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정신과 평화
지난 2월 9일, 드디어 화려하고도 장엄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온 세계가 각종 매체를 통해 지켜본 개막식은 다만 경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93개국의 선수들과 수많은 관중, 그리고 정상급 외빈이 26명이나 참석하여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또한, 첨단의 과학기술과 창의적이고도 미래지향적 예술형식이 결합하여 빚어낸 각종 축하행사는 세계인들의 탄성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5G 기술과 결합한 LED 촛불, 그리고 1,218개의 드론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밤하늘의 오륜기는 가히 압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올림픽의 5대 목표였던 문화·환경·평화·경제·ICT를 모두 담아낸 탄탄한 구성과, 남북 공동입장으로 전달된 평화의 메시지까지,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개회식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 펼쳐진 이른바 "올림픽 정신"의 거의 완벽한 구현이기도 하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올림픽 정신은 '평화'와 '친선'과 '도약'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 정신은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 1896년 처음으로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이래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추구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였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분쟁과 갈등과 전쟁을 비록 종식시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스포츠'를 통해 인간의 파괴적 본능을 어느 정도 완화시킴으로써 그만큼 평화에 다가가기를 염원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스포츠가 지니는 건전한 놀이문화의 성격을 극대화함으로써 친선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의식한 경쟁과 승리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투쟁을 통해서 미래로 도약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형태가 된다. 올림픽의 구호인 "보다 더 빨리,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라는 도전 정신은 이러한 도약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정신의 이상이 그동안 항상 온전히 구현된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이번 올림픽에서는 평화에 대한 갈구가 더욱 절실했음인지 상대적으로 다른 가치들이 가려졌다는 느낌도 든다.
사실 평창 동계올림픽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파괴적인 무력이 매우 집약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남쪽에서 열리는 스포츠 행사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방해할 수도 있는 세력이 아주 밀착된 장소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이와 유사한 행사, 즉 '88 하계 올림픽'과 '2002 축구 월드컵대회'를 통해서 체험한 적이 있다. KAL 민항기 폭파와 천안함 폭침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북핵 문제에 직면해 있는 국제정치적 위기의 상황에서 또 하나의 올림픽 행사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지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이러한 우려가 이제 일시에 제거되었다고 믿어도 좋은 것인가.
올림픽 개막식의 화려한 행사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흥분과 열정, 그리고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와 탄성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황수미의 장엄한 올림픽 찬가와 김연아의 우아한 성화 봉송의 장면도 쉽사리 잊혀 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북한의 열띤 응원단과 예술단, 그리고 한반도 기를 앞세운 남북한 동시 입장의 장면도 강하게 부각된다. 무엇보다 특사로 파견된 김여정의 미소가 마냥 순수하고 해맑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우리는 잠시 이른바 착시적인 '심리적 평화(psychic peace)'만을 누리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 이번 올림픽을 통해서 겨레가 다시 하나가 되고, 조국이 평화 통일로 가는 획기적인 계기가 마련되기를 진정으로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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