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자기 브랜드만의 색깔을 분명하게 갖고 있는 프랑스 컨템포러리 브랜드 「에이프릴&메이(April & May)」의 디렉터인 디안느 골드스테인(Diane Goldstein)이 내한했을 때다. 그녀에게 한국 패션시장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질문했다. “지루해요.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새로움과 신선함이 빠져 있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 브랜드를 둘러보면 사고 싶은 아이템이 눈에 띄었지만 올해는 찾지 못했어요. 모든 브랜드의 상품과 디자인이 너무 비슷비슷해요.” 거리낌 없이 그녀는 한국 패션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프랑스를 포함해 유럽에서는 지금 컨템포러리 열풍이 불고 있어요. 「산드로」와 같은 상티에 출신에서부터 「겐조」와 같은 하이엔드 명품 조닝에서 하향 조정된 컨템포러리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브랜드들이 타깃 소비자층에 맞는 최적의 동시대 패션을 제안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 브랜드를 보면 겨냥하는 소비자층이 모두 똑같아 보여요. 지금은 1인10색을 이야기할 정도로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대 아닌가요?”라고 반문을 던진다.
디안느뿐만 아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 패션기업들의 디렉터들은 한국 패션시장의 다양성 부재를 이야기한다. 쏠림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하나의 아이템이 히트 치면 이를 카피해서 전 브랜드가 유사 상품을 내놓고 비슷비슷한 상품이 넘쳐 나면서 결국 가격 할인경쟁으로 치달아 ‘너 죽고 나 죽는 식’의 비즈니스 풍토가 만연해 있다.
대기업 중견기업들도 ‘쏠림 현상’ 일조(?)
최근 4~5년 동안 한국 패션시장은 그야말로 아웃도어 광풍이 일었다. 아웃도어 라이프가 소비자들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아웃도어 전문기업들뿐만 아니라 이번 F/W시즌 막차를 타고 들어온 「살로몬」과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 동안 온통 아웃도어 브랜드 런칭 소식 일색이었다. 아웃도어를 빼놓고는 한국 패션을 거론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대기업을 포함해 1조원 규모의 패션리딩 기업 가운데 SK네트웍스만이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를 갖고 있지 않을 뿐 이랜드를 비롯 삼성에버랜드(구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인더스트리FnC 신세계인터내셔날 세정 형지 등이 모두 아웃도어 열풍에 가세했다.
이보다 앞선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에는 이지캐주얼 조닝이 한국 패션시장을 지배했다. 지금의 아웃도어 광풍처럼 당시에는 이지캐주얼 브랜드들이 A급 연예인들을 앞다퉈 모델로 내세웠고 공중파와 케이블의 CF를 장악했다. 그러나 극단적인 쏠림 현상 뒤는 공급과잉에 따른 브랜드 정리가 있을 뿐이다. 「마루」 「라디오가든」 「메이폴」 「이랜드」 「언더우드」 「브렌따노」 「헌트」 등 수없이 많은 무색무취의 이지캐주얼 브랜드들이 시장 내에서 사라졌다. 골프웨어 조닝 역시도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백화점의 스포츠 아웃도어 매장을 도배하다시피 했으나 지금은 영역이 크게 축소돼 A급 브랜드 위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세정 형지 F&F도 아웃도어 앞다퉈 런칭
이지캐주얼과 골프웨어 조닝의 재현일까? 아웃도어 브랜드들 매출이 전년대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수요급감도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아줌마들도 아웃도어를 입고, 자장면 배달원도 아웃도어 착장을 하고 다닐 정도다. 누구나 다 입는 옷? 한마디로 재미없다. 패션은 남과는 다른 나만의 차별화된 스타일을 찾는 영역이다. 똑같은 것을 찍어 내는 공산품의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도 희소성과 다양성을 찾는 것이 아닐까?
명품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일수록 희소성을 더욱 요구할 것이고, 뚜렷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브랜드에도 좀 더 엄격한 기준치와 가치를 소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반면 볼륨 브랜드에는 희소성과 아이덴티티보다는 가격적인 메리트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치에 각각의 브랜드들이 부응하지 못할 경우 소비자들은 떠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모든 정보와 국경이 열린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이 대목에서 한국 패션기업들은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다. 빗장 풀린 무한경쟁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차별화된 경쟁력과 독자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브랜드들은 몇 손가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인10색 다양성 시대 맞는 상품 개발해야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패션기업들은 넘치는 수요 덕분에 풍요를 만끽해 왔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인해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잠깐 위축됐을 뿐 곧바로 매출이 회복되면서 한국 패션기업들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위기의식을 갖고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비했어야 함에도 매해 거둬들이는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에 자족해 미래 준비에 소홀했다. 풍요로움이 독이 된 것이다.
차별화된 상품기획을 위한 인재양성이나 프로세스 개선보다는 잘나가는 브랜드의 상품을 카피해서 더 저렴하게 내놓는 것에 우선했다. 패션사업의 또 다른 핵심 축인 리테일과 팩토리 부문은 백화점과 대리점, 그리고 완사입 프로모션업체와 벤더에 의존한 채 최고 경영자의 관심 영역에서 멀어졌다.
국내 패션기업들이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하이엔드 명품부터 컨템포러리, 글로벌 SPA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해외브랜드들이 봇물 터지듯 한국 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컴퓨터와 모바일을 통한 인터넷 환경은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확 바꿔 놓았다. 결국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 브랜드들은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올해도 「후부」 「데레쿠니」 「윈디클럽」 「헤지스스포츠」 「CMT」 「테레지아」 등 20여개 넘는 브랜드가 무대 위에서 내려왔다.
빗장 풀린 무한경쟁시대, 차별화만이 살길
이제 각각의 패션기업들은 브랜드의 생존을 위해 어떻게 치밀하게 전략을 짤 것인지,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경기 탓, 날씨 탓, 유통 탓 등 외부환경에 핑계대지 말고, 스스로 경쟁력을 찾아 가야 한다. 남 탓만으로는 솔루션 해결이 어렵다. 치열한 경쟁구도를 통해 스스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 가고 이를 갖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문다면 단언컨대 한국 패션산업의 미래는 없다.
지금까지 국내 패션기업들은 시장 선도자(first mover)의 역할보다는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서 대응해왔다. 아웃도어 시장의 이상과열 현상은 이를 입증하는 바로미터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아웃도어 시장의 광풍은 재빠른 추격자로서 국내 패션기업들이 누린 마지막 산물이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더욱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오리지널리티 또는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브랜드를 찾거나 아니면 아예 가격경쟁력을 담보한 글로벌 SPA와 같은 패스트패션 또는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낸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 패션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인가?
하이엔드 명품시장 M&A로 경쟁력 갖춰야
하이엔드 명품시장은 수백 년의 히스토리를 담보해야 한다. 길어야 30~40년의 브랜드 역사를 갖고 있는 국내 패션기업들이 공략할 수 있는 영역은 못 된다. 하이엔드 명품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M&A를 통해 글로벌 비즈니스를 펼치는 것뿐이다. 아니면 지금부터 착실하게 브랜드를 키워 나가 100년 후를 대비하는 롱래스팅 전략을 취하든지. 그러나 이렇게 글로벌 장기비전을 세워 놓고 브랜드를 키워 나가는 회사는 「루이까또즈」를 전개하는 태진인터내셔날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시장에 불어 닥친 경기침체가 오히려 성장 촉진제가 된 글로벌 SPA 브랜드와는 어떻게 맞대응을 해야 할까? 연간 외형 10조~20조원 규모의 무시무시한 매출 파워를 자랑하는 글로벌 SPA와 한판 경쟁을 하려면 상응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는 수백억~수천억원의 막강한 자금력이 요구되고 이를 긴밀하게 진두지휘 할 수 있는 오너십 역시 필수다.
두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실행으로 옮기기 힘든 것이비즈니스의 실체다. 실제 「코데즈컴바인」 「쿠아」 등 초창기 많은 로컬브랜드들이 한국형 SPA를 캐치플레이즈로 내걸고 이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자금력 부족, 오너십 부족 등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SPA 성공 방정식 = 자금력과 오너십 필수
글로벌 SPA와 맞대응이 가능한 기본 요건을 갖춘 국내 패션기업은 이랜드와 삼성에버랜드 그리고 신성통상 3개사로 집약된다. 이 가운데 이랜드와 신성통상은 오너가 직접 진두지휘를 하면서 상품기획부터 소싱 물류 유통에 이르는 SPA 전 과정을 세밀하게 핸들링하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실제 이랜드는 스파오를 시작으로 패션 전영역의 SPA화를 착착 진행중이다. 소싱경쟁 우위의 신성통상은 사업개시 1년반만에 전국 중대형 매장 65개를 확보하는 등 선방하고 있다.
반면 삼성에버랜드의 「에잇세컨즈」는 기대에 못 미쳤다. 런칭 1년 만에 CDO 전격 교체, 사업부장의 연이은 교체 여기에 제일모직에서 삼성에버랜드로 주인까지 바뀌면서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우선은 공급망 관리시스템인 SCM(Supply Chain Management) 강화 우선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시장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5조원 매출 규모의 삼성에버랜드의 품에서 「에잇세컨즈」가 어떻게 부활할지 주목된다.
아이덴티티 강화, Something New 절실
그렇다면 태생적 한계로 인해 하이엔드 명품시장의 벽을 뛰어 넘기도 어렵고, 막강한 자금력이 전제되는 SPA 비즈니스도 펼칠 수 없는 국내 대다수 패션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하나다. 소비자 변화에 귀를 기울이며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무기로 전 세계 시장에서 돈 버는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뻗어 나가야만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불황일수록 실력을 갖춘 패션기업들에 기회가 열린다. 여성복 전문기업인 대현(대표 신윤건)은 영캐릭터캐주얼 「듀엘」의 히트에 이어 아우터 & 슈즈 전문의 「엣플레이」로 또다시 화제를 모았다. 남성복 시장에서는 「시리즈」와 「커스텀멜로우」의 연이은 히트로 대기업 3사 중 가장 약세였던 코오롱FnC가 일약 리딩기업으로 떠올랐다.
「지프」와 「홀하우스」를 전개하고 있는 JNG코리아(대표 김성민)는 할인경쟁이 판을 치고 있는 캐주얼 시장에서 프리미엄캐주얼 정책을 펼치며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이 여세를 몰아 새해에는 북유럽 감성의 프리미엄캐주얼 「시에로」를 선보일 예정이다.
「듀엘」 「시리즈」 「루이까스텔」 등 인기
골프웨어 시장에서는 「루이까스텔」을 전개하는 브이엘앤코(대표 이재엽)의 파이팅이 화제다. 해외명품 못지않는 화려한 컬러와 퀄리티 대비 가격경쟁력을 갖춘 이 브랜드는 올해 270개 매장서 2500억원을 달성한 빅브랜드로 성장했다.
아동복에서는 참존어패럴(대표 문일우)이 「트윈키즈」를 시작으로 캐릭터 멀티숍인 「머라이언」을 복합 구성한 「트윈키즈플러스」, 여기에 유아동 라이프스타일숍 ‘트윈키즈365’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며 소비 수요를 이끌어 내고 있다.
이들 패션기업들의 공통점은 소비자 변화에 항상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수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추종자가 아닌 선도자로서 시장을 개척하고 리딩했다는 점에서 이들 패션기업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이끌어 가려는 패션기업들의 의지와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첫댓글 PIFT 회원 여러분들!!
2014년 새해엔 축복과 대박나는 한해 되시기를.....
오늘도 파이팅!! 입니다
블랙홀 누님 안녕하세요 좋은 정보 감사드리고
강남 올때 연락 주세요 식사라도 대접 하게요 ㅎㅎ
항상 건강 하시고 화이팅 입니다
2014 년도엔 소망하는모든일들다이루어지기를
항상기도하겠습니다여!
언제한번 차한잔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