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준 목사님의 아가서 강의 (2부)
<아가서> 삼행시를 한번 지어보았습니다.
아 : 아 하나님의 은혜로, 가 : 가련한 인생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서 : 서먹서먹한 내 마음에 채워주셨도다. 아멘 할렐루야!
제5강 신랑의 찾음과 만남 (3장)
3:1-5 술라미 여자는 그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아서 만난 사실이 3장에 기록되어 있다. 아가서에서 솔로몬은 예수님을, 또 교회를 상징한다. 술라미 여자가 만나는 것이 3번 기록되어 있다(1장과 3장과 5장이다). 1장은 기다려서 만나고, 3장은 찾아서 만나고, 5장은 영접해서 만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만나는 그 때는 1장은 오정에 3장은 밤(고통과 근심의 때)에 5장은 새벽의 때이다.
1. 만나기까지
1) 때는 밤이다. 밤은 고난, 시험, 역경, 고적, 도한 뇌쇠 등으로 상징한다. 그리고 신앙의 암흑기, 수면기, 시련기 등으로 상징된다.
2) 침상에서 – 이것은 게으른 방법으로 자기를 격려함이 없이 찾는 행위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열심은 내지 않고 힘도 써지 않음이다. 스스로 자제하고, 애타하지 않고 찾을 마음도 열성도 없는 상태를 말함이다.
3) 거리에서 – 사람이 많이 왕래하고,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써, 다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나, 집회장소에 다니는 것을 말한다.
** 마음이 집중이 되지 않고 분주함이 있는 거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4) 행순자에게 물어보았다.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개정, 3:3)“
영혼의 지도를 위해서 부탁받은 자이며, 이 부탁은 성부에게서 받은 것이다. 이들은 성을 지키기 위해서 깨어 있는 자이며, 성문에서 출입하는 자를 살피는 자들이며, 물을 때 대답하기 위해서 준비된 자를 뜻한다. 이들은 때를 알아서 성문을 열 때와 닫을 때를 안다. 또 방법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밤에 거리를 두루 살펴 치안에 신경을 쓰는 자들인 것이다.
5) 물어본 후에 곧 만났다. (3:3)
술라미 여자는 행순자에게 물어본 조금 후에 곧 사랑하는 자를 만나게 되었다. 여기 행순자는 이 찾는 자에게 무엇이라 대답했을까? 그것은 조금 후에 만난 것으로 보아 그 행순자의 대답은 ① 조금만 더 힘쓰라. ② 조금만 더 기다리라. ③ 조금만 더 나아가자.
이 술라미 여자는 사랑하는 자를 찾았고 곧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신앙은 찾은 것으로 시작해서 만남으로 기쁨의 체험을 하게 된다. 이것은 주님의 약속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사랑하는 자를 만난 사람과 그 때와 만난 장소가 명시됨을 볼 수 있다.
① 아브라함은 오정에 상수리 나무아래서 ② 야곱은 밤에 브엘세바에서 ③ 사무엘은 밤에 재단 사이에서 ④ 다윗은 오정 때 궁정에서 ⑤ 이사야는 밤에 성전에서 ⑥ 베드로는 새벽에 디베랴 바닷가에서 ⑦ 마리아는 새벽에 무덤 앞에서 ⑧ 사마리아 여인은 오정에 우물가에서 ⑨ 바울은 오정에 다메섹 도상에서 ⑩ 베드로는 오정에 지붕에서 주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입었다.
** 우리는 은혜 받을 곳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 은혜는 ① 받을 곳을 떠나지 말고 ② 받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③ 받을 때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2. 만난 후에
1) 붙잡고, 놓지 않아야 한다. (3:4)
받은 은혜와 축복을 붙잡아야 한다. 결코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빌라델리비아 교회를 향하여 계 3:11 ”... 내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하셨다. ** 아사왕은 받은 것을 놓쳤다. 아사왕이 놓친 까닭은 ① 의지하지 않고 ② 듣지 않아 ③ 구하지 않았다.
2) ”...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4절)“
술라미 여인은 사랑하는 자를 자신이 태어난 방으로 모시었다. 이것은 거듭난 심령에다 모심을 뜻한다. 마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자진이 예비한 곳으로 모시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기도하던 곳으로 모시었다.
3. 술라미 여자가 본 것 (6-11)
1) 연기 기둥 같은 것을 보았다. -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의 표로서 그리스도(Christ)를 모신 자는 이것이 보인다.
** 구름, 불기둥을 보임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이다.
2) 광야에서 오는 솔로몬의 연 –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를 위하여 예비하신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견고한 은총의 연이다.
※↣ ”광야“는 거친 세상의 모형이다. ** ”연“은 일종의 가마와 같다.
** 연을 타신 분 - ① 엘리야는 회리바람의 연을 타고 하늘로 가셨다. ② 에녹은 능력의 연으로 승천하신 것이다. ③ 예수님은 영광의 구름의 연을 타고 승천하셨다.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① 영광의 몸이 되시고 ② 영광의 구름을 타시고 ③ 영광의 곳으로 올라가서 – 승귀 ④ 영광의 자리 앉아서 – 중보직 ⑤ 영광 중에 나타나심 – 재림하신다.
3) 호위하는 60인 – 그리스도(Christ)의 신부가 타고 오기 위하여 솔로몬이 직접 만들어 보면 이 연은 천사가 호위하고 행순자가 호위하는데 이들은 밤중에 두려움을 인하여 허리에 환도(環刀-군복에 갖추어 차던 군도)를 차고 있다. 이 환도는 좌우의 말씀의 검이다. 한쪽은 공격, 한쪽은 보호함이다.
** 세상의 십자가는 천국의 면류관이다.
제6강 신부의 7가지 덕 4:1-5
신랑을 찾아 만난 신부에게 대하여 이제는 신랑이 신부에 대한 칭찬한 것이 기록되었다. 칭찬은 7가지 신자의 덕이다.
① 아름다운 것 – 외적미(행위) ② 어여쁘다. - 내적미 ③ 흠이 없다.(질적미) ** 이것은 그리스도(Christ)를 본받아 가는 신자의 생활이며 그리스도(Christ)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이것을 주께로 말미암은 것이고, 주님이 함께 할 때에 현상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1. 비둘기 같은 눈이다. (1절)
이것은 눈에서 나타나는 신자의 온유하고 순결의 덕을 나타난다. 사람의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고 눈은 양심의 반영기다. 고로 정결한 양심의 소유자는 눈이 비둘기의 눈과 같이 맑은 것이다. 이 비둘기의 눈 곧 신자의 눈은 모세와 같이 멀리 볼 수 있다(신 34:4). 진리를 볼 수 있다(마 13:16),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마 5:8).
2. “... 네 머리털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세 떼 같구나(1절)”
여기 “머리털”은 신자의 섬세한 순종의 덕이다. 길르앗은 양치기에 좋은 곳이다. 여기에서 기른 양은 털이 긴 것이 특징이다.
3. “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
“이”는 진리를 소유하려는 노력과 깨닫는 힘과 묵상하는 덕이다. 사람의 건강은 치아에 나타나고, 치아에서 보장됨과 같이 영의 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노력과 반복과 묵상에 얻어지는 것이다. “이”는 ① 노력 – 시간과 정신을 다해 ② 반복 –새김질 ③ 묵상함을 의지한다.
4.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3절)”
복음을 말하고 속죄를 간증하며 영혼은 격려한 언어의 덕이다. 낙심, 불평의 지도자가 되지 말라. “붉은 것”은 속죄, 언약의 뜻이다.
5. “네 빰은 석류한 쪽 같구나(3절)” - 이는 겸손과 사양의 덕을 가리킨다.
6. “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4절)”
선에 대한 굳은 의지를 말하고 있다. ** 악에 대한 굳은 의지는 고집 교만이 되고 선에 대한 굳은 의지는 하나님 앞에 덕이다.
7.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5절)”
이것은 남을 도와주는 언행의 덕을 가르침이다. ** 사람은 불완전하다. 하나님은 완전하다. 신자는 사람을 볼 때 내려간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라볼 때 올라가게 된다. 바울은 신자의 교회의 생활에 12가지 덕을 말한다(롬 12:10-13). 베드로는 7가지 덕을 논하였다(벧후 1:5-7). 이것이 믿음으로 살고 사랑으로 형제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 사랑은 형제안으로 들어가고(봉사함) 신앙은 주 안에 들어간다(은혜 받음).
제7강 신랑과 함께 하는 신부 4:6-16
2장에서는 신랑이 신부에게 비가 거치고 겨울이 지났으니 일어나서 나와 함게 가자 하였다. 4장에서 “나와 함께 하자”고 권면하고 있다. 신자의 축복됨이 삶은 주와 함께 삶이다. 이것이 곧 희락과 안전과 축복과 향상의 비결이 된다.
1. “내가 몰약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5절)” 하였다.
“날이 기울고(5절)”는 인생 생애의 날이 기울고 세상 사물과 함께 날이 기울 때, 주와 함께 몰약산으로 가야 한다. 몰약산은 기도의 산이고 유향산은 희생의 산이다. 몰약, 유향은 향품이다. 기도하는 성도, 희생이 있는 곳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다. 이 산은 주님이 가시는 곳이고, 가시는 때는 때가 기울고 그림자가 질 때에 가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아침에는 성전으로 저녁에는 감람산으로 기셨고 낮에는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밤에는 산으로 올라가셨다. 우리 주님은 아침에는 성전으로, 저녁에는 감람산으로 가셨고, 낮에는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밤에는 산으로 올라가셨다.
** 제자들은 것세마네 동산에 함께 가기는 하였으나 함께 하지는 못하였다. 제자들은 두 가지 못하였는데 타인의 희생적 생활에는 칭찬하면서 자기의 희생 앞에서는 발뺌을 하고 있다. ** 겟세마네에서 주와 함께 하는 것, 갈보리에서 함께 하자는 것이다.
2. 레바논에서 (4:8)
레바논, 헤르몬은 팔레스틴 북쪽 부분이다. 레바논에는 백향목이 많고 헬몬산은 높은 곳이 특징이고 , 아마나는 레바논의 일부이고, 스닐은 헬몬산의 별명이다. 여기에 예수님과 함께 올라가서 바라보는 과정은 꺽어야 하는데 바라보는 두 가지 면이 있다.
⑴ 아래로 바라보았다. - 세상 영광이 일시적인 것과 이 세상의 보화와 헛됨과 이 세상의 쾌락을 거짓됨을 보게 된다. 이것은 영혼의 유익이 없다.
⑵ 위로 보게 될 때는 무엇을 보게 되는가?
보좌에 앉으신 주님이 보이고, 하늘의 상급이 보인다(빌 4:10). 하늘의 것이 중하고, 영원한 것을 알게 된다(롬 8:18). 고후 4:15. 예수님은 이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 올라가셨던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높은 곳에 가셔도 이래것만 보여준다(예수님의 시험 때). 주님은 그것을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3. 사자와 표범에 있는 곳에 함께 하자. (3:8)
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내려보고 바라는 볼 수 있으나 내 영혼은 놀라게 하는 사자와 두렵게 하는 표범이 있다. 그러나 신랑이 함께 하기 때문에 이것이 신부가 해(害)나 상(傷)하게 할 수 없다(사드락 메삭 아벧느고).
4. 잠근 동산 봉한 샘 (4:12)
여기에서 신랑되신 주님은 신부되신 교회는 칭찬한다. 그 칭찬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칭찬하셨으며 또한 잠근 동산과 같고, 봉한 샘과 같다고 하신다. ⑴ 잠근 동산은 신자의 성결된 마음이다. 잠겼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 올 수 없고 오직 주인되신 신랑만이 들어와서 신부와 함께 거닐게 된다. 그 이유는 동산의 열쇠는 신부가 이미 신랑에게 위임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신자에게 의지의 선택권리는 주님의 뜻에 일임하였다.
** <루터> 내 마음의 문은 문폐가 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문폐를 바꾸었다. 이제는 내 마음데로 할 수 없다. 주인이 예수님이니까 예수님외 다른 것 사랑하는 것은 간부(姦夫)이다.
⑵ 봉한 샘이다. - 신자의 경건한 입술이다. 봉한 샘이기 때문에 아무 길으거나 마실 수 없다. 오직 사랑하시는 자만 와서 열고 마시게 된다. 이와같이 신자의 경건한 입술은 주로 찬미하고 감사하며 진리를 말하고 복음을 전하며 형제를 권면하고 선한 말로 형제에게 덕을 세움 때문에 열리는 것이다.
** 이사야는 성전에서 그 입술이 봉해졌다. 봉하기 전에 화(禍)로다. ** 에스겔은 힛데갈 강에서 입술이 봉해졌고 혀를 입천장에 묶어 두었다.
** 아론은 입술을 잠거지 못했다.(백성이 우상을 만들어달라는 말에 ...)
**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혹은 성령의 불로 신앙의 특별한 은총으로 봉해져야 한다.
※↣ 먼저 동산을 잠겨라(1차). 후에 동산안에 있는 샘을 잠겨라(2차). ** 열쇠-의지이다. ** 느헤미야 – 자물쇠 잠겼다. 에덴동산–하나님이 잠겼다.
5. 향기나는 동산 4:13-15
동산은 높지 않고, 평지도 아니면서 꽃나무들 많고, 샘들도 있고, 나무들이 있는 곳이다. 교회와 가정 그리고 마음은 동산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동산의 문을 예수님에게는 열어야 한다. 그리고 세속과 죄악에 대해서 닫고 잠겨야 한다. 잠겨지지 않으면 세속과 온갖 죄악들이 들어온다. ** 잠겨지 않으면 모압 처녀들이 찾아와 이스라엘의 청년들을 유혹할 때, 문을 잠겨지 않은 결과 엄청난 파장을 겪게 되었다.
** 울타리는 율법이다. 동산 곳곳에 망대는 세우라. 시편에 망대를 계수하라고 했다. 망대는 파수와 기도의 곳을 의미한다.
이 동산에는 향기가 난다. 향기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 온갖 향기를 토하는 식물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13-15절에 갖추어진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① 여러 가지 수목 ② 각종 화목(花木) ③ 샘이 솟이 난다. ④ 식물을 풍성케 하는 “샘과 생수의 우물”이 있다. ⑤ 레바논으로부터 흐르는 시내도 있다. 레바논의 시내물은 골짜기가 깊은데서 흐르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시냇물이다.
** 우리의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렘 2:13)”께서 살아야 한다. 목회와 삶도, 그리고 기도와 감사뿐만 아니라 봉사도 그러해야 한다.
6, 동산에 대한 노래 4:16
구비할 것을 다 갖추어진 동산이 되면 노래가 나온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노래가 나오고 자신감이 넘쳐나게 된다.
1) 방위(方位)를 생각하자. 동산은 동쪽에 있다. 동(東)은 하나님 임재의 방위이다.
회막의 정문은 언제나 동편에 두어야 한다(민 3:38). 남(南)쪽은 은혜와 구원의 방위이다. 북은 징계를 말한다. 하나님의 동산에 남풍이 불어오면 새로워지고, 풍성하게 되고 늘 더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동산에 북풍이 불어온다는 것이다. 북풍은 시련과 역경 그리고 곤란과 어려움의 환경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다루시는 방법이기도 하다. 북풍이 불 때 우리 신자는 참음과 인내의 향기, 기도의 향기, 또한 사랑하는 생각하는 믿음의 향기를 날리어야 한다.
그리하면 때가 되면 북풍이 변하여 남풍이 불어오는 변화와 전환의 반드시 때가 온다. 남풍이 분다는 것은 위로와 평안, 감사와 축복이 찾아옴이다.
** 북풍이 불어온다는 것은 남풍의 앞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북풍은 은혜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다.
** 북풍이 불 때 어떤 이의 기도 “주님, 내가 주님을 붙잡으면 놓칠 경우가 있나이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불잡아 주옵소서” <1976. 7.8 강의 끝>
제8강 찾아오신 예수님 5:1-8
3장에서는 술라미 여자가 침상에서 신랑되신 예수를 사모하였고, 그 사모하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을 때 일어나 거리로 나가고 행순자에게 물어보게 되고, 그 결과 찾아서 붙잡고 자기의 처소를 모시는 광경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5장에서는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술라미 여자를 친히 먼저 방문하신 것이다. 그대에 그 술라미 여자는 문을 속히 열지 않아 결국 주님이 물려가게 하신 것이다. 이로 인하여 술라미 여자는 마음이 안타깝고 괴로워서 사모하며 찾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기사에 대하여 두 가지 해석상에 바로 견해가 있으니 1 설은 이사실을 꿈으로 보고 해석한다. 2 설은 이 사실을 실제로 보는 견해이다. 1 설은 2 설이 타당하여 신자의 영적 신앙상태로 실제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이 술라미여인에게 함께 가자할 때 – 가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3장과 5장 사이 헤여졌다.
몰약산과 침향산(유황의 작은 산-무서워가지 않았다.) = 힘들어 가지 않았다.
** 신앙은 생활이다. 또한 생활속에 계속해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가자고 할 때 – 자기 것 희생해야 한다. 그래야 함께 갈 수가 있다.
※↣ 교역자여 대접받는 것은 배움보다 먼저 희생을 배우자.
1. 동산에서 거두시는 예수님
1) 몰약산과 향재료를 거두시는 예수님 (5:1)
이것은 기도와 감사와 희생의 덕이 향으로써 모두 주님이 받으실 주님을 위한 것이고, 주님이 소유할 것이다.
2) 먹고 마시다. (5:1) - 주님은 꿀과 꿀송이를 친구들과 사랑하는 자들과 나누었다. 자기 동산에 들어와서 먹고 많이 먹으라고 한다. 주님의 동산을 뜻하는 교회에는 꿀송이 같은 감미하고 영양 있고, 향기로운 말씀과 포도주같은 기쁨과 젖과 같은 양식이 주님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도록 언제나 얼마든지 갖추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권하여야 한다. “... 나의 친구들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2. 찾아오신 신랑 예수님 (5:2-6)
1) 찾아오신다. - 새벽
2) 술라미 여자의 상태 – 마음은 깨어(2절) 있었다. 이렇게 말하지만 실상은 자고 있다.
** 자는 자 ① 노아는 취하여 자고 ② 삼손은 여자의 무릎에 자고 ③ 다윗은 게으른 잠(저녁 무렵까지) ④ 엘리야 – 낙심의 잠 ⑤ 요나 – 무책임의 잠 ⑥ 베드로 – 근심의 잠 ⑦ 술라미 여자의 잠 – 평안(안위)의 잠
3) 술라미 여자의 잠을 자면서 – ⑴ 문을 닫아놓았다. 여기 문은 기회의 문, 의문의 문, 은혜의 문을 닫아 두었다.
⑵ 발을 씻고(-3절 내가 발을 씻었으니) – 이제는 활동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쉬기 위하여 발을 빼고 씻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활동을 정지하고 발을 들여놓지 아니하려 하였다.
⑶ 옷을 벗음(3절 내가 옷을 벗었으니) - ① 은사의 옷을 벗음이다. ** 사명도 은사다. 황금에봇 – 은사다. ② 경성의 옷을 벗었다. ③ 열심의 옷을 벗고 있다. ** 속옷은 열심이고, 곁옷은 경성이다.
3. 주님이 찾아오셔서 하시는 말씀
1) 부르시고 문을 두드리심 – 톤(tone)은 높지는 않으나 간절하게 부르심, 크지는 않지만 반복해서 두드리심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① 귀를 기울이라 ② 뜻을 모우라. ** 갈보리 언덕은 조용했다 ....
2) 신부에게 대한 대명사 – 첫째는 “나의 누이(5:2)”라고 부르심 –
나의 누이라고 부르신 이유는 3가지 ①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혈육을 받으신 까닭이요 ②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대신 계약관계 때문이다. ** 그 계약관계란 양자로의 체결이다. 우리가 아버지의 양자가 됨으로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가 있게 되었다. 이를 성령이 증거하신다(롬 8:16). ③ 신자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둘째는 “나의 비둘기(5:2)” - 신자의 유순하고 순결한 성품을 두고 부르는 호칭이다.
셋째는 “나의 사랑(5:2)” - 예수님의 속죄를 받은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3가지 표가 따라온다. ① 선택받은 표 ② 속죄받은 표 ③ 거듭난 표이다(거듭남은 성령의 내적 은사로 거듭남이다). 이 3가지는 사랑의 증거의 표인 것이다.
※↣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실생활의 6가지가 있다.
⑴ 인내함이다. - 의지의 관계 ⑵ 겸손함이다 – 인격의 관계 ⑶ 순종함이다 – 성품의 관계 ⑷ 온유함이다 – 감정에의 관계 ⑸ 절제이다 – 행위의 관계 ⑹ 질서이다. - 행위의 관계이다. ** 아름다운 여인에게는 절제와 질서 곧 이러한 규모(規模)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돼지의 코에 코고리와 같다.
넷째는 “나의 완전한 자야(5:2)” - 이것은 성결과 영화론 약속을 전제로 해서 한 대명사이다.
3) 주님께 하시는 말씀
⑴ “문을 열어다고(5:2)” - 문은 닫혀 있고, 잠겨있다.
닫아둠은 무엇인가? ① 처음 사랑을 잃음이다(잃은 사람은 오메가 은혜를 기대할 수 없다.) ** 처음 은혜를 받은 것은 알파의 은혜다.
② 자긍함 때문이다. - 이는 스스로 자랑인데 이러한 자는 예수님도 말씀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회개가 없다.
③ 세상 향락에 빠질 때이다. - 이를 추구하는 이는 예수님을 추구하지 않는다.
④ 이름만 있는 생활이다. - 외식생활, 껍데기 생활이다.
** 신랑없는 신부는 과부이다.
⑵ 문을 여는 것은 무엇인가? ① 회개이다. ② 순종하는 것이다. ③ 영접하는 것이다. 삭개오는 내려와서 영접했다. 마르다는 나가서 영접했다. 다섯처녀는 등불을 가지고 나아가서 영접하였다. ** 문을 닫아둔다는 것은 괭장히 어리석은 자이다. ** 죄중에 큰 죄는 남편을 내어쫓는 죄이다.
이 말씀과 본문의 내용을 계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와 비교할 수 있다. ** 종으로서 주인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를 3가지를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주인은 밖에 있고 종은 안에 있다. ② 주인은 청하고 종은 들어주지 않았다. ③ 주인은 서고 종은 앉아 있다. ** 나는 어떤 종인가?
⑶ 나의 머리는 이슬에 있고 -
이 때가 새벽임을 뜻한다. 주님은 신부가 문열어 주실때까지 오래 기다리셨다. 예수님은 머리에 이슬이 방울이 맺힐 때까지 밖에 문 두드리며, 문틈에 손을 내미시며 부르시기까지 하신 것이다. 그런데 신부는 무엇을 하였는가? 그 태도가 자신이 주님을 따름이 아니라, 주님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자세의 모습이다. ** 잘못되어 한창 잘못된 양상이다.
4) 속히 일어날 수 없는 두 가지 일
⑴ “옷을 벗으니(5:3)” - 벗으니 부끄럽고 입을려니 괴롭기 때문에 속이 일어날 수 없다.
⑵ “내가 발을 씻었으니(5:3) - 하든 일의 행위가 모두 정지되어 있는 상태이어서 다시 하기가 괴롭고 힘들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 두 가지는 거리끼는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악이다. 방심과 안일에, 무관심과 핑계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그라나 기회는 기다리지 않는다.
5) 변명(핑계)하는 자에게 대한 주님의 반응 -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5:4)“ - 이는 사랑으로 강권하시는 주님의 행동이다.
** 술라미 여인에게 다행인 것은 손을 내밀 수 있는 문틈이 있었다는 것이다.
6) 사랑하는 주님의 적극적인 구애에 대한 신부의 반응
⑴ ”내 마음이 움직이서(5:4)“ - 성령의 감동을 받음이다. ** 마음이 동할때에 행동한다.
** 마음이 감동되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고, 문을 열지 않을 수 없다.
⑵ 일어나 문을 여는 행동을 한 것이다. “일어나 ... 문을 열 때(5:5)”
그때에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5:5)” 하였다. ** 오늘 우리 손은 은혜 받는 손이어야 한다. ① 악수할 때 – 형제와 화목하고, ② 붙들어줄 때 – 위로와 격려로 성원함이다. ③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응답받게 된다.
** “몰약의 즙”의 의미는 ① 뉘우침으로 흐르는 눈물이다. ② 감동을 받아 터져 나오는 기도와 감사인 것이다.
⑶ 문을 여는 때가 너무 늦었다.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5:6)” -
⑷ 신부 술라미 여인은 슬픈 탄식의 고백을 하게되었다. “그는 벌써 물러갔네(5:6)” ** 이는 영적 공황기에 빠져드는 일이다.
주님이 물러가게 된 일은 영적 실제다. 이를 회복하는 일은 ① 7배나 힘이 드는 일이다. ② 적당주의는 영적 침체가 오래될 수밖에 없다.
7) 다시 신랑이신 주님을 찾으러 나선 신부(술라미 여인)
찾아오신 주님은 속히 영접치 않고 게으르게 기회를 놓친 자는 마침내 애가 타서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어 지경이다.
① 찾음은 행동이다. ② 부름은 기도행위이다. ③ 행순자에 의해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5:7)”는 양심의 심한 가책이다. ④ “병이 낫다(8절)” - 심한 근심에 빠지게 됨을 의미한다(고후 7:9).
4. 사모하는 이유 5:9-16
1) 예루살렘 여자들의 질문 – 술라미 여자는 주님을 찾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여 심히 고통스런 나머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때에 예루살렘의 여자들은 술라미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기에 네가 그와 같이 애타하고 사모하는 가라고 질문한다. 이는 은혜의 처녀에서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의 물음인 것이다.
2) 술라미 여인이 증거한 사랑할 자
우리도 예수님께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에 대해 알고 체험함이 깊고 많아야 한다.
⑴ 희고도 붉다. - 예수님의 이성과 신성을 가르침
⑵ 머리는 정금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 하늘의 영원한 영광스러운 영체의 상상도 설명도 체험한 자는 없다.
⑶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고 – 그가 소유하고 본질적 성품의 온유함과 겸손성
⑷ 뺨은 향기로운 꽃밭같고 – 주님의 평화로우시고 은혜로운 모습 시 45:2, 85:8
⑸ 입술은 백합화 같고 – 거룩하고 성결한 모습이며
⑹ 몰약즙이 뚝뚝 떨어짐 – 영생의 말씀을 상징 요 6:68
⑺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 주님의 손으로 베푸시는 긍휼의 손 계 1:19, 마 4:41 ** 문둥병자를 만져주심
⑻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듯하구나 – 여기 기록된 “몸”은 속을 가르치는데 주님의 품으신 겸손과 자비를 가리킨다. 빌1:8
⑼ 다리는 순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15절) - 속죄의 사명을 당당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상징한다. 그는 이 세상에 오실 때 속죄의 사명을 띠고 오셨고 수많은 능력을 나타내셨으며, 십자가로 속죄의 사역을 완수하신 것이다. 그는 부활하심으로 죄악을 정복하시고, 자신을 믿는 자의 죄악을 그 보혈로 씻게 하신다. 이렇게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분이시다.
⑽ 생김새는 레라논 같으며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15절) - 예수님의 사랑스럽고 엄위(아버지같은 엄위이시다)하심을 상징한다. ** 속죄를 받은 사람은 사랑스럽고, 속죄를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엄위하게 보이신다. ** 주님앞에서 회개하려면 먼저 그 엄위함을 보아야 한다.
⑾ 입은 심히 달콤하니(16절) - 이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감미로운 말씀을 가리킨다. 시 119:103
※↣ 위의 주님의 이 모든 것(모습)을 종합하여 보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랑스럽다(16절)”는 것이다.
제9강 동산에서 양을 먹이시는 예수님
예루살렘의 여자들(성도들)도 술라미 여인이 주님에 대한 열정적인 설명과 표현에 감명을 받고 이구동성으로 고백한다. “우리도 너와 함께 찾으리라”
** 신앙생활이란 무엇이냐? ① 찾는 것이다. ② 만나는 것이다. ③ 힘께 하는 것이다. ④ 드리는 것이다.
1.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여(1절) - 예루살렘 여자들의 인정함이다.
** 진정한 열심은 감동을 준다. 예루살렘 여자로 비유되는 이가 있다. 이들은 피상적(皮相的)인 교인들로써 은혜의 체험이 없는 형식적인 신자들이다. 이제는 술라미 여자의 열심있는 증거와 사랑하는 자에 대한 설명으로 은혜를 받는 이들은 술라미 여인을 ”지극한 표현으로 “여자들 가운데서 어여쁜 여자야”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의 증거는 ① 열심에 있어서 ② 예수님을 위함에 있어서 ③ 예수님을 증거함에 있어서 ④ 영적생활에 있어서 눈이 뜬 자라 할 수 있다.
2.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도 너와 같이 찾으리라(1절)”는 열심을 내심이다.
술라미 여자의 열심에 감복되어 같이 주님을 사모하고 찾으리라고 말한다.
** 예수님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열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된 모습이다.
3. 동산에 계시는 사랑하시는 이
1) 자기 동산에 내려가심 – 여기 동산은 주님의 동산이다. 교회는 양의 목자이다.
주님은 친히 내려가셔서 그 목장에서 그의 양을 먹이시는 것이다(자가의 양). ** 술라미 여자가 일어나서 문을 열어주기를 싫어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① 주님과 같이 밤이슬에 머리를 적시기 싫어함이었다. ② 주님과 같이 발을 씻고 걸어가기 싫어함이었다. ③ 본문과 같이 내려가는 주님과 같이 내려가지를 원치 않았가 때문이다. ** 내게 주님에 대해서 어떤 싫어함과 실증이 무엇인가를 바로 파악해야 한다.
2) 양을 먹이시는 목자 예수님 사 40:10
⑴ 그는 목자이시다. 어떤 목자이냐?
① 선한 목자 – 양의 사정을 잘 안다. ② 큰목자이시다. 히 13:20 ③ 양의 이름을 아는 목자, 요 10:4
④ 양을 앞서가는 목자, 요 10:4 ⑤ 영원하신 목자
⑵ 그는 양을 위하여 - 세도하다
① 먹이시고 ② 인도하시고 ③ 찾으시고 ④ 모우시고 ⑤ 품으시고 ⑥ 어깨에 메시고 ⑦ 쉬게 하는 목사이시다.
** 시편 126:2 하나님께서 “...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 주님은 대사(大事)를 행하셨는데, 우리의 행함은 소사(小事)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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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강의 내용은 1976년 6월 이후에 대구, 재건삼덕교회에서 박재준목사님께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제9강의 내용이 얼마 되지 않고,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너무 오래된 일이라 거의 기억이 없습니다. 이후는 기록한 노트도 없고 ....혹 이 후의 강의내용을 가진 분이 있는 분이 있으시면 보충해서 첨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기억에는 이 이후에는 재건서울노회 신학교가 부산에 소재한 제2재건문현교회로 옮겨서 특강형식으로, 위의 강의 내용을 재편집해서 강의를 한 것으로 압니다. 까닭은 대구에서 아가서로 인하여 큰 은혜가 더 하였다는 소문으로 인하여 부산에서 교인들이 그 소식을 듣고 아가서 강의를 듣고 싶다는 요청과 부탁으로 인하여 별도의 저녁 시간을 정하여, 특강을 개설해서 신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는 시간을 가지었습니다.
그때도 아가서의 열기가 상당하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