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의 별빛 아래서
차드 선교가 중요한 이유
크게 3가지 면에서 선교적으로 차드가 중요한 이유를 찾고 싶다.
1. 선교전략적인 면에서 차드선교는 중요하다.
한때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면서 북아프리카는 로마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배로는 유럽을 육로로는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곳이 북아프리카였다.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는 누룩처럼 번지며 로마가 지배한 모든 곳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점령했다. 마침내 313 년에는 로마제국 전체에 걸쳐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이 내렸다. 기독교는 392년에 테오 도시우스 황제의 명에 따라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기독교가 가장 아름답게 꽃피워졌던 곳 중 한 곳이 바로 북아프리카였다. 왜냐하면 사상적, 인격적으로 훌륭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북아프리카에서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우리에게 참회록으로 잘 알려진 어거스틴도 흑인이었다). 이렇듯 북아프리카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북아프리카는 더 이상 기독교를 유적에서나 찾아 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대부분 이슬람국가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 기독교가 번성하던 교회를 짓밟고 그 자리에 모슬렘 사원을 세웠다. 이제 그들은 사하라 사막을 지나 기독교 선교가 활발한 중남부 아프리카도 북아프리카처럼 만들고 싶어한다.
이제 사하라사막은 더 이상 회교도의 남하를 막아주는 지형적 장애물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미래가 차드의 방어에 달려있다. 차드는 선교적으로 모슬렘에게 반드시 확보 해야 할 교두보이다. 차드는 아프리카로 남쪽을 공격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다. 아프리카 전체를 북아프리카처럼, 중동처럼 만들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아프리카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의 중앙에 위치한 차드를 교두보로 삼아야만 한다.이는 반대로 기독교가 아프리카를 모슬렘의 공격으로부터 막아내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땅인 것이다.
이 땅을 잃어 버리면 더 이상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를 지켜내기 힘들 것이다.
기독교에게 차드는 최후 방어선이다.실제로 사우디 아라비아와 차드 내전의 뿌리와 같은 수단은 차드 정부에 끊임없이 모슬렘국가를 만들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또 정치적인 압력과 함께 물질적인 공세로 차드 모슬렘화를 위해 차드의 많은 차드의 모슬렘 단체들을 비공식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지금 차드에는 많은 모슬렘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제3호 -별책부 록 / 2009년 4월 7일
카메룬에서 상당 기간 사역하던 선교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차드는 팔씨름에서 이미 모슬렘에게 꺾인 나라 인데(개신교가 10퍼센트 정도인데 반해, 회교도는 거의 70퍼센트에 육박함을 두고 한 표현) 무엇 하러 차드에 가셨나요?” 우리가 여기를 포기하면 다음은 카메룬, 중앙 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그 다음은 아프리카 전체가 차례로 넘어갈 것이다. 위험하다고 국경지역 방어를 포기할 수 있는가? 힘들다고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사람은 없고 구멍은 점점 커져서, 손, 팔뚝으로 막다가 급기야 새벽에는 온몸으로 구멍을 막았다. 이제 한스 소년은 거의 탈진해 있었다. 그때 일하러 가는 한 아저씨가 이를 보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와서 제방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미국의 동화작가 마리 메이프스 도즈(mary mapes dodges)가 쓴 작품이다. 1953년 1월 31일 거대한 폭풍우가 몰려왔을 때 한 소년의 몸으로 그것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끝내 제방은 무너졌고 많은 사람(1835명)이 희생되고 살아난 사람도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네덜란드 사람들을 일깨웠다. 댐과 제방, 수문 등을 만들었다. 밀려오는 바닷물과 싸우기 시작했고 그 결과 국토의 6퍼센트나 되는 땅을 간척산업으로 일구어 12번째 플레보란도 (Flevoland)를 보란 듯이 만들어 냈다.결국 한 소년이 네덜란드를 바다의 공격으로부터 구해낸 것이다.
차드가 무너지면 아프리카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차드는 모슬렘이 남하하는 것을 막아내는 아프리카의 제방이다. 여기에 틈이 생겼다. 누가 한스가 될 것인가?
2. 선교지 필요에 교회가 응답해야 한다면 단연 먼저 교회가 반응해야 할 나라가 차드라고 생각한다. 잦은 내전과 생활의 불편 등으로 차드 선교사들이 지쳐있다(엊그제도 반군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수도로 들어오려고 멀리서 시도했으나 사전에 정보가 유출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정부군과 반군의 싸움으로 상당한 사람들이 또 죽고 부상당했다고 한다.). 이구동성으로 말들하곤 한다. “한 번 더 내전이 일어나면 나는 차드를 완전히 떠나야만 할 것이다. 더 이상 가족을 생명의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 사업하는 사람이나 외교관등이 하는 말이 아니다. 선교사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남들이 가려고 하지 않는 이곳에서 그 동안 사역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차드는 오지이다. 통신오지, 교통오지, 그리고 선교오지이다. 아프리카 북부 한 복판에 위치한 내륙국가 차드는 선교사들에게뿐만 아니라 교회에게도 오지이다.
한 번은 본부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이(이분은 필리핀, 우간다에서 사역하셨던 선교사님이시다) 내게 왜 전기도 없는 곳에서 사느냐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어오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 말씀은 제게 차드를 떠나라는 말이군요. 차드는 거의 모든 곳이 전기 사정, 물사정, 통신 사정이 좋지 않지요.”살기 편안한 곳 중심으로 선교지를 정해야만 한다면 차드는 단연 꼴찌로 선택되는 곳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말은 사실은 우리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곳이 차드라고 말하는 것 같다.주님이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던 것처럼.“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욥29:12) 욥의 신앙이 아름다운 것은 누가 진짜 도움이 필 요한 자들인 줄 알았고 그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고아와 같은 나라 강도 만난 자처럼 쓰러져가는 나라, 이 나라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돌봄이 너무도 절실하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외면하면 누가 이들을 돕는 말인가? 사마리아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욥을 보았는가?
3. 아직은 문이 열려있다.
지금 차드의 대통령은 무슬림(회교도)이다.그러나 그는 사우디 아라비아나 수단의 강경한 압력 앞에 기독교 선교를 허용하고 차드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을 편다. 그래서 그가 오랜 독재로(1980년 이후) 나라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지만, 아직 숱한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은 것은(내전과 쿠데타, 암살시도에도) 하나님께서 차드의 정치적인 모슬렘화를 막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만약 차드의 선교의 문이 닫히면 어떻게 될까?
중국이 공산화 되었을 때 모든 선교사들이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놀라웠다. 중국의 교회는 핍박 속에서 그 생명력을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주님의 약속처럼 승리하여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선교학자들의 결론을 이끌어 내게 했다. 과연 차드도 선교의 문이 닫히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만이 아시겠지만, 난 그 옛날 북아프리카의 역사가 재현될 것이라 본다. 차드는 모슬렘 국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도미노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사하라 남쪽의 아프리카 나라들이 하나씩 하나씩 차드 뒤를 따라 넘어질 것이다. 아직 문이 열려있을 때 적극적으로 선교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세 기독교가 선교에는 무관심하고 세상적인 것에 마음이 빼앗겨 있을 때 이슬람은 바로 기독교와 이웃한 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그리고 바울이 바나바가 베드로가 순교하면서 세운 초대교회들의 땅을 모두 무함마드에게 굴복시켰다. 교회가 지나간 과거의 뼈아픈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할 때 인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로질러 놓여진 구름다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세워졌는지를 나는 알고 있다. 맨 처음에는 솔개가 포말이 눈부시게 흩어지는 폭포를 가로질러 날게 하였다. 그 다음에는 솔개에 하나의 실을 매달게하여 또 그 폭포를 통과하게 한 다음,그 가는 실에 로프가 접착되었고,그 다음에는 그 로프에 케이블이 매어졌다.결국은 다른 부수물과 케이블이 서로 연결되어 멋진 구름다리가 폭포를 가로질러 놓여지게 된 것이다.” (로버트 H. 슐러의 ‘그래도 희망은 있다’에서) 차드를 위한 당신의 작은 결단과 행동이 차드 복음화 북아프리카의 복음화를 위해 솔개를 하늘로 날려보내는 주님의 손길이 되게 하라.
그래도 희망이 있다. 차드를 위해 기도하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희망은 있다.주님이 아직 이 땅에 문을 닫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차드선교의 중요성을 알려달라는 캐나다의 한 목사님의 부탁을 받고 사하라의 달빛 아래서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다. 오늘은 보름달이 밝다. 그래서 별을 보기 힘들다. 다른 분에게 차드 선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우리의 사정을 알리고 돕기 위해 애쓰시는 목사님의 마음이 나를 밤 2시에 깨워서 이 글을 쓰게 했다. 마음은 간절한데 글은 마음처럼 잘 흘러가지 않은 것 같다. 부족한 글에 주님께서 감동하심을 주어 차드선교와 세계선교에 나팔소리처럼 쓰셨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해본다. 2008년 4월 9일, 차드에서 조승호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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