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이 사찰로 바뀐 아산 강당사
유생 공부했던 아산 외암정사
흥선군이 사원 철폐령 내리자
마곡사 불상모셔 사찰로 전환
숭유억불 조선시대 특별 사례
충남 아산시 외암마을 가까이에 보통의 사찰과는 다른 형식의 전각이 여러 채 있는 강당사(講堂寺)라는 절이 있다. 이곳은 원래 조선 중기 외암(巍巖) 이간(1677~1727년)이라는 성리학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외암정사가 있던 곳이다. 1707년에 세운 외암정사는 사진에서 보듯 추사 김정희가 쓴(또는 권상하가 썼다는 주장도 있음) 편액 덕분에 ‘관선재(觀善齋)’로 더 잘 알려졌었다. 조선 중기 윤혼과 이간이 이곳에서 강학을 했다고 하는데, 이간이 세상을 떠나자 유생들이 그를 관선재에 배향하면서 ‘외암서사(巍巖書社)’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서원 철폐령으로 위기에 놓이자 이를 피하기 위해 외암서사를 강당사라는 절로 바꾸고, 공주 마곡사에서 불상을 모셔다 안치했다고 한다. 서원 철폐령으로 맞게 된 철거위기를 돌파하는 수단 또는 편법이었다고 하지만,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서원이 사찰로 바뀐’ 특이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강당사는 잠시 강법사(講法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다시 옛 이름인 강당사로 되돌아갔는데, 이 절의 창건주라고 할 수 있는 이간의 문집 판각 307매를 보관하고 있어 사찰의 원류를 증명해주고 있다.
출처 : 법보신문
강당사는 광덕산(해발 699m )북쪽 강당골에 위치한 유일한 조계종 사찰로서 본래 조선 영조 때 경연관(經筵官)을 지낸 외암 이간(李柬) 선생이 지기인 윤혼(尹混)선생과 학문을 강론하던 서원이었다.
1868년경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있자 이를 모면하고자 가까운 마곡사에서 불상 하나를 모셔다 봉안하므로서 사찰의 시원이 되었다. 그 후 140여년간 많은 수행자가 거쳐 갔으나 불사의 인연을 만나 지 못하여 법당은 퇴락할대로 퇴락하여 성상(聖像)을 모시기에 죄송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던 차 전생의 숙연으로 1995년 조계종 바구니 월해(月海). 종민(宗旼) 두 스님이 강당사와 비로소 인연이 닿았다. 그래서 1999년에 대웅전을 중창하고 2002년에 고산대종사의 증언으로 삼존불과 후불탱화를 모시어 명실공히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강당사는 외암선생의 인물동성론과 부처님의 만물은 다 같이 깨달을 성품이 있다는 사상과 일맥상통하여 유교와 불교가 조화롭게 이루어진 특색있는 도량으로 종교분쟁에 허다한 현시대에 종교화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대표적인 사찰이다.
강단사는 현재 외암문집 판각이 지방문화재 333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는데, 앞으로 이간선생과 윤곤선생의 학문정신과 불교 수행정신을 조화롭게 융합하여 정진과 포교의 도량으로서 모든이들이 마음을 위안 찾을 수 있는 천정가람으로 쇄신해 나갈 것이다.
불기 2546년 임오년 음 3월 11일
강당사 대중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