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703
■ 3부 일통 천하 (26)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4장 병법가 오기(吳起) (1)
- 성군(聖君)이다.- 요순(堯舜)이 다시 태어났다.
위문후(魏文侯)가 내정과 민치(民治)에 힘을 쏟은 이래 위(魏)나라는 하루가 다르게 안정되어 갔다.
모든 신료와 백성들은 한결같이 위문후를 칭송했다.
그런데 정작 위문후(魏文侯)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어두웠다.조정 중신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해
눈치를 살피는 중에 상경 적황(翟璜)만이 위문후의 마음을 짐작하고 찾아가 말했다."주공께서는
우리 나라에 악양(樂羊)을 대신할 장수가 없기 때문에 근심하십니까?"
위문후(魏文侯)가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대답했다.
"과연 경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구려. 나는 경(卿)의 말을 좇아 악양(樂羊)으로 하여금 중산을 정벌했고,
서문표(西門豹)를 업 땅으로 내려보내 그 곳을 다스리게 했소."
"이로써 우리 나라는 동쪽에 대한 근심은 덜었소. 아아, 그런데 임금의 자리란 한시도 편할 날이
없는가 보오. 동쪽이 안정되니 이번에는 자꾸 서쪽이 걱정되는구려."
"지금 우리 나라 서쪽에는 승냥이와 같은 진(秦)나라가 도사리고 있어 언제 서하(西河) 땅을 침범할지
모르는 형편이오. 나는 지혜롭고 용맹스런 장수로 하여금 서하를 지키게 하여
서쪽을 안정시키고 싶은데, 그럴 만한 장수가 없어 요즘은 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밥상을 대해도
음식 맛을 알지 못할 지경이오."적황(翟璜)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이 한 사람 천거해도 괜찮겠습니까?""군대를 믿고 맡길 만한 인재(人材)가 우리 나라에 있소?"
"있긴 있습니다만, 우리 위(魏)나라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닌데 어찌 함부로 군대를 맡길 수 있겠소?"
"주공이시여,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시대의 흐름을 잘 타야 합니다.
지금은 지난날처럼 인재들이 한 곳에 머물며 군주의 부름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나라에서는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반대로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천릿길을 마다 않고 달려갑니다.
세상이 넓어지고 있는데, 주공께서는 언제까지 이 작은 위(魏)나라 안에서만 인재를 구하려 하십니까?"
적황의 말에 위문후(魏文侯)는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옳고 옳은 말씀이오.
내가 너무 고루한 사고에 젖어 있었던 듯싶소. 그대가 천거하고 싶은 사람은 어느 나라의 누구요?"
"그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오기(吳起)라고 합니다. 그는 병법의 대가 손무(孫武)에 버금가는
장수의 소질을 지닌 사람입니다.""오기? 과인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소. 출세를 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죽였다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니오?""그렇습니다."
적황의 대답에 위문후(魏文侯)는 은근히 눈쌀을 찌푸렸다.
"또 듣기로 재물과 여색(女色)을 좋아할 뿐 아니라 성품마저 잔인하다고 하는데, 어찌 그런 자에게
우리 나라 병권을 맡길 수 있겠소?"그러나 적황(翟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공께서는 잘못 생각하고 계십니다. 신(臣)은 다만 군대를 강성하게 하여 우리 나라 영토를
굳건히 할 장수를 천거했을 뿐, 덕 있고 어진 성인군자를 천거한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어찌
다방면에 두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아홉 가지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 한 가지 재능이
출중하다면 그것으로써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 성격과 행동까지 따질 건 없다고 사료됩니다."
재능지상주의였다.과거에는 생각해볼 수도 없는 일이었으나, 시대는 급변하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적황(翟璜)은 선구자다운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魏)나라가 전국칠웅 중 선두 주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안목을 가진 신료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적황의 설득에 위문후(魏文侯)는 마음을 바꿨다.
"오기(吳起)는 지금 어디 있소?""얼마 전까지 노(魯)나라에 있다가 지금은 우리나라로 건너와
신의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만일 주공께서 오기(吳起)를 부르시지 않으면 오기는 다른 나라로
가버릴지 모릅니다. 방금 전에도 아뢰었듯, 지금은 그런 시대입니다. 속히 부르십시오."
"경의 천거에 따르리다. 내일이라도 오기(吳起)를 궁으로 들게 하시오. 내 시험삼아 그와 얘기해 보겠소."
오기(吳起).흔히 세상에서는 '오자(吳子)'라고 부른다.<오자병법>의 저자이기도 하다.
'손자(孫子)'와 더불어 병법의 대가로 불리는 사람이다.
오기는 위(衛)나라 태생으로, 어릴 적부터 성격이 거칠고 급했으며 한 번 마음먹은 것은 포기하는 법이
없을 만큼 고집이 세었다. 열 살이 넘으면서 부터는 하루도 싸움질을 하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항간에 이런 일화가 전해온다.어느 날, 그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아이와 싸움을 벌였다.
오기(吳起)는 얼굴이 망가질 정도로 얻어터졌다.그러나 싸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오기(吳起)는 그 아이의 집 앞에 가서 싸움을 걸었다.또 호되게 맞았다.
그 다음날 또 덩치 큰 아이 집 앞으로 가 진을 쳤다. 피투성이였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날을 쫓아다니며
싸운 끝에 덩치 큰 아이는 마침내 기가 질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오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약관인 스무 살이 넘어서도 오기의 무뢰한(無賴漢) 같은 행동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의 집은 원래 부자였다. 그는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뇌물을 써서 벼슬 자리를 구하려고
여기 저기 떠돌아다녔다.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산만 탕진했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그런 그를 조롱했다.화를 이기지 못한 오기(吳起)는 칼을 뽑아
마을 사람 30여 명을 모조리 베어 죽였다.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된 것이다.
오기(吳起)는 재빨리 집으로 도망쳐 어머니에게 말했다.
- 저는 이제 위(衛)나라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이 곳을 도망쳐 타국으로 가겠습니다.
어머니가 놀라서 만류했다.- 자수하여 속죄를 하여라.- 아닙니다. 저는 집을 떠나겠습니다.
어머니가 장군 아들을 바라면 장군이 되어 돌아올 것이요. 재상 아들을 바라면 재상의 수레를 타고
돌아오겠습니다.만일 그렇지 못하면 저는 두 번 다시 어머니를 뵙지 않겠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어 피를 입술에 바르고 맹세했다.
어머니는 옷소매를 붙잡았으나, 오기(吳起)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와 위(衛)나라에서 도망쳤다.
704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704
■ 3부 일통 천하 (27)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4장 병법가 오기(吳起) (2)
위(衛)나라에서 도망친 오기(吳起)는 노(魯)나라로 갔다.학문을 익혀 출세를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노나라는 공자(孔子)의 영향을 받아 유학(儒學)이 성행했다.
오기는 공자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증삼(曾參)의 문하로 들어갔다.
일설에는 증삼이 아니라 증삼의 아들인 증신(曾申)의 학숙이었다고도 한다.
증삼(曾參, 증자) 문하로 들어간 오기의 열의와 노력은 놀라웠다.
낮이나 밤이나 책을 읽고 연구했다. 재능 또한 비범하여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 일취월장(日就月將)이로다.스승인 증삼마저 감탄할 정도였다.
한 번은 제(齊)나라 대부 전거(田居)라는 사람이 노(魯)나라에 왔다가 증삼의 학숙을 방문했다.
하룻밤 묵는 사이 새벽녘까지 책을 읽는 오기의 모습을 보았다.기특하게 생각한 전거는
오기를 불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오기(吳起)의 높은 식견과 해박한 지식은 끝이 없었다.
- 놀랍도다. 오기에게 반한 전거(田居)는 그 뒤로도 종종 그와 연락을 취하더니 마침내는
자신의 딸을 오기에게 시집보냈다.오기(吳起)는 아내를 맞이한 후에도 변함없이 학문에 정진했다.
스승 증삼(曾參)은 공자의 영향을 받아 효(孝)를 무척 중시했다.
그는 오기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다.어느 날, 오기에게 물었다.
"네가 이 곳에 온 지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한번도 어머니를 뵈러
고국에 다녀오질 않는 것이냐? 너는 어머니가 걱정이 되지도 않느냐?"
오기(吳起)가 대답했다."저는 집을 떠나올 때 일국의 재상(宰相)이 되지 않으면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맹세한 바 있습니다."증삼(曾參)은 정색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맹세를 했다면 칭찬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그런 맹세를 했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지금이라도 한 번 다녀오너라."
"아닙니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이때부터 증삼(曾參)은 오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몇 달 후였다.위(衛)나라에서 오기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기(吳起)는 슬펐다.당장에라도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의 상(喪)을 치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나는 맹세를 저버리는 것이다. 재상(宰相)에 오를 때까지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그는 방문을 닫고 크게 통곡한 후 이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스승인 증삼(曾參)이 들었다. 그는 오기를 괘씸히 여기고 불러 꾸짖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가지 않는 것은 근본을 잊은 처사다. 모름지기 물도 근원이 없으면 마르고,
나무도 뿌리가 없으면 시드는 법이다. 사람으로서 근본을 무시한다면 어찌 일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으리오. 나는 너 같은 사람을 제자로 둘 수 없다. 너는 다시 나를 보지 마라."
이를테면 파문 선고였다.그런데 증삼의 오기 파문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쩌면 오기는 증삼의 학숙에서 유학보다는 병학(兵學)을 더 열심히 공부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무뢰한(無賴漢) 출신인 오기의 적성에는 더 맞았으리라.
이렇게 상상해보자.어느 날 밤 늦게 까지 오기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스승 증삼(曾參)이 오기의 방을 찾았다.
읽고 읽는 책이 유가와는 상극인 병가(兵家)의 서적임을 보고 몹시 못마땅했다.
증삼(曾參)은 오기를 야단쳤으나 오기(吳起)는 병학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펼쳤다.
이때부터 오기를 싫어한 증삼은 오기가 어머니의 상(喪)을 당하고도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고
핑계거리를 찾아내어 그를 파문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증삼에게 파문당한 오기(吳起)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이러했을 것이다.
- 차라리 잘되었다. 이제 마음 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해보자.
실제로 오기(吳起)가 증삼 문하를 떠나 자리를 잡은 곳은 바로 병학(兵學)을 공부하는 학숙이었다.
스승이 누구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오기의 성품으로 볼 때 증삼의 학숙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일 수도 있다.
어쨌건 오기는 병가에 들어가 3년 동안 병법을 익혔다.
재능이 뛰어난 오기(吳起)는 이내 일가견을 이룰 정도로 병법에 통달했다.
이제 오기(吳起)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나의 능력을 발휘해 장상(將相)에 오르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천거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어느 나라건 상관없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면 된다.'그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노(魯)나라에서 자신의 기반을 닦으리라 마음먹었다.
당시 노나라 재상은 공의휴(公儀休)였다.여러 차례의 노력 끝에 공의휴와 얘기를 나눌 기회를 잡았다.
오기(吳起)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병법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쏟아냈다.
"무릇 전쟁에 임하는 군대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의병(義兵), 강병(强兵), 폭병(暴兵), 역병(逆兵)이
바로 그것입니다.""의병(義兵)이란 폭정을 물리치고 나라를 혼란에서 구하고자 하는 군대를 말합니다.
강병(强兵)이란 군사력만 믿고 나가 싸우는 군대를 말합니다.
폭병(暴兵)이란 도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탐해 나선 군대를 말합니다."
"역병(逆兵)이란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이 신음하는데도 일으킨 군대를 말합니다.
재상께서는 노나라 군대가 어떤 군대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오기의 말에 공의휴(公儀休)는 넋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 노(魯)나라를 강대국으로 일으켜줄 사람이로다.'
그 날로 그는 오기를 노목공(魯穆公)에게 천거했다.
그때부터 오기(吳起)는 노나라 대부가 되어 군사훈련을 담당했다.
그 무렵 노군(魯軍)은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사기도 떨어졌고, 군령도 전달되지 않았다.
오기는 매일 훈련장으로 나가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그럴 즈음 이웃 나라인 제(齊)나라 재상 전화(田和)가 노나라를 침공했다.
전화는 원래 진씨(陳氏)로서, 그의 조부 대에 전씨로 개명했다.
이 무렵, 제(齊)나라는 전씨 일족에 의해 모든 국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강공(齊康公)은 허수아비일 뿐, 전화가 제나라 군주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ㆍ한,ㆍ위가 진(晉)나라에서 떨어져나가 어엿한 제후국으로 독립한 것을 보고
자신도 내심 딴 마음을 품었다.'나도 언젠가는 제(齊)나라 군위에 오르리라!'
그런데 이웃 나라인 노(魯)나라는 노골적으로 제강공을 후원하고 있었다.
'노나라부터 치지 않으면 내 뜻을 이루지 못하겠다.'
이렇게 생각한 전화(田和)가 군사를 일으켜 노나라 국경을 침범한 것이었다.
70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