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아파트 층간소음이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 난리인가?
정말 자동차나 항공기, 공사장 소음보다도 심각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국내 연구진이 흥미있는 연구를 했습니다.
한양대 건축공학과 연구팀이 층간소음과 가전제품등의 생활소음들을 종류별로 비교해 조사해봤습니다. 정밀기기로 객관적인 음에너지를 측정해보고 그 다음엔 같은 소음을 사람들이 느낀 주관적 소음도를 산출해서 비교해보는 실험이었습니다.
음에너지가 가장 높게 측정된 생활 소음은 뭐니뭐니해도 진공청소기 같은 가전제품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소음의 정도가 가장 높게 나온 셈입니다. 하지만 체감소음도는 얘기가 달랐습니다. 비록 진공청소기나 세탁기는 소음도는 높더라도 실험에 참석한 사람들이 느낀 곤혹스러움이나 불쾌감의 정도는 낮게 측정됐습니다.
반면에 윗집에서 사람이 쿵쿵 뛰어갈 때 나는 중량 진동소음은 음에너지로 치면 낮았지만, 사람이 느끼는 곤혹스러움의 정도는 훨씬 크게 산출됐습니다.
결국 체감소음이나 불괘감이라는 것은 반드시 객관적인 시끄러움의 정도와 정확히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째서 윗집에서 아이들이 쿵쾅거리고 돌아다니는 중량 층간소음은 진공청소기 소리보다 음에너지는 적지만 사람에게 느껴지는 불쾌감은 오히려 훨씬 더 큰 것일까?
이를 설명해주는 음향학의 몇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간헐적으로 들리는 소음이 오히려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소음보다 더 듣는 이의 신경을 거슬린다는 점입니다.
가전제품의 소음은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나는지가 예측가능한 소음이고 소음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소리입니다. 반면에 층간소음은 언제 들릴지 모르다가 갑자기 들리고 다시 끊겼다가 하는 불규칙한 소음인 것입니다.
게다가 지속적인 음이 아니고 충격음이라는 점 때문에 불쾌지수는 증폭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층간소음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른바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불리우는 인간의 청각특성 때문입니다.
가령 시끌버적한 소리가 한꺼번에 섞여 들려오는 칵테일 파티장에 있다고 칩시다. 잔 부딪히는 소리, 음악소리,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들이 한꺼번에 들려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옆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주의만 집중하면 다른 소음들은 거르고 옆사람의 목소리만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음원중에서 원하는 소리만을 선별해 듣는 청각 능력을 이른바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를테면 음악 애호가는 장대한 오케스트라의 교향악중에서도 한가지 악기 연주소리, 바이올린이나 첼로소리 만을 골라 들을 수도 있는데 이것 역시 비슷한 원리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효과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회식이나 파티장에서 때로는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다른 사람이 나의 험담을 몰래 하는 것이 다른 소리들을 제치고 내귀로 쏙쏙 들려오는 일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칵테일 파티 효과 탓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같은 인간의 타고난 능력때문에 층간소음은 더욱 고통스런 환경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큰 소음은 아니더라도 한번 윗집의 쿵쾅거리는 소음에 한번 짜증이 나면 그 다음부터는 미세한 소음이라도 더 신경써서 듣게 되고 나중엔 윗집 소음만 계속 귀에 들리는 지경이 되어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공사장이나 항공기, 자동차 소음같은 기존의 소음공해는 당국의 환경규제로 어느 정도 많이 줄어든 일본의 경우엔 상대적으로 소음 에너지는 크지 않지만 심리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이른바 '저주파 소음피해'가 새로운 환경문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아파트 층간소음 피해가 주민들의 심리적 요인 탓만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건교부가 이번에 입법예고한 아파트 층간소음 기준치를 만족하는 아파트는 현재 국내 아파트의 절반도 안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도 대부분 그 동안 방음대책에 대해서는 적절한 기술개발과 연구 투자를 소홀히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던 어느 아주머니의 하소연도 원천적으로 부실공사의 탓이라고 할만 합니다. 솔직이 건설회사들은 층간소음피해의 1차적인 원인제공자라는 점에서 할 말이 없는 것이고 이 부분은 조속히 시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층간소음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천정에 차음구조를 잘 시공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윗집에서 사람이 쿵쿵 거리고 뛰어다니는 중량소음은 100% 거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웃끼리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층간소음 문제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게다가 지나친 층간소음은 경범죄로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조차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경찰을 부르는 극단적인 지경에 이르기보다는 이웃간의 이해와 합의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국 이웃간에 소통이 단절되고 이웃을 생각할 줄 모르는 요즘의 각박한 아파트 문화가 층간소음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창가에가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은 참아도 윗집 부부싸움 소리는 도저히 못들어 주겠다는 아랫집, 아랫집이 호소에 호소를 거듭해도 나몰라라 한밤중에 피아노를 치고 쿵쿵거리는 윗집, 모두 환경법과 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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