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 에세이

유전일까이형국 늦겨울과 초봄의 상존이다. 기온이 십일 도까지 올라간다. 추위는 이월二月이라던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다.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니라 동래불사동冬來不似冬이다. 십이월 잠시 춥다가 그 후로는 겨울인지 모르고 지냈다. 일월 하순부터 이월 초순까지 영하 십 도 이하의 매서운 날씨로 겨울임을 깨우쳐주더니 어느새 봄기운이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햇살이 물러나면 기온이 영상 영하로 오르락내리락한다. 일교차 큰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세 주째 기침 감기로 골골거린다. 코로나 삼 년 동안에도 괜찮았던 감기를 코로나가 주춤해진 인제 와서야 걸리다니 이런 아이러니가.코로나 감염되었을 때보다 감기가 몸 상태를 현저히 떨어뜨리고 있다. 코로나 선별 병원에서 “양성입니다. 일주일 격리하시는 거 아시죠. 꼭 지키셔야 합니다.” 했을 때, ‘어이쿠, 나도 결국은.’ 하며 두려움부터 앞섰다. 두려움 속에서 약 먹고 하루 반이 지나니, 목의 칼칼한 기운이 사라졌다. 나가서 활보하고픈 데 그럴 수가 없으니 ‘아, 이게 연금軟禁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한 일주일이었다. 그런데 감기로 벌써 보름이 넘어 한 달 가까이 진행 중이다. 회복됐다, 재발했다 종잡을 수 없다. 가볍지만 만성 축농증이 있는 데다가 과거 긴 흡연 기간으로 인해 기관지조차 좋지 않다. 금연한 지도 열한 해, 기관지 확장증세나 천식 증세도 많이 완화됐다. 하지만 한 번 다친 장기에 완전한 정상은 없는 것 같다. 감기를 제일 두려워하는 요인이다. 마스크 덕분으로 무쇠 장군 마징가 제트처럼 싸대다가 갑작스러운 추위로 감기에 덜컥 걸려버린 거였다.감기에 걸렸을 즈음의 증상이 알레르기 비염과도 비슷했다. 재채기에 콧물이더니 서서히 목이 칼칼해지면서 잔기침이 열흘 정도 끌었다. 혹시나 해서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는 아니란다. 독감도 아니고 그냥 감기라 했다. “이번 감기가 오래 끌 수 있으니, 몸 관리 잘하라.”라고 덧붙였다. 다들 감기쯤이야 하면서 대수롭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어릴 때부터 허약 체질이어서인지 호흡기 질병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독감으로 학교에서 기절한 적 있다. 담임 등에 업혀 집에 옮겨졌고 꼬박 한 달 반 동안 고생했다. 조부께서 호흡기 질환으로 일찍 작고하신 터라 부모님은 엄청나게 염려하셨다고 한다. 고등학교 재학 시엔 체구가 작아 교실 좌석이 늘 앞줄이었다. 한 번은 꽤 심한 기침감기에 걸렸다. 선생님 바로 앞에서 얼마나 기침을 해댔던지, 가르치시는 도중에 수업 못 하겠다며 다 나을 때까지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까지 한 적도 있다. 청소년, 청년 시기에도 감기를 끼고 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호흡기는 계속 말썽을 부렸다.대학 2학년 때 담배를 처음 피웠다. 학우들이 피우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 입으로 코로 연기가 흘러나오는 게 신기했다. 얻어 피우다가 차츰차츰 개피 수가 늘어났다. 결국은 담배를 사게 되었다. 담뱃갑을 어머니께 들킬까 봐 한동안은 조심했다. 입에서 나는 담배 냄새 때문에도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감춘다고 감춰질 일이 아니잖은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말썽부리고, 이렇게 대학 사 년을 보냈다. 사고하지 않는 머리는 달려있으나 마나다. 입만 문청文靑이지 실은 정신적 폐인이었다. 주변인들의 입방아 속에서 스스로 패배자가 되어갔던 삶이 얻은 것은 폐결핵이었다.폐에 피가 차여 각혈이 멈추지 않으니, 대학 병원이고 시립병원이고 간에 꺼렸다. 군 신검에서조차도 병역면제 판정, 신검 판정관은 “빨리 병원에 가라.”라며 고개를 돌렸다. 죽음이 내 머리맡까지 다가왔다. 스물 청춘에 맞이한 횡액橫厄이었다. 살고 싶었다. 하나님께 “제발 살려달라.” 기도했다. 담배 끊고 술도 끊고 오만가지 좋다는 약은 다 구해 먹으며 삶의 끈에 매달렸다. “다시는 폐결핵에 걸리지 않을 겁니다.”라는 완치 판정은 감염된 지 오 년만이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제 버릇 개 주냐.’는 듯이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다. 술이야 말할 나위도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알레르기 비염 약봉지는 필수 소지 물품이었다. 병원에서는 천식을 조심하라며 금연을 권유했다. 웃고 넘겼다. ‘어떻게 이 맛있는 담배를 끊을 수 있나.’ 하나님의 진노인가, 담배의 해악이 나의 가슴으로 곧장 번져왔다. 기침이 시작되더니 멈춰지지 않는다. 호흡조차 곤란하다. 목구멍에서는 연신 쌕쌕 소리가 귀를 울린다. 죽을 것만 같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의사는 “기관지 확장증이 의심된다.”라고 했다. 나이가 더 들면 심각해질 수 있다며, 금연하기를 엄중히 경고했다. 상상을 해봤다. 늙은 몸에 병들어 누워 콜록콜록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쉰다면 마지막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폭풍같은 두려움이 전신을 감쌌다. ‘담배를 끊자, 끊어. 오늘 당장부터다.’금연한 지 십 년을 훌쩍 넘겼다. 정말 잘했다. 늘 가래가 끼인 듯한 목소리가 맑아졌다. 콧속도 상쾌해지고 기분도 가볍다. ‘좀 더 일찍 금연할걸. 그래도 다행이지, 뭐.’ 조부님이 마흔 연세에 폐렴으로 돌아가셨기에 집안 전체가 유전일까 봐 조심한다. 담배는 백해무익이라 금지 품목이다. 감기류는 첫 번째 기피 병명이다. 형님 두 분은 담배 피우지 않는다. 조카들도 그렇다. 아버지도 돌아가실 때까지 하루 담배 두 개비였다. 다만 나와 내 동생, 그리고 내 아들만 담배를 가까이했다. 아들에게 줄기차게 금연을 요구한다. 내가 겪은 해악으로 대를 이을 수는 없다. 제 어미 전하는 말로는 끊는 게 힘들어서 전자담배로 바꿨다고 한단다. 나는 피식 웃으며, “전자담배가 니코틴이 더 많아!” 퉁명스레 말을 던진다. ‘자식들, 길러 봤자 소용없다.’ 모두 제 어미하고만 대화하고 통화한다. 아마 저네들끼리 언어는 따로 있는가 보다. (2023.02) (15.1매 2154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