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4 이스라엘 건국은 하나님께서 섭리한 드라마이다
신28:63-64 사66:7-9, 렘16:14-15 마24:32-35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오랜 전쟁에 대해 이해를 하기 위해선 먼저 구약성경의 이해가 필요하다. 사실 근본원인을 찾아 들어가다 보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이 나온다(창12:1) 그리고 아브라함과 다윗왕의 계보를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성경의 예언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셨다. 세계역사는 믿던지 안믿던지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BC와 AD로 나뉘어졌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셨는데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지 40년 후 즉 70년에는 로마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성은 파괴되었고 백만명 이상이 죽임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지는데 이를 디아스포라고 한다. 그렇게 2천년동안 전 세계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세계1차 대전과 세계 2차 대전을 맞이하면서 시오니즘운동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자신들 조상의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 나라를 건국하였다. 세상은 이를 보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말한 이스라엘 역사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유대인의 조상은 아브라함은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인 갈대아 우르 오늘날 이라크 지역에서 살았었다(창11:28).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갈대아 우르에서 나오면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창12:1-2,4) 1 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게 복이 되리라. 4 이처럼 아브람이 주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떠나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세 였더라.
아브라함과 그의 친족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출발해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옵니다. 그들이 가나안지역으로 이주 해 왔었을 때 거기에 살던 가나안 족속들이 오늘날 팔레스타인들이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어 사백년 동안 그들을 섬기겠다고 하시면서 그런 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나안 지역을 주시겠다고 언약을 하셨습니다.
(창15:13,18) 13 그분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확실히 알라. 즉 네 씨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이 사백년동안 그들을 괴롭히리라. 18 바로 그날에 주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이집트의 강에서부터 저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네 씨에게 주었노니.
아브라함은 이런 언약을 받은 후 적어도 200년 후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 즉 이스라엘이 가족들을 이끌고 이집트로 갔을 때는 총리의 가족으로 갔었지만 후에는 애굽의 종이 되어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사십년이 걸렸습니다. 이 광야생활중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계명과 율법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고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 되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되는 선민이 됩니다.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 이외는 어떤 신도 어떤 우상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 그들의 나라가 영원히 세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사백년동안 종노릇을 한 후 출애굽하였고 그리고 그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왕국을 세웠었는데 다윗왕 솔로몬왕 때에는 전성기를 누리다가 솔로몬왕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북 이스라엘 남 유다로 나뉘었다가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시리아에게 멸망하였고 유다 왕국은 BC 587년 시드기야 왕에 이르러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합니다. 바빌론 유수는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BC 538년에 공식적으로 끝났는데,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고레스 왕)은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했는데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페르샤 헬라 로마의 속국으로 지내다가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로마의 지배를 받던 때이다. 특히 로마는 다신교를 믿는 나라인데 유일신을 믿는 이스라엘에게 다른 신들을 강요하는 것은 반감을 살 수 밖에 없으므로 이스라엘은 로마를 대항하다 궤멸되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나라가 망한 다음 사람들이 흩어지면 처음에는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더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민족성도 문화도 종교도 소멸되고 그 지역문화에 흡수되기 마련이지만 유대인들은 비록 뿔뿔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지만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생활양식 즉 '율법'이라는 구약성경을 근본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일은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한 후 유대인들이 세계 각처에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우리시대에 즉 우리나라가 독립하던 1948년에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도 2000년만에 자신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팔레스타인 땅에 건국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들이 나라를 떠난 후에는 가나안 즉 팔레스타인에는 팔레스타인들이 2000년 동안 그곳에 거주하였기에 팔레스타인들과 이스라엘간의 갈등과 투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건국한 1948년 5월 14일 독립하자마자 제1차 독립전쟁이 일어났다. 10개월간 전쟁을 치른 이후에도 스에즈운하사건으로 인한 전쟁 등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이라고 불리우는 전쟁까지 4차례나 이웃 아랍국가들과 전쟁을 치르면서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세워지게 되었다.
지난해 5월 동예루살렘 지역인 세이크 자라의 팔레스타인 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데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경찰의 충돌이 있었던 중 이스라엘 군경이 시위 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알 아크사 모스크 내부까지 진입하여 강경 진압으로 부상자가 발생하자 가자지구의 통치자 하마스는 까삼 로켓 등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하였고, 이스라엘 공군도 가자 지구를 보복 폭격하면서 가자지구에서 최소 128명이 사망했으며 이스라엘에서는 가자 지구를 순찰하던 군인 1명과 어린이 2명을 포함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이스라엘날 행사와 아랍인들의 라마단 행사가 겹치면서 일어난 사건인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충돌 배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과의 팔레스타인의 경계선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인데 현재 유대인 30만 명이 살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 125개가 있는 정착촌에는 유대인들의 조상들의 묘지가 있는데 예를 들면 서안지구의 헤브론에 막벨라 사원에는 유대인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의 묘지가 있다. 팔레스타인 지구에 있는 여리고, 나블러스, 베들레헴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러한 정착촌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이스라엘인데 이런 배경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충돌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가지지구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의 분쟁은 3000년전 사울왕때도 다윗왕때도 있었는데 오늘날 두 민족간의 분쟁을 알려면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아야 만 이해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AD 70년 로마에 멸망한 후 지구상에서 사라진 이후에 1900년 동안 유랑 생활을 하였던 민족인데 1948년 독립국가를 세운 이스라엘의 건국을 세상은 기적이라고 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멸망에 대해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악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선 모세를 비롯하여 에레미야도 에스겔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했다.
(신28:58,63-64) 58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이로써 주 네 하나님이라 하는 이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63 주께서 너희로 인해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를 번성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신 것 같이 주께서 너희로 인해 너희를 멸하시며 망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네가 들어가 소유할 땅에서 너희가 끊어져 뿌리가 뽑히리라. 64 주께서 너를 땅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백성들 가운데로 흩으시리니 네가 거기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나무와 돌을 섬기리라
(렘16:13)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가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하리라. 너희가 거기서 밤낮으로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요. 내가 거기서 너희에게 호의를 베풀지 아니하리라, 하라.
(겔36:19) 이교도들 가운데로 그들을 흩으며 그 나라들도 흩어지게 하고 그들의 길과 그들의 행위들대로 그들을 심판하였느니라.
(눅21:24) 또 그들이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민족들에게 포로로 잡혀 가며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
이상은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을 버리면 그들은 그 땅에서 쫓아내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게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무화과나무에 가보니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다음날 아침 제자들이 그 무화과나무 앞을 지나갈 때에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듯이 멸망한다는 예언이었다. 예수님의 이 예언 이후 40년이 되어 AD 70년 4월 로마장군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9월 8일 예루살렘성은 함락되면서 사망 110만명 포로 97000명이라고 유대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 멸망을 똑똑히 지켜봤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AD 37-100)가 쓴 유대전쟁사를 보면 그날의 참상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성 밖으로 나가는 길이 단절되고 기근이 더욱 심해지면서 희망은 끊어졌고 집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사람을 먹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실내와 성의 소로에는 온통 어린이와 노인의 시체와 그리고 죽어가는 여자들로 가득했다. 요세푸스의 기록은 이미 이같은 상황을 미리 내다 보셨던 예수님의 예언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후로 유대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살면서 모진 고난과 박해를 받게 되었다.
1. 팔레스타인의 유래
구약시대 사울왕이나 다윗왕 때에도 그 지역에 블레셋이란 족속과 전쟁을 하였는데 다윗과 골리앗과의 대결에서도 골리앗은 블레셋의 장군인데 다윗왕은 가나안지역에 살았던 블레셋을 축출하면서 유대통일왕국을 세웠다. 통일왕국은 솔로몬 사후에는 북은 이스라엘로 남은 유다왕국으로 분리되었다가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되었다. 이후 유대인의 역사는 이방민족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BC 63년 로마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유다인들의 왕조는 완전히 소멸하였고 지역명만 마지막 유다왕국의 이름을 따서 줄곧 유다라고 불렀다. 그 후 유대인들은 로마가 이교숭배를 강요하자 이에 대항하여 AD 70년(1차 독립전쟁)과 AD 132-135년(2차 독립전쟁) 두차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는데 로마는 철저한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1차 독립전쟁때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였고 2차 독립전쟁때에는 유대인의 다수는 죽임을 당하였다. 특히 132년에 발생한 시므온 바로코크바의 반란(2차 독립전쟁)을 진압한 로마는 더 이상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1. 예루살렘을 로마 직속지로 다스리며 유대인 출입을 금하였으며
2. 이 지역의 이름을 유다에서 팔레스타인(블레셋사람의 땅)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유대전쟁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세계각처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아라비아반도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아랍인들은 AD 7세기 마호메트가 전파한 이슬람교의 세력하에 중동전역에 사라센제국(633-1258년)을 건설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복하고 메카 메디나에 이어 예루살렘을 제3성지로 삼아 예루살렘 성전에는 7세기경 알 악사사원과 황금동 사원을 세우면서 예루살렘은 아랍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2. 이스라엘의 건국과정
이스라엘의 멸망이 성경에서 예언되었듯이 이스라엘의 재건도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한 구절을 찾아보자.
(렘16:14-15) 14 주가 말하노라. 그런즉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다시는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에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께서 살아계신다 하지 아니하고 15 오히려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북쪽 땅과 모든 땅 곧 친히 그들을 쫓아내어 머물게 한 모든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께서 살아계신다 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다시 데려가리라.
(겔36:24) 내가 너희를 이교도들 가운데서 취하고 모든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 너희 땅으로 데려가리라.
(마24:32-35) 32 이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것의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나니 33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볼 때에 그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 34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 35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은 로마에 멸망한 후 1900년 동안 고난과 핍박 속에 유랑 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지배를 받았는데 시대별로 분류하면
70년에서 395년까지 로마가 지배하였고
395년부터 638년까지는 동 로마 제국 즉 비잔틴제국
638년부터 1072년까지는 이슬람의 사라센 제국
1072년서 1099년까지는 터키
1099년에서 1291년까지는 십자군
1291년에서 1517년까지는 이집트
1517년에서 1917년까지는 오스만 터키
1917년에서 1948년 건국할 때까지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유랑한지 1900년 만인 1948년 독립국가를 세웠는데 세상은 이런 유례를 찾아 볼 수 없기에 기적이라고 했다.
우선 이스라엘 독립에 관련된 용어부터 알아보자.
(1)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용어
1) 알리야
알리야 (히브리어:עֲלִיָּה ,Aliyah)란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는 귀환 운동'을 가리켜 ‘Aliyah’(알리야)라 일컫는 것이다
2) 시온주의
19세기말 시작된 시온주의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국가를 건설하는 민족주의 운동이다.
3) 디아스포라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기존에 살던 땅 본토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을 일컫는 말로 나라 밖에 자리잡은 집단에만 쓴다.
유대인들은 B.C.586년에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면서 그때부터 주권없는 나라로 존재하다가 로마지배를 받던 중 로마와의 두차례의 독립전쟁에 패하면서 세계에 흩어졌던 이스라엘 민족을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말한다. 그 디아스포라 유대인 가운데 상당수 사람들이 한꺼번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귀환하는 운동을 ‘Aliyah’라고 하는 것이다.
(2) 유럽에 확산된 반유대인 정서
욥기서 8장에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처럼 이스라엘의 건국에 대한 시작은 유대인을 멸시하는 미약한 사건에서 출발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신문기자로서 별다른 문제없이 살아가던 유대인 헤르젤은 1894년 10월 일생에 큰 변혁을 가져오는 일대사건을 만나게 된다. 드래프스라는 프랑스 육군장교가 독일에 군사정보를 넘겨주었다는 범죄로 체포되어 종신형 판결을 받는 드래프스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범인으로 지목된 드래프스는 애초부터 프랑스 군부에 의해 치밀하게 조작된 사건으로 사건의 진범이 밝혀졌지만 드래프스는 억울한 누명을 쓴채 12년동안 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드래프스는 말하기를 나는 증조 고조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프랑스에서 살았었고 프랑스가 내 조국이고 나는 프랑스 시민권이 있는 장교라고 항변하였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드래프스가 누명을 써야만 했다. 당시 유럽사회에서 이같은 드래프스 사건처럼 유대인을 차별하고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반유대적인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나라없는 설음을 당하였던 것을 절실히 깨달았던 사람이 바로 데오도르 헤르첼이었다.
오스트리아 기자인 데오도르 헤르첼은 프랑스에서 발생한 드래프스 사건을 취재하면서 유대인들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의식에 불을 지르게 되었다. 후에 헤르첼은 드래프스가건을 간직하고 프랑스를 떠나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돌아가서 뜨거운 시온주의자가 되면서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돌아 와서 유대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유대인들에게는 어디에 가도 희망이 없고 무엇을 해도 해고를 당합니다. 여러분은 군인 드래프스는 충성스러운 프랑스 장교였지만 그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고향 땅을 필요로 합니다.” 1896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헤르첼은 유대인과 유대 국가에 대한 책을 출판하였는데 그 책에서 헤르첼은 유대인들은 팔레스틴 고향 땅에서 나라를 세우자는 외침이었다. 독일어로 출판하였는데 이 작은 책이 유대인의 역사를 바꾸는 놀라운 반응이 일어났다. 유대인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당시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 할 이야기였다. 데오도르 헤르첼은 각 나라 별로 유대인을 조직하면서 온 나라 유대인들이 시온주의라는 깃발아래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찾아야 한다. 첫번째 시오니즘 회의가 스위스 바젤에서 열렸으며 그 후 계속 시온주의 회의가 열렸다. 헤르첼은 제4차 시온주의 총회 연설을 하고 그 다음 해에 41세에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1904년 제4차 시온주의 총회에서 그는 외쳤다. “우리가 꾸는 꿈은 5년 내지 50년이면 이루어집니다.” 그가 죽은 지 50년이 채 안되어 1948년 5월 14일 그 땅을 찾았고 나라를 세웠던 것이 인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 같지만 하나님의 섭리속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3. 세계 1차 대전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은 유대인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유대인들의 나라를 세워준다는 약속을 하게 된 것을 그 유명한 '벨포어 선언'입니다. 1917년 11월 2일 영국외상 벨포어로부터 유대 시온지부로 한 장의 서한이 보내어졌다. 영국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향토수립을 지지하고 이 목표달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이 편지를 수령한다. 영국은 왜 이와같은 약속을 하였을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영국은 전쟁을 치르는 중 폭약인 무연화약부족으로 어려움을 느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유대인인 폭발물 제조 방법을 고안해낸 사람이 맨치스터대학 화학교수였던 하임 바이츠만인데 그는 열렬한 시온운동가이기도 하다. 1차 대전에서 영국을 도운 것은 바이츠뿐만이 아니었다 금융부호가인 로스차일드는 돈과 무기로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도 영국을 도와서 1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1차대전 승리는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오스만 터키를 몰아내고 영국이 지배하는 결과를 맞게 된 것이다. 영국은 벨포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에 들어갈 명분을 갖게 한 것이다. 벨포어 선언이 전해지면서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이 속속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왔다. 유대인 자치기구나 유대인 마을이 형성되었지만 아직 국가를 세울 만한 인구는 안되었지만 분명 국가를 세울 꿈은 현실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나 1939년 이스라엘의 독립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돕겠다던 영국은 돌연 몰려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상점 이스라엘 글씨를 쓰고 유대민족 문화로 바뀌면서 거부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1930년대부터 40년대에는 영국이 강력하게 이민정책을 막았고 팔레스타인 주변 아랍국들도 유대인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더욱 더 거센 위협을 가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을 통치하면서 1939년에 접어들면서 더욱 극심해진 반유대정책은 절정에 치달았고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4. 세계 2차 대전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역사는 전무후무한 대 참극이 벌어진다. 1933년 독일 나치당에서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독일의 총통으로 선출된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의 패배에 침체된 독일민족을 민족주의로 승화시킨다. 게르만족이 최고라는 이면에는 반유대인정서를 자극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유대인 차별정책으로 유대인들에게 완장을 차게 하였다. 사람들은 완장을 찬 유대인들에게 혐오감을 보였다.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독일인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유대인 상점은 약탈되었고 이유없는 폭행이 따랐고 유대인 회당은 불에 탔다. 이같은 상황을 피하는 길은 독일을 떠나는 것 뿐이었다. 독일을 떠나기 위해선 재산과 집과 모든 것을 버리고 옛 고향땅 팔레스타인으로 향했다. 그러나 사업 때문에 재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사회에 애착이 있었던 사람들은 유대인 수용소 게토에 갇히게 되면서 게토에 갇히는 유대인의 수도 늘어만 갔다.
(1) 홀로코스트
1940년 바르샤바 게토 --아우슈비츠 학살 ---홀로코스트
2차 대전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독일은 밀리기 시작했다. 이 때 게토에 갇혀있던 유대인들은 기차에 실렸고 기차의 선로가 끝나는 곳은 아우슈비츠 학살수용소였다. 2차 대전이 남긴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참극은 바로 아우슈비츠에서 이루어졌다. 독일이 패망하여 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유대민족의 대 학살도 끝났다. 연합군이 아우슈비츠를 점령했을 때 온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대인들은 무려 7년 동안 갇혀 있다가 죽음을 맞이하였었다. 당시 유럽에는 약 1000만명의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 유대인들 역시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홀로코스트는 유럽의 유대인들을 몰살시켰다
폴란드 유대인 330만-300만. 쏘련 302만-100만명
항가리 60만명--59만6천명 루마니아 34만중--28만 독일56만중-20만
학살로 유대인들은 멸절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히틀러의 민족주의 정책은 600만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이는 유럽 거주인 총유대인의 70%를 학살한 것이다. 이런 상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렘30:7) 아아 슬프도다! 그 날이 커서 그것과 비길 날이 없나니 그 날은 야곱의 고난의 때로다.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정책은 이스라엘의 민족을 팔레스타인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후 유대인들이 더욱 더 몰려들면서 자신들을 보호해줄 국가의 소중함이 뼈속 깊이 사무쳤던 것이 국가재건의 기초를 쌓은 것이다. 유럽사회에 정착하여 유대국가 건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유대인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망이 물밀 듯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일 후 국제사회는 다시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면서 유대인 국가건설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유대민족의 씨를 말리고자 저질렀던 홀로코스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건국을 앞당기는 기적을 낳고 있었다.
첫 번 ‘Aliyah’는 1882년부터 1903년까지 약 35,000명 유대인들 귀환,
두 번째 ‘Aliyah’는 1904년부터 1914년까지 약 40,000명이 귀환이다.
세 번째 ‘Aliyah는 1919부터 1923년까지 모두 40,000명이 러시아로부터,
네 번째 ‘Aliyah’는 1924년부터 1929년까지 모두 82,000명이 주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것이다.
다섯 번째 ‘Aliyah는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주로 동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 250,000만 명이 나치즘을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것이다.
가장 대규모의 ‘Aliyah’는 이스라엘 독립 이후인 1948년부터 1950년까지 50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한꺼번에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였다.
(2)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유엔총회 가결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국가 건설에 대한 안이 유엔 총회에 상정되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독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던 아랍국들은 석유이권을 내세우면서 유엔총회 국가들을 압박하였다. 이스라엘 독립을 지원하면 석유에 관한 이권으로 압박하였고 유엔총회에 참석한 국가들은 이스라엘 독립으로 인하여 아랍국가들과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우리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것은 유대인들의 억지예요 어찌 한나라에 두 국가가 있을 수 있단말입니까? 만약 이스라엘 독립을 승인한다면 아랍석유의 접근이 어려워질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를 겪은 만큼 독립하여야 할 자격이 있다. 유엔총회 결과는 찬성 33 반대 13 유엔은 개표결과에 따라 이스라엘 독립을 승인한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독립국가를 선포할 수 있는 국제적 명분을 갖게 되었다. 독립국가를 세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5. 이스라엘 독립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독립되었던 상황을 역사는 이렇게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 날 이른 아침에 대영제국의 국기인 유니온 잭이 내려지고 태양이 빛나게 내리쪼이는 가운데 새로운 수도인 텔 아비브의 로스 차일드 거리에 많은 군중들이 몰려왔다. 여기에는 세계의 여러 신문사 대표자들과 유대 랍비의 지도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후 4시 정각, 드디어 데이비드 벤 구리온이 개회를 선언했다. 사람들은 기립해서 이스라엘 군가를 불렀다. 그 사이에 열방에서는 팔레스타니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가 끝나자마자 벤 구리온이 일어나서 히브리말로 이스라엘의 독립선언을 똑똑하게 읽어 나갔다.
온 회중은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많은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1948.5.14. 벤구리온 수상은 이스라엘이 독립국가가 된 것을 전세계에 알렸다. 길고도 험난한 세월 끝에 이스라엘 독립이 이루어 진 것은 성경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아랍국들에게 있어선 이스라엘국가 건설을 그냥 보고만 있을 문제가 아니었다. 아랍 연합국들은 영국이 철수하는 동시 이스라엘을 무장해제 시켜 아랍나라 밑에 두고자 하였다. 이제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고 이스라엘의 독립이 선포되면서 여론은 팔레스타인의 밑으로 들어가라. 이스라엘은 그럴 수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그래서 1948년 5월 14일 독립하면서 독립전쟁을 하게 된다. 전쟁을 하여 죽을지언정 몇천년만에 온 이 기회를 잃을 순 없었다. 당시 유대인 인구 65만명인데 전쟁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 바로 적기이다. 벤구리온 지도자들이 이것이 몇 천년만에 온 기회를 놓치면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전쟁은 5나라의 연합국과 한 것인데 결과는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1) 벤 구리온
1917년 영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건설하는 데 협력한다는 공식 성명인 발포어(Balfour) 성명으로 유대인들에게 회복의 기운이 움트면서 이 후 유대인들이 해외에서 대거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중에 대부분은 열렬한 사회주의자들로서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꿈을 이스라엘에 심기 시작하면서 노동을 중심으로 유토피아 이념은 키브츠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2000년까지 이스라엘을 이끌어 온 정당은 노동당이었다. 첨단에 선 사람이 바로 벤 구리온이었습니다. 1921년 그는 노동당 당수로 선출되었고 후에 벤구리온(1886~1973)은 이스라엘 초대 수상이 되었다. 나이 77세로 수상직을 마치는 날 벤 구리온은 네게브 지방의 키부츠 스데 보케르(Sde Boker)로 들어 가 키브츠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키브츠에서 그에게 베푼 특전은 4평짜리 방 하나였습니다. 그는 87세에 숨을 거둘 때까지 사막을 농토로 개간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그가 죽자 그의 재산으로 남은 것이라고는 입었던 옷 한 벌과 신발 한 켤레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정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겨주었습니다. 하나는 무소유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개척정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존경하여 국제 공항 이름을 벤구리온공항이라 부르며 영원히 그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회복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이스라엘은 회복되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는 드라마입니다.
6.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독립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나라를 잃고 세계로 흩어진지 1900년만에 나라를 회복하였습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마지막 때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이미 울렸습니다.
무화가나무의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온 줄 알라(마 24:32-33)
이스라엘 독립운동의 시작은 당시 드레프스 사건을 취재하던 데오드로 헤르첼이라는 유대인 기자가 반유대인의 정서를 느끼면서 유대인의 땅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운동을 일으킨 것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는 알리야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오스만 제국이 400년 동안 지배하고 있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1917년부터는 영국이 지배하게 되면서 시오니스트들은 영국으로부터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벨포어 선언을 받아내었다. 1920년대 팔레스타인내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무슬림이 80만명 이었고 유대인의 수는 7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유대인 국가를 약속받은 후 수만명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와 아랍인들로부터 땅과 집을 사들이면서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에는 분쟁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1947년 11월 29일 유엔은 팔레스타인지역에 아랍과 유대 인 두 국가를 건설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1948년 5월 14일 영국이 위임통치를 마치고 물러가자 이스라엘은 즉시 건국을 선포하므로써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후에도 1956년 1967년 1973년 네차례의 중동전쟁을 하였으나 이스라엘은 영토를 확장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1967년 6일 전쟁은 3개의 아랍연합국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와 전쟁을 하였는데 6일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한 기적과 같은 전쟁이었다. 국가가 된지 20여년밖에 안된 이스라엘은 1967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군사적 승리를 이룩한다. 6일 만에 숫적으로 2배나 많은 적들과 싸워 이겼다.
(1) 전쟁중에 일어난 수많은 기적같은 일들
이스라엘이 중무장된 시나이 반도에 대한 침공을 시작했을 때 전쟁이 한창일 때인데 이스라엘 탱크가 시나이 반도에 진입하자 이집트군은 이스라엘이 원하던 대로 행동했다. 예를 들면 공격을 받지 않았는데도 후퇴하는 이집트 탱크들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지대공 미사일 기지들을 버린 것이다. 이집트는 소련제 장비들을 수십억 달라치나 버렸다. 레이더 유도장치 들도 버렸다. 전진하는 군대앞에서 군대가 후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수많은 무기들을 버려두고 오는 것은 이상하였다. 6일 전쟁은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한 것이다. 양국 군사력을 봐도 이기기는 힘들었다. 이스라엘은 나라의 존립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지만 전쟁에 이겨서 예루살렘을 탈환하였고 시나이 반도 골란고원을 차지하였다. 6일 전쟁은 초자연적인 일들이 여러번 벌어졌다.
한 여성 상등병이 기갑부대의 연대 사령관과 지프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앞에 엄청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다. 사령관은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상등병은 사령관 안경에 먼지가 꼈다고 생각하여 옆으로 벗어나라고 외쳤다. 사령관은 위험하다는 그녀의 판단을 믿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안보였지만 말이지 그래서 그는 모래 언덕 사이로 나타난 또 다른 길로 갔고 뒤에 오던 차들도 그를 따랐다. 오직 한 대의 차만 원래의 길로 갔는데 갑자기 폭팔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원래의 길로 간 지프는 이집트 지레밭으로 간 것이다. 이것은 사막의 모래가 사람의 눈을 속인 우연한 현상인가? 아니면 상등병은 다가올 위험을 경고한 환상을 보았었는가? 왜 전쟁중에 이스라엘에 유리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 것일까?
시나이에서도 또 다른 기적이 있었는데 한 병사가 부대를 못찾고 혼자 서성이고 있을 때 수천명으로 이뤄진 이집트 군대가 그 병사를 보자 갑자기 손을 들고 그에게 다가 가서 항복을 하였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지만 그들을 포로로 데리고 갔다. 그는 잃어버렸던 자신의 부대로 포로들을 데리고 갔다. 그가 오자 부대원들은 모두 깜짝놀랐다. 그들은 한명의 이스라엘 병사가 수천명의 이집트 병사들을 포로로 데리고 온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집트 병사들을 감금한 후 장교들에게 심문을 했다. 왜 한명의 이스라엘 병사에게 투항 하였나 묻자 그들은 그는 혼자가 아니었으며 그의 뒤엔 수천명의 천사들이 손에 총을 들고 우리를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울 준비는 되었지만 하나님의 천사들과 싸울 준비는 안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두나라 군대의 병사와 무기들을 비교해 볼 때 외적인 도움없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성서에는 엘리야때 적에게 포위대 있었단 기록이 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종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종의 눈앞에 천사들이 나타났다. 이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의 남쪽 국경에 다다랐을 때 하늘에서 손이 나타나고 그들은 무서워서 도망갔다고 합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았다는 이집트인들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이 이야기들은 책에 나오는 전설이 아니라 6일 전쟁동안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
7. 이스라엘 건국은 출애굽 이후 최대 기적이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회복한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군데서 모여 산것도 아니고 뿔뿔이 흩어져 살았고 땅도 황폐하게 되고 나라에 대한 주권도 없었고 2000년 가까이 존재하지 않다가 나라를 세운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신 기적 그 자체입니다.
(사66:8)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느냐? 누가 이러한 일들을 보았느냐? 땅이 하루에 만들어 져서 열매를 내겠느냐? 혹은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시온은 진통하자마자 자기 자녀들을 낳았도다.
이스라엘아 주가 말한다. 너희가 나의 말에 경청하지 아니하고 나의 계명들을 행하지 아니하고 나의 언약을 어기면 내가 너희에게 전쟁을 일으켜 너희를 이쪽에서 저쪽 멀리 외국 땅에 사로 잡혀 너희의 남은 인구가 적게끔 하겠다. 그리고 너희의 땅은 황폐하게 되고 너희 성들은 폐허로 변할 것이며 그러면 이방민족들은 젖과 꿀이 흐르던 땅이 폐허가 된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다시 너희를 사로 잡혀 갔던 그 나라들로부터 모을 것인데 그것은 너희가 잘 하여서가 아니라 너희가 끌려 갔던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다시 영광스럽게 하기 위함이다
(렘 46:27) 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주의 선택받은 백성인데도 그들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난 것 뿐 아니라 이렇게 다른 민족들에게 지배를 받는 민족이 된 것을 보면 주 하나님도 별거 아니구나 라고 이야기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의 때가 찰 때 다시 열국 중에 흩어졌던 너희를 모아 그 땅에 데리고 갈 것인데 그 날은 너희가 환난을 당할 때일 것이다. 그러나 그 환난으로 인하여 너희가 구하여 냄을 받을 것이고 그 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던 일인데 너희 나라가 생겨나는 것이 마치 하루에 생겨난 듯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이다. 폐허가 되었던 너희 땅에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와서 경작하게 되고 집을 짓게 될텐데 그 때 다른 나라 사람들은 놀라며 말할 것이다. 버려졌던 폐허같은 이땅이 아름답게 되었고 좋은 도시가 되어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주는 민족이 포로생활로 흩어졌건 황폐한 땅이건 상관없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이루시는구나 알게 될 것이다. 나 주가 이것을 말하였으니 그대로 행하겠다
(겔36:8)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매를 맺으리니 그들이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
성경말씀 대로 이스라엘 나라가 생기기 전에 먼저 땅이 회복된다는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땅이 회복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곧바로 독립을 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더 큰 고난을 하게 된다 1939년 이스라엘 독립을 지지하던 영국은 돌연 유대인들의 이민을 제한하게 된다. 유대 이민자수를 5년간 매년 15000명으로 제한하고 5년 후에는 금지시킨다. 유대인들은 영국에 이민정책을 철회하여 달라고 요청했지만 영국은 귀를 귀울이지 않았다. 아랍인들은 이 기회를 통해 유대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더 위협을 가했다. 그리고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을 통치함으로서 더 심해진 반 유대정책은 1933년으로 접어 들면서 절정으로 치솟고 있었다. 독일에서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영국군의 추방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독립을 꿈꾸던 유대인에게는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렘30:3,7) 3 주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된 자들을 다시 데려오며 또 그들로 하여금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되돌아오게 할 터인즉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7 아아, 슬프도다! 그날이 커서 그것과 비길 날이 없나니 그날은 야곱의 고난의 때로다.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이때부터 환난 (홀로코스트)이 가해지는데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 홀로코스트 사건이 이스라엘국가를 재건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반 유대주의를 외치며 유대인들을 미워하던 유럽이 하루 아침에 유대인들에게 긍휼한 마음을 갖게 된다. 세계여론이 유대인 보호로 전환되면서 각처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에겐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된다. 1945년 홀로코스트가 세상에 알려지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에겐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 하는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은 나라가 있었다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만의 나라를 가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미국의 압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미국 33대 트루먼 대통령이 나라를 세우는데 적극 지지를 나타냈다. 또한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에게는 나라 없는 설움을 겪고 나라를 세우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민족의 처참한 것을 지켜보는 유대인들이나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에게는 고향땅 시온으로 돌아가는 열망이 가득차게 되었다. 한마음이 된 유대인들에겐 팔레스타인으로 물밀 듯이 돌아갔다. 이와함께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다시는 불행한 참사가 겪지 않도록 국제사회 여론이 하루아침에 이스라엘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2000년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다가 하나님 말씀대로 갑자기 하루 아침에 생겨났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보는 것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다. 세계 1차 대전이나 2차 대전이 일어날 확률도 적었지만 그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1차 대전으로 인해서는 이스라엘 땅에 대한 권리를 얻게 되었고 2차대전으로 인해서는 홀로코스트로 인하여 세계의 여론과 유대인들 자체적으로 나라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 독립국가 건설은 출애굽 이후 가장 큰 기적 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이것이 더 큰 기적이냐 하면 출애굽은 애굽 고센땅에서 종살이 한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재건은 세계전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나온 역사이고 어쨌든 출애굽 이상의 기적을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 남은 또 하나의 기적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사건이다. 이스라엘 재건도 예언된 말씀에 따라 이루어지었듯이 예수님의 재림도 곧 이루어질 사건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 모든 일들을 볼 때에 예수님이 곧 문들앞에 이른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독립은 곧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다. 주의 재림은 반드시 성취될 기적이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