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열며 - 두바이, 신기루가 된 도시
(버즈 칼리파 개장기념 불꽃놀이 쇼)
경제 쪽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사상 최대' 라는 수식어를 몇 개나 갖다붙인
두바이의 버즈 칼리파, 그리고 그 인근의 도시들은 현재 개점 휴업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삼성물산이 참여한 버즈 칼리파는 미분양에 프리미엄 하락 등으로 인해 해괴한
꼴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바이 국영기업인 두바이 월드는 2009년 채무지급 정지를 선언
했지요. 1960년대 두바이에서 유전이 발견된 이후, 딱 50년만에 두바이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버즈 칼리파와 두바이의 '똥 to the 망' 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참 많았습니다. 금융위기 때문
이라는 이야기가 증권가에서 한참 나돌기도 했지요. 그러나 저는, 애초부터 이 버즈 칼리파와
두바이는 망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사막의 신기루mirage와 같은 도시였다고 생각하고 있습
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1. 현실은 심시티와 다르다
도시계획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화려하며 얼마나 대단하냐와 같은
요소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인구, 그리고 그 인구가 창출해 낼 유동성입니다. 인구와
유동성이라 말했는데, 풀어서 설명하자면 좀 더 복잡합니다. 고급 휴양지 또는 관광도시를
기준으로 인구와 유동성 창출에 중요한 것을 말하자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1) 상주인구:비상주인구 비율, 유동인구 및 유입인구의 증가 추세
(2) 안정된 치안과 명확한 법률
(3) 각종 편의시설 및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성
(4) 시의 유동성 확보 수단(생산물품 또는 서비스의 종류와 질)
(5) 사생활 침해의 최소화 또는 적정화
도시계획을 하면서 고려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이 단락의 제목이 '현실은 심시티
와 다르다' 고 한 이유는 바로 저것 때문이지요. 최근 버전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즐겼을 때의 심시티는 저와 같은 사항들은 지극히 간소화되어 표현되거나, 혹은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바이는,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 옛날 버전의 심시티처럼 계획되고
지어진 도시라는 게 제가 들려드리고픈 이야기입니다.
2. 당신이 super rich(갑부)라면, 두바이에 가고 싶겠습니까?
애초에 제시된 두바이의 컨셉은 고급 휴양도시였습니다. 지도를 보시지요.
(사막에 지어진 도시다보니, 강 또는 수원지를 따라 많은 시설이 건설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 시설 또는 휴양지의 '이름', 정확히는 '종류' 를 자세히 보시길 바랍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바로 '꼭 두바이에 와야 하는 이유' 가 되는 시설이 없다는 겁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즐길 거리, 그것도 장기적으로 손님을 불러들일 거리가 없다는 것이고, 이걸 줄여서 말하자면
시의 '독창적이며 지속 가능한 컨텐츠가 없다' 는 겁니다.
먼저 뜨악한 것은 온통 골프장 천지라는 겁니다. 물론 아랍을 비롯한 중동 부호들의 골프
사랑은 꽤나 유명합니다만, 저렇게 골프장이 많아서야 '희소성' 내지는 '독창성' 이 없습니다.
거기다 골때리는 것은 위락시설 단지입니다(추가로 도시들의 이름 및 배치도 잘 보십시오).
꼭 두바이에 가서 즐길 이유가 없는 것들을, 한참 부족하지만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식으로 그냥
죽 늘어놓았다는 느낌입니다. 즉 Why Dubai? 란 소비자의 질문에 딱히 내세울 만한 꺼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이 두바이는 건설 초기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도시입니다. 물론 투자자금을
모으는 등 마케팅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기는 했습니다만, 이것은 곧 시의 곳곳에 기자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일 수밖에 없었다는 뜻도 됩니다. 그리고 그 언론인 중에는 당연히 파파라치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독창적이며 지속 가능한 컨텐츠가 없고,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은 도시.
이런 도시에, 여러분이 휴식을 원하는 부호라면 가시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 못 간다 치더라도 주 고객이 될 부유층을 끌어들일 만한 핵심 요소인
독창적이고 지속 가능한 컨텐츠가 없고, 언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도시에 쉬러 갈 만한 이유
는 없을 겁니다. 애초에 저런 도시는 뜨내기 손님을 대상으로 장사를 할 만한 도시도 아니구요.
실제로 세계 수위권의 부호들은 갈수록 복잡하기보다는 한적하고, 사생활이 보장되며 따라서
'조용히 쉬고 즐길 수 있는' 도시를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애초에 비욘세처럼 섬을 사거나,
영국 Virgin사의 회장처럼 자기 잠수함을 만들어서 놀든지요.
(그런 의미에서, 버즈 칼리파에 투자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본 데이비드 베컴을 위해, 묵념)
3. 문제는 컨텐츠
관광객이 호주머니를 열게 하고, 나아가 '그 곳에 다시 가고 싶다' 는 생각을 하게 하고, 거기서
즐긴 것들을 주변인들에게 전파하게 하는 이른바 '바이럴 마케팅' 의 원천은 바로 문화에 있습니다.
문화란 말이 너무 추상적이다 싶으시면 '컨텐츠' 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내가 무엇을 사고
어디를 가게 만드는 힘은 컨텐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동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들' 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잠깐, 위에서 말한 '도시계획 수립 시 검토해야 할 사항' 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1) 상주인구 : 비상주인구 비율, 유동인구 및 유입인구의 증가 추세
(2) 안정된 치안과 명확한 법률
(3) 각종 편의시설 및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성
(4) 시의 유동성 확보 수단(생산물품 또는 서비스의 종류와 질)
(5) 사생활 침해의 최소화 또는 적정화
실은 이것들이 독창적이고 지속 가능한 컨텐츠를 도시에서 생산해 내는 데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도시에서 생산해내는 컨텐츠와 저 다섯 가지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특이한
분위기,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두바이는 그게 안 된 도시란 이야기입니다. 컨텐츠만 놓고, 다른 도시나 지역과 비교해봐도
두바이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명백합니다. 그 예로 차이나타운이나 우리나라의 동대문 또는
남대문 시장에 외국인들이 버글버글하게 들끓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정작 그 곳에 사는 사람들
에게는 전쟁과도 같은, 피곤하고 절박한 삶이지만 정작 외국인들에게는 자신들이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광경이기 때문에 사람이 몰리는 셈입니다(우리나라의 시장을 보고 외국의 학자들은 아주
열광을 하더군요. 에너제틱하니 어쩌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척 보기에도 어설픈 도시계획을 갖고 두바이 시를 확장하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생력이 없는, 스스로 재화를 생산해내기 어렵거나 재화 생산
능력이 떨어지는' 두바이와 같은 도시는 자금 흐름이 나빠지면 결국 자멸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되는 셈입니다. 한번 소비자가 외면한 상품이 시장에서 다시 주목을 받기 힘든 것처럼 두바이가
제 힘으로 일어서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돈과 희생이 필요할 것인지, 저는 짐작하기 어렵군요.
글을 닫으며 - 두바이 부활의 길도 컨텐츠에 있다
뭐 두바이가 살아날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이야기했듯, 장기적 안목을 갖고 두바이를
'특이한 즐길거리가 있는 도시' 로 만든다면, 거기다 대상 고객층을 조금 더 넓게 잡는다면 두바이
가 자생력을 갖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두바이란 도시의 부활이 컨텐츠에 달려 있다는 점, 이해가 되셨습니까?
개인적으로 두바이 회생을 위한 몇 가지 플랜을 세워봤습니다. 이유는 '그냥 재미로' 말이지요.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유동성을 창출하며, 거기서 사람들이 사랑과 이별을 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래봤던 것이지요.
밥 먹고 나서 배 꺼뜨릴 겸 해서 하나 써 봤습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삼성물산에서 지은 저 버즈 칼라파 높이도 지었네요..
세계 최고던가... 여하튼 서너 손가락 안에 드는 걸로 압니다.
하룻밤 자고싶다..얼마더라.
저는 저 도시를 리모델링해서 돈을 벌고 싶네요. ㅋㅋㅋ
ㅋ
두분의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네요 ^^
담배팔이 총각님의 그런 비전을 응원합니다.
언제고 이런 패기와 호연지기가
우리 나라, 혹은 전세계에 귀감이 될 만한 성과로 나타나길 응원합니다. ^^
좋은 글 읽겠습니다...^^
읽고 감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느끼신 점 남겨주시면, 그게 제겐 좋은 동기가 됩니다. ㅎ
워낙에 경제쪽은 어렵기도 하고 잘 몰라서 좀 꺼려지는게 사실인뎅.....
담배팔이총각님께서....이렇게 좋은 글 열심히 올려주시니...
저도 읽어보고 실천을 할 수 있다면 노력하겠습니다.......
한사람이라도 이렇게 움직인다면.....글을 쓰시는 좋고 힘나는 동기는 되겠죠??? ^^
경제는 사실 어렵지는 않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의 이해가 그렇다는 거고... 그에 따라 법률이나 정책 등으로 경제를 조정하려 들면 그때부터 어려워집니다. 이해관계의 조정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첨부터 정독하려고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ㅎ
그렇네요 ^^
왜 두바이여만 하는지를 어필할 수 없다면
아무리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사막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한 시즌을 풍미한 유행가처럼 되고 말겠네요
슈퍼리치들이 찾을만한, 두바이여만 가능한 것들을 만들지 않고
그저 개발에 치중하여 스스로 신화 만들기에 치중한 결과
외면받기 시작했다면
그 해결책 또한 컨텐츠에 있을 것이고
두바이에서만 가능한 그 '무엇'이 필요한 시점이겠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잘 읽었어요
오늘부터 한편씩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
사실 선띨형님이 나꼽살에서 한 마디 힌트를 주신 게 있죠. 독재 왕정국가라서 빨리 지을 수 있었다... 저 말은 뒤집어 생각해 보면 빨리 짓는다고 해서 컨텐츠라는 건 갖춰지는 게 아니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도시계획이나 기획이 엉망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음....우리나라에서 롯데에서 최고층 높이의 빌딩을 건설하겠다는 기사가 다시 생각납니다. 저꼴 나면 어떡하지...
뭐 롯데가 짓는 거야 두바이처럼 시를 만드는 게 아니니 망할 가능성은 덜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