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183〉
■ 가을 운동회 (이성교, 1932~2021)
둥둥 북소리에
만국기가 오르면
온 마을엔 인화(人花)가 핀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연신 터지는
출발 신호에
땅이 흔들린다.
차일 친 골목엔
자잘한 웃음이 퍼지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과일에
떡타령도 잊었다.
하루종일 빈 집엔
석류가 입을 딱 벌리고
그 옆엔 황소가
누런 하품을 토하고 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온갖 산들이
모두 다 고개를 늘이면
바람은 어느 새 골목으로 왔다가
오색(五色) 테이프를 몰고 갔다.
- 1974년 시집 <보리 팰 무렵> (창원사)
*얼마 전 우리 동네가 속한 면사무소에서 면민체육대회를 개최한다는 프랭카드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도시에서는 어림없는 일이겠지만, 면 단위 시골에서는 이런 촌스런(?) 행사를 여전히 실시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문득 예전 떠들썩하던 초등학교 ‘운동회’가 생각이 나더군요.
당시 놀거리나 놀이시설이 마땅치 않은 시골 마을에서 학교 운동회는, 온 마을의 축제 같은 행사였습니다. 마을 어른들 대부분이 운동회에 참석하여 같이 응원하고, 때로는 달리기나 씨름 등 행사의 일부로서 참여하여 즐겼으니까 말입니다.
이 詩는 1970년대 당시 어느 시골 학교 운동회의 활기차고 신명나는 풍경을 간결하고 소박한 필체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가을날 개최되는 운동회는 북소리가 흥을 돋우고 만국기가 운동장에 휘날리면, 들뜬 마음의 학생들과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신나는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뉜 학생들의 응원과 승부를 가르는 경기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마을 골목까지 덮은 차일 안에서는 풍요로운 가을의 결실이 쌓여 있는 풍경입니다.
반면에 떠들썩한 학교 운동장에 비해 사람들이 텅 빈 마을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가을의 모습을, 붉은 속을 드러낸 석류와 하품하는 황소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묘사하며, 많은 이들이 시골에서 성장한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군요.
물론 지금의 시골에서는 대개, 초등학교 자체가 폐교되어 어린이들 자체를 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겠습니다만.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