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이 그려내는 사랑의 낙원
극본 | 김기호, 연출 | 최문석, 제작 | 이김 프로덕션, 방송 | 토·일요일 밤 9시 45분
쏟아질 듯한 햇살과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하늘과 바다, 그곳에 하지원, 소지섭, 조인성, 박예진 네 청춘이 있었다. 이들은 이곳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SBS 특별기획 [발리에서 생긴 일] 촬영에 한창이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이들 네 청춘 남녀가 발리에서 만나 인연을 맺으며 겪는 사랑과 야망을 다룬 드라마다. [나쁜 여자들] [도시남녀] 등을 연출한 최문석 PD와 [천년지애] [별은 내 가슴에] 등을 집필한 김기호 작가가 손을 잡고 준비한 작품이다. 사랑에 좌절한 뒤 인도네시아 근무를 자청해 떠난 인욱(소지섭 분)을 찾아 그의 첫사랑 영주(박예진 분)가 현재의 약혼자 재민(조인성 분)과 발리를 찾으면서 드라마는 시작된다. 이 세 남녀 사이에 현지 가이드 수정(하지원 분)이 합세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수정은 어린 나이에 풍파를 겪고 일찌감치 생업에 뛰어든 당찬 여자다. 그런 그녀를 상처 입은 맹수처럼 주위의 접근을 거부하는 인물인 인욱과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는 ‘오버맨’인 재벌 2세 재민이 동시에 사랑하게 되면서 갈등이 싹트게 된다. 그로 인해 두 남자로부터 버림받게 된 영주가 복수심에 불타올라 계략을 꾸미기 시작하는데…
연출자인 최문석PD는 “이 드라마는 20대 후반 시청자들을 겨냥한 본격 멜로물로 주인공들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하지원, 소지섭 등 출연진과 촬영진은 1, 2회 및 20회에 방영될 현지 촬영을 위해 지난해 12월 발리에서 동고동락했다. 말도 안 통하는 이국의 스태프와 함께 하는 작업, 수시로 바뀌는 스케줄, 10분만 맨살을 드러내도 벌겋게 살이 익는 뜨거운 햇살 등으로 [발리에서 생긴 일]팀은 모두 고초를 겪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 ‘신들의 낙원’ 발리에서 이들 촬영진과 출연진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덴파사르(Denpasar), 탈라 롯(Talah Lot) 해상사원, 쿠타(Kuta) 해변, 울루와투 절벽사원(Pura Lunar Uluwatu) 등 촬영현장에는 이들의 수고가 켜켜이 담겨 있었다. 우선 촬영날짜가 촉박한지라 제작진은 언제나 마음이 초조했다. 하지만 한 장면이라도 더 찍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한국 스태프들과는 달리 현지 스태프들은 언제나 느긋했다. 따뜻한 나라 사람들이기에 갖는 여유랄까, 이들은 항상 늦은 시간에 나타나 일찍 사라졌다. 조연출 이명우 PD는 “처음에는 현지 스태프들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하기 위해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밤샘을 거듭하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현지 스태프들의 성향으로 가장 큰 고생을 겪었던 것은 한국 스태프들 중 조명팀이었다. 조명기기를 현지에서 조달하기로 했던 이들은 장비를 약속 날짜에서 사흘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빨리 온 것”이라는 현지 관계자의 설명에 제작진은 “받아들여”를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조명이 필요 없는 장면만이라도 먼저 찍어야했다. 이 때문에 고생한 연기자는 조인성이었고, 망중한을 즐긴 사람은 소지섭이었다. 조인성은 조명기기가 올 때까지 혼자 나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 반면, 소지섭은 촬영 분량이 없어 바다에서 홀로 제트스키를 즐겼다. 덕분에 소지섭은 현지인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검게 타 분장이 필요 없게 됐다는 후문이다.
# 원숭이 습격사건
이번 촬영으로 서로 처음 만났다는 네 주연 연기자들은 촬영을 계속하며 조금씩 서로를 알아갔다. 이들이 더욱 가까워진 것은 ‘원숭이’라는 ‘공공의 적’ 때문이기도 했다. 울루와트 절벽사원에서 촬영할 때였다. 절벽사원은 일명 ‘원숭이 사원’이라고 불릴 만큼 원숭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원숭이들은 이곳에서 무리를 지어 살며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산다. 원숭이를 ‘신의 종자’로 생각하는 발리인들에게 이런 광경은 낯선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곳 절벽사원의 원숭이들이 다른 곳의 원숭이들보다 호전적이라는 데 있었다. 모자나 안경, 심지어 귀걸이까지 뺏어가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우선 출연진 중 조인성이 가장 먼저 원숭이들에게 ‘테러’를 당했다. 원래 촬영 장면은 조인성이 원숭이에게 선글라스를 빼앗겨 당황하는 것을 하지원이 보고 안타까워한다는 내용이었다. 촬영진은 악명이 자자한 이곳의 원숭이들이 훌륭히 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자 저만치 떨어져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촬영팀은 당황해서 조인성의 선글라스에 먹이를 감기도 하고, 아예 선글라스를 원숭이 손에 쥐어주기도 했지만 원숭이들은 멀찌감치 달아나 그 광경을 구경만 했다. 할 수 없이 제작진은 그냥 조인성이 이곳을 구경하는 것으로 내용을 대체하고 다른 장면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기다렸다는 듯 한 원숭이가 조인성을 급습해 그의 선글라스를 빼앗아갔다. 그 원숭이는 “어, 어” 하며 어리둥절하던 조인성을 바라보며 선글라스를 뚝 부러뜨리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다음 타깃은 박예진이었다. 원숭이들은 박예진의 머리에 놓인 선글라스를 노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평소 동물을 좋아했다는 박예진은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려고 했지만, 너무 무서워 선글라스를 숨긴 채 사람들 뒤에 숨어다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원은 원숭이가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해 가슴이 철렁했던 케이스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는 그 원숭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편집에 쓸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날 [발리에서 생긴 일]의 촬영을 취재하기 위해 동행한 한 현지 여성 언론인도 원숭이에게 귀걸이를 빼앗겨 귀에 상처를 입었다. 촬영진 중에서 모자를 빼앗긴 경우는 수두룩했다. 그러나 하지원 등 연기자들은 그 뒤 모일 때면 이날 ‘원숭이 습격 사건’을 화제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게 됐으니, 이날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 인도네시아의 ‘한류열풍’ 예감
[발리에서 생긴 일]의 현지 촬영에 대한 인도네시아 언론의 관심은 비상했다. 2003년 12월 11일 그랜드 미라지 호텔 컨퍼런스 룸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는 발리 포스트, 자카르타 포스트, 발리TV, 메트로TV 등 인도네시아 현지 취재진 20여 명이 참석했다. 현지 취재진은 먼저 김기호 작가를 비롯해 조인성, 소지섭, 박예진 등에게 “발리의 인상은 어땠는지” “촬영 조건은 좋았는지” 등 질문을 던졌다. 소지섭은 “발리에 대한 첫 느낌은 굉장히 뜨겁다는 것”이라고 대답해 발표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인도네시아 언론은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지에서 일고 있는 ‘한류 열풍’이 인도네시아에서도 불 것을 예감한 눈치였다. 이들은 “지난 8월 SBS 드라마 [유리구두]가 인도네시아에서 방영됐다”며 [발리에서 생긴 일]도 인도네시아에서 방영될지 여부를 관심 있게 질문했다.
# 영하의 날씨가 반가운 이유
울루와트 내 블루포인트 리조트에서 진행된 소지섭과 하지원의 수영장 키스신 장면 촬영은 제작진에게 있어서 또 다른 고통의 순간이었다. 울루와트는 손을 뻗으면 바다가 닿을 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지만, 따가운 햇살을 피할 그늘이 거의 없어 촬영진은 햇볕으로 인한 화상을 피하기 위해 두건과 복면으로 ‘완전무장’을 했다. 찌는 듯한 날씨와 변덕스러운 현지 사정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현지 스태프가 참여한 조명팀과는 여전히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타이밍이 안 맞아 NG가 나길 수차례 거듭한 끝에 마침내 “OK!” 사인이 떨어졌다. 힘들게 촬영을 마쳤기 때문일까. 촬영팀은 이날 마지막 촬영을 끝낸 것처럼 “수고했다”며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리고 장비를 챙겨 다음 촬영지인 쿠타 해변으로 달려갔다. 석양 장면을 촬영하려면 해가 지기 전에 쿠타 해변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발리에서의 촬영은 그렇게 마무리 돼갔다. [발리에서 생긴 일]팀은 이날로 현지에서의 모든 촬영을 끝내고, 다음날 하루 쉰 뒤 12월 15일 귀국했다. 한국은 영하의 쌀쌀한 날씨로 이들을 환영했다.
글 | 전형화·스포츠투데이 기자, 사진 | 조광희
김기호 작가가 말하는 [발리에서 생긴 일] | 인도네시아에서도 한류열풍을! |
김기호 작가는 그 동안 [천년지애] [별은 내 가슴에] [복수혈전] 등으로 필명을 떨쳐왔다. 그는 이번에 새로운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그 첫 작품으로 [발리에서 생긴 일]을 기획 및 제작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제작 동기는? 10여 년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신방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경험이 이 드라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랑까지도 물질적으로 개량되는 이 사회에 아직도 진실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일부에서는 해외 로케가 외화 낭비라는 지적도 있는데… 견해의 차이일 것이다. 이번 발리 촬영으로 인도네시아에서도 ‘한류열풍’이 일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발리에서 생긴 일]의 발리 로케는 현지 언론이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발리에서 생긴 일]이 인도네시아에서도 방영되는가?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위성방송을 통해 현지 한인들에게는 우선 소개될 것 같다. |
최문석 프로듀서가 말하는 [발리에서 생긴 일] | 낙원의 이미지를 선보일 터 |
최문석 PD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발리에서 강행군을 한 터라, 안경 걸친 부분을 빼곤 얼굴이 온통 검붉게 타있었다. 최 PD는 “그 동안 [나쁜 여자들] [도시남녀] 등을 연출했지만, 이번처럼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다” 며 멋쩍어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발리에서 생긴 일] 은 20대 후반, 즉 늦은 청춘들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멜로물이 될 것이다. 발리로 상징되는 낙원의 이미지를 드라마를 통해 구현하고 싶다.
소지섭, 하지원, 조인성, 박예진 등의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했나? 등장하는 인물들 중 완벽한 캐릭터는 없다. 어딘가 부족한 인물들의 조합으로 드라마가 구성될 것이다.
드라마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는데… 극적 효과를 위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결말에 대해 결정한 바는 없다.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