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시절
주중에는 메리야스공장에서 일하고
토요일 오후, 일요일엔 가축병원 근무,
요즘으로 말하면 투잡(2job)이죠.
수의병원은 미군에서도 근무했으니
그냥 땅짚고 헤엄치는 것,
그당시 울병원에 개훈련사들이
2~5명이 항상 들락거렸지요.
그중에 한명이 군입대로
나에게 견공거래처와 개훈련 노하우를 전수하고서 군입대 ~
요즘으로 말하면, 권리금 지불하고 인수 ~
졸지에 3job / 뼈가 부스러지는 고통의 시작 - 잠부족,
개훈련은 새벽에 하니 시간은 좀 괜했어요.
그러니 주머니는 머니머니 했죠.
거래처중 서대문구 합동 / 대한민국 최고의 부촌이였지요.
그중에 몇 집을 소개하면, 조선일보 방사장, 풍산 사장 등
그중엔 영국대사중이신 강영*대사님댁 세퍼트도 내가 훈련,
대사님 어머니께서 나를 무척 사랑해 주셔서 ~
감나무의 감도 따드리고, 담소도하고, 참 배려를 많이 해주셨는데,
어느날 정색을 하시면서 말씀을
젊은 사람이 돈만 밝히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
뭔 말씀인지 당시엔 도통 이해불가 ~
몇일 후 엊그제 말씀하신 뜻이 뭐냐고,
다시 물었지요, 그랬더만 공부를 해라,
저는 이미 공부 중인데요.
했더만, 외국어를 공부해서 외교관이 되면,
세계 곳곳의 물정을 알 수 있다고 ~
마치 내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후 외국어 공부 시작,
영어는 기본 / 일본어 / 중국어 / 독일어 / 프랑스어 / 서반아어,
매일 극동방송의 외국어대 교수의 강의를 무려 10년간 청취,
KBS옆 대한극장 지인에게 부탁하여 녹음기도 구입하여 횡설수설 ~
근데 외국이민을 추진하던중 복병이, 울 아버지~
미국에 이민하여 외교관이 될려고 발버둥치는데~
장남은 외국이민 안된다고 극구반대, 부모님 허락없이는
나를 데리고 이민 가기로 했던분이 포기 ~
그래서 청운의 푸른꿈을 접고서, 공무원에 도전 했지요.
다음 이야기는 다음으로 ~
첫댓글 외교관이 되었으면 더
멋진 삶을 살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아쉬움이
많이 남겠어요
그때 앞뒤 생각하지 말고
외교관으로 갔어야~
제가 약간 모자라서 아버지말씀을 따랐지요.
@예당호(서울) ㅎ ㅎ 모자란것은 아니고
효심이 깊은 아드님이라서
그랬을거에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지당하신 말씀,
요즘은 외국어 못하면 ~ 글세,
아참 파파고 있네요,
여행중 자신있게 외국어로
대화하는거 보면 부럽더라구요~
그사연은 다음 편을 참고하세요.
젊은 시절의
예당호님께선 체력과 열정이 대단 하셨던것 같습니다
물론iq도 뒷받침 되셨으니 외국어 방송을 들어가며 몇나라의 국어를 설렵 하셨겠지요
영국 대사 어머님 말씀을 잘 이행 하셨는데~
장남의 효심에 그만 꿈을 못이루셔서 제가 생각해도 아쉽네유
허지만 외교관은 못하셨지만 나라를 위해 근무 하신것은 같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셨으리라 생각 됩니다
예당호님께선 좋은 인연들이 많으셨던것 같네유
그만큼 그분들께도 예당호님께서 잘해 드렸다는 결과 이겠죠
편안한 밤 되시고 내일도 다음편을 기대 합니다
다음편을 기대하셔요.
감사합니다.
예당호님은
뭐 하나에 빠지시면 정말 미치도록
열심히 하시는 열정이 그리고 실력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음편을 기대하세요.
이미 작성 중입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시고 계실지 기대 됩니다.
https://cafe.daum.net/8949xiangshun/gpNv/21147
지금은 무엇을 하시고 계실지 기대 됩니다.
다음기대하게습니다
선진지 견학 참조하세요.
예당호님~
그 당시에도 3잡을 하셨다니 삶의 방향이 설정되신
대단 하신 분이시네요
저는 그 때 군생활을 했는데요
지금도 앞서 가시는 분이시겠지요
이세상은 앞서가면
시범케이스로 항상 고달퍼요,
군에서 시범케이스걸리면 ~~
@예당호(서울) 그래서 리더는 항상 외롭고 고달프다고 하지요
그렇기에 여러분들의 삶에 대한 방향을 제시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