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만나다
글/행복촌장
오전 7시 잠수교 남단 세빛섬 주차장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테마라이딩 떠나는 날이다. 목적지는 홍성이라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삽교호도 들릴 예정이라고 했다. 한강 이남으로 자전거를 몰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흥분과 기대감으로 설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일반관광버스에 자전거를 적치하는 일부터 신기했다. 버스 아래 화물칸에는 여러 대를 싣기 위해서 앞바퀴를 빼고 이중으로 쌓았다. 버스 후미에는 안장을 고리삼아 손잡이에 걸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누가 처음으로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스물하고도 여덟 대의 자전거가 가뿐이 실렸다. 그 모든 일에 사단장님이 앞장서셨고 아차산 님, 희망봉 님 등 경험이 많은 노장들이 뒤를 받쳤다.
7시 조금 넘어 28명의 건각을 태운 버스가 출발했다. 쩡이맘 님이 수고해 가져오신 김밥과 버스 기사님이 찬조하신 물이 나누어졌다. 이른 아침 맛있는 만찬이었다.
설렘은 이야기꽃으로 피어났다. 무슨 할 이야기들이 많은지 대화가 끝이 없었다. 막히는 서해안고속도로였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오늘의 목적지 홍주운동장을 네비게이션으로 검색했다. 손 안에서 전국의 교통상황이 실시간 전해지는 시대이다. 예전 007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편리하기는 한데 거기에 비례해 행복지수가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지만 오늘만은 그 모든 것을 놔두고 달리기로 했다.
드디어 홍주운동장이 보이고 기차님이 저만치 수신호를 보낸다. 서둘러 자전거를 내렸다. 공설운동장 하늘이 눈부시다. 전형적인 가을하늘이 저만치서 손짓했다. 업힐이 없다고 했는데 초장부터 언덕을 만났다. 기차님의 안내로 잘빠진 시골길을 달린다. 얼마쯤 갔을까? 멈춘 곳이 ‘이응노 화백’의 생가였다. 지금은 민박을 받고 있는 초가집이었다. 인근 연못에는 아직 지지 못한 연꽃들이 드문드문 피어있었다. 자연의 품안에 덥석 안겼다. 추억을 담았다. 좋은 날씨, 시원한 바람, 좋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얼굴에는 함박꽃이 피어났다.
행복 바이러스가 가을바람에 퍼져나갔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가냘픈 몸매를 자랑하며, 살랑거리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한가로이 날아드는 고추잠자리가 정겹기만 하다.
“아! 이런 데가 바로 사람 사는 곳인데”
시골풍경에 젖어 신음이 탄식처럼 터져 나왔다. 이응노 화백하면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독특한 시선으로 서양화와 한국화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몇 안 되는 화가라는 점이다. 그가 내 고향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다음 목적지 예당저수지로 향했다. 전국 제일의 수량과 면적을 자랑하는 저수지이다.
“무한천 상류에 축조되었으며, 신양천 등의 소지류들이 무한천과 합류해 대규모의 호수를 이룬다. 1929년 조선농지개발사업의 하나로 착공되었으나 8·15 해방 후 잠시 중단되었다가 예당수리조합 주관 하에 다시 착공되어 1964년에 완공되었다. 1983~85년에는 노후 된 시설의 개보수작업을 실시했다. 저수지의 남북길이 10㎞, 동서길이 7㎞, 총 둘레 40km, 저수량 4,607만t, 관개면적 91.89㎢로 단일저수지로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 본래는 농업관개용으로 축조되었으나 생활용수공급과 홍수조절기능도 한다. 또한 각종 담수어가 풍부해 낚시터로도 이용되며,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다음백과 Daum 발췌)
눈치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산과 당진의 앞글자를 따서 '예당저수지'로 이름하였다.
기차님의 안내로 인근에 메기탕으로 유명한 음식점을 찾았다. 얼큰했다. 그리고 담백했다. 민물고기를 대하기 어려웠던 터라 처음으로 대하는 음식이었지만 참 맛있었다. 비릴 것이라는 선입견은 한 수저 국물에 물 건너갔다. 후식으로 나온 민물새우튀김도 고소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배고픈 인생들에게 맛있는 음식은 기쁨이자 만족이었다.
예당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자에 올랐다. '예당정' 아래 녹조 낀 호수를 바라보며 사대강 만의 문제가 아님을 직시하게 된다. 인근에 있는 '예당호조각공원'에 들렸다. 몇 몇 회원들과 사진을 담았다. 조각상 한편에 6.25 참전용사의 명단이 검은 돌에 배꼼이 적혀있었다. 평화로운 이 땅이 전쟁의 포화로 얼룩졌던 역사의 기록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공원 한편에 말없이 큰 목소리로 세워진 것이다.
능금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내리막길과 꼬불길을 건너 평야에 다다르다. 자동차로 지날 때는 가늠하지 못했다. 일직선으로 뚫린 황금들녘을 달렸다. 지루할 정도로 달렸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커다란 곡창지대를 넘었다. 한결같이 고개 숙인 알곡들의 정연함을 지나 국도로 들어섰다. 이른 봄, 화사했을 벚꽃들이 잎새 마저 떨구고 나목으로 도열해 있었다.
이른 가을 낙엽을 밟으며 달리는 처연함을 그대들은 알고 있는가?
가을걷이를 재촉하는 벚꽃의 이른 가을을 지나 삽교호에 도착했다.
쉼이 필요한 시간이다. 아산방조제를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살갑다. 그리고 행복했다. 갈매기들의 군무를 바라보며 넓은 바다에 안긴다.
해변 길을 걸었다. 이따금 낚시에 열중인 강태공들에게 말을 건넸다. 많이 잡혔습니까? 썰물 때는 미끼를 잘 물지 않는다고 했다. 저 멀리 내일의 출사를 위해 쉬고 있는 빈 배들을 바라보며 인생의 가을을 기억했다. 이런 여행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오늘이 고맙고 내일이 그리워졌다. 바다향기 가득한 해변 길을 따라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식당에 도착했다. 서둘러 자전거를 실었다.
그리고 웃음 가득한 저녁 만찬을 만나다.
간재미 무침이 회를 돋구고 이어 나온 대하가 풍미를 더했다.
즐거움이 가득한 건배가 이어졌다.
행복한 여행은 그대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2017. 9.5
첫댓글 즐감하고 갑니다
늘 다녀오시면 후기글에 감동합니다
한소절한소절 맘에 와닿게하시는 촌장님의 작문 멋지세요
눈으로만 한 잔차여행길 촌장님의 글을 읽노라면
지식까지 풍부해지고 마음까지 푸근해지는
풍요로움을 맛보게 되네요
고맙네 친구*~*
집을 나서기전 들뜬마음은
어릴적 소풍길에 나서는 기분이구요
라이딩 시작점에 선 느낌은
육상선수 스타트 선에 서서
총소리 기다리는 두근두근 떨림이구요
라이딩중에는 세상모든근심 다 잊고
오직 따라가야만 한다는
그러나 제발~!
업힐만은 피해갔으면 하는
처절한 몸부림의 질주~
주변 경관도 살필 여유는 언제쯤 일까~!
얼마나 많은 연습과 반복을 하면
함께하신 라이더님들께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생각할 여유도없이 라이딩 끝~
촌장님의 다리는 로봇인가요?
후기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페달질도 힘든길
사진촬영에 동영상 까지
그리고 후기글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오래도록 함께 하고파요~
행복촌장 작가님 글은 항상 설레임과
솔직함이 묻어나며 화려하지 않으면서
순수한 새댁같은 느낌이 묻어납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