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메면 몸이 가벼워진다
[임한율의 산행기] 멋진 자태를 뽐내는 도봉산
임한율 기자 limhan0929@hanmail.net
** 산행 일시 - 2005년 11월 6일(일, 흐림)
** 산행지 - 도봉산(道峰山, 740m)
** 산행 인원 - 3명
** 산행 코스 : 도봉산역-삼거리-지능선-구봉사-마당바위-깔딱고개-신선대 정상-마당바위-구봉사-매표소
오전 10시, 7호선 전철을 타고 도봉산역에 도착하였다. 하차하기 직전 차내를 둘러보니 승객들 중 대부분이 등산객들이다. 요즘 갈수록 남녀노소 구분 없이 등산에 대하여 관심이 많고 그 열풍이 뜨거움을 실감할 수 있다.
산행은 매우 경제적이면서도 심신의 건강을 다지는 가장 좋은 웰빙 수단으로 최근 들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더군다나 이곳 도봉산역은 1호선과 7호선의 환승역일 뿐만 아니라 교통이 편리하여 많은 산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역 앞에서 오화년과 오예숙 두 친구를 반갑게 만난다. 도봉산 입구 쪽을 향해 걸어가는데 입추(立錐)의 여지없이 사람들이 많다. 도로 양쪽에는 다양한 음식점들과 등산용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매표소 앞에는 산행객들이 그야말로 장사진(長蛇陣)을 이루고 있다. 줄을 서서 입장권을 산다. 도봉공원을 지나 왼쪽 방향으로 접어드니 색소폰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색소폰 부는 아저씨가 흘러간 옛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항상 그 자리에서 그 모습 그대로~~
구봉사로 해서 마당바위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저 하늘 높이 보이는 산 정상이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다. 우리 셋은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어 가며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간밤에 약간의 비가 내려 단풍이 낙엽(落葉)으로 변하여 떨어지고 있다. 아쉽다. 하지만 아직도 아름답고 고운 자태를 자랑하는 형형색색 단풍의 향연은 계속되고 있다. 마치 도봉산 전체에 오색 물감을 부어놓은 듯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 같다.
눈까지 노랗게 물들일 정도로 샛노란 은행잎, 빠알간 단풍잎, 갈색의 떡갈나무 잎...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엊그제 처음으로 디카를 구입하여 오늘 처음으로 사용한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산에서 즐거운 산행을 하며 아름다운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매우매우 흐뭇하다.
올라가는 길에 직장 동료 최대만 선생님 부부도 만나고, 또 군 동기생 이영철 씨 부부도 만났다. 산중에서 우연히 만나니 더더욱 반갑다. 모두들 다정하게 산행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한국 등산학교, 도봉대피소를 지나 북한산 산악구조대를 통과한다. 넓다란 마당바위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한다. 귤, 감,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오른다. SK 건설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손에손에 사기(社旗)를 들고 산행을 한다. 아마도 회사 단합대회 차원의 산행인가 보다.
그런데 천축사, 석굴암 같은 절에서 흘러나오는 염불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잠깐 잠깐이면 모르거니와 저렇게 카세트를 이용하여 하루 종일 큰 소리로 장시간 울리는 것은 정말 못마땅하다. 이 아름답고 조용한 산 속에서 소음공해라 아니 할 수 없다. 약간의 정체현상도 나타난다. 일요일을 맞아 모든 산행객들이 이곳 도봉산으로 다 몰려든 것만 같다. 인산인해(人山人海), 줄잡아 2만 명은 됨직하다.
오색 단풍도 울긋불긋, 산행 인파도 울긋불긋 -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흐르는 계곡 물소리도 더욱더 맑고 경쾌하다. 등산로는 온통 바윗길, 돌길, 돌계단,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중에는 경사가 가파르고 험한 난코스도 더러 있어 로프를 이용하여 올라간다. 높다란 암벽에는 개미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자세히 보니 자일을 타고 암벽등반 하는 사람들이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일찍이 혜산 박두진 시인은 ‘도봉’이란 시를 썼는데, 삶의 외로움과 괴로움으로부터 구원을 갈망하는 노래로 형상화하였다.
산새도 날아와 /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 오지 않는다.
인적(人跡) 끊인 곳 / 홀로 앉은 / 가을 산의 어스름.
새빨간 단풍잎을 모자에 꽂은 예숙이가 더욱 예뻐 보인다. 사진을 찍어 준다. 그녀는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연방 엄살을 부리면서도 곧잘 올라간다. 마지막 깔딱고개를 힘겹게 오른다. 땀이 흐른다. 등산은 우리네 삶의 길과 유사하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고, 힘들 때가 있으면 쉬울 때가 있다. 산은 만남의 장이요 대화의 장이다. 자연과 대화하고 회포를 푸는 곳이다. 달라진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산이다.
드디어 정상에 이르렀다. 우뚝우뚝 솟은 신선봉과 자운봉, 만장봉 세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신선봉 꼭대기는 바람도 엄청 세고 운해(雲海)가 자욱이 끼어있다.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려 하고, 짙은 운해로 인하여 시야가 잔뜩 흐리다. 그래도 우리는 정상에 도착한 무한한 기쁨을 맛본 채 이런 자세 저런 모습으로 기년사진을 찍는다. 신비감과 황홀감에 도취된다.
반대 방향 쪽으로 하산하려 하였지만 그냥 포기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섰다. 왜냐하면 포대능선 가는 쪽의 길이 매우 가파르고 협소한데다가 단일코스여서 오늘처럼 이렇게 산행객들이 붐비면 정체현상이 대단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 코스만 통과하는데도 족히 한 시간은 걸릴 것이다. 그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입장료를 1600원씩이나 받는데 그렇게 위험하고 복잡한 곳은 개선을 했으면 좋겠다. 오르는 길과 내리는 길을 따로 분리하여 일방통행(一方通行) 길을 만들든가 아니면 좀 더 넓히든가 어떤 대책을 마련하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우리는 올라왔던 길로 다시 하산하기 시작한다. 정상 바로 밑에서 김밥과 과일을 먹으며 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꿀맛이다. 그리고 곧바로 하산을 한다. 물먹은 바위와 나무뿌리가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한다. 한 발 한 발 신중을 기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늘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특히 위대한 대자연 속에서는... 어떤 아저씨는 바위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크게 찧는다. 몹시 아픈 표정을 짓는다.
떡갈나무 잎, 갈참나무 잎, 당단풍나무 잎이 길바닥에 수북하다. 바스락 바스락 밟는 소리도 경쾌하지만 감촉이 푹신푹신하여 참 좋다. “내 몸이 떨어져서 어디로 가나 지나온 긴 여름이 아쉬웠지만, 바람이 나를 멀리~~♬♪♬” 구수한 노래 ‘낙엽이 가는 길’을 흥얼흥얼거린다. 맑은 계곡물에서 손도 씻고 세수를 한다.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며 흰 구름은 유유히 흐른다. 거기에 오색찬란한 단풍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오래 오래 붙잡을 수는 없을까...
마당바위와 구봉사를 거쳐 계속 하산한다. 구봉사에서는 여전히 낭랑한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이윽고 매표소를 빠져나와 한 식당으로 들어가 낙지볶음에 소주 한 잔으로 산행 뒤풀이를 한다. 오늘도 역시 오래오래 추억에 남을 좋은 산행을 하였다. 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즐겁고 행복하다. 천석고황(泉石膏肓)이란 말처럼 이 아름다운 자연, 특히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배낭을 메면 몸이 가벼워진다. 함께 한 친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