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다니는 주민도 이용하세요"
교회 앞뜰에서 피로연비용 500만원으로 거뜬
차 한 대 지나갈만한 시골길 끝에 빨간 벽돌로 지은 교회가 있다. 바람에 출렁이는 연두색 논과 옥수수밭을 낀 아담한 건물이다.토요일인 지난 26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팔복전원교회'는 아침나절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운 정장으로 차려입고 서울에서 내려온 하객들, 편안한 옷차림으로 나온 동네사람들…. 이날 오전 11시부터 열리는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이었다.
푸른 숲을 뒤로 한 예배당이 결혼식장으로 쓰였다. 아담한 교육관이 폐백실과 신부 대기실 역할을 했다. 작은 돌멩이가 깔린 교회 앞뜰에는 흰색 식탁보가 깔린 둥근 식탁 14개가 놓였다. 야외 피로연장이다.
팔복교회 설립자이자 외동딸을 시집보내는 혼주인 최화병(69) 원로목사가 하객들을 안내했다. 그는 "10년 전 교회 문을 열 때 일찌감치 '지역주민들을 위한 결혼식장 등으로 교회를 무료 제공하겠다'고 밝혔다"며 "주인공인 신랑·신부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는 하객만 있으면 됐지 무슨 화려한 시설이 필요하냐"고 했다.
최 목사는 딸과 사위를 위해 손수 식장 가운데 하얀 카펫을 깔고, 기다란 나무의자 20개에 하얀 장미 꽃다발을 달고, 단상 좌우에 하얀 장미와 백합이 가득한 꽃바구니 2개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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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일 경기도 용인시‘팔복전원교회’에서 이 교회 설립자 최화병 원로목사의 외동딸이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이 교회를 지역주민들을 위한 무료 결혼식장으로 제공하고 있다./김신원씨 제공
신부가 한 살 때 유아세례를 해준 김덕순(87) 동성교회 원로목사가 주례를 맡았다. 김 목사는 "그 아기가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했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하객 150여명 앞에서 결혼식이 열렸고, 초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앞뜰에서 피로연이 열렸다.
이날 결혼식에 든 비용은 총 500만원이다. 출장뷔페 170인분과 폐백 비용으로 450만원, 꽃값으로 50만원이 들었다. 사진은 신부 아버지의 후배인 김신원(41·광성고 교목실장) 목사가 찍어서 앨범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하객들에게 '축의금과 화환을 받지 않기로 했으니 그냥 오시면 된다'고 여러 차례 알렸지만, 굳이 흰 봉투를 내미는 하객들과 여러 차례 즐거운 승강이가 벌어졌다. 어떤 손님들은 교회 헌금함에 막무가내로 봉투를 넣고 달아났다. 신부 어머니 이씨는 "어쩔 수 없이 받게 된 축의금은 좋은 일에 쓰겠다"고 했다.
마을 주민 50여명이 돌아가는 길에 최 목사가 말했다. "동네 주민들 누구나 무료로 우리 교회를 결혼식장·장례식장·금혼식장·은혼식장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종교 따질 것도 없어요. 교회 안 다니시는 분도 대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