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부자, 구두딱이 목사님
2009년 정초부터 한 작은 개척교회 목사님의 블로그에 눈에 띄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전 직원이 돌려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내일부터 구두딱기가 되겠습니다!"
2년 전 교회 개척 초부터 선교하는 마음으로 부르카나파소의 8세 여자 어린이의 에콰도르의 10세 남자 어린아이를 매일 후원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컴쾌션 후원자 행사에 참석했다가 풍선속에 들어있는 새로운 5명의 아이의 사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추첨해서 선물을 주는 줄 알고 양껏 받은 것이 탈이었습니다.
'개척교회 형편으로는 현재 두 명의 아이도 버거운데 어린이 사진을 모른척하고 쓰레기통에 버릴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는 계속 이 어린이들을 도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형편이 어려워 쌀이 떨어지고 신문 구독도 중지하고 자식들 먹던 우유도 끊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한 번도 미루지 않고 2년동안 아이들을 후원해왔습니다. 그러나 5명의 아이들을 더 후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형편과 처지를 잘 아시는 주님! 무슨 수로 5명의 아이들을 더 후원하라고 하십니까?"라고 반문해 보았습니다.
'신문배달을 해볼까?
'우유배달을 해볼까?
'스티커 붙이는 알바를 해볼까?
'폐지 줍기를 해볼까?
하지만 매일 새벽기도를 인도해야 하고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는 입장에서 그것도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이었습니다. 최근에 술과 담배를 끊은 성도님께 담배값을 물어봤더니 한 값에 2,500원이라고 합니다. 예배 후 광고 시간에 하루에 한 값을 연기로 날려보내는 데 드는 돈이 한 달이면 75,000원인데, 건강 잃고 돈 날리고 하느니 그 돈으로 2명의 어린이를 후원하자고 해도 누구 하나 나서는 성도가 없습니다. 성도님들이 거의 초신자들이라 밀어붙일 수도 없고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먼지가 뽀얗게 더러워진 구두를 딱던 중 갑자기 주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너는 군에 있을 때 고참들 구두를 잘 딱았던 실력이 있잖니?"
작은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애야! 아빠가 내일부터 교회 계단 앞에서 구두를 딱으려고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이의 표정이 '아니올시다'라고 말합니다. 물어본 제가 잘못입니다.
불교 신자라며 자신은 교회에 나오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우리 교회로 전도하는 1층 부동산 사장님에게도 손님을 좀 보내달라고 부탁해 놓았고, 2층 당구장에도 1층 현관 입구에 구두 딱을 자라에 대해 양해를 얻었습니다. 내일은 1층 식당에도 손님을 보내달라고 할 참입니다. 당장 구두통을 만들고 집에서 사용하던 구두약과 융으로 된 헝겊만 있으면 준비 끝입니다. 밑천도 안 드는 주님 사업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저절로 용솟음칩니다. 계단을 한숨에 뛰어 올라와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 내일부터 구두닦이 하기로 했습니다! 결단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올린 김정하 목사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한 직원이 성남에 다녀왔습니다. 마침 교화 앞에 도착했을 때 목사님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한 어루신의 구두를 닦고 있었는데, 능숙한 손놀림으로 구두에 광을 내시는 모습이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신문에 나온 차인표 신애라 부부의 기사를 보고 컴패션을 알게 된 목사님은 교회 강대상에 놓았다가 버려지는 꽃 값을 아껴서 처음 두 아이를 후원했다가고 합니다. 행사장에서 5개의 풍선이 선물이 아니라는 사회자의 말에 실망도 했지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바로 풍선을 던져버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천 개의 풍선에 한 명도 같은 아이가 없다는 말에 사진을 가슴에 품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구두를 닦으며 어린이를후원하면서 생각보다 손님이 없어서 힘들기도 하지만, 좋은 일 한다며 2천 원 구두 값에 천 원을 더 보태 3천 원을 주고 가시는 분, 남편의 구두 두 컬레를 가져오셔서 5천 원을 주고 가시는 분, 블로그 글을 읽고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며 통장으로 돈을 보내느시는 분들이 계셔서 격려를 받고 힘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엣날 한국 어린이들이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다른 나라 아이들의 이웃이 되어 온 세계가 잘 살고 주님을 아는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의 꿈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과 20년 후, 30년 후에 후언하는 이 어린이들의 삶이 열매를 맺고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서 남을 돕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이 없을 때 돕는 것이 진정 돕는 것이지요."
목사님은 평생 어렵게 생활해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온갓 허드레일을 했고 어렵사리 신학을 공부한 후, 전도사로 경기도 성남에 살롬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목사님이 깨달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가난을 경험했기에 가난한 자와 과부, 고아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그들과 함께 아파하며 도우라'는 말씀이셨지요. 이 부르심이 목사님의 삶을 이끌어갔습니다.
구두를 닦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기뻐하는 목사님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우리를 잔잔한 감동으로 이끌어간 지 2년이 다 되었을 때였습니다.
사모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형펀이 어려워져 후원금 내기가 어여울 것 같다는 내용과 함게 목사님이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전화였습니다.
우리는 당장 목사님께 달려갔습니다. 변함이 없는 목사님의 웃음과 달리, 불편해진 걸음 걸이와 어눌해진 말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말문이 막힌 우리에게 목사님은 오히려 더 환하게 웃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루게릭병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기뻐했습니다. 병원에 갈 때만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전할 수 있어서 좋다며 말입니다. 루게릭병에걸렸는데도 이렇게 천사처럼 웃을 수 있다면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죽고 수많은 사람들이 산다면, 저는 열 번이라도 더 죽을 수 있습니다."
목사님의 이 고백이 전 세계 컴패션을 울렸습니다. 우리는 목사님의 영상을 들고 전 세계를 다녔습니다. 목사님이 "대통령이 되어라, 미스 콜롬비아가 되어라, 장군이 되어라"라고 기도하던 일곱 명의 어린이들을 만나려 케냐에도 가고. 콜롬비아에도 갔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차마 목사님이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병에 걸렸다는 사정을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은 멀뚱멀뚱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현지 직원들과 선생님, 청년들에게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어릴 때 가난 속에서 후원자를 만나 후원을 받고 대학에 갔던 청년들이 펑펑 울었습니다.
"저는 후원자 분들이 다 부유할 줄 알았어요."
그들은 막연히 후원자는 여유가 많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이제야 자신이 어떤 헌신과 희생 속에 후원을 받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에콰도르 과야킬 슬럼가에서 목숨 걸고 어린이센터를 하시던 목사님도 영상을 보고 첫 마음이 회복되었다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국제컴패션의 콘퍼런스에서도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후원국의 많은 직원들이 서로를 보며 "당신의 구두닦이통은 어디 있느냐"고 눈물을 닦으며 물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을 통해 진짜 사랑이 어떻게 전해져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매년 크리스마스를 우리는 목사님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한번은 저희 가족들과 켬패션밴드, 멀리 송성에서 소식을 듣고 온 강상규 씨 등이 목사님을 위해 헌금을 모았습니다. 무려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걷혔지요. 그런데 목사님이 이 헌금을 바로 다음날 돌려주셨습니다. 그 돈을 들고 당장 교회가 있는 성남으로 달려갔습니다.
"목사님 쓰시라고 드린 돈이 아닙니다. 자녀들을 보세요. 좋은 옷에, 맛있는 거 누리고 싶지 않겠어요?"
솔직히 그랬습니다. 부모님이야 하나님 사랑으로 살겠다고 결단하고 평생 가난하게 사셨지만 자녀들은 무슨 죄입니까? 오래가지 않겠비만 잠깐이라도 아이들이 편안히 누리면 좋고, 아이가 대학도 가야 하니 돈을 받으시라고 강권했습니다. 하지만 옆에 듣고 있던 사모님이 하하하 웃으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더욱더 그 돈을 컴패션에 내놓아야지요. 이건 우리 아이들이 결정한 거예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한창 멋 부리고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고 싶을 나이에 어떻게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요. 여태것 고생한 걸 생각하면 아버지와 어머니께 투정부리고 원망도 하고 싶었을 텐데요. 자녀들의 결정이라는 말에 그 헌금은 소스란히 현지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목사님 가정이 후원하던 어린이들도 후원을 끊지 않고 계속 한 가족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구두를 닦떤 단골손님들이 후원을 자원하거나 병원에서 후원금을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작은 기도가 응답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번져 나가기를... 마음이 너무 뿌듯합니다."
더 어눌해진 목사님의 말은 사모님을 통하지 않고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모님이 세수를 시켜줘야 세수할 수 있고, 이를 닦아줘야 닦을 수 있게 된 목사님.
"남편이 혼자 세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혼자 이를 닦을 수 있게 해주세요."
사모님의 이런 기도는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하지 않는것입니다.
우리는 보다 큰 것, 보다 성과가 있는 것, 보다 많은 것을 기도합니다.
그런데 작년 크리스마스 때 만난 목사님은 그동안 하나님께 올려드렸던 기도를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라는 22가지의 감사 제목으로 우리에게나우어주었습니다.
"루게릭 방언을 통역해주니 고맙습니다."
"생선 가시를 발라주고 혀에 붙은 음식을 씹을 수 있도록 밀어주니 고맙습니다."
"밤에 자다가 모기를 잡아주고 불러주는 글을 대신 써주니 고맙습니다."
하나 하나의 감사 제목을 통해 사모님을 향한 목사님의 마음을 누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김정하 목사님 가정은 가진것과 상관없이 생명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되어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오히려 기뻐하는 분들입니다. 사람의 부함의 기준을 뛰어넘는 한 가정이 그렇게 저희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하나님 사랑을 가슴에 품은 분들이었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한 어린이의 손을 잡고 눈물로 기도하는 이런 후원자들로 인해 오늘도 우리는 기쁨으로 이 순간을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컴패션 대표 서정인님의
"고맙다"에서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곳에 자주 오시어 좋은 글도 올려 주시고 늘 감사합니다
할레루야 아멘
예사님
오랜만에 오신 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