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뷰 맛집 카페가 간직한 놀라운 사연은?
정책주간지 공감 2023. 5. 18
인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초소책방은 책방을 겸한 카페로, 2020년 11월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초소책방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곳은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50년 넘게 경찰 초소로 사용된 건물이었습니다. 버려졌던 초소에서 개방적인 카페로 변신해 계절마다 새로운 서울을 만날 수 있는 ‘초소책방 더숲Ⅱ’ 방문 후기가 궁금하다면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하세요.
버려진 초소의 변신
계절마다 새로운 서울을 만나다
서울 종로구 인왕산 초소책방_더숲Ⅱ
인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초소책방은 50년 넘게 경찰 초소로 사용된 건물이었다. 사진 C영상미디어
인왕산 초소책방_더숲II
영업시간 | 매일 오전 8시~오후 10시
전화 | 02-735-0206
주소 | 서울 종로구 옥인동 산3-1(인왕산로 172)
“뒷집 아범 서울 가고, 앞집 어멈 서울 가네… 뒷집 아범 쇠(牛)를 팔고… 면장 따라 서울 가네.” 1929년 10월 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민요 ‘서울 구경’입니다. 너도나도 소 팔아 서울 구경 간다는 내용의 가사입니다. 1970년 개그맨 서영춘이 부른 ‘서울 구경’의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라는 노랫말은 지금도 기억하는 이가 많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서울 구경의 소망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변하는 건 있습니다. 서울 구경의 랜드마크(상징물)입니다. 한때는 남산타워였고 또 한때는 한강 유람선이었습니다. 황금빛 찬란한 63빌딩도 절대강자였습니다. 2023년 서울 구경 랜드마크는 어디일까? 저마다 생각나는 곳은 많겠지만 인왕산 초소책방도 후보에 올릴만 합니다.
“산책로이다 보니 처음엔 동네 분들이 주로 왔어요. 등산로가 있으니까 등산객도 많이 오고요.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정말 전국에서 왔죠. 요즘은 관광버스로도 심심찮게 와요. 서울 여행 마지막 코스다, 시작 코스다 하면서요.”
초소책방 이하나 팀장은 며칠 전에도 충남 보령에서 단체손님이 방문했다고 말했습니다.주 고객 층을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은 전국구였습니다.
50년 경찰 초소의 변신
(좌)초소책방은 자리마다 서울 전경이나 숲, 거대한 바위 등 각기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우)초소책방 내부 모습. 공간마다 진열된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으며 구매도 가능하다. 사진 C영상미디어
인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초소책방은 책방을 겸한 카페로 2020년 11월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2017년 노원구에 만들어진 ‘복합문화공간 더숲’이 위탁운영하고 있어 정식 상호는 ‘인왕산 초소책방_더숲II’입니다. 초소책방이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곳은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50년 넘게 경찰 초소로 사용된 건물이었습니다. 지극히 폐쇄적인 초소가 어떻게 완벽하게 개방적인 카페로 변신하게 됐을까요?
1968년 북한군의 청와대 기습 시도 사건인 일명 ‘김신조 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북한 특수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인근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인왕산과 북악산에는 30여 개의 군·경 초소 및 경계시설이 설치됐으며 오랫동안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됐습니다. 이후 2018년 인왕산이 전면 개방되면서 대부분 초소 및 경계시설이 철거됐습니다.
그러나 종로구는 경찰 초소였던 초소책방과 근처 병사들의 거주 공간이었던 인왕3분초는 재단장을 통해 보존하고자 했습니다. 경찰 초소 주변의 산세가 수려하고 전망이 뛰어날 뿐 아니라 왕복 1차선 도로인 인왕산 산길부터 산책로 및 등산로를 통한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에 주목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청와대까지 전면 개방됐지만 이 일대는 과거 다양한 규제 법규로 시민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휴식공간을 새로 짓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초소는 건축물대장에 등록조차 돼 있지 않은 건물이었습니다. 종로구는 철거 대신 공간을 재생하는 방안을 청와대에 건의했습니다. 이후 건축·조경 등 각 분야 전문가와 협의하고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등 초소를 공공건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기존 건물의 철근 콘크리트 골조를 살려 지상 1층 194.73㎡, 지상 2층 119.4㎡ 규모의 초소책방을 증축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개관 이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상과 ‘인사혁신처 주관 적극행정 우수사례경진대회’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하는 영예는 물론 서울 여행의 필수코스이자 전국구 ‘핫플(핫플레이스의 준말·인기명소)’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감시하기 좋은 곳의 아름다운 모순
(좌)시간마다 계절마다 모두 다른 풍광을 보여주는 초소책방. (우)경찰 초소 당시 철제문이 마치 미술 설치작품 같다. 카페 여기저기에 그때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초소책방처럼 모순을 드라마틱하게 활용한 공간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초소는 누가 오가나 감시하는 곳입니다. 주변이 한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합니다. 이미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명소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던 셈입니다. 멀리 남산이 마주보이고 인왕산을 배경으로 빼곡한 빌딩 숲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오로지 초소책방이기에 가능한 풍광입니다. 서울이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인지 새삼 느껴지는 절경입니다. 야경 역시 입소문이 자자합니다.
건물도 이런 지리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사방이 숲과 나무, 그리고 웅장한 바위로 둘러싸인 초소책방은 안과 밖을 가르는 벽조차 유리로 돼 있어 사방이 뚫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 2층 내부공간은 물론 옥상과 정원 테라스까지 모든 공간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초소책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그래서 시간이고 계절입니다.
아침, 저녁, 밤까지 초소책방이 보여주는 풍경은 다 다릅니다. 꽃 피는 봄부터 푸른 여름을 지나 화려한 가을, 눈 오는 겨울의 모습이 모두 다릅니다. 그렇기에 초소책방을 경험한다는 건 사계절을 모두 봐야 완성이 됩니다.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사람들이 이 산 중턱을 오르는 이유입니다.
경찰 초소에서 공공건물로 돌아온 초소책방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화장실입니다. 과거에는 도로를 향해 높은 담장이 쳐 있어 외부인은 아예 볼 수조차 없는 폐쇄적인 공간이었다는데 지금은 길과 가장 가까이 면한 담장 자리 입구에 화장실을 배치해 오가는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인왕산 길에는 따로 공중화장실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꼭 필요한 시설인 만큼 카페 이용과 별개로 누구라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이제 초소엔 주위를 감시하던 눈초리 따위는 온데간데없습니다. 그저 벽돌 외벽 일부나 철제문, 난방용 철제 기름탱크 등이 남아 녹슬어 가면서 오늘의 여유를 더욱 빛나게 할 뿐입니다.
책방의 기능도 눈길을 끕니다. 초소책방 1층 서고와 진열대에 구비된 모든 책은 환경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쓰레기, 기후, 오염, 탄소, 미생물, 나무, 숲, 전염병, 미세먼지, 멸종, 빙하, 온난화, 그레타 툰베리(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플라스틱, 생태계 등 다양한 환경 주제를 때마다 선별해 구성합니다. 5월의 초소책방 서가를 채우고 있는 건 식문화와 채식주의 관련 책들이었습니다. 진열된 책들은 모두 샘플북으로 실내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으며 구입을 원할 경우 계산대에 따로 말하면 됩니다.
책방 가는 길부터 서울 구경이라네
(좌)윤동주문학관에서 시작하는 인왕산 자락길. (우)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도 나오는 기린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수성동계곡. 사진 C영상미디어
초소책방을 찾아야 할 이유가 단지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초소책방이 자리 잡은 인왕산은 여러 길이 있습니다. 부암동에서 사직공원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인 ‘인왕산로’, 인왕산로에 인접해 산책할 수 있는 ‘인왕산 자락길’, 산길로 이뤄져 숲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인왕산 숲길’, 서울의 4개 소문(서소문·혜화문·광희문·창의문) 중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창의문에서 시작해 숭례문까지 이어지는 한양도성길 4코스 ‘인왕산 코스’ 등이 대표적입니다.
동서남북 여러 방향에서 인왕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도 많습니다. 인왕산로를 따라 자동차로도 접근이 가능하다고는 하나 책방 주차장은 단 8대만 주차할 수 있습니다. 근방에 다른 주차 공간이나 공영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초소책방을 찾는 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것은 청운동이나 부암동 쪽에서 윤동주문학관을 시작으로 인왕산 자락길이나 숲길을 선택해 오거나 옥인동 옥인연립 앞 수성동계곡에서 올라오는 길입니다. 숲길과 자락길, 등산로가 구간구간 만나고 이어지기 때문에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를 거쳐 갈 것인지 선택하는 게 중요합니다.
윤동주문학관에서 시작한다면 시인이 매일 밤 올라 시정(詩情)을 다듬었다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 초소책방에 도착한 후 수성동계곡을 통해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시절 하숙했던 종로구 누상동 소설가 김송의 집 쪽으로 내려가면 완벽한 문학기행이 됩니다. 시인의 언덕 근처 청운공원에는 종로구 최초 한옥공공도서관까지 있으니 문학산책으로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을 것입니다.
수성동계곡은 또 어떤지요. 계곡 초입에 놓인 1.5m 내외 기린교까지 겸재 정선의 그림 ‘장동팔경첩’ 속 풍경과 거의 흡사해 계곡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입니다. 한양도성길 인왕산 코스엔 홍난파 가옥, 경교장, 돈의문터, 정동극장, 배재학당 등 한국 근대사가 복잡다단하게 펼쳐집니다. 역사 유적만 꼼꼼히 살펴봐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입니다.
이처럼 초소책방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고 그 길마다 오래된 이야기와 멋진 볼거리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초소책방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작은 여행길이 됩니다. 예전처럼 소를 팔 필요는 없고 그저 발품만 조금 팔면 아주 훌륭한 서울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강은진 객원기자
첫댓글
초소였을때 지나쳤던 생각이 나요.
책방이 되었다니 가봐야겠어요.
TV에서 소개된 화면을 봤는데 고즈넉한 분위기 가 참 좋더군요. 저도 못 가봤는데 올 해는 꼭 가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