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노인의 삶을 그린
영화는 주로 죽음의 문제를 주된 주제로 다루기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영화도 100세 노인의
파란만장한 삶과 옳바른(?) 방법으로 죽음에 도달하는 일종의 죽음에 대한 준비에 대한 영화로 예상했다. 100세 생일파티로 시작하여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회상하며, 주인공은
그와 동행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인생을 묵묵히 살아낼 것을 강조한다. 100세 노인이 레일바이크와 오픈카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게되는 모습은 주인공 알란을 매우 독립적이고 활기찬 노인으로 묘사했다. 사회로부터 격리를
상징하는 양로시설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소극적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보다는 지혜와 경험을
겸비한 한 노인이 자신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창문을 넘는 모습은 사실 예측할 만 했다. 하지만 알란의
끝없는 회상의 반복을 통해 묘사되는 그의 열정이나 활력과 대비되는 묵묵함, 차분함, 생각보다 단순함, 아무렇지 않음,
무념(?) 뭐 이런 감정에 더 집중하게 한다. 노인이
자유를 갈망하는 동안 만나는 파란만장한 사건들은 하나 같이 매우 자극적이고, 죽음에 노출될 만큼 위험한
것들인데, 매번 그 사건들에 대처하는 알란의 모습은 놀랄만큼 매우 장난스럽고 차분하다.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했을 때 알란은 여지없이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좀 당황스럽다.
알란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그의 탈출 여행을 시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시간과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냥 어디론가 간다는 여행 자체가 중요했다. 그가 무작정 여행을
시작하면서 만난 외로운 사람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가족처럼 동행하는데, 사실 이 모든 과정은 어떻게 보면 중범죄 행위의 연속이었다. 알란과 그의 친구는 나무망치로 사람을 실신시켜 냉동실에 얼려 죽이게 되고, 더러운
돈을 챙겨 여행을 떠난다. 가게에서 알바로 일하는 지식이 많은 젊은이를 꼬셔 돈을 나누기로 한 후, 그가 본격적으로 여행에 합류한다. 돈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 알란에게 그는 돈이나 물건에 주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수시로 바뀐다고 말한다. 이처럼 알란은 상식과 양심도 없고, 도덕적이지도 않다. 나이든 어르신에게 기대하게 되는 정직하고 강직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어차피
검은돈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그 돈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것 처럼 합리화를 시키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인심도 쓴다. 막다른 길에 도달하여 찾아간 한 집에서는 검은돈을 회수하려는 원래 돈 주인(?)과 총격전이 벌어지지만, 결국 돈을 찾아온 주인은 코끼리의 엉덩이에
압사되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타고온 차량에 시신을 넣고 불태우기를 계획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실패, 사람이 죽어 도망가는 과정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그가
만난 사람들과 벌어지는 사건들을 겉에서 보면 매우 자극적이다. 또한 그가 백세 이전에 회상하는 사건들도
마찬가지이다. 불우했던 유년시절, 가난, 성장기 동안 부모의 부재는 그를 외롭고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린나이에
정신병원에 가게되고, 사회의 악으로 여겨져 거세된다. 혁명가로서의
삶을 살게되고, 우연히 폭탄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사건이
생길 때마다 그가 보여주는 결단(?)은 매우 빠르고 단순하다는 것이다.
냉동실에서 죽은 시신을 보며 망설이고 있을 때,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부터
찾아야지 쓸데없이 후회하면 명만 준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레일바이크로 시체를 옮겨 아프라카로
가는 배에 싣게된다. 알바로 일하는 청년을 만나 차를 빌려탔을 때에도 훔친 돈을 자신이 가져야 겠다고
결정했다. 딱히 돈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고, 돈에 대한
욕심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돈을 찾아온 가방 주인이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을 때도 문제해결을 위해
직접 나선다. 발리로 떠나는 일행은 우연히 그 곳에서 돈가방의 주인을 만나게 되지만, 우연히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고, 고국에서 알란의 납치사건은 수사가
종결된다. 이게 알란의 빠르고 현명한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헷갈린다. 영화의 끝에 보면 젊은이가 사랑을 고백하기를 망설일 때 알란은 조언한다. 신중하게
분석해서 행동하는 것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고, 쉬운것을 어렵게 하는 것이 항상 문제라고,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라라는 보장이 없으니 소중한 순간이 오면 누려야 한다고…
최소한 알란은
문제해결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문제들을 해결했고, 도전했다. 불우한 한 정신병자 소년이 폭탄을 만들고, 국가의 중요직책의
사람들을 만나 하게되는 모든 일이 어차피 순리대로 벌어질 일이었고, 그는 고민과 걱정하는 모습 한번
없이 의연하게 해결해나겠다. 사실 문제의 해결이라는 말 보다는 그냥 잘 버텨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말 그대로 그는
차분하게 묵묵히 전진했고, 그 순간 순간 빠르고 쉽게 결단을 내렸다.
이처럼 그가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긍정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어머니의 유언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의 어머니가 회상하는 알란의 아버지는 생각과 고민이 많아 사는것이 힘들었던 사람이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고 세상은 살아가게 되어 있다고 말하고 어머니는 눈을 감는다. 그녀의 유언이 알란의 삶을 형성했고, 그 말대로 알란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중할 필요도 또 상황을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때 그때의 감정에 충실하여 소중한 순간을 누렸던 것이다. 너무 과하게 신중하려 노력하고, 100만원 짜리 물건을 살 때는 최소 100번의 고민을 해야 한다고 믿는 내 사고방식을 점검해본다. 물건을 사는 것은 다른 문제이겠지만, 나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 정도로 신중하려 노력했고, 그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알란이 보여주는 삶의 철학은 나에게 약간의 충격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