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언론인을 어떻게 도울까?
- 현황과 대책을 알아본다 -
潘永煥(전 서울신문 논설고문)
화려한 빛깔의 날갯짓으로 선망의 시선을 받으며 훨훨 날아다니던 나비가 어느날 갑자기 날개를 접고 풀섶에 내려앉았다. 힘차게 날개를 퍼덕일 공간도 없어졌고 화사한 꽃들의 손짓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애벌레 때처럼 땅에 엎드려 옛날 화려하게 날갯짓하며 노닐던 시절을 되돌아본다. 자유와 낭만을 즐기던 비상과 분망의 시절, 그리고 긍지와 자존이 넘치던 시절을 회상해보고 “아! 그리운 옛날이여”를 노래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날개를 접고 풀섶에 내려앉은 나비, 그 나비가 퇴직 언론인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퇴직 언론인이라고 하지만 그중에는 58세 혹은 60세로 정해진 정년을 다 마친 경우도 있고, 정년이 아직 한참 남아 있는데 요즘 유행처럼 돼 있는 이른바 ‘구조조정’에 떠밀려 ‘명예퇴직’ 또는 ‘조기퇴출’로 물러난 언론인도 적지 않다. 정년을 다 채우고 퇴직하는 이는 어느 분야에서건 행복한 사람들이다.
대학졸업 직후 공무원이 되어 30여년을 근속하다 몇년 전 퇴직한 친구는 “공직생활 30여년 동안 지뢰밭과 유탄 사이를 용케도 뚫고 나와 살아남았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무수한 지뢰밭과 불의의 유탄이 어찌 공직사회에만 한하는 것이겠는가? 언론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습기자 시절부터 정년에 이르기까지 숱한 우여곡절과 위기를 겪었으리라. 6, 70년대의 가난했던 기자시절, 70년대 독재정권에 언론이 능멸당하던 시절, 80년대 언론자유를 쟁취하던 민주화 항쟁 시절, 90년대 IMF 외환위기에 따른 언론사 구조조정 등 격변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침몰하지 않고 정년이란 천수를 누렸다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아직도 한창 일할 수 있는 50대 중반에 퇴직금 외에 얼마의 ‘명퇴 보상금’을 위로금으로 받고 물러난(사실은 쫓겨난) 언론인들은 구조조정의 희생자일 수밖에 없다. 한 부서 인원 10여명이 모두 퇴출당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이들은 이를 ‘대량학살’이라 명명하고 매달 그날 모임을 갖고 있다.
IMF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대량실업이 발생했지만 언론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능력있는 언론인이 “나이가 많다”는 억지 이유로 언론사를 떠나야 했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이후 2년동안 언론사의 몸집 줄이기로 인해 퇴출당한 언론인은 8,500명에 이른다. 실직의 쓰라림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80년 해직교수였던 내 친구는 수필에서 실직의 아픔을 이렇게 적고 있다.
"시간이 너무 많다. 주체할 수 없이 너무 많다. 놀이에 싫증이 난다. 놀기에도 싫증이 난다. 일과 일 사이에 노는 것이 노는 것이지, 놀기와 놀기 사이에 노는 것은 노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실직자에게 닥치는‘그날이 그날 같은’망막 일변도의 하루는 고문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으면 생활고에 직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퇴사 순간 고립무원의 벌판으로
퇴직 언론인은 다른 분야의 업종들, 가령 공무원이나 군인, 대학교수나 교사, 대기업이나 공기업 종사자들의 퇴사 후 처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예를 들어보자.
봉급의 80%까지 종신 지급되는 공무원 또는 군인연금이 언론인에겐 없다. 수억원씩 지급되는 묵직한 퇴직금도 없다. 일반적으로 평생 몸담아온 직장에서 떠날 때 나가는 사람에게 베푸는 특혜성 시혜가 있다. 전별의 부가가치라고나 할까? 그러나 언론계에는 그런 특혜가 없다.
공무원은 과장이나 국장쯤 하고 퇴직하면 산하단체 기관장 혹은 임원자리 하나쯤 내주는 것이 불문율로 돼있다. 그래서 모든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산하기관을 늘려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관행은 금융권도 마찬가지. 은행의 부장쯤 하다 나오면 계열사 또는 출자회사 임원으로 옮겨 앉는다. 교수에게는 돈은 안되지만 ‘명예교수’라는 타이틀이 부여돼 그야말로 명예만이라도 이어가게 한다.
또한 판·검사는 물러나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다. 요즘은 잘나가는 로펌에 들어가면 엄청난 고액 연봉을 받는다지 않는가? 한때 변호사는 개업 후 1년 이내에 평생 먹을 것을 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전관예우’라는 불변의 수칙이 있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검찰청 서기 출신은 법무사, 세무서 출신은 세무사, 관세청 출신은 관세사로 개업할 수 있는 프리미엄이 적용되고 있다. 재직시 전문성을 인정해 준다는 특혜성 배려다.
이에 비해 언론인들은 언론사를 떠나는 순간 고립무원의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쳐진다. 관계나 법조계의 미덕처럼 돼 있는 전관예우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 그렇다고 후배들로부터 각별히 선배대접을 받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술자리에서 원로 언론인 한 분이 이렇게 탄식한다.
“후배들의 존경은 고사하고 씹히지나 않으면 다행인걸.”
웃음 속 말이지만 어느 정도 진실이다. 대부분의 퇴직 언론인은 말한다.
“신문사를 나오면 다시는 뒤돌아보지 말라.”
퇴직 언론인의 몇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① A씨는 ㄱ신문사에서 34년간 근무하면서 임원까지 지내고 정년퇴직을 했다. 지금은 언론과는 아무 관련없는 IT분야 회사의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통신분야 중소기업체들의 협회인 이 회사의 관리를 맡고 있다. 연봉도 높고 3년 임기에 재임이 된 터라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② B씨는 ㄴ일보사 논설위원을 끝으로 정년퇴직했다. 그는 정부부처 산하기관의 원장으로 발탁돼 동분서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문화부장 출신인 그의 경력과 전문성과도 부합되는 자리다.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③ C씨는 정년을 4년이나 앞두고 조기퇴직한 언론인. 영문학 전공인 그는 미국유학 경력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주 12시간 영어를 강의한다. 타이틀은 요즘 유행하는 초빙교수. 주 12시간은 전임과 같은 시간이다. 사흘은 학교에 나가야 한다. 그리고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주 1회 경제신문의 사설도 쓰고 있다. 따라서 그는 현역시절 못지않게 바쁘게 지내고 있다. 역시 부러움의 대상.
④ D씨는 신문기자의 유일한 무기인 펜대 하나로 노후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월간지·주간지 등에 글을 쓰는 한편 대기업 사보와 단체의 회보 등에도 열심히 원고를 보낸다. 대기업 사보는 원고매수는 적지만 원고료가 후한 편이라 문필인들이 선호한다. 다년간 외신부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영어, 일본어 번역도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다. 월간지의 경우 보통 매수가 150매쯤 되니까 제법 목돈이 들어오지만 부정기적인 것이 흠이다.
⑤ E씨는 관철동 허름한 빌딩 4층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현역 때의 노하우를 살려 편집대행 일을 하고 있다. 계간지나 회지, 단행본의 편집을 맡아 해주면서 그럭저럭 지낸다. 수입은 신통치 않지만 일을 하면서 사무실에서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즐거움 때문에 보람을 느낀다.
⑥ F씨는 퇴직 후 큰 결단을 내려 음식점 주인이 됐다. “사회가 이렇게 냉정하고 비정한지 미처 몰랐다”는 게 그의 제일성. 사회부 출신인 그도 사회의 냉혹성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가. “철이 드니까 인생의 종점에 와 있더라”고.
놀고 있는 전직 언론인
대다수 퇴직 언론인은 경제활동에서 제외되고 있다. IMF 이후 구조조정의 한파 속에서 50대는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세대가 쓸쓸히 퇴장당하게 된 것이다. 30대 벤처 사장과 40대 CEO가 주름잡고 있는 현장에 포스트 50대는 용도폐기되고 만 것이다. 누군가가 퇴직한 50대를 일컬어 “전원이 빠진 가전제품”이라고 했다던가.
세대교체의 강풍 앞에서 5, 60대 퇴직 언론인이 발을 들여놓을 영역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우리 사회의 조로화 현상은 인구의 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이제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50대 중반에 퇴직한 사람은 우리나라 남자 평균수명인 72세(앞으로 더 늘어나겠지만)까지 17년을 남겨놓고 있다. 무엇을 하고 무슨 활동을 하면서 노경의 공간을 메운단 말인가?
평균수명이 연장되면 퇴직 후의 여백은 더욱 길어진다. 노후복지가 거의 없는 이 나라에서 또 전통적인 부모봉양의 미풍양속이 사라져버린 세태에서 직장인의 노후대책은 심각한 숙제일 수밖에 없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1998년 실시된 국민연금은 2007년에 가서야 20년을 온전히 채워 혜택을 받게 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퇴직한 언론인은 수혜등급이 아주 낮다. 97년 이후 퇴직자는 대체로 40만∼50만원의 연금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동료 퇴직 언론인을 만날 때마다 “저 사람은 아무런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하는 걱정을 하곤 한다. 프라이버시에 속한 일이라 섣불리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지만, 내 결론은 “그래도 용케들 견뎌나가고 있구나”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다.
퇴직 언론인의 재테크
특별히 부동산 투기나 재테크에 뛰어난 사람 말고는 퇴직 언론인은 퇴직금이 전 재산일 수밖에 없다. 30년 넘게 언론사에 근무한 언론인이 받게 되는 퇴직금은 중앙사의 경우 1억 5,000만∼3억원 정도다. 지방지는 훨씬 영세한 수준이지만. 중앙사의 평균 퇴직금을 2억원이라고 하자. 퇴직금 활용방안은 대부분 은행 정기예금이다. 그러나 최근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은행권의 예금이자는 4%대로 떨어졌다. 이제 우리나라도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2억원의 예금이자는 세금을 제하면 월 70만원 정도다.
금리가 좋았던 시절에는 은행예금이 생계비를 보전해 주었지만 요즘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새발의 피’가 돼버렸다. 제 2금융권나 회사채·펀드 등의 투자는 수익률은 다소 높지만 위험부담이 따르므로 기피하게 된다. 퇴직금 활용방안에 주식투자가 있다. 그러나 99년 이후 우리 증시는 빈사상태에 빠져 개인 투자가들을 울렸다. 말이 주식투자지, ‘피를 말리는 모험’이라고 한다. 그래도 99년에는 모처럼 증시 활황으로 퇴직자들이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언론사 동료 K씨는 퇴직금 1억 5,000만원을 몽땅 주식에 투자하고 지금은 전자거래로 데이 트레이딩을 할 정도로 주식 전문가로 변모해 있다. 그는 최근 두문불출,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다. 투자금을 자꾸만 까먹어서 이제는 절반도 남지 않았다고 한숨이다. 그가 원금을 되찾고 1억원쯤 벌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만 글쎄, 희망사항이 아닐지 모르겠다.
특별히 수입이 없는 퇴직 언론인은 한달 몇십만원의 국민연금이나 쥐꼬리만한 은행 이자수입으로 생활해 나간다. 더러 자녀들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는 사례가 있긴 하겠지만 ‘자녀들로부터 버림받은 첫번째 세대’인 우리 세대에서 그런 효도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직 언론인을 위한 지원대책
65세 이상 고령자 수가 335만명이나 되는 우리 현실에서 정부의 노인복지정책은 그야말로 보잘것없다. 퇴직언론인도 마찬가지. 현재 정부는 미디어 교육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한국미디어교육센터’(전 언론인 고용지원센터)를 설립, 예산지원을 하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주관하고 있는 이 사업은 99년 20억원, 2000년 20억원, 올해 10억원이 지원됐다.
미디어교육센터는 ▶ 실직 언론인에 대한 창업·재취업교육 및 프리랜서 양성 ▶ 미디어 교육강사 파견지원 ▶ 전문분야 집필지원 ▶ 언론인 구인 및 구직활동 등의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8,000여명에 이르는 퇴직 언론인을 방치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며 사회·정치적 여론과 경제적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미디어교육센터의 전제다. 미디어 교사는 서울을 비롯한 5개 도시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99년 756명, 2000년 1,363명을 현장에 파견했다. 재취업 교육사업은 99년 730명, 2000년 630명이 참가했다. 올해는 예산이 줄어 미디어 강사 파견사업만 시행하고 있는데 8월말 현재 570명이 강사로 파견됐다.
퇴직 언론인은 직장이 없고 수입도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직장을 마련해주고 현역시절처럼 활동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인가? 우리 사회에는 100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있고 335만명의 노인인구가 있으며 150만명의 생활보호 대상자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퇴직 언론인이 특별한 지원대책을 바란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론 종사자는 지식산업에 관련된 전문인 집단이라 그 함축을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확대 재생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점과, 다른 공직자에 비해 언론계는 퇴사 후 보장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원의 당위성을 도출할 수 있겠다.
이제부터 퇴직 언론인을 위한 지원방안을 알아보기로 한다.
1) 미디어 교사제 확대
전직 언론인에게 전문성에 걸맞는 일터를 제공해주고 있는 유일한 곳은 앞에 든 미디어지원센터의 미디어 강사 파견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인원이 미미해 수혜자가 500여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보다 많은 인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수혜대상을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지원예산도 대폭 늘려야 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림대 언론학부에서 전직 언론인들을 참여시킨 특수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주목받았다. 재직시절의 전문분야에 따라 20여개의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강좌를 설치했다. 이 프로그램은 대학과 매스커뮤니케이션 현장을 연결시켜 준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강사들은 체험을 바탕으로 미디어의 속성과 역할·기능에 접근해 들어갔다. 이 특별과정에 소요된 일체의 경비는 LG문화재단이 부담했다. 2시간 강의에 40만원의 후한 강사료를 지불했다. 대학의 언론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같은 특수강좌는 대학이 대기업과 제휴하여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면 좋을 것이다. 앞으로 퇴직 언론인 지원사업으로 적절한 모델이 되리라 생각된다.
현행 미디어교육센터의 재취업 교육은 인터넷 등 10여개 분야에 걸쳐 시행하고 있으나 직업알선 부분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예산이 부족하고 연결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업지원의 경우에도 직접적인 자금지원이 따르지 않으면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2) 저술활동 지원
언론인 저술 지원은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방일영 문화재단(조선일보), 삼성언론재단(중앙일보)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대상이 극히 제한돼 있으므로 전직 언론인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어렵다. 한국언론재단의 저술지원은 1999년 시행한 뒤로 예산부족으로 중단상태다.
언론인은 글을 쓰는 사람이고 전문분야가 다방면에 걸쳐 있기 때문에 저술을 통해 자기개발과 경제적 지원이라는 이중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언론인 문고’ 같은 것을 기획, 집필토록 하고 그 저작료를 집필자에게 귀속시켜 경제적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테마별로 전문성·시사성·문제성을 부각시켜 출판한다면 문고로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획은 한구언론재단이나 기업의 문화재단이 맡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3) 저술공간 지원
저술활동 지원에는 당연히 집필에 알맞은 환경을 갖춘 공간, 즉 집필실이 필요하다. 현재 그같은 공간으로는 헌국언론재단, 관훈클럽 신영기금회관(인사동), 삼성언론재단(남대문로) 집필실 등이 있지만 세 곳을 다 합쳐야 7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정도다.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서라면 50명 가량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서울에 10개쯤 개설하고 저술지원 대상자로 선정된 언론인에게 1년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4) 사적 연금제도 신설
2001년을 기점으로 30년간 근무한 대학교수는 월 240만~250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사립대 교원도 마찬가지. 같은 기간을 근속한 언론인은 현재 40만~50만원의 국민연금을 타는 게 고작이다.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언론인이 만기인 20년을 채운다 해도 공적 연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차가 생긴다. 연금의 제도적 차이 때문이다.
결국 공적 연금의 수준에 접근시키기 위해서는 사적 연금의 시행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국민연금을 보완할 ‘언론인 연금’ 같은 것을 만들어 실직 또는 퇴직 후의 생활에 대비해야 한다. 이같은 제도의 마련은 언론인을 고용하고 있는 언론사주들이 주체가 되어 일정비율의 분담금을 부담하고 수혜자 자신도 일정 비율을 부담해야 한다. 이런 일은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역할이 전제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에서는 직장인이 50이 넘으면 노후준비에 들어간다고 한다. 60세가 넘으면 놀며 지내도 1인당 월 750달러를 생계비로 지원해 주는데도 말이다. 보다 안락한 노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사회보장제가 없음에도 국민 대다수가 실직 혹은 노후에 대한 대비가 소홀하다. 자식들의 부양이라는 안전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안전판이 없어져버린 지금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노후대책의 무방비는 언론인에게 더욱 심하다. 그들은 꿈을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격조 있는 노후생활, 조금은 여유로운 황혼기를 맞이하기 위해 그런 일은 필요할 것이다.
반영환
-서울사대 국어과 졸업
-서울대 신문대학원 수료
-조선일보·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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