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과 함께하는 삶의 여정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춘(2월 4일) 날 119번째 ‘행발모’(행복한 발걸음 모임)에 참가해 ‘철원 한탄강 물윗길’을 걸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귀가해 1960년대에 유행하던 최희준 노래 ‘하숙생’의 가사 중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를 떠올리며 길 걷기와 함께하는 삶의 여정을 가다듬어보았습니다.
일상의 이동 통로로 소통 역할을 하며 자연과 문화 그리고 역사와 어우러져 열려있는 ‘길’은 건강한 여가 생활을 위한 주요 자산이기도 합니다. 삶의 일상에서 늘 함께하는 길은 어학사전에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나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을 의미하는 ‘거리’, 두 발을 번갈아 옮기며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걸음’, 그리고 일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도 길과 연계된 말입니다.
‘행발모’ 행사는 철원 한탄강의 태봉대교에서 출발해 물윗길을 따라 은하수교, 승일교, 고석정 등을 거쳐 순담계곡에 이르는 8Km 정도 되는 길 걷기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순담계곡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남북 분단의 상징인 ‘노동당사’와 그 건너편에 있는 ‘철원역사문화공원’ 관람 후, 다시 4Km 정도를 걸어 도피안사(到彼岸寺) 방문을 마치고 ‘연사랑’이란 전통 음식점에서 저녁을 함께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삶의 질을 높여주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깃들여주는 길 걷기의 주요 역할로는 몸과 마음의 건강, 자아 발견, 자연과 소통, 문화 체험과 함께하는 역사 탐구 등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나이나 성별 차이 없이 누구나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길 걷기는 별도의 장비나 별다른 기술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으로 몸을 건강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완화시켜주는 정신적 건강에도 크게 도움을 줍니다.
현대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걷는 것은 인간에게 최고의 보약’이라고 했습니다.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좋은 음식이나 약보다 걷는 것이 더 좋다는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는 건강기법이 실려 있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스 의대 연구팀의 보고에 따르면 비만인 사람이 주당 4회, 한 번에 45분 이상 지속적으로 걸으면 섭취 음식의 종류와 상관없이 1년에 8.2Kg의 체중 감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바른 길 걷기로는 “상체를 바로 펴고 바른 자세로 서서 몸에 힘을 빼고 걸으며, 시선은 바닥을 보지 않고 정면으로 향하며 걷는다. 팔은 90도 정도로 구부리고 걸으면서 팔과 다리 동작은 반대 방향으로 하며 걷고, 발걸음은 뒤꿈치, 중앙, 앞꿈치 순으로 내딛으며 걷는다.”는 운동법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 일상에서의 경쟁과 변화에서 벗어나 평소 무관심했던 ‘나’를 재발견해 새로운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자아 발견’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 교수는 ‘걷기 예찬’이라는 저서에서 정신적 시련은 걷기라는 육체적 시련으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제안하며,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 다리,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했습니다.
자연 경관과 함께 열려있는 생태(生態) 길을 걸을 때 길 주변에 철따라 다르게 피어오르는 야생화, 다양한 곤충들 그리고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음미하며 걸으면 생명의 소중한 가치와 함께 자신이 자연과 동화되는 소중한 추억이 간직됩니다. 환경부는 국민들이 아름다운 생태 길을 걸으면서 자연 생태를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생태문화 탐방로’를 조성하고 있는데, 한탄강 물윗길도 그 대표적인 실례로 여겨집니다.
지역별 문화와 예술 작품이 담긴 문화 유적지 길을 걸으면 문화 체험이 가능하며,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생각도 가다듬어집니다. 산골 마을이나 고택(古宅) 등 지역의 전통문화가 담긴 길을 찾아 걸으면 잊혀 가고 있는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그 가치를 재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 실례로 가산(可山)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강원도 봉평장으로 가는 길에는 작품에 나오는 노루목 고개 등이 지금도 실존하고 있으며, 이효석 생가와 문학관 그리고 가산공원 등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번 ‘행발모’에서 화개산 도피안사(花開山到彼岸寺)를 방문했을 때 스님들이 겨울에 불당에 모여 외출을 금하고 수행을 하는 ‘동안거 백일기도’란 플래카드(placard)를 보며 불교문화를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법당 앞에 8각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져 있는 4.1m 높이의 삼층석탑의 안내문에는 이 탑이 9세기경 개성적인 지방 호족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해설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와 연계되어 있는 길을 걸으면 길에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역사의 가치로 다가옵니다. 이번 모임에서 해방 후 한국전쟁 전까지 공산치하 5년 동안 북한이 철원, 김화, 포천 그리고 이북의 평강 일대를 관리하던 유적으로 지금은 건물의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노동당사’도 방문했습니다.
방문 시 앞쪽에 길게 세로로 높게 세워져 남북 분단 후 시간을 초 단위로 기록해나가고 있는 전광판에서 ‘679143시간 08분 17초’라는 시간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는 남북 분단이 77년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노동당사 건너편에 위치한 ‘철원역사문화공원’에서 관람한 ‘도시빈민의 주택-토막집(움막)’, ‘금강산 관광의 시작-철원의 여관’ 입간판 옆의 ‘관동여관’, ‘일출여관’의 유적 등도 매우 인상적인 풍광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신의 인생 여정을 떠올리며 길을 걸으면 삶에 대한 호기심이 새로워질 수 있고, 일상생활을 헝클어놓는 근심이나 걱정들로부터 벗어나는 기회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태봉대교로부터 순담계곡까지 바위 길과 얼음물 위에 놓인 부교들로 이어진 물윗길을 걸으며 새로 맞이해 지내고 있는 계묘년의 ‘꿈’과 ‘희망’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딛는 발걸음에 담으며 걷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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