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4일 오늘의 역사
2018년 연극배우들(23명)이 이윤택 연출가의 성폭력 고발(Me Too),
이윤택 연출가 4월 14일 구속기소, 9월 19일 1심 징역 6년 선고, 2019년 7월 24일 대법원 징역 7년 확정
2014년 강릉 103년 만에 9일 연속 눈 내려 110cm 쌓임
2010년 이승훈, 스피드스케이팅 5000m 아시아 남자 첫 은메달
2010년 2월 14일(한국시각) 밴쿠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한국의 이승훈(22·한국체대)이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 종목에서 아시아선수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이승훈이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월드컵 랭킹 9위까지 올라간 것도 일대 사건으로 여겨졌다.
이날 12번째 조로 뛴 이승훈은 막판 스퍼트 끝에 6분16초95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5000m 세계기록 보유자이자 이번 대회 금메달인 스벤 크라머(6분14초60)에 2초35 뒤진 기록이다.
쇼트트랙 선수로 스케이팅을 시작한 이승훈은 본격적으로 스피드스케이팅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작년 2월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3관왕에 오르며 쇼트트랙 선수로 승승장구했지만, 밴쿠버올림픽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2009년 4월)에서 탈락했다. 이후 3개월여의 방황 끝에 이승훈이 선택한 것이 스피드스케이팅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용 스케이트화가 없어 남의 것을 빌려 신고 훈련을 시작했고, 전략적으로 장거리인 5000m를 주종목으로 삼았다. 500m 같은 단거리는 이규혁·이강석 등 선배들을 버티고 있었다.
2009년 미국, 연쇄총격으로 4명 피살
미국 뉴욕주에서 발렌타인데이인 2009년 2월 14일 연쇄 총격 살인사건이 발생해 4명이 숨졌다.
미국 수사당국은 프랭크 가르시아(34)라는 범인이 뉴욕주 브로크포트 소재 레이크사이드 메모리얼병원 밖에서 총격을 가해 2명을 숨지게 한 뒤 온타리오카운티의 주택에서 한 부부를 역시 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가르시아는 사건이 발생한 레이크사이드 메모리얼병원 전직 직원으로, 이날 병원 밖에서 3명에게 총격을 가해 랜덜 노먼(41), 메리 실먼(23) 등 2명을 숨지게 했다.
가르시아는 이어 수시간 뒤 온타리오카운티의 한 주택에서 두 번째 범행을 감행, 크리스토퍼 글레이츠(45), 킴벌리 글레이츠(38) 부부를 총으로 살해했다.
특히 가르시아는 두 번째 범행 전 글레이츠 부부를 찾기 위해 인근 주택을 돌며 글레이츠 부부의 거주지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당시 이들 부부의 10대 아이들 2명도 함께 집에 있었으나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2007년 전국 첫 주민직선 부산교육감에 설동근씨
설동근(58) 현 부산시교육감이 2007년 2월 14일 전국 최초의 주민 직접선거로 실시된 부산시교육감 선거에 당선됐다. 임기는 오는 3월부터 2010년 6월까지다. 전체 유권자 284만9049명(부재자 4만1822명 포함) 중 15.3%가 투표했으며, 설 후보는 유효투표의 33.8%를 얻었다.
설 당선자는 경남 의령 출신으로 부산교대를 졸업한 1969년 교사 생활을 시작, 부산시 교육위원을 거쳐 2000년 10월 보궐선거에 당선됐고, 2003년 재선되었다
2007년 탤런트 윤태영·임유진 결혼식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의 외아들인 탤런트 윤태영(33)씨가 2007년 2월 14일 오후 5시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동료 탤런트 임유진(26)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맡았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사회를 보고 가수 박정현씨가 축가를 불렀다. 양가는 결혼 축의금과 화환을 받지 않았고, 하객과 취재진에 식사를 대접했다. 이날 결혼식비용은 1억원 이상이 든 것으로 추산된다.
윤태영·임유진 커플은 지난 2003년 KBS 2TV 주말 드라마 ‘저 푸른 초원 위에’에서 친남매 역할을 맡아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지난 2005년부터 본격 교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 고려 왕릉급 무덤 강화도서 발굴
2007년 2월 14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능내리에서 13세기 중엽 고려시대의 왕릉급 돌방무덤(石室.석실)이 발굴됐다. 14일 발굴 결과를 발표한 국립문화재연구소측은 “은으로 만든 판에 금을 입힌 봉황 장식이 나오는 등 왕릉급 무덤으로 확인됐다”며 “그러나 유물들이 조각만 있었기 때문에 누구의 무덤인지, 그리고 전체 유물이 어느 규모인지는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이 무덤은 몽골 항쟁 중 강화에 천도했던 시대(1232~127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덤 방 내부와 봉토 주변에서 금은제 장식 파편, 구슬, 무덤을 지키는 돌로 만든 짐승(石獸.석수) 등이 나왔다. 정교한 조각기법에서 고려 장인(匠人)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유물들이다. 그러나 유물 중 상당수는 이미 도굴된 것으로 보인다고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말했다.
2005년 라피크 하리리 전(前) 레바논 총리, 베이루트에서 차량폭탄 공격 받아 사망
레바논의 전후(戰後) 재건 및 시리아군 철수를 통한 평화 정착에 핵심 역할을 해왔던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가 14일 차량폭탄 테러로 사망,
그는 내전이 끝난 뒤 1992년 총리에 처음 취임했다가 1998년 에밀 라후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사임했다. 2000년 9월 총선 압승으로 총리에 복귀했으나 전력 통신 등 국가기간산업 민영화를 추진하려다 라후드 대통령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시리아에 대한 유엔안보리의 철군압력이 가중되던 시기에 라후드 대통령 임기 연장에 대한 불만으로 총리직을 전격 사임했다.
하리리 전 총리는 이슬람 수니·시아파, 기독교 등 종파로 갈라진 레바논 세력들 간에 정치적 조정자 역할을 해왔다. 1975년 기독교도 우파인 팔랑헤당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게릴라 기지를 습격한 것을 계기로 내전이 일어나자 레바논을 ‘형제국’으로 간주해 온 시리아는 1976년 4월 정규군을 투입, 수도 베이루트를 침공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리리가 테러로 사망하면서 시리아군 철수문제의 중재 채널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30여년간 레바논에 군을 주둔시키면서 레바논 정국(政局)을 사실상 장악했던 이웃국가 시리아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 조사단은 하리리 전 총리 폭탄테러 사건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20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했다. 54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동생 마헤르 아사드와 매형 아세프 쇼카트 정보국장이 하리리 암살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12일 자기 사무실에서 권총 자살한 가지 카난 전 내무장관 등 다른 5명도 사건 용의자로 지목했다.
2003년 복제양 돌리 폐질환으로 안락사
세계 최초의 복제양 `돌리`가 양의 정상수명의 절반에 불과한 여섯살의 나이에 폐질환 증세를 보임에 따라 도축됐다. 돌리를 복제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로슬린 연구소는 이날 1996년 포유류 최초로 어미의 체세포를 복제해 탄생한 복제양 돌리가 진행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도축했다고 밝혔다. 양의 평균 수명은 11~12년이다.
돌리의 죽음은 최근 호주의 세살짜리 복제양 `마틸다`가 돌연 사망한 데 이은 것으로, 생명 복제의 위험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대북비밀송금 의혹 관련, 김대중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4일 “최근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문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치게 돼 참으로 죄송하기 그지없다”고 2000년 대북비밀송금 파문에 대해 사과하고, “모든 책임은 대통령인 내가 지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이미 북한당국과 많은 접촉이 있던 현대측의 협력을 받았으며 이것이 공개적으로 문제된 이상 정부는 모든 진상을 밝혀야 하고 모든 책임은 대통령인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현대는 대북송금의 대가로 북측으로부터 철도·전력·통신·관광·개성공단 등 7개 사업권을 얻었다”면서 “정부는 그것이 평화와 국가이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그러나 “이 문제를 법률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국익을 위해 적절치 않다”고, 검찰 수사나 특검제 도입에 거듭 반대 입장을 밝히고 “정치권도 남북관계와 국익을 생각해 선처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2002년 한국인 과학자가 주도한 연구팀, 고양이 복제 세계 처음으로 성공
한국인 과학자가 주도한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고양이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신태영 박사가 `제1연구자`로 참가한 미국 텍사스 A&M대학 연구팀은 2002년 2월 14일 "암코양이의 성인 체세포에서 추출한 유전자로 `Cc`라는 이름의 얼룩무늬 복제 고양이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양·소·돼지·쥐 등 가축과 실험용 동물을 복제한 적은 있었으나, 애완동물을 복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결과는 세계적 권위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2월 21일자에 실렸다. 이번 연구를 이끈 신태영 박사는 1997년 서울대 수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99년 애완용 개 복제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 텍사스 A&M대학으로 건너갔다.
1999년 한국계 나오미 나리남(남나리) 전미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2위
한국계 소녀 나오미 나리남(13.남나리)이 1999년 2월14일 전미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여자싱글부문서 미셀 콴에 이어 2위를 차지해 빙판의 새 요정으로 떠올랐다. 13세에 불과한 남나리양은 아직 연기가 원숙하지는 않았지만 회전기술 등에서는 콴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탓으로 4위에 그쳤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선 완벽에 가까운 묘기로 2위를 차지, 종합2위에 올라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대회 최고의 스타로 남나리를 꼽은 LA타임스지는 “나리 남의 연기는 카리스마적이었고, 힘이 넘쳐 흘렀으며 이제 전 세계가 나리남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고 극찬했다.
1993년 브라자우스카스, 리투아니아 대통령에 당선
1992년 헬기추락 사고로 이현부 중장 등 7명 사망
1992년 2월 14일 오전 9시 50분쯤 경북 선산군 장천면 상림리 산동산 중턱(해발 4백50m 8부능선)에서 육군 제3183부대 204항공대 소속 UH1H 헬기 1대가 꼬리쪽 프로펠러가 떨어져 나가면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육군 7군단 소속 탑승장병 10명 중 군단장 이현부 중장(50), 작전참모 허정봉 대령(49), 군수참모 이원일 대령(40), 감찰참모 노용건 중령(40), 비서실장 한광진 소령(32), 부관 서상권 중위(25), 헬기 보조승무원 조규성 상병(22) 등 7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순직한 이현부 중장은 1991년 육사 20기 출신 중에서 안병호 수방사령관과 함께 가장 먼저 중장으로 진급한 선두주자였다. 서울고를 거쳐 육사를 졸업할 당시 대표화랑으로 선발됐을 만큼 두각을 나타냈으면서도, 정치에 물들지 않은 전형적인 군인으로 꼽혀왔다. 12·12나 5·17에 가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나회’나 6공화국에 들어 육군 실세로 급부상한 9·9 인맥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순수군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출세코스라는 수방사기무사대신 수도기계화사단에서 대대장사단장을 지낸 기계화부대작전의 1인자로 통해왔다.
1992년 샐먼 루시디, 이란정부에 사형선고 3주년맞아 도피생활 청산선언
1989년 이란 호메이니, ‘악마의 시’ 저자 살만 루시디에 사형선고
1989년 2월 12일 인도태생 영국소설가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의 소설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 출판에 항의, 파키스탄인 수천명이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미 문화원을 습격한 데 이어 1989년 2월 14일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 소설을 ‘신성모독’으로 규탄하고 저자 루시디에게 파트와(fatwa, 이슬람의 종교적 사형선고)를 선언했다.
회교도들의 분노에 처음에는 “회교도들은 유머 감각이 없다”며 ‘종교적 광기’로 몰아붙이던 루시디는 암살특공대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에 예정돼 있던 2주간의 미국여행을 취소하고 은신처로 도피했다. 1989년 호메이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선고자만 철회가 가능한 파트와는 철회가 불가하게 되었으나, 1998년 이란 정부가 루시디의 파트와에 대한 개입 중지 입장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그에 대한 파트와는 철회되었다.
‘악마의 시’는 이슬람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등장시켜 이슬람에 대한 신성모독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과 별개로, 환상과 현실이 절묘하게 배합돼 선악의 갈등을 훌륭하게 표현한 명작으로 호평을 받아 1988년 위트브레드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2년 서울등 중부지방에 지진
1981년 중국 신강 위구르자치구의 한 유적지에서 6470년전으로 추정되는 소녀의 시신 발견
1979년 정부, 이란회교공화국 승인을 발표
1979년 이란 좌익과격파, 테헤란 미대사관 습격
1979년 내무부, 인구3만 이상의 48개읍을 준시로 개편한다고 발표
1979년 문교부, 81년부터 고교입시에 연합고사 폐지, 내신제 적용키로
1979년 정부, 3년 만에 최저임금제 폐지
1972년 미국 저널리스트 에드거 파크스 스노 사망
1969년 중앙정보부, 위장귀순간첩 이수근의 체포를 발표
1967년 틀라텔롤코 조약(군사적 목적의 핵무기 실험과 보유를 금지시켜 남미 핵자유지대 설치) 조인
1966년 공무원 거액 수뢰에 최고 사형을 규정한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안` 국회 통과
1963년 인도, 로잔결정에 항의, IOC에서 탈퇴
1963년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 조지워싱턴호 출항
1963년 재건호 열차 탈선
1963년 영국 노동당수에 윌슨 피선
1958년 이라크, 요르단과 아랍연방 결성
1957년 농업은행법 협동조합법 공포
1952년 제6회 동계올림픽 개막(노르웨이 오슬로)
1950년 중국-소련, 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 조인
중국의 모택동과 소련의 스탈린이 1950년 2월 14일, 두달동안의 협상 끝에 `중소우호동맹상호원조조약`을 모스크바에서 체결했다. 이로써 2차대전이 끝나기 전 소련이 중국의 국민당 정부와 체결한 舊조약은 파기되고, 새로운 우호동맹조약이 체결됐다.
조약1조에 명시된 "일본 혹은 일본과 연결된 외국에 의해 중국이나 소련 어느 한쪽이 침략을 받을 경우 서로 전력을 다해 원조한다"는 내용은 전적으로 미국을 의식한 내용이었다.
전문 6개조로 구성된 조약은 이외에 양국간의 영토문제, 경제원조 등을 담고 있다. 비밀조항으로 수십만의 중국 근로자를 소련에 파견하고 중국군대나 경찰, 공산당 내에 소련 고문관을 임용한다는 내용을 약속하기도 했다. 협상이 2개월동안이나 계속되자 한동안 모택동이 모스크바에 인질로 잡혀있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1948년 공창(公娼)폐지령 발효
합법적인 매매춘을 가능하게 했던 공창(公娼) 제도가 1948년 2월 14일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매춘업을 국가에서 인정한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이며 여성을 성의 노예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여론때문이었다.
언론은 '여권 수호의 서곡', '추한 왜정 잔재 해소'라며 반겼지만 한편으로는 사창 밀매음 성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미군정청은 공창이 사창화 하는 것을 막기 위해 2년의 징역형이나 5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지만 미군이 있는 곳에는 기지촌이 형성됐고 전국 곳곳에 매매춘이 버젓이 성행했다.
진고개, 회현동 등 일본인 거류지역에 유곽 형태가 갖춰진 것은 1883년부터였는데 조선인들은 이 유곽을 '좃또집'이라고 불렀다. '좃또'는 일본말로 '잠깐'이라는 뜻이다. 이후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 했을 때 서울 중구 쌍림동 일대에 '신마치'라는 유곽이 첫 공창 허가를 받아 영업을 시작했다. 공창제가 법의 보호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16년 3월, 일제 경무총감부령 제4호 '유곽업 창기 취체규칙'이 제정되고부터였다. 이때부터 매춘이 합법화되고 창기들에게는 세금이 부과됐다.
한일합방 후에도 유곽은 빠른 속도로 확산됐으며 일본은 1941년 '접대부'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을지로의 묵정동, 다동, 인사동에까지 확대되어간 일제의 공창제는 일본 정치인들이 지금도 종군위안부가 공창제의 하나라고 망발하기도 해서 우리에게 치욕스런 과거를 남겨 주었다.
매매춘과의 싸움은 이후에도 계속돼 1960년 매춘금지의 법제화를 규약한 케임브리지 국제회의가 조인되고 1961년 정부가 여론에 떠밀려 '윤락행위방지법'을 만들어 8년뒤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후 2004년 정부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성매매 특별법)'을 만들어 단속을 더욱 강화하며 6,000년 역사의 매매춘과 싸우고 있다.
1946년 민주의원 개회
1946년 미군정 최고자문기관인 남조선국민대표민주의원 발족
1946년 2월 14일 10시 미군정청에서 `남조선 대한민국대표 민주의원`(민주의원) 개원식이 거행됐다.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은 참석했지만 미군정이 그토록 공을 들였던 여운형은 불참했다. `민주의원`의 대표성 확보를 위해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여운형을 참여시키려 했던 미군정으로서는 당혹스런 일이었다. 여운형은 미군정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결성된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 의장에 취임했다.
개원식이 시작되자 내정된 이승만이 첫 연설을 했다. 이승만은 연설에서 "본 의원은 금후 하지 중장 및 미군정과의 협의에서 한국민을 대표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어 부의장 김규식이 의원 28명의 서명이 담긴 민주의원 선언문을 낭독하고 이를 하지중장에게 전달했다.
`민주의원`은 반탁운동의 회오리속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했던 우익측이 1월 23일 김구의 임정과 이승만이 힘을 합치면서 한국인 과도정부의 모체로서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하기로 합의하면서부터 결성의 급물살을 탔다. 2월 1일 열린 비상국민회의 결성식에서 과도정권 수립을 위해 최고정무위원회를 두기로 결의했다. 최고정무위원 28명은 다시 `민주의원`으로 명칭을 바꿔 이날 개원했다.
1935년 미국, 린드버그의 아들 유괴범 재판
1921년 치과의사시험규칙 공포
1910년 안중근 의사, 여순지방법원서 사형선고
안중근은 대한제국의 항일의병장이기도 하고 정치사상가이다.
1909년 안중근은 뜻을 같이하는 11인과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의병을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때 왼손 네째 손가락을 단지하여 경의를 다졌다. 이때부터 안중근의 수인이 등장하게 된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히로부미가 하얼빈역으로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 우덕순, 조도순, 우동하와 함께 하얼빈역에 도착하여 하얼빈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러시아제국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일본에 넘겨져 사형을 선고 받았다.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죽이고 사형을 선도 받았을때 어머니가 보내신 편지역시 감동입니다. 안중근 어머니의 편지입니다.
"네가 만약 늙은 머미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른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곳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른즉 딴 맘 먹지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의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편지가 이어미가 네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 수의를 비어 보내니 이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세상에 나오거라"
어머니의 마음이 읽혀지는듯 합니다.
1896년 미국, 하와이 합병조약 조인
1892년 프랑코 스페인 총통 출생
1882년 폴란드 피아니스트 프리드만 출생
1869년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토마스 윌슨 출생
1867년 일본 발명가 도요다 사키치 출생
1864년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 출생
1859년 오리건, 미국 33번째 주로 편입
1819년 미국 발명가 숄스 출생
1793년 영국 발명가 거니 출생
1779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하와이 원주민에 피살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1779년 2월 14일 하와이에서 원주민의 돌창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51세였다. 그는 2년전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하와이를 발견했었다. 27세에 해군에 입대해 피살된 이날까지 그는 군인으로 그리고 탐험가로 일생을 보냈다.
본명인 제임스 쿡으로보다 캡틴 쿡으로 더 잘알려진 그의 주요 탐험지는 태평양이었다. 알래스카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의 바다 구석구석에는 그의 흔적이 깊게 배어있다. 뉴질랜드 북섬과 남섬 사이에 있는 쿡 해협과 남태평양의 뉴질랜드 자치령 쿡 제도, 알래스카 남부의 쿡만이 모두 그의 이름을 딴 지명들이다.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로 구성된 현재의 태평양 지도와 지리적 명칭들 대부분은 쿡과 그의 탐험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탐험지에 대한 인류학적-민족학적 조사와 동식물의 분포 연구로 영국 왕립학술원의 정회원이 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1763년 프랑스 장군 모로 출생
1697 대마도, 대마도인의 울릉도 왕래 금지
1054(고려 문종 8) 부석사 원융국사비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