을 기워입은 허수아비가 바람에 따라 옷자락이 흘렸다. 창문을 열자 미지근한 공기가 얼굴을 감싸왔다. 속이 상쾌해지는 바람이었다.
“여기. 어디입니까?”“나중에 알려줄게.”
그래서 잠자코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자니 홍천 터미널이 눈앞에 보였다.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찼다. 대체 왜 이런 곳으로 온 걸까. 난생처음 오는 곳이었다. 나와는 연고가 없는 곳이었기에 선생님과 관련된 지역인가 예상해보았다.
“왜 이런 곳에 온 겁니까.”
“그냥 발 닿는 데로 왔다.”
마음속 말을 그대로 내뱉자니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농담이고. 굳이 여기로 온 이유는 더 가고 나서 알려줄게.”
“여기에 제 꿈이 있을 거 같지는 않은데요.”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터미널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다시 차를 몰았다. 그때도 차는 안에 탄 사람들이 다칠까 부드럽게 나아갔다. 차가 부드럽게 나가는 것인지 선생님이 엑셀을 부드럽게 밟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승차감이 좋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산과 강밖에 보이지 않았다. 포장된 도로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로 변했다.
조금. 조금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갔다. 차가 멈췄을 때는 콘크리트로 대충 만든 듯한 다리를 몇 개나 지나고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동안 지나간 후였다. 기나긴 이동시간에 시간은 이미 오후 네 시를 넘기고 있었다.
“이제 내려라.”
“네.”
차 밖으로 나와 몇 시간 동안 구겨져 있던 몸을 기지개하며 풀었다. 그러며 눈앞의 산을 보고 있자니 차 너머에서 선생님이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차를 돌아 선생님이 있던 곳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트렁크를 꽉 채운 짐을 꺼내고 있었다. 텐트를 비롯한 여러 가지 캠핑용품이 하나하나 흙바닥에 내려졌다.
“넌 이거나 들고 따라와라.”
선생님이 장작 묶음을 내게 건네고 텐트를 짊어진 채 폭포 쪽으로 걸어갔다.
비포장도로의 흙길에서 계곡의 자갈밭으로 바뀌고, 이윽고 눈앞에 폭포가 있었다.
“이름 없고 아는 사람 없는 폭포다. 내가 어릴 적에 자주 놀러 왔던 곳이지.”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의 눈에는 무언가 감격스럽다는 빛이 어려있었다.
“어릴 적을 제외하면 이번에 처음 찾아오는 거다.”
폭포를 향해 걸어가는 선생님을 뒤따라 걸어갔다. 폭포는 장엄했고 또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한 폭포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하얗게 거품이 되어 부서질 때마다 그것들은 큰 소리로 변해 내 귓전을 때렸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텐트 치자.”
선생님이 텐트의 기둥이 되는 철대를 이었다. 그곳에 내가 텐트 천을 입혔다. 텐트를 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만들어진 텐트는 서툴게 만든 흔적이 만연했다. 완성된 텐트를 보며 선생님이 던진 ‘잘 수는 있겠네.’라는 말이 마음을 쿡쿡 찔렀다.
벌써 하늘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계절 탓에 날씨는 점점 짧아지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깊은 산골이라 더 빠르게 해가 졌다. 선생님이 가져온 아이스박스에는 고기와 소시지, 채소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이 가득 쌓여있었다. 두 명이 함께 먹기에는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했지만, 선생님의 먹는 양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의외로 대식가셨다.
저녁은 그렇게 끝났다. 하늘이 거멓게 물들고 하늘처럼 거멓게 그을린 석쇠도 차갑게 식었다. 이를 어둠 한구석에 숨겨두고 선생님과 함께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러자 선생님이 어디에선가 마시멜로 봉지를 가져와 꼬챙이에 찍어 모닥불 가까이에 두었다.
그렇게 침묵이 흘렀다. 폭포소리와 나뭇잎끼리 쓸리며 쏴 쏴 하는 소리만이 귀에 들려왔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그래서 여기에 제 꿈이 있는 겁니까?”
“......”
고개를 돌려 침묵을 지키는 선생님과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이 고민스럽게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고민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폭포가 있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의 고민이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어둠 속 숨어든 폭포가 보일 때까지. 약간의 감상시간을 가지고 드디어 선생님의 입이 열렸다.
“이 폭포는. 나 빼곤 아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 장담할 수 있어. 건너왔던 콘크리트 다리도, 비포장도로도 내 형에게 부탁해서 만든 것들이야. 내가 나이가 들어 서울로 올라가고 교대를 나와 학교에 재직하는 순간까지도 나는 이 폭포를 그리워했지. 내 어린 시절을 간직하고 있던 폭포였고.”
한차례 숨을 내뱉고는 말을 이었다.
“나만이 알고 있는 행복이었으니까. 아무도 알지 못하고 나만이 그 아름다움을 알고 독점할 수 있으니까.”
“......”
침묵이 이어졌다. 폭포 소리가 그 공백을 채웠다.
“부디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가슴을 건드리는 말이 조심스레 울려 퍼졌다. 고개를 선생님 쪽으로 돌렸다. 폭포 소리에 삼켜질 듯한 조그만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는 어느 말보다 더 정확하게 들렸다.
“너희 부모님께 들었다.
어제 너가 돌아가고 나서 너희 어머니께 전화했다. 그때 알려 주시더라. 니 꿈이 작가라고. 소설작가. 그리고 그 꿈을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과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같이 있다는 것도 알았지. 왜 그렇게 그 꿈을 포기하고 싶은 거냐?”
“재능이 없으니까요.”
무심코 내뱉은 말에 선생님이 피식 하고 웃었다.
“재능이라. 허! 내가 그런 소리 참 싫어하지. 재능이 없으면 뭘 못하냐? 재능이 대체 뭐길래 그렇게 니 인생의 평가를 거기에 맞추냐. 하나 알려줄까? 나도 너같이 고등학생일 때 선생님은 죽어도 되기 싫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가르치는 것에 재능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지금 내가 뭘 하며 돈 벌어먹고 있지? 선생님이다. 선생님.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선생님이 돼서 지금 살아간다. 재능. 그래. 재능이 있어야 잘할 수 있는 일도 있겠지. 근데 재능이 없다고 아예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노력. 노력은 재능보다 값진 거다.”
선생님이 폭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모두의 마음속에는 저런 폭포가 있다.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옹골차지만, 알아봐 주는 사람은 적지. 너 같은 경우에는 소설작가라는 꿈. 그것이 저 폭포다. 얼마나 대단하게 흐르는 폭포인지는 모르지만 절대로 못난 폭포는 아닐 거다.”
“너에겐 30권이 넘는 노력이 있었잖냐.”
그렇게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애초에 글쓰기는 재능 따위 없는 일이다. 노력하면 장땡인 거야.”
그 말을 듣고 뒤돌아 뛰었다. 바닥이 자갈밭이라 균형감이 잘 잡히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고 자동차까지 다다랐다. 뒷문을 열고 캐리어를 꺼내 열었다. 옷가지 속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노트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뒤집었다.
그곳에는 –1-이라는 숫자가 쓰여있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놈은 없다.”
뒤따라온 선생님의 한마디에 눈물이 흘렀다. 한 줄기 한 줄기 흘러나왔다.
“저 꿈이 있습니다.”
“그래. 뭐냐.”
“소설작가입니다.”
“그래. 알았다.”
모닥불이 타닥거리며 불똥을 튀겼다. 선생님이 마시멜로를 모닥불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자. 먹어라. 눈물 보이지 말고.”
“알겠습니다.”
애써 눈물을 닦고 마시멜로를 베어먹었다. 달콤했고, 부드러웠다.
“선생님.”
“왜.”
“저 나중에 책 내면 가장 처음으로 읽어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날 밤. 선생님이 가져온 새 노트는 검은색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까지.\
79기 공모전에 신청했었던 소설입니다.
무언가 불편한 점이나 고칠 점이 있으면 따끔하게 말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황강하 선생님 월요일 저녁 좋은소설 잘 읽었습니다
오늘밤도 일교차에 건강조심 하시고 편안한 시간 되십시요
자서전적인 소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결론은 뻔히 나와있는 소설인데
상황상황을 너무 디테일하게 묘사(차 안 등등)하다 보니
정작 주제가 주는 느낌을 반감하는 느낌입니다.
'봐라,결국은 목표가 이거 아니었나' 하는 거고
뭔가 또다른 것, 머리를 퉁치는 무엇이 없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