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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남이가!” 여전히 그 따위로 굴러가고
크리슈나무르티 : 꺼지지 않는 불꽃,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위하여
-- “聖人”의 시대를 살면서, “내가 안 바뀌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The idealist is the man with an idea, and it is he who is not revolutionary. Ideas divide, and separation is disintegration, it is not revolution at all. The man with ideology is concerned with ideas, words, and not with direct action; he avoids direct action. An ideology is a hindrance to direct action.
이상주의자는 관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 뿐, 결코 혁명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관념은 사람들을 갈라놓는데, 그러한 분리는 붕괴로 치달을 뿐이라서 전혀 혁명적이지 못하지요. 이념을 지닌 사람은 관념과 말에 관심 있는 사람이지,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는 다만 행동을 피하고 있는 겁니다. 이념이란 직접적인 행동에 방해물이지요.
Jiddu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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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0] “혁명” 말씀이지만, 시절이 하수상하여..
한평생 아무것도 한 거 없이.. ‘수수만년’ 이어이어 오다 인구가 줄어들어 나라가 망할 판으로 간다는데.. 애도 하나 못 보태고······.
도대체 나라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인간 하나.. 남은 평생 그저 멍~하니 ‘멍때리기’ 위하여, 시골 구석으로 도망쳐온 제 주제라고 하겠지만······. 그것도 “행동”으로 쳐줄랑가..
여튼.. 어쨌거나 “인생”이라는 거 자체가 이미 “행동”으로 이어지는 거지요. “행동” 아니면 어찌 인생이라는 게 있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행동이랍시고 하는 게 다들 ”고해“로 이어져서 그렇지만요.
본문 말씀, 핵심적인 단어가 “혁명!”과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거기서 혁명에 따르는 행동이라고 해도, 그 바탕이 ‘이념’ ‘관념’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겠고요. ‘인간은 이미 인식의 영역으로 넘어와버렸다!’며 방방 뜨던 어떤 인간도 생각납니다만.
오늘날 “혁명”이라는 말에, 얼마만한 외연·내포가 있겠습니까마는, 저는 그 말에 좀 주눅든 ‘라떼’라서요. 구태여 이념, 관념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 전체가 다 분열이지요? 동양·서양 구분부터 시작해서 무슨 ‘대륙’이라는 것도, ‘인종’이라는 것도 그렇겠고, 더욱이 각종의 조직 종교들의 대척에 시기에 질투에 기어이 난장판이라니. 선진국·후진국·개발국 어쩌구 해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지구촌” 전체를 ‘하나!’로 봐야 말이지요. 그러기는커녕 저 역시, 요즈음 다시 선거철이라서 그런지, 지금, 저 말씀에 딱! “우리가 남이가!” 그 소리가 생각나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남북분단”뿐만 아니라, “동서대립” 역시 하나의 관념 맞지요? 인간 “의식” 자체가, “인식” 자체가 관념인 판에 말씀이지요. 하기사, ‘정치’판에 저런 귀한 말씀이 어디 ‘명함’이나 내밀 수 있겠습니까마는..
하여튼, 저는 그 말 처음 들었을 때, 뜬금, “남북관계” 얘기인 줄 알았습니다. 거의 십 년도 더 지나서야, 그 말을 한 장본인이랑 배경, 장소 따위들을 알게 되었지요. 그만큼 ‘정치’라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못 가진 채로 살아왔지만, 인생 만년 와서 보니, 우째.. ‘좌익빨갱이’ 비슷하게 몰려서는 ‘소외’에다가 ‘배척’을 더하는 신세.. 그래서 더 ‘도망’치게 된 걸까요? 다들 저 소리야, 그냥, ‘그런 게 권력의 속성이다’며 넘어가버린 것 같지만요. 그게 그 장소 맞는지, ‘초원복집’이라는 말이 뇌리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기사, 그보다 더 진짜 엉망진창으로 굴러온 공동체 “대~ 한~ 민! 국!” 꼬라지에 저 귀한 ‘명함’은 무슨 수로..
최근에는 누군가가 국회의원 출마한다는 소식에, ‘가서, 여의도를 바까삐라!’ 그런 말도 들리던데요. 글쎄요, 이런 체제로, 이런 시스템으로, 이런 정치판으로 “여의도”가 바뀌겠습니까? “국론분열”이라고 서로 비방해대면서, 자기네들 정당으로는 물론, 하는 짓거리들은 물론, 의식 자체부터 더 갈가리, 천갈래 만갈래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의식 수준, 교육 수준, 그냥 니나 내나 그런 ‘민도’ 가지고 뭔가 될 것 같지가 않지요? 간간이 이웃 왜나라 떼나라 비판·비난도 많이 하는 처지입니다만, 사실상 우리도 그닥 나은 거 별로 없지요? 그나마 “한류”라는 게 좀 뜬다 합니다만.
이렇게도 얘기가 동에 시들 서에 간들 하는 꼴로도, 무한정 길어질 것만 같습니다. 이제는 그만한 상상력에 굳은 머리가 돌아갈까 싶기도 하지만요. 한평생 단 한번 피어보지도 못하고설랑.. 저물녘 해거름에..
혁명과 행동 말씀에, 기껏 ‘우리가 남이가!’ 따위나 떠올라는 심사로는 저 “멍때리기”도 감지덕지겠지요. 그나마 제대로 되는 건지 누가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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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9] “케이-뷰티”에 ‘케이-마음씨······’
“홍익인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저.” 그런 말이 있기는 있습니다만.. 하도 오래 된 말이 돼 놔서리.. 말씀이지요.
그나저나, 과연 우리가 각자 세상에 필요한 행동을 얼마만큼씩 하고 사는 걸까요? 글쎄요, 이런 의문이 타당한 질문이기나 할는지요?
“행동” 말씀이지, 무슨 타협이나 야합 따위를 말씀하시는 게 아니지요? 하는 짓들이 하나같이 꼭 그런 거라서, 제 스스로 만들어낸 말로, “아들아, 너는 나처럼 살아버리지 마라!” 그러기도 해봤습니다만.
그 역시 고작 하나의 ‘희망사항’이지, 더구나 요즘, 아들이라고, 두드려팬다고 억지로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습니다만, 무슨 ‘다른 길’이 있다면, 그런 길로 가도 되겠지요. 그러나 세상천지 다른 길이 없다는 거 아닙니까? 아마도 다른 길이 있다면, 크리슈나무르티, “미륵,” “새로운 성인”께서 세상에 안 오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손톱 밑의 가시’ 역할마저 못했겠지요.
어쨌거나 수십 번 되풀이했듯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포함한 아시아대륙 동쪽 끄트머리 어디쯤에는 그런 흐름이 안 끊기고 이어져왔다는 말씀이기도 하니까, 세상 온 천지 가운데 여기가 그나마 좀 덜 ‘생소’한 거 아니겠습니까? 어쨌거나, 그게 고작 요모냥요꼴이라 해도 어쩌겠습니까? ‘민도’라는 말도 있고 ‘국격’이라는 말도 해쌌지만,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 어디쯤 사람들 내면 됨됨이, 딱 그만큼만 이루고 살아들 가겠지요.
‘쉽게 달았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게’ 이내 심보라는 적반하장식 비난도 있으니, 별로 기대할 것도 없지요? 유구하다는 역사 말고, 근현대사를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확, 달았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라니. 거기서는 설령 “혁명”이 일어난다 해도 꼭 그 꼴이겠지요? ‘불씨 간직한’ “질화로” 운운한다고 해서 뭐 그리 달라지겠습니까? 한때, 누군가 무슨 “은근과 끈기” 어쩌구 하는 말도 기억나는데요. 그게 고작 제 구린 데 가려보자는 심보였을까요?
지구촌 오늘날, “성인(聖人)” 크리슈나무르티,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새로 오신 까닭이 과연 어디에 있는 건지.. 하필 반쪼가리 갈라진 나라 여기만 문제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저들이 “선도국”이라고까지 불러준다는데요. 우리가 고작 그 말에 ‘은근 갑질’이나 해먹자 해서는 좀 많이 ‘부끄러운 짓’ 아니겠습니까? 누가 뭘 어쩐다 해도, 우리 갈 길, 세상 갈 길, ‘선도..’ 비록 흔들리면서라도 가야지요.
한류, 케이드라마, 케이뮤직, 케이뷰티, 한식, 한복 다 좋고! 반도체 가전 조선 자동차 방산 심지어 우주선까지 다 좋다지요? 그쯤 되면 “부자 몸조심”이라고.. 몸가짐 옷매무새 좀 매끈하게 해야 안 되겠습니까? 왜 하는 짓들이 하나같이 저렇게 철딱서니가 없을까요? ‘케이마음씨,’ 그런 것도 있어야지요.
사회, 문화, 정치, 종교, 교육 등등, 전부 다 그 꼴 아닙니까? 도대체 진짜로 조금이나마 ‘나은 게’ 뭐란 말일까요? 여전히 흔들리고만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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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끄적거려놓은 건 몇 년 사이의 ‘사족’인데요, 그저 내다버리지 못 하는 ‘집착’ 때문에 달아놓은 것뿐입니다. ‘이딴 걸 왜 못 버리냐?’ 하시겠지만, 혹시나 관심 있으신 분, 흘낏, 읽어라도 보시라고 그대로 달아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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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9] 행동에 방해물인 “이념”
개인적인 문제든지 사회적인 문제든지 간에, 문제는 행동으로 풀리는 것이지요?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썰'을 풀게 아니라, 바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이러니저러니'에 해당되는 것들을 보자면, 좌파 우파도 될 것이고, 진보와 보수도 되겠고, 민주당 자유당도 될 것입니다. 노동당과 녹색당도 되겠지요. 수많은 ‘철학’과 ‘지식’들도 거기에 다 포함될 것입니다.
문제의 예로서 '개발'을 들 수도 있겠고, '환경' 문제를 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지속가능성'을 봅시다. 지구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생산 소비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수억 년이라든가, 하여간 그 오랜 시간을 통해서 만들어진 ‘석유’를 보더라도, 그런 자원을 불과 몇 백 년 만에 다 거덜을 내고 이제 바닥을 보일 지경입니다. 그게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세일석유라고 해서, 그게 무한하단 말이겠습니까? 또한 그 사이에 뭔가 대체 에너지가 개발된다고 해도 말씀이지요.
그런데도 진보는 그걸 '이렇게' 풀어야 한다는 반면에 보수는 '저렇게' 풀어야 한다는 따위로 주장하곤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풀렸습니까? 아니라면 조만간에 풀리기라도 하겠습니까? 문제가 풀리자면, 바로 당장에 석유를 안 쓰는 삶의 방식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하루아침에 불가능하다면 최소한도로만 쓰는 방식을 취해야겠지요. 해결책은 딱 그거뿐이지 않습니까? 고운 “마음씨”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니저러니' 하는 주장으로 문제가 풀리겠습니까? 진보 이념, 보수 이념 따위의 관념이나, 동양철학 서양철학 하면서 철학·지식 운운해도 문제는 안 풀립니다. 석유뿐만 아니라, 결국 지구 유한한 자원으로 인간 무한한 욕망을 채운다는 것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주 명백한 사실 아닙니까?
종교를 봅시다. 부처님 말씀대로 살면 행복해진다는 사람들이 있고,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행복해진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라 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들이 서로 만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 역시 한낱 이념 꼴이지요? 겉으로 표현을 하든 안 하든 간에, '갈등'이 내재할 뿐일 것입니다. 서로 좋은 얼굴로 관대한 척할지는 몰라도, 그런 조직종교 존재 자체가 이미 분열의 씨앗입니다. '행복'하자면, 지금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을 떨쳐버리면 됩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도 안 떨치는데도, 다른 무슨 '신'을 믿으면 행복해진다고요? 그게 가능한 이치입니까? 지고 있는 짐을 부려야 가벼워지지, 짐을 그대로 다 지고 있으면서 설령 '신'을 만난다고 해도, 그게 가벼워진단 말입니까? 기껏해야 ‘위안,’ ‘위무,’ ‘기복’이겠지요.
기계적인 영역에서가 아니라면, 아니군요, 기계적인 영역에서도 역시 문제는 행동으로 풀리는 것이지, '말'로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기계적인 문제를 풀 때는, 거기에 관한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근원적인 인간의 문제들은 '말'의 확장이라고 할 '지식'으로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기 위의 케이 말씀에서 '이념'을 '지식'이나 ‘철학’이나 ‘종교’로 바꾸어도 아무 차이 없겠지요?
정치적인 문제 역시 '행동'으로 풀 일이지, 무슨 정당끼리 타협·야합해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겠습니까? 권력을 쟁취하려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겨우 땜질이나 하겠지요. 그것도 싸워가면서 말입니다. 분열되면 싸웁니다. 철칙이지요. 오늘날의 사정상 정치인 뽑는 투표를 안 할 수 없겠습니다만, 군림이나 지배가 아니라 다스려야 할 것이고, 왕좌를 서로 양보해가면서, 누가 대통령인지도 모르게 살도록 하는 게 제일 잘 하는 정치라고 안 합니까? 꿈 같은 소리지요? 그나마 누구 종교인까지도 권력에 빌붙어먹고 있는 세태에서는 꿈 속에서도 또 꿈 같은 얘기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춘몽 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지만, 무거운 절이 떠날 수 있겠습니까? 가벼운 중이 떠나야지요. 그리고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정작 세상을 걱정하면서도, 지성을 작동시키면서도 그 자신은 그 사회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거지요. 이게 꼭 거기에 해당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제 자신 청춘을 싸그리 다 바쳐서 겨우 이 세상과 연결되었던 유일한 고리, 대학 강의마저 못 하게 된 세월도 벌써 10 년이 넘었군요. 그래도 여전히 아직은 그립습니다. 그 초롱초롱 빛나던 눈동자들.. 한번 가고는 다시 못 오는 그 눈빛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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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9] “한번 가고는 다시 못 오는 그 눈빛들..”
“아직은 여전히 그립습니다.” 그 초롱초롱하던 “눈빛”들.. 그들 젊은이들 인생을, 교수라거나 총장이라는 자기네들은 그 젊은이들 한 평생을 행복하고도 의미 있게 해주지도 못하면서, 어렵사리 겨우겨우 유지하던 그런 진짜배기 ‘강의’까지 못 하게 ‘농단’을 부려놨으며, 강의하던 사람은 아예 시궁창에 생매장을 시켜버린 거지요. 다른 누구도 그런 강의를 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말씀이지요. 심지어는 그런 강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면서 말입니다. 결국은 ‘종교’ 세력을 등에 업고 저질러놓은 범죄라고 해도, 그 책임은 그 대학 총장해먹은 인간들 하며 하수인들이 끝내 다 져야만 할 것입니다. ‘역사’로나마.. 글쎄요, 언제 그 얘기를 좀 자세히 할 수 있는 날이 있어야 할 텐데요.
그러지 않아도, 정말 “깊이 병든 사회”를, 더 썩을 수밖에 없이 만들어놓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인간이 없고 말씀이지요. 분명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만 할 일입니다. “역사 앞에서”라도 말씀입니다. 이게 어찌 그냥 덮이겠습니까? 물론 단방에 무슨 유혈 혁명이 일어나서 저들 목이 달아난다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하다못해 그 기록이 남아도 남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는 심보겠지만, 저들이 모르는 척하고 있어도, 부스럼은 엄청 크게 도지는 겁니다. 기껏 모래 속에 대가리 처박고 있는 타조 꼴이라고나 할까요? 그 벌겋고 구린 꼬라지 다 드러내놓고 말씀입니다. 철판도 도대체 어떻게 저다지 두꺼운 철판을 뒤집어쓰고 있을 수 있는지. 참으로 후안무치 몰염치 파렴치들입니다.
페이스 북, “내추억보기” 공유 좀 마음대로 할 수 없을까요? 또 이게 ‘공유하기’가 안 되게 해놔서 은근히 약이 오르는 차에, 그냥 저 말씀이 나와버렸군요. 글쎄요, 이렇게 말고는 평생 한 마디나마 더 보탤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그야말로 무지하게 더러운 짓인데 말씀입니다. ‘홀로코스트’보다도 더 한 짓입니다. 에혀, 이게 재작년 해석 끝부분이 또 그 말이라서 주저리주저리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군요. ‘혁명’ 말씀인데 말입니다. 어쨌거나 명색이 “혁명”을 어찌 관념이나 지식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턱도 없는 소리지요? 오늘날 대한민국은 “촛불혁명”의 뒤끝이지만, 혁명이란 오로지 개인적인 행동입니다. 더구나 사람 죽이는 혁명으로는 안 됩니다. “혁명”이랍시고 그다지도 저다지도 엄청나게 사람들을 다 죽여도 봤지만, 결코 ‘좋은 세상’은 오지 않았지요.
오로지 “개인”으로서 한 사람 두 사람, 차근차근 내면적이고 심리적인 “혁명”을 통해서만, 세상은 바뀌어갈 수 있을 뿐입니다. 딱 그 외길 하나 말고는, 저 수많은 혁명이 일어났고, 소위 홍위병 따위들이 ‘반동세력’이나 ‘인텔리켄차’ 다 죽였어도, ‘좋은 세상,’ 구경이나 해봤습니까? 결국 그 꼭대기 자리들은 그 전에 차지하고 있던 인간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인간들이 차지했을 뿐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니저러니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해봤지만, 결국은 ‘사랑’과 ‘자비’ 아니면, 그런 인품들 아니면, 문제가 풀릴 수 없는 거지요? 정말 제대로 된 해결책은 결국 다들 진짜로 “종교적”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을 터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종교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누구란 말입니까? 우리가 아는 사람 가운데는 단 하나도 없는 거 아닙니까? 계신다 해도, 겨우 숨어 계시겠지요.
결국 그렇다고 ‘조직종교’로 되는 일도 아닙니다. ‘조직’은 세상을 분열시키는 역할밖에 달리 뭘 한단 말이겠습니까? 여기 이 불쌍한 땅, 대한민국은 아주 철저하게 그들 “조직”들이 갈라먹고 있는 형국 아닙니까? 사이가 좋든 말든 간에 말씀입니다. 좋을 리도 없습니다만. 그게 갑순이 ‘안 그런 척’한다고 되는 일이겠습니까? 정말, 저런 고운 심성을 이제 평생 다시는 더 못 만나본다면 어떡해야 하는 걸까요? 더럭 겁이 납니다. 참, 진짜, 인간 세상, 아무도 손 한 번 잡아줄 사람이 없고 말씀이지요. 이런 걸 ‘절망’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물론 냉정하게 봐서, 사실상 절망할 것도 없습니다만. 누가 있든 말든, 지 혼자서라도 그렇게 못 살 까닭도 없는 거니까요. 그래도.. 어쨌거나 ‘딱 한 번 만나고, 평생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피천득 수필 “인연”의 ‘아사코’도 아니고 말씀이지요.
나아가서 저러한 혁명이야 일으키든지 말든지 간에, 모름지기 한 평생 살면서 저 수많은 ‘문제’들 다 지고 살 일이 아니지요? 인생 제대로 살아보려면, 그 짐들 하나하나 다 부려놔야만 할 것입니다. 그거 지고 있는 한, 인생은 죽어도 여전히 “고해”일 테니까요.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문제들, 그거 부리는 작업이 바로 진짜배기 “혁명”일 터입니다. 오로지 사실로서 짐 부리는 작업만이 중요한 것이지, 그 짐들에 대한 백 가지 천 가지 ‘이념’들이 줄줄이 꿰뚫고 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정작 “삶”이 문제라면, 그런 이념 따위들은, 관련 학자들, 교수들, 호기심 많은 지식인들에게 넘겨주고, 우리는 그냥 홀가분하게 살 궁리를 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 누구보다도 오로지 그런 “자유인”만이 절실하게 필요한 세상입니다. 애들 근본을 그렇게 키워야지요.
“혁명”은 막바로 ‘행동’이지 ‘이념’ 따위 지식이나 철학이나 의지로 하는 게 아니란 말씀입니다만, 그래서 삶의 짐 다 부려놓은 “자유인”이 꼭 필요한 거겠다는 말씀입니다만, 그렇게 “자유인” 기다리다가 “언제 좋은 세상 만날래?” 하시는 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체가 다 행복한 세상은 지구 끝나는 날까지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차차로 행복해져야 전체로 행복한 사회가 올 수 있는 것인데, 니나내나 하나두나부터 행복하지 않지 않습니까! 오로지 그 가운데 진짜로 걱정근심 따위 인생 짐 다 부린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아시다시피 참으로 드문 일이지요? “인생은 고해다.” 하고 그게 마치 진리인 양 살아가는 인간들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건 틀린 겁니다. “인생은 고해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인간 말고는 삶을 고해로 사는 생명체는 없다니까요. 아이들한테 딱 이거부터 먼저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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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사람이 ‘먼저’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세상 지구촌 궁극적인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나”입니다. 인간들 아니라면 ‘나’ 없으니, 아무 문제가 아니지요. 인간 아닌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나’가 없으니, 그 “삶”이 ‘고해’일 수도 없는 거고요. 설마, 무생물이 문제는 아니지요?
설령, 무슨 ‘운석’이나 ‘행성’들이 한꺼번에 지구에 부닥친다면,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모두가 그냥 사라져버리면 끝나는 거고요. 그러나 한 50 억 년 동안 그런 일은 안 일어났다니까, 앞으로 한 50 억 년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고 일단 보자는 말씀이지요.
과학자들 말로는 한 1 억 년이라든가 얼마 뒤에라든가 지구에 ‘산소’가 다 사라진다고도 하던데요, 그 또한 그때 가서 문제지요. 당장 눈앞에 닥친 지구온난화 문제도 해결이 이리도 안 되는데, 저게 지금 문제는 아닙니다. 그야말로 ‘남의 일’이지요.
여기서, 지구온난화 내지 생태계 파괴가 아니라 “정작 문제는 정치”라고 했던,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 그 분 말씀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요? 그 말씀을 보더라도, 결국 ‘인간’이 문제지 ‘세상’은 문제가 아닌 겁니다. 거기서도 ‘세상’이 아니라 ‘나’가 문제라는 거 아닙니까!
역시나 아득한 얘기지만, ‘구조’라든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거지요. 이 모든 폭력성을 비워버리고 인간들 심성부터 ‘선’해져야지요. 그건 오로지 “종교”의 영역이겠지만, 그 길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종교도 조직화하면서 다 망쳐놨습니다. 인간들을 “행복”하게 못 해주는 거지요.
오늘도 누구 상당히 유명한 배우가 ‘자살’을 했다고 뜨는군요. 그런 사람들이나따나 ‘나 없음’에 관심을 지니도록, 미리 길을 좀 터줄 수는 없을까요? “관찰자가 바로 관찰대상”이라는 사실만 깨달아도 절대로 ‘자살’ 따위는 아니 할 텐데 말씀입니다. “선도국” 사람들이 저다지 허망하게 죽어나는데도..
그렇게 바탕을 보자면, 인간들이 ‘나’를 문제 삼지 않는 한, 그 개인의 문제는 물론이고 온 세상의 문제, 지구 전체의 문제는 풀릴 길이 없는 겁니다. 생태계 파괴로 지구 자체가 멸망하게 생겼다지만 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인생은 고해” 아니랍니까? 모름지기 각자 ‘내 문제’부터 풀어야지요.
그러나 ‘문제’를 ‘문제’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명색이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한다면서도 말씀이지요. 그건 건국이념이기도 했지요? 설마, 오늘날에도 그게 대한민국 건국이념일까요? 최소한 그쯤은 돼야, 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불러준다는 “선도국” 체면이 좀 설 거 아니겠습니까?
지구촌 한반도 시공간이 어떤지에는 관심없이, “평양성 해 안 뜬대도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면서, 참, 다들 ‘나’에 당하기만 하면서.. 거기서 짐짓 ‘까마귀 노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읊조린다고 해서 좀 고상해집니까? “너, 까마귀? 나 백로!” 해봤자 말짱 그 나물에 그 밥 아닙니까?
무슨 ‘꿈’이니 ‘이상’이니, 그런 건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오로지 있는 문제, 드러나는 문제를 바로 풀어야지요. 거기서 문제랍시고 ‘이 문제,’ ‘저 문제’ 들이밀지만,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바로 ‘나’라는 지적이지요? 그러시나마나 우리한테는 그게 다 “남의 일”일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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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dealist is not revolutionary
이상주의자는 혁명적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혁명”만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자기로부터 혁명” 말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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