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제목 : ◆ 나이트에서 만난 그녀석 ◆
작가명 : ★MIRACLE★
E-mail : lovely8479@hanmail.net
연재장소 : 꽃잎소설 2 게시판
총편수 : 총 118편 완결(번외 5편)
장르 :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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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61.
오늘은 하진이, 지현이 커플과 더블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다.
준수의 얼굴 때문에 1주일동안은 준수 집에서만 만났다. 1주일만에 외출하는 것이다.
나의 간호 덕분인지;; 준수의 얼굴이 생각보다 금방 가라앉았다~ 붓기는 거의 다 빠졌고..
하지만 아직도 입가에 터진 흉터랑 군데군데 피멍들이 조금 남아있다.
준수와 나는 점심때 하진이와 지현이를 만나기로 한 피자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하진이와 지현이가 도착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들어오는 모습...
지현이의 저런 모습이 아직 많이 낯설지만 그래도 잘 어울리네!!
“일찍 왔네? 채린누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예요^-^”
“응~ 안녕~~!!”
“지현누나 안녕하세요~ 하진이가 잘해줘요?ㅋㅋ 아주 얼굴이 활짝 피셨네요!!”
“뭐~ 하진이가 매너가 좀 좋잖아;; 여자를 많이 만나봐서 그런가봐 ㅋ”
“누나 뭐야;; 내가 무슨 여자를 많이 만나봐! 아니라니까 그러네...”
“뻥치지마~ 나 안 속는다!! 준수야~ 내 말이 맞지 않아? 하진이 여자 많이 만나봤지?”
“야;; 너네 싸우지 말고 앉아서 음식이나 시키자!!”
짜식들... 티격태격 하는 모습하고는 ㅋㅋ 준수랑 나도 처음 사귈 때는 저랬나? 이상하게 우린 싸움을 한번도 안했다;
준수가 고등학생인 걸 알기 전에는... 작은 싸움도 한번 하지 않았었다.
우린 음식을 시키고 피자를 먹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누나~ 많이 먹어! 누나 피자 좋아하잖아~”
하진이 녀석이 지현이 접시에 피자를 덜어주며 다정하게 말한다... 호오...
준수는 하진이가 하는 걸 보고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내 접시에 피자를 덜어주었다.
“우리 애기~ 많이 먹어!! 먹고 살좀 쪄야지..”
“누가 누구보고 애기라는거야 지금!! 나 참 황당하네;; 그러고보니 하진이는 누나라고 부르네?”
“그럼요~ 지현누나는 누나 소리가 좋대요^-^”
“준수랑 비교된다~ 나도 누나소리 좋은데! 준수는 누나라고 안하잖아ㅡㅡ^
‘누나!’ 얼마나 좋아? 귀여운데.... 도리어 날 애취급하질 않나....“
“야! 비교할 걸 비교해~ 하진이 자식이랑 나랑 같냐?? 이게 내 스타일이야!”
“근데 준수 너 얼굴 다쳤다더니... 거의 다 나은거야?”
“네~ 누나! 저 괜찮아요~ 채린이가 맨날 간호해줘서 금방 나았어요 ㅋ
하여간 채린이가 1등 신부감이라니까요~ 내조를 얼마나 잘하는데요!!“
준수는 강아지 쓰다듬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 너네는 보면 볼수록 준수가 연상이고 채린이가 연하인거 같아ㅋㅋ”
“지현누나~ 그래두 우리 너무 잘 어울리잖아요! 누나랑 하진이도 잘 어울려요!
하진이 녀석에게 누나가 조금 아깝긴 하지만... 하하”
넷이서 시끄럽게 해대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였지만 수다는 항상 즐겁다!!
우린 밥을 먹고 커플석에 앉아서 영화한편을 보고 나왔다. 시간은 오후 6시쯤 되었다.
“우리 이제 뭐하지? 지현누나~ 뭐하고 싶어?”
“나?? 난 그냥.. 바람 쐬고 싶은데~ 어디 갈데 없을까?”
“아!! 우리 인천 가자!! 월미도~~ 어때? 채린이 너 전부터 바다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렇긴 한데... 지금?? 시간이 너무 늦지 않았나.. 인천이 가까운데도 아니고....”
“안 늦어~ 인천까지 1시간 좀 더 걸리니까.... 충분히 놀 수 있어!!
뭐 늦으면 까짓거 자고 오면 되는거고~~ 지현누나는 어때요?“
“난 상관없어~ 마침 엄마 아빠도 시골가셨고... 외박해두 괜찮아^-^
채린아~~ 가자!! 나도 바다 보고 싶어~ 너 외박 가능하잖아!!”
“그... 그래도....”
“뭘 망설여~~ 서방님이 가자고 하면 따라가는거지!!”
준수는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우리 바다가는거야?? 아싸~~ 누나~ 빨리 가요!!”
하진이와 지현이도 망설이는 나를 무작정 끌고 갔다.
얼떨결에... 바다를 가게 되었다ㅡㅡ;; 좋기는 하지만.. 갑자기 외박이라니ㅠ_ㅠ
들고 나온 거라고는 달랑 지갑과 핸드폰.. 화장품 몇 개 밖에 없는데;;
지하철을 타고 인천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이동했다.
하아~~ 바다 냄새!! 바다 바람이 너무 시원했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사람도 많고..
“바다다~~!!!”
애들도 모두 흥분했다.. 마치 바다를 처음 본 사람인양!
우리가 지나치게 좋아했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릴 쳐다보면서 웃고 간다ㅡㅡ;;
바다를 보는게 너무 좋아서 우린 길을 계속 걸었다. 그러다가 괜찮아 보이는 횟집에 들어가서 회를 먹었다!
“휴.. 배부르다~~ 이제 어디가지? 월미도에.. 바다말고 볼거 또 뭐 있어?
하진아 너 여기 와봤냐? 나 애들한테 말만 들었지 여긴 처음인데;;”
“뭐야~ 월미도 가자길래 아는 줄 알았더니만.. 무작정 끌고 온거냐??
아!! 여기 놀이기구 있잖아~ 그거 타러 가자!! 되게 재미있어 ㅋㅋ”
“놀이기구 나 좋아!! 채린이 너도 놀이기구 좋아하잖아~~”
“어.. 난 좋아하는데... 준수가 말이야~ 보기보다 겁이 많아.. 킥킥..
저번에 놀이공원 같이 갔는데 무서운거 타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라고; 기절하는줄 알았어~“
“푸하하.. 준수 저자식이 놀이기구를 제일 못 타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정말?? 준수 너... 진짜 의외다!! 남자가 그게 뭐야~~ 여자보다 놀이기구도 못타고 ㅋ
그래가지고 어디 채린이 지켜줄 수 있겠어??“
“누나~ 저 놀이기구만 못타는거예요! 그거랑 채린이 지켜주는거랑 무슨 상관이예요;;
에이... 넌 쪽팔리게 그런걸 말하고 그래! 자랑거리도 아닌데 ㅠ_ㅠ“
준수 입이 댓발 나와서 오리 주둥이가 되어버렸다!! 준수는 삐졌을 때가 가장 귀엽다^ㅁ^
삐진 준수를 살살 달래서 놀이공원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는 제일 먼저 타가디스코를 탔다.
난 놀이기구는 좋아하지만 타가디스코는 정말로 싫은데;; 팔힘이 약해서 매일 제일 먼저 떨어진다.
여기저기 부딪혀서 멍들고 아프고... 난 안타겠다고 했지만 애들이 꼬드겨서 결국 타게 되었다.
“아... 나 이거 정말 싫은데... 금방 떨어진단 말야~”
“야! 나 이거는 잘 탈 수 있어~ 힘만 세면 되는거 아냐? 채린아~ 걱정마!
내가 너 안 떨어지게 꼭 잡아줄께~~!! 넌 나만 믿으면 돼!“
준수는 매우 자신만만해 했다! 준수는 옆으로 앉아서 내 몸이 자신의 팔 안쪽에 들어가도록 했다.
하진이와 지현이도 거의 끌어안다시피 다정하게 자세를 잡고 앉았다.
놀이기구가 시작되고... 펑!! 펑!! 놀이기구 운영하는 사람이 우리 두 커플이 부러운지 우리쪽만 계속 튀겨댔다.
“아악~~~”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기구에 매달려 있는게 너무 힘들어서 거의 떨어질뻔 했는데 그때마다 준수가 한팔로 내 몸을 안아주었다.
힘없이 떨어진 여자들은 질투의 눈빛...이라기보다는 거의 저주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결국 난 준수의 몸에 안기어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정신없이 놀다 보니까 차는 끊긴지 오래였다... 이런 ㅡㅡ;;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넷 다 외박을 하게 되었다!
“열두시가 다 되가네; 어디서 잘까? 민박집 아무데나 들어갈까?”
“난 민박집 싫어!! 나 침대없으면 불편해서 잠 못자.. 호텔로 가자!! 돈은 내가 다 낼께~”
까다로운 준수 녀석 때문에 작지만 깨끗하고 좋아보이는 호텔에 들어갔다. 게다가 방은 나란히 두개를 잡았다.
당연히 여자방, 남자방 이겠지?? 하고 생각했건만......... 지현이와 같은 방에 들어가려는 나를 준수가 잡았다.
“어딜 가? 넌 당연히 이쪽 방이지~ 하진아! 너가 그방으로 가라~”
“야!!! 미쳤어;; 누나랑 어떻게 한방에서 자라고..”
“방 침대 두개야~ 뭐 어떠냐? 그럼 내가 너하고 자야겠냐? 징그럽게...
나 채린이랑 같이 잘거야~~ 지현누나! 괜찮죠?^-^ 좋은꿈 꾸세요~ 내일 아침에 봐요!“
이런 민망한 경우가... 넋이 나가있는 하진이와 지현이를 뒤로하고 준수가 먼저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야~~ 너 하진이랑 자!! 나 지현이랑 잘래.. 이게 뭐야ㅡㅡ;;”
“너... 나보다 지현누나가 더 좋은거야? 안돼!! 너랑 내가 한방 쓰는건 당연한거 아니야?
잔말말고 빨리 씻고 자자~ 피곤해 죽겠어... 아까 너 잡아주느라고 힘 다뺐다!!“
난 제멋대로인 준수를 따를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을 원망하며 준수가 하라는 대로 씻고 나왔다.
준수가 씻을 동안에 난 방안을 한번 둘러보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베란다로 나갔다.
방이 마음에 드니까 내가 참지 뭐! 지현이랑 하진이는.. 뭐하고 있을까ㅡㅡa 어색하진 않을까? 둘이 아마 여행은 처음일텐데...
“엄마!!”
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때 뒤에서 기다란 팔이 쑥 나와 내 허리를 감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엄마를 왜 찾아;; 나를 찾아야지~”
준수는 내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준수의 젖은 머리에서 향긋한 샴푸 냄새가 났다~
가만히 나에게 기대고 있던 준수는 고개를 들어 내 몸을 자기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내 입술을 더듬었다.
당연히 그 다음은 키스라고 생각했지만 준수는 뽀뽀만 해주었다. 그러고보니 요새 키스를 한번도 안했다. 이상하네..
“키스하고.. 싶은데... 아직 입술이 안 나아서 못하겠다! 부르터가지고 느낌이 이상할거야;;”
난 괜찮다는 대답 대신에 손을 뻗어 준수의 목을 안았다.
준수의 입술이 까칠했지만, 그리고 입술이 터져서 비릿한 피맛이 났지만 지금 나에게 조심스럽게 키스를 하고 있는 준수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62.
닿아있던 입술이 떨어졌을 때 난 두팔을 벌려 준수를 끌어 안았다.
“오늘도 나랑 같이 자줄거야? ^-^”
“휴우....”
준수는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으며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너 또 나 고문하려고?? 이거 아주 고문에 맛 들렸네... 곤란한데;;”
말로는 곤란하다고 하면서도 준수는 내 손을 잡고 침대에 누웠다.
우린 싱글 침대가 2개 놓여있는 방에서 비어있는 한 침대를 두고 나머지 한 침대에서 비좁게 잤다.
약간 불편하기는 했지만.. 따뜻해서 기분 좋았다~
10시가 넘어서 깊은 잠에서 깨었다. 근데 준수가 안 보인다;; 어디 간거지?
쏴아.. 쏴아...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준수는 아마도 샤워를 하고 있나보다ㅡ.ㅡ
하진이하고 지현이는 일어났을까? 어젯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마구 궁금해진다;;
덜컥.. 문소리가 나고 준수가 욕실에서 걸어나왔다. 티셔츠를 안 입은 채로... 당황스러워서 졸린 눈이 번쩍 떠졌다!
“우리 애기! 잘 잤어?”
환히 웃으며 아침인사를 하는 준수.. 저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뭐... 뭐야... 빨리 옷 입어!!”
난 나에게 다가오는 준수를 피하려고 했지만 준수가 동작이 더 빨랐다.
준수는 날 꼭 안아주고 이마와 입술에 뽀뽀를 해주었다. 으악!! 맨살이 차갑다ㅠ_ㅠ
난 덜 깬 얼굴로 눈을 비볐다. 이런 부스스한 얼굴을 준수에게 보여주다니... 하긴! 저번에 여행갔을때 이미 보여줬지ㅡㅡ;;
준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
“가서 씻고 와~ 잠 잘 자더라~ 많이 피곤했어?”
“피곤하다기 보다는.. 나 원래 잠 많잖아~ 하진이하고 지현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
“글쎄.. 일어났으면 우리 방으로 왔겠지.. 나갈 때 보니까 조용하던데?
전화한번 해볼까? 10시 넘었으니까 슬슬 일어날 때도 됐는데~“
“전화해봐! 아니... 그전에;; 티셔츠부터 입지 그래??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겠네ㅡㅡ;;”
준수는 내 말을 무시하고 그냥 전화기에 손부터 뻗었다.
“여보세요? 나다 임마. 일어났냐? 일어났으면 전화를 하지... 씻고 우리방으로 튀어 와! 밥먹으러 가자~”
나도 얼른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잠시후에 우리방에 하진이와 지현이가 찾아왔다.
근데 둘이 좀 이상하다... 왠지 어색한 분위기.... 둘이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일까?? 난 밥을 먹으러 나가면서 하진이와 준수를 앞에 가게 하고 뒤에서 지현이와 걸어갔다.
“지현아;; 너네 분위기가 왜 그래? 싸웠어??”
“아니... 싸운게 아니라... 야!! 넌 준수랑 같은 방에서 자도 안 어색해? 물론 침대가 다르기는 하지만..
잠을 못자겠더라;; 바로 옆에 남자애가 자고 있으니까.. 기분이 묘했어..
아마 하진이도 그랬나봐~ 나처럼 잠 못자고 계속 뒤척이더라고...
진짜 코라도 골까봐 너무너무 신경쓰이고;;“
“난.. 준수랑 한 침대에서 잤는데도 어색하지 않은데ㅡㅡ;; 너네 사귄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가?”
“뭐야!! 너네 침대 하나에서 같이 잤다고?? 다른 침대도 있는데 뭐하러 같이 자;;”
“준수랑 같이 자면.. 준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서~ 되게 편안하고 잠이 잘 와~”
“이해할 수가 없네.. 에이! 어제 너랑 같이 잘걸 그랬어.. 난 하진이하고 단둘이 여행은 못가겠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다시 바다가 보이는 길을 거닐면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준수야!! 집에 언제 가? 벌써 12시다.. 우리 저녁에 애들하고 약속있잖아~ 빨리 가야지..”
“아 맞다.. 오늘 애들 모이기로 했었지? 깜빡했네..”
“잘~한다!! 약속도 잊어버리고...ㅡㅡ 너 채린누나랑 같이 있으면 아무것도 생각 안하지?”
“오늘 너네 친구 만나기로 했어??”
“네~ 방학중이라 애들 모인지 꽤 되었거든요! 할 얘기도 있고 해서 만나기로 했어요~”
할 얘기라니... 준수가 강진호한테 맞은거 때문에 분풀이를 하려는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그러면 준수가 맞은 거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데... 강진호와의 악연이 계속 될텐데..
내가 걱정하는 것들이 내 얼굴에 모두 드러났나보다. 준수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냥 애들 얼굴 보려고 모이는거야~~^-^ 집에 가기전에.. 유람선 한번 타자!
바다까지 왔는데.. 배는 한번 타고 가야하지 않겠어?“
준수의 말대로 넷이서 유람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때였다.
하진이는 지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준수는 날 집에 데려다주었다.
“많이 피곤하지? 집에 들어가서 푹 쉬어~~ 내일 과외할 때 보자!”
준수는 나를 안아주고는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아직 초저녁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많은데;;
“친구들 잘 만나~ 재미있었어! 내일 봐~”
집에 돌아와서 씻고.. 많이 피곤했던지 침대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준수가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술집.. 준수가 들어서자 애들이 일어나서 반긴다. 술집에는 남자애들 10명정도가 빠글빠글 모여있다.
“민준수~ 어디 얼굴 좀 보자!! 생각보다 많이 괜찮은데?”
“그러게.. 하진이 말로는 되게 심했다던데.. 흉터만 조금 남아있네?”
“응~ 다 너희 형수님이 간호를 잘해줘서 그런거야 임마!! 히히..”
“이 새끼... 형수님은 무슨;; 제수씨는 잘 지내고?? ㅋㅋ”
“당연히 잘 지내지~ 어제 여행갔다가 방금 왔어! 월미도에 갔다왔지롱~~”
“뭐야! 여행 또 갔다온거야?? 어제라고?? 이야.. 좋겠다.... 염장지르냐? 젠장!!”
“단둘이 간게 아니라~ 하진이커플도 같이 갔었어!”
“하진이?? 야!! 하진이 여자친구 생겼어? 전에 뭐 낌새가 있다 하더니... 사귀는거야?
어떤 여자야?? 이쁘냐?“
“하진이 오면 물어봐라~ ㅋㅋ”
하진이는 양반이 아닌가보다.. 하진이 얘기가 나오자마자 술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하진!! 너 이리로 와봐!! 너 여자친구 누구냐?? 준수커플이랑 여행갔다왔다며?”
“벌써 들었군;; 안그래도 오늘 너네한테 말하려고 했어~ 채린이 누나 친구야!
전에 말하지 않았냐? 그 누나랑.. 결국 사귀게 되었어~ 얼마전에!“
“이것들 연상 붐이구만.. 니가 이쁘다고 했던 누나 맞지? 좋겠다! 축하한다 임마~
우리한테 소개시켜줘야지!! 언제 보여줄꺼냐?“
“아직은... 사귄지 얼마 안되어서;; 좀 더 지나면 보여줄께!! 기다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다들 술을 조금씩 마셨다. 술이 들어가자 곧 진지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준수야... 강진호... 그 개자식 어떻게 할거냐? 우리가 찾아갈까하는데..
너 당하고도 그냥 넘어가면 그 자식들 우리 우습게 보고 더 깝칠거야..“
“맞아! 그런 자식은 혼나봐야 된다니까! 전에 한번 혼난걸로도 모자라서.. 금새 기 살아서 깐죽대잖아..
요새 그 진한공고 새끼들 하고 다니는 꼴이 장난아니라니까..
예전에는 우리보면 설설 기던 자식들도 다 얼굴 빳빳이 들고 우리 갈구고 가!“
“야... 난.... 이쯤에서 끝내고 싶다. 강진호 그 자식이랑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아..
예전에 나도 그 자식 반 죽여 놨었으니까 이걸로 끝내자!
그 자식이 나한테 당했던거에 비하면 내가 당한건 아무것도 아니야..
진한공고 새끼들은.. 이제 신경꺼라. 어디서 개가 짖나보다 하고 무시해버려..“
“야!! 말이 되냐? 너.. 그렇게 얻어 터지고 그냥 넘어간다고? 민준수... 이건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도 상관 있는 문제라고!! 안돼... 너가 괜찮다고 해도 우리가 안 괜찮아...“
“제발... 넘어가자.... 나 이제 쌈박질 하고 다니고 싶지 않다. 그만하자....”
“하진아! 준수 이 새끼 왜 이러냐? 너.. 설마 강진호한테 겁먹었냐?”
“미친!! 내가 왜 그런 새끼한테 겁을 먹어? 이제 싸움 하기 싫다고!! 그게 다야..”
“그래... 나도 생각해봤는데.. 준수 말이 맞는거 같아. 더 이상 그 자식들하고 얽혀봐야 좋은 일도 없고..
우리끼리만 잘 지내면 되는거 아니야? 강진호 패거리는 이제 신경쓰지 말자...
자!! 오랜만에 만났는데 분위기가 왜 이러냐? 다들 인상피고!! 놀자 놀자~~“
분위기 메이커 하진이의 노력에 애들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준수 친구들은 준수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로 했다.
‘이제는... 싸움하는 일은 물론.. 맞고 와서 너 마음 아프게 하는 일도 없을거야..
민준수.. 내 이름 석자를 걸고 맹세할께...'
#63.
준수와 과외하는 날..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어? 준수네 집 전화번호인데.. 준수인가?
“여보세요~ 준수야?”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준수 엄마예요~”
헉...... 나도 모르게 ‘준수야’라는 말이 나와버렸다...
이런 이런.. 자칫 ‘자기야’라거나..‘서방님’이라는 말이 나왔으면 큰일날 뻔 했다ㅠ_ㅠ
“아.. 예~ 안녕하세요~(-_-;;)”
“선생님! 오늘 준수 과외하는 날이라면서요?”
“예~ 지금 나갈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늘 저녁식사 같이 했으면 해서요~ 준수 아빠가 귀국했거든요!
준수 아빠가 선생님을 전부터 한번 뵙고 싶어해서요.. 시간되시죠?
바쁜 사람이라.. 오늘 아니면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꼭 시간좀 내주세요~“
“예... 예;; 그럴께요~ 이따 뵈요!”
휴우... 저번에 준수 어머니하고 밥먹을 때도 불안해서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는데..
이번엔 준수 아버지라니!! 얼떨결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버렸지만... 엄청 후회가 됐다.
무슨 핑계거리 없을까? 급한 일.. 급한 일.... 확 엄마가 아프다고 해버려?ㅡㅡ;;
난 얼른 준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야!! 큰일 났어!! 너네 어머니한테 전화왔었어ㅠ_ㅠ”
“아아... 기어코 전화를 했구만;;”
“넌 알고 있는거야?? 너네 아버지라니.... 말이 돼? 나 못해!!”
“괜찮아 괜찮아!! 우리 아버지가 좀 무뚝뚝하긴 하지만.. 그리고 약간 무섭기는 하지만..
그래도 따뜻하신 분이야~ 넌 그냥 우리 아버지가 묻는 말에 대답하고 밥만 먹고 가면 돼
너무 긴장하지마!! 장차 시아버지 될 분이니까.. 한번 만나보는 것도 좋지않아? ㅋㅋ“
“나 농담할 기분 아니야!! 바보야!! 아... 어쩌지.. 나 무서워.....”
“에유~ 무서워하지 말고!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만 하면 돼~ 아! 예쁘게 하고 와~~”
“뭘 예쁘게 하고 가!! 맞선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대충 입고 갈꺼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난 옷은 뭘 입을지 머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엄청 신경을 썼다.
우선 깔끔하고 여자다워 보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저번에 준수가 사준 원피스를 꺼냈다.
여행 갔을 때 빼놓고는 한번도 입지 않았던 옷인데;; 하얀 원피스에 분홍색 가디건, 그리고 분홍색 샌들.. 모두 준수가 사준 것이었다!
화장도 분홍색 계열로 엷게 했다. 평소엔 귀찮아서 그냥 푸르고 다니는 머리도 반묶음을 해서 예쁜 핀을 꽂고...
거울을 봤는데, 이렇게 꾸민 내 모습이 나조차 어색해보인다ㅡㅡ;; 아버님 맘에 들까? (헉; 아버님이라니!!)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어서 오세요~ 선생님은 갈수록 예뻐지시네요^-^”
“아.. 감사합니다~ 준수는 위층에 있나요?”
“네~ 준수 아빠는 과외 끝날 때쯤에 들어올 것 같아요~ 회사 갔거든요! 올라가 계세요~”
똑똑...
“들어와~”
덜컥.... 준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다. 평소같으면 노크도 안하고 들어갔을텐데..
준수는 잔뜩 꾸민 내 모습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왜... 왜? 이상해?”
“아... 아니..... 너무 예뻐~~~ 하하... 대충 입는다더니... 킥킥킥.. 역시 넌 너무 귀엽다니까~
평소에도 이렇게 하고 다녀! 얼마나 이쁘냐? 뭐 넌 안 꾸며도 예쁘지만...“
“괜찮....아? 어른들이 보기에 말이야...”
“단정하고 좋잖아! 우리 아버지는 ‘여자는 여자 다워야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거든~
분명히 너 맘에 들어하실거야! 내가 여자보는 눈이 아버지 닮았어~“
준수와 과외를 하는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갔다. 저녁시간.... 과외를 끝내고 준수방에 그냥 앉아있는데 밑에서 아줌마가 올라오셨다.
“선생님, 과외 다 하셨어요? 준수 아빠 들어왔어요~ 내려오세요!”
윽.... 긴장된 순간이다. 준수 아버지와의 첫 대면... 준수와 닮았을까?ㅡ.ㅡa
준수가 아버지를 닮았다면 멋진 신사이실 것 같은데~ 기대기대//
떨리는 마음으로 준수와 함께 계단을 한개씩 한개씩 내려갔다.
“어떡해!! 나 떨려.....”
“괜찮다니까~ 긴장하지마~ 내가 있잖아!”
준수는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면서 빙긋이 웃어주었다.
1층으로 내려갔을 때 거실 쇼파에 준수 아버지로 추정되는 분이 앉아계셨다.
그 분은 내려오는 날 보고는 일어나셔서 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준수 아버지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전 김채린이라고 해요”
나도 꾸벅 절을 했다. 생각보다 무서운 인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묘하게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었다.
얼굴은...... 준수와 심하게 닮았다!! 특히 오똑한 코와 쌍꺼풀이 진하지 않으면서도 멋있는 눈이...
나도 몰래 넋놓고 준수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준수가 나이가 먹으면 이렇게 변하는걸까?
“선생님..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헉....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ㅠ_ㅠ”
“죄송할 것 까지야... 허허.. 식당으로 가시죠~”
준수 아버지와 함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딩동~’ 벨이 울렸다. 누가 온거지?
“아! 시준이가 왔나보다... 준수야, 가서 문 열어줘라”
“시준이.. 형이요?? 형 부르셨어요?”
“그래. 시준이 얼굴본지도 꽤 되서.. 이참에 보고 가려고 불렀다.
선생님이 시준이 친구 분이시라며? 그럼 문제될건 없잖아?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친구.... 였었다고 하는게 맞는 말인데;; 시준이까지 합세해서 난 더욱 더 소화를 할 수 없게 생겼다.
먼저 준수 부모님과 식당에 자리잡고 앉자 곧 시준이와 준수가 함께 들어왔다.
“이모부, 안녕하세요~”
“그래... 녀석.. 공부는 잘 되가냐? 방학인데 뭐 하면서 지내?”
“저야 뭐 학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평범하게 지내요~”
“준수 과외 선생님을 너가 소개해줬다지? 고맙다! 선생님 덕분에 준수 성적도 많이 올랐더라!”
“아... 저한테 고마워하실게 아니죠;; 다 채린이 능력인데요 뭐~^^”
달그락.. 달그락...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다. 내 미각이 마비되어 버린 것 같다ㅠ_ㅠ
긴장한 탓에 음식이 어떤 맛인지 알 수 조차 없었다. 준수는 표정이 잔뜩 굳어있는 나를 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준수 아버지가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전공하는지, 나중에 무슨 직업을 가질 것인지 등등..
난 고분고분 대답을 했다. 나에 대한 질문의 시간이 끝나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준수 아버지가 말문을 여셨다.
“준수 너 얼굴에 흉터들 보니까... 어디서 또 한판 했냐?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싸움하는거야?”
“아니예요.. 아버지... 저 이제 싸움 안해요. 넘어져서 다친거예요;;”
“핑계는 좋다! 한눈팔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영어회화도 열심히 해라.
나중에 미국으로 대학가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지!“
미국대학??? 이게 무슨 말이지?
“아버지! 저 대학 한국에서 다닐거라니까요... 미국 안가요... 군대도 갔다올거구요.. 계속 한국에서 살 거예요”
“네 성적으로 4년제 대학 갈수는 있겠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미국으로 대학을 가...”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교 가면 되잖아요!! 열심히 할테니까.. 미국가라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저 안가요”
“그래...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시준이가 다니는 S대.. 선생님이 어디학교라고 하셨죠? K대?”
“네...”
“S대나 K대 이상이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이다. 할 수 있겠냐?”
큭.... 내가 준수의 모의고사 성적을 아는데;; 지금 준수 성적으로는 서울에 4년제는 물론 2년제도 꿈도 못 꿀 정도다... 거의 찍기 수준인데ㅠ
“아... 알았어요!! 가면 되잖아요!!!!!”
준수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큰소리를 뻥뻥 쳤다. 어쩌자고 저런;;
만약에 준수가 계속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준수는 미국으로 가버릴테고, 그럼 우린 결별인가?
으어어~~ 안돼!!! 난 이제부터 준수를 스파르타 식으로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_+
그런데... 아까부터 시준이와 계속 눈이 마주친다...
이런 찝찝한 기분... 좋지 않다!!
#64.
불편한 식사자리... 한시간동안 내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었는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준수와 첫 키스 했을 때보다도 더 떨렸다! 그 시원한 집에서 이마에 땀방울까지 송글송글 맺혔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드디어 집에 갈 시간!! 난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맛있는 식사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준수 잘 부탁드립니다.. 수고 좀 해주세요! 다음에 또 뵙죠..”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이모, 이모부.. 저도 이만 가볼께요~ 약속이 있어서.. 놀러올께요!”
윽.. 시준이는 더 있다 갈 줄 알았는데 나와 똑같이 그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
시준이가 나와 함께 나가는 걸 보고는 준수의 표정이 확 변해버렸다. 인상 좀 풀지ㅡㅡ;;
부모님이 계셔서 날 마중나오지도 못하고.. 시준이와 내가 단 1초라도 함께 있는게 불안한가보다.
시준이와 정원을 걸어서 대문까지 같이 나왔다. 빨리 헤어지고 싶은데...
“시준아, 너 어느쪽으로 가? 난 버스타고 갈건데..”
“나도 버스타고 가~ 정류장까지 같이 가면 되겠네...”
여기서 정류장까지는 대략 10분거리인데... 10분을 시준이와 함께 해야 하다니..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시준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우리 이모부 처음 뵙지? 굉장히 바쁘신 분이여서.. 어땠어?
아까 보니까 많이 불편해 하는 것 같던데... 오늘 이모부 만난다고 그렇게 꾸미고 온거야?
예쁘다~ 하얀 원피스가 너무 잘 어울려^-^“
“고.. 고마워;; 이거... 준수가 선물해준거야~ 옷이 날개지 뭐!
준수 부모님 두분 다 좋으신 분인 것 같아.. 준수 아버지는 약간 엄하신 분 같았지만~“
“우리 이모부가 약간 무섭지.. 준수도 이모부한테는 꼼짝 못하거든! 한번 화내시면 장난 아니라서;;
준수가 외아들이다 보니까 이모부가 준수한테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셔~
그래서.. 아까 미국으로 대학 보낸다는 얘기도 나온거고.. 아마도... 이모부는 꼭 그렇게 하실거야.
지금은 준수가 안 간다고 하지만 결국 따를 수밖에 없을거야...“
기분이 매우 다운되었다. 시준이는 준수가 미국으로 가서 결국 나와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아닌데... 난 결코 준수를 보내지 않을건데...
“준수 미국 대학으로 가도록 내가 내버려두지 않을거야.. 공부 열심히 시켜서 4년제대학 보내면 되잖아?
준수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공부 열심히 할거라고 생각해...
너무 그렇게 단정짓지마. 만약에... 준수가 미국으로 간다고 해도 난 준수랑 헤어지지 않아.
거기서 대학교 졸업하면 한국으로 돌아올거고.. 그리고.. 방학때는 들어와 있을거 아니야?
나 기다릴 수 있어.. 준수가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으면... 몇 년이라도...“
내 말을 다 듣고는 시준이는 벙찐 표정을 했다.
“그 정도로... 준수가 좋은거야? 널... 만날때마다... 넌 점점 변해가.
준수를 향한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더 깊어져 가는 것 같아...
이제는... 내가 끼어들 자리조차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도대체.. 뭐 때문에 준수에 대한 마음이 강해져만 가는거야?
난 처음에 준수가 널 많이 사랑하는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넌 아닐거라고...“
“사랑에 빠지는 데 이유가 있어? 멋대로 마음이 움직여... 너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면 알거야”
시준이와 나는 길을 걷다 멈춰서서 서로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았다.
“채린아!!”
엑? 준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준수는 집에 있을텐데??
내가 고개를 돌리자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준수가 보였다.
준수는 시준이와 나 사이에서 멈춰섰다. 내 얼굴을 쳐다보고는 다시 시준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형! 뭐야? 아직까지 채린이 포기 못한거야? 이 세상에 여자가 채린이 하나뿐이야?
얘는 내 여자라고.. 절대로 안 넘겨준다고 했지!! 이제 그만 포기하고 다른 여자 찾아!!
내가 예쁘고 착한 여자라도 찾아서 소개시켜줄까??“
“민준수! 넌 다른 여자 눈에 들어오냐? 너 같으면 채린이 포기하고 다른 여자 만날 수 있겠어?
넌 왜 너 생각밖에 못하냐? 나도 채린이 좋아해.. 니 마음하고 같다고!!
사람 마음이 맘대로 되는거 아니라는거.. 너도 잘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나에게 채린이 잊으라고 강요하지마.
채린이를 잊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내 마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시준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버렸다.
“윤시준.... 진짜.......... 씨............”
또 화가 나버렸다. 준수는 화를 삭히려는 듯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준수야~ 화났어? 인상 좀 풀어라;; 무섭잖아!”
“씹.........”
“욕하지마!! 그래도.. 시준이 네 사촌 형이잖아;; 우리 준수 착하지? 그러면 안돼~”
“으아~~ 열받아!! 열받아!!!!”
“화내지마~ 시준이는.. 신경쓰지마.... 시준이 말이 맞는거 같기도 해~ 사람 마음이 맘대로 되는거 아니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너 지금.. 윤시준 편드는 거야??”
“그런게 아니라! 바보야ㅡㅡ 내 말을 끝까지 들어봐!! 나도.. 너가 고등학생이란거 알고
너랑 헤어지려고.. 다시는 안 보려고 마음 먹었는데... 그게 안되서 지금까지 너와 만나고 있잖아~
너한테 한번 빼앗긴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려서... 시준이.. 곧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거야. 그때까지 기다려보자..“
“나... 불안하단 말이야! 형이 아예 안볼 사람이면 모르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 너와 계속 마주치게 될텐데! 난 그게 너무 싫다고...“
“너가 불안해할 이유는 없는 거 같은데? 내가 시준이한테 마음이 돌아설거라고 생각하는거야?
날 아직도 그렇게 못 믿겠어?“
“그런게 아니라!!”
“그럼... 시준이는 이제 생각하지마! 다시 한번 말할께! 내 마음.. 쉽게 변하지 않아.
준수 너가 나 사랑해주는만큼 나도 너 많이 사랑하니까.. 자신감을 가져~~ 알았지?“
“휴우....... 알았어... 노력해볼께...."
"으유~~ 말도 잘듣고! 예뻐!!>_<“
난 준수의 엉덩이를 톡톡 두들겨주었다;;
“으악! 뭐야~~ 어디 여자가 다 큰 남자 엉덩이를 만져!!”
“치이! 너도 내 엉덩이 만지고.. 가슴까지 만지면서!! 쌤쌤이다~~ 메롱!ㅋㅋ
아!! 너 집에 뭐라고 하고 나왔어? 부모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시는거 아냐?ㅡㅡ;;”
“시준이 형한테 할 얘기 있다고 하고 나왔지 뭐.. 이제 들어가야지;;
미안~ 집에 데려다줘야 하는데 못 데려다줘서..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줄께! 가자!“
준수는 내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렸다.
“야;; 손 내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우리 엄마 아빠 동네에 아는 사람 없어;; 그래서 봐도 고자질 못하니까 안심해~”
그래도 불안했지만.. 결국 준수의 손을 내리지 못하고 버스정류장까지 왔다.
“준수야...”
“응?”
“너... 나랑 헤어지면 어떨 거 같아?”
“왜 그런걸 물어봐? 당연하잖아!! 예전처럼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겠지.. 그것보다 더 할지도..
술과 담배에 쩔어서 폐인처럼 하루하루를 보낼거야. 매일 너만 생각하면서...“
“너... 나랑 헤어질 수 있어?”
난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처음엔 장난식으로 대답하던 준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 질문... 어떤 의도로 하는건데? 그런 말조차 꺼내지마. 듣기 싫어...”
“대답해봐.... 중요해...”
“당연히 못 헤어지지!! 너 없인 안된다고 몇 번 말해! 넌 나랑 헤어질 수 있어??”
“훗... 아니~ 나도 못 헤어져!! 그래서 말인데.... 너!! 공부 열심히 할꺼지?
미국 대학 가지 않도록... 너희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 갈 수 있지??
힘들겠지만 노력해줘... 나 너가 미국으로 간다고해도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
하지만... 그럼 너도 나도 너무 힘들잖아? 난 너가 내 옆에 계속 있어주기를 바라니까..
약속할 수 있어? 지금처럼 내 옆에 쭉 있어주겠다고...“
“약속!! 나.... 오늘부터 당장 공부만 한다!! 두고봐!! +_+
절대로.. 너 실망시키지 않아. 너랑 한 약속은 다 지켜낼거야....
널 위해서 공부할께. 널 사랑하는 만큼 공부할께... 넌 옆에서 날 지켜봐주기만 하면 돼!“
활짝 웃는 준수의 모습을 보며 준수가 멀리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말끔히 사라졌다.
준수는 분명히 내 옆에 있어줄거야... 나하고 한 약속은 꼭 지키려는 아이니까.....
#65.
준수네 아버지는 이틀 후 일 때문에 미국으로 가셨다. 한동안 또 돌아오지 않으신다고;;
아버지가 떠나자마자 준수는 바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동안은 아버지에게 여기저기 끌려다니느라 나와 오래 통화를 못한 까닭에..
“휴우... 아버지 드디어 갔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답답하기는..ㅡㅡ;;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았겠네~ 어머니는 집에 계시고?”
“아니.. 이번엔 엄마도 같이 갔어! 엄마는 미국에 고모네 댁에서 지내면서 여행한다고..
엄마는 아마 한달정도 있어야 올껄? 뭐 이제 나 혼자 집보는 거지~ 오늘 뭐해? 약속 잡았어?“
“오늘은.. 나 동아리 선배한명이 어학연수가거든~ 송별회 하는 날이야! 저녁때~”
“거기.. 안가면 안돼? 가지말고 나랑 놀자~~”
“안돼~ 얼굴이라도 비춰야지;; 지현이랑 수란이랑 미나랑.. 다 오기로 했단 말이야!!”
“쳇.. 나보다 친구들이 더 중요하고 선배가 더 중요하다 이거지? 알았어!”
“준수야... 삐졌어? 왜 그래~”
“그래! 삐졌어!! 보고싶은데... 우리 이틀동안 못 봤잖아! 넌 나 안보고 싶어? 난 보고 싶어 죽겠는데...“
“에유;; 나도 너 보고싶지.. 왜 안보고 싶겠어... 준수야! 그럼.. 지금 만날까?
나 어차피 저녁에 송별회하니까 7시쯤에 학교로 가면 돼~
지금이 1시 조금 넘었으니까.. 준비하고 만나면 되겠다!! 밥은 먹었어?“
“아니.. 안 먹었어~”
“잘됐네! 나도 아직 안먹었는데~ 같이 점심먹자^-^”
“내가 너네 집 앞으로 갈께.. 몇시까지 가면 돼?”
“그럼 두시까지 와~ 이따가 보자!”
만나자고 하니까 금세 목소리가 밝아지다니;; 이럴 때보면 딱 연하같은데 ㅋㅋ
준수는 2시 정각에 우리집으로 왔다.
“빨리 왔네? 뭐 먹을래? 어디로 가지?”
“몰라. 아무거나..-_-”
“준수야~~ 아직도 삐졌어?? 입나온거 봐라!! 오리같애~~”
난 아직도 삐진 척을 하고 있는 준수에게 팔짱을 끼고 먼저 스킨쉽을 시도했다.
역시나 단순하고 착한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듯, 자꾸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못참겠는지 곧 함박웃음을 짓고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우린 지하철을 타고 종로로 나가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밥 먹고 서점가자”
“서점?? 서점은 왜? 뭐 살거 있어?”
“문제집 사려고... 너하고 한 약속 지키려면 공부해야지!”
“어유~~ 기특해!! 혼자 공부하려고? 방학인데 안 놀고?”
“하루 종일 공부한다고 하면 구라고.. 그래도 틈틈이 시간내서 하려고~
나 문제집 골라줘! 아버지가 책 사서 보라고 돈도 많이 주고 갔어ㅡㅡ;;
맞다!! 아버지가 너 과외비 이번달부터 올려준대~ 아마 통장에 돈 들어갔을걸? 확인했어?“
“아니.. 아직 과외비 받을 때 안 되었잖아.. 한 열흘 남았는데?”
“보너스라고 생각해;; 이번에 들어간건 아버지가 준거고.. 과외비는 계속 엄마가 넣어줄거야~
우리 아버지가 너 때문에 내 성적 많이 올랐다고.. 뭘로 보답할까 고민하시더니 결국은..;;“
“부담스러운데ㅠ_ㅠ 솔직히.. 너무 찔리잖아! 내가 진짜로 과외선생도 아니고... 못받겠어!
그리고 나 지금 받고 있는 돈도 충분히 많아~ 더 올려주시다니.. 말도 안돼“
“그냥 받아~ 그리고.. 따질려면 아버지한테 가서 따져;; 미국까지 쫓아가든지~ ㅋㅋ”
에이씨;; 모르겠다!! 양심이 찔리기는 하지만... 일단 받고 준수 더 열심히 가르치자ㅠ
서점에 들러서 문제집을 몇권 샀다. 이제 나머지는 준수에게 달려있지! 얼마나 열심히 푸느냐..
“문제집 사놓고 썩혀두면 안돼? 매주 검사할꺼야!! 분량은 너가 정해봐~
얼만큼이 좋겠어?? 일주일에 몇페이지??“
“음.. 하루에 20페이지 이상!!”
“20쪽??? 너.... 문제집 푸는걸 쉽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어려워~ 잘 할 수 있겠어?”
“그럼, 그럼~~ 남자가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날 아직도 몰라? 한번 입 밖으로 낸 건 꼭 지키잖아!”
자신만만해하는 준수가.. 약간 걱정되기도 하고 못 미덥기도 했지만 내 남자친구 내가 안 믿으면 누가 믿겠어!!
서점에서 나와 무작정 종로 거리를 걸었다. 가다가 어디 들어갈만한 데 있으면 들어갈 생각으로..
길을 가던 중 준수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보는거야?”
“우리 저거 찍자!! 스티커 사진~~ 나 한번도 안 찍어봤는데..
맞어~ 저게 내가 여자친구 생기면 해보고 싶던 거 일순위였어^^“
준수는 매우 즐거워하면서 스티커 사진가게로 얼른 들어갔다. 나도 남자친구랑 스티커 사진은 안 찍어봤는데.. 재미있겠다!!
우린 주인 언니가 추천해준 요즘에 새로 나왔다는! 후레쉬가 터져서 얼굴이 뽀샤시하게 나오고, 낙서도 할 수 있는 기계에 들어갔다.
처음엔 평범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브이도 해보고.. 다정하게 어깨에 손도 올리고..
사진 기계는 총 4번을 찍어서 그중에 맘에 드는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린 이미 3번을 찍었고, 마지막으로 한번의 기회가 남았다.
“이번엔 어떤 포즈로 할까? 브이~ 이런거 너무 식상해!”
“나....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해도 돼?”
“뭔데?”
“가까이 와봐..”
준수는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얼굴을 점점 가까이 댔다. 설마... 설마??
“야;;; 너!!”
“자~ 찍습니다! 하나... 두울..”
“비켜;;; 읍!!”
난 준수를 밀어내려 했지만 입술이 닿고 말았다.
“셋! 찰칵!”
헉....... 이 포즈로 사진이 찍힌 것인가?? 준수와 나는 얼른 기계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을 바라본 우리... 희비가 교차했다;; 준수는 맘에 드는 듯 활짝 웃었지만 내 얼굴은 찌그러졌다.
내가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준수는 우리가 어깨동무를 하고 다정하게 나온 사진과, 방금찍은 키스 사진.. 두가지를 선택해버렸다!!
“으악~~ 이거 선택하면 어떡해!!”
“왜~ 난 이 사진이 제일 맘에 드는데~ 잘 나왔잖아! 이쁘게^ㅁ^”
마지막 사진.. 좀 웃긴다;; 난 분명히 준수를 손으로 밀어냈고, 키스를 당한 것인데..
사진에는 내가 준수의 가슴에 부드럽게 손을 올리고 눈도 감고 있고;; 마치 의도하고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ㅠ_ㅠ
준수는 신이 나서 사진속에 예쁜 배경도 넣고 낙서도 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준수♥채린’ ‘사랑해’ 등의 예쁜 문구를 써넣기도 했다~ 이거 하나는 맘에 든다!!
스티커 사진을 뽑아 든 순간... 흠... 뽀얗게 잘 나오긴 했네;; 약간 민망하긴 하지만..ㅠ_ㅠ
준수는 사진을 손에 들고는 주인 언니한테 핸드폰줄 2개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앞면은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 뒷면은 키스하고 있는 사진으로!! 똑같은 열쇠고리 두개를 만들어서 자기가 하나갖고 나에게 하나를 주었다.
“자! 이거 핸드폰에 빨리 끼워~ 꼭 달고 다녀야돼!! 난 지금 끼워야지~”
“윽.... 나 이런거 못하고 다녀ㅠ_ㅠ 창피하잖아!! 누가 볼까봐 무섭다!”
“뭐 어때? 남들도 다 이런다고~ 예쁘기만 하다! 핸드폰 내놔봐!!”
준수는 자기가 안 끼워주면 내가 버려버릴거 같다면서 내 핸드폰을 뺏어서 끼워주었다.
“이거 절대로 빼면 안돼!! 빼면 나.... 삐진다! 매일 검사할거야~~^0^”
우린 또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아직 5시도 안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두시간 더 준수랑 같이 있을 수 있다~
“아! 우리 노래방 갈래?”
“지금? 우리 둘이서??”
“응~ 너 노래 부르는거 듣고 싶어~~”
난 노래 부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리고 노래를 잘 못하기 때문에 창피해서.. 술을 마셨을 때 아니면 노래를 안부른다.
준수랑은 술마시고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갔을 때 빼놓고는 노래방에 같이 간 적이 없다.
어떻게 준수에게 질질 끌려서 노래방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계속 준수만 노래 하고 난 가만히 준수가 노래하는걸 감상했다;;
준수야 워낙 목소리가 좋고 노래도 잘하니까~ 멋있지.... 하지만 나는;;
“왜 노래 안해? 너 노래 듣고 싶어서 데려온건데~~ 빨리 불러줘!!”
“나... 노래 못 불러~ 안 할래...”
“안돼!! 해야 돼!!”
준수에게 시달려서 겨우 한곡 선곡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난 떨리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내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준수의 시선이 느껴져서 더욱 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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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날 사랑하나요 그래요 그거면 돼요
너무 많은걸 바래서 마음이 아팠나 봐요
슬픔이 우릴 찾아도 나를 떠나면 안돼요
이미 시작된 사랑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나는 잘 모르니까요
이별이 오지 못하게 하늘에 기도할까요
서로만 사랑하도록 이대로만
어디도 가지 못하게 깊숙이 숨겨둘까요
우리 사랑 이대로만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난 어디에 있었는지
그댈 만났던 그 날 난 다시 태어났던 거죠
그대밖에 난 몰라요
눈 가려도 보이니까 그대만 보면 되니까
두눈을 감고 살까요 그럴까요
그댄 잊으면 안돼요 그대만 있으면 돼요
그러면 난 행복해요
< 이별이 오지 못하게 -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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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끝나고..... 준수는 잠시 멍하니 있더니 뭐가 좋은지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와! 잘하네~~ 노래 부를 때 목소리 너무 예쁘다ㅠ_ㅠ 진짜 좋다~ 나도 이노래 좋아하는데..
나 앞으로 이 노래 자주 불러줘~ 너한테 너무 잘 어울려!!“
준수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 앉았다. 그리고 버릇처럼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야릇한 분위기ㅡㅡ;;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준수는 내게 키스를 했다.
“너... 실은 이러려고 노래방 오자고 한거지?ㅡㅡ 응큼하게~”
“응큼하다고 해도 좋아... 계속 이러고 있을래......”
반주는 쉴새없이 흘러나오는데 우린 노래부를 생각도 안하고 꼭 붙어있었다.
노래방에서 나왔을 때.... 우리가 저지른 만행을 다 알고 있는지.. 아저씨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66.
7시가 다 되어서 우린 노래방에서 나왔다.
학교까지 데려다준다며 날 따라온 준수.. 헤어지기 아쉬운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준수야! 나랑 같이 갈래?”
“됐어;; 너네 학교 동아리 모임인데.. 내가 뭐하러 가”
“그러지말고~ 가자! 지현이랑 수란이랑 미나도 다 오고.. 그리고.. 선배들이 너 한번 보여달라고 했었어~
난 너가 불편해할까봐 같이 가자고 말안했는데.. 괜찮으면 같이 가~
나랑 놀다가 이따가 나 집에도 데려다주면 되잖아^ㅁ^ 가자 가자~~“
준수는 기꺼이 날 따라 나섰다~ 선배들을 만나는 것이라 그런지 약간 긴장된 모양이다;
난 준수에게 우리 4총사 이외에는 학교 사람들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솔직히.. 준수가 고등학생이라는 걸 밝히기도 좀 그렇고 해서//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술집.. 벌써 동아리 선배들과 동기들, 후배들이 많이 와 있었다.
혼자의 몸이 아닌.. 준수를 달고 온 내 모습에 다들 놀랐는지 손을 잡고 걸어 들어오는 우리를 주목했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해요~”
“어.. 어! 조금 늦었네.. 근데 옆에는.. 혹시 남자친구?”
“네~ 제 남자친구예요^-^ 남자친구랑 오늘 데이트했는데.. 일찍 헤어지기 아쉬워서~
제 남자친구 소개도 시킬 겸 데려왔어요! 괜찮죠?“
“그럼~ 채린이 남자친구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잘생겼네!! 둘이 잘 어울려~
만나서 반가워요^^ 전 채린이 선배 이용현이라고 해요! 다음주에 어학연수 가는 사람이죠~“
“아.. 예! 안녕하세요~ 전 민준수입니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좀 앉으세요! 채린아 뭐하니~ 얼른 자리잡고 앉아라!!”
난 어디에 앉을지 쭉 둘러보았다. 지현이, 수란이, 미나가 약간 구석진 자리에 몰려 앉아있었다.
당연히 저 자리로 가고 싶었는데..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ㅡㅡ;;
하필이면.. 애들이 앉은 건너편에 원규선배가 앉아있는 것이었다. 애들이 나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지만 선뜻 갈 수가 없었다.
망설이는 나를 보며 준수가 내 귀에 속삭였다.
“누나들 앞에 앉아있는 사람.. 저번에 만났던 예전 남자친구 맞지? 그래서 망설이는거야?”
“으응?? 아... 아니... 망설인다기 보다는....”
기억력도 좋다!! 한번 스쳐갔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조금 놀랐다.
“너가 망설일게 뭐있어! 가자 빨리!!”
준수는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날 애들이 있는 쪽으로 끌고 갔다.
“누나들~ 안녕하세요! 수란누나랑 미나누나는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그럼! 우리야 잘 지냈지.. 공부는 잘 하고 있어?”
“그럼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난 준수의 옆에 앉았다. 으윽... 이 자리 너무 불편하고 싫다! 옆에 준수가 있어서 좋긴 하지만.. 바로 앞에 원규선배라니..
준수 역시 그 사람이 신경쓰이는지 그 사람 보란 듯이 나에게 더욱 다정하게 굴었다.
어깨에 손을 올리는 건 기본이고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아주 따뜻한 눈으로 지그시 날 바라보고..
“둘이 너무 다정하다~ 언니!! 남자친구 연하 맞죠? 몇 살연하예요?”
우리 앞에 있던 후배들이 나에게 물었다. 억... 내가 걱정하던 순간이 와버렸다.
“아.. 19살이야~^^;; 나보다 2살 어려...”
“19살이요?? 그럼... 고등학생이예요? 고 3??”
후배들이 놀란 듯이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집중했다.
“채린이 남자친구가 고등학생이라고? 전에 대학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모두들 웅성웅성 자기들끼리 뭐라고 말을 했다. 난 준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준수 역시 당황한 표정을 했고, 약간 기분이 나빠진 것도 같았다.
“고등학생이예요! 지금 고등학교 2학년.. 근데 나이는 19살이예요~
준수 공부 열심히 해서 저희학교 올거예요~ 지금 제가 과외해주고 있거든요!“
난 당당하게 모든 것을 밝혀버렸다!! 내 말을 듣고도 사람들은 수군수군거렸다.
“아.. 고등학생이었구나~~ 뭐.. 좋네! 나이어려서 좋은 점도 많을거야~ 그치?”
역시나 착한 용현선배ㅠ_ㅠ 선배도 놀랐을테지만 그런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럼요~ 준수가 저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요!”
다행히도.. 나머지 사람들도 그다지 이상한 눈으로 날 바라보지는 않았다. 단 한사람을 빼고는..
내 앞에 앉아있는 원규선배.. 기분이 나쁠 정도로 미간에 주름이 확 가있었다. 뭐가 불만인데??
“어! 이거 뭐야?”
테이블에 놓여져있는 내 핸드폰... 오늘 준수랑 맞춘 핸드폰 줄을 지현이가 제일 먼저 발견했다.
“어머~~ 웬일이야!!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짱인데? ㅋㅋ”
“뭔데? 뭐야 뭐야??”
애들이 모두 핸드폰 줄에 달려들었다. 으윽... 이럴 줄 알았어ㅠ_ㅠ
“사진 이쁘게 잘 나왔죠? 아까 찍은 거예요~ 커플 핸드폰 줄로 만들었어요^-^”
“야~~ 사진 잘 나왔네!! 특히.. 이 사진... 지나치게 다정한거 아니니?
채린아.. 너가 이런 사진을 다 찍다니!! 정말 의외다....“
수란이가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게.. 내가 찍고 싶어서 찍은게 아니라!! 준수가... ㅡㅡ;; 아이.. 몰라!!
그래서 내가 이걸로 핸드폰줄 만들지 말자고 했잖아!!“
“왜~~ 누나들이 부러워서 그러는거야!!”
우리의 핸드폰 줄을..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나도 나도!”하면서 모두 돌려보고 말았다!
흐윽... 이건 너무 하잖아ㅠ 준수는 한번 보고 말 사람들도 있지만 난 학교다니면서 계속 봐야하는데!!
이제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지? 이런 생각들로 상심에 가득차 있을 때..
갑자기 원규선배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ㅡㅡ;; 덕분에 분위기가 쏴~해졌다.
다들 원규선배와 내가 사귀었던 사이인거를 알고 있는지라.. 어떻게 분위기가 수습이 되질 않았다.
술을 마시고 조금 더 놀다가 준수와 나는 용현선배에게 잘 다녀오라고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술집에서 나왔다.
집에 가는 버스 안... 준수와 나는 뒤쪽에 앉았다.
난 준수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대고, 준수는 내 머리를 만져주었다.
“나... 아까 되게 감동받았다?”
“아까?? 왜?”
“너가... 사람들한테 나 고등학생이라고 말해줘서.... 사실.. 기대안했거든~
난 너가 입장 곤란해지는 건 싫으니까... 그런데 떳떳하게 말해줘서 정말 기뻤어! 고마워~“
“고맙기는... 내가.. 오히려 미안했어;; 사람들한테 미리 말했으면 오늘 니가 이런 곤란한 일 겪지는 않았을텐데..”
“괜찮아~ 나보다는.. 너가 훨씬 더 힘든 문제잖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나 진짜로 공부 열심히 해서 너네학교 들어갈께~ 우리 CC하자!! 키키키
그런데.. 아까 그 녀석!! 신경쓰이는데? 걔가 아직도 너한테 마음 있는거 맞지??“
“누구? 원규선배?”
“그래!! 너 맞은편에 앉았던 놈... 맘에 안들어ㅡㅡ^ 계속 너랑 나 곁눈질이나 하고..
내내 굳은 얼굴로 앉아있고.. 우리 사진보고는 대뜸 나가버리질 않나!!
너한테 수작 걸었다가 걸리기만 해봐라... 그 놈이 시준이형보다 더 요주의 인물이야!!
그 놈 조심해라~ 또 학교선배라고 마음약해져서 눈웃음 흘리지 말고!!“
“내가 무슨 눈웃음을 흘려! 나 그 사람이랑 연락도 안해~ 마주쳐도 인사도 안한다구!
이미 끝난 지 오래야.. 그 사람도 아마 나 다 잊었을거야!“
사실.. 준수한테 이런 말을 하면서 뜨끔했다. 전에.. 그 사람에게 키스를 당했던 일이 생각이 나서..
그 때 그 사람은 아직 날 못 잊었다고 했다. 나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이 얘길 꺼낸다면 준수는 당장 그 사람을 쫓아가겠지?
그만두자...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되는거니까~
#67.
황금같은 주말.. 난 준수와의 과외를 위해 준수네 집으로 향했다!
준수네 부모님이 모두 미국으로 가시고 썰렁한 집..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자! 숙제검사 먼저 하자.. 음.. 문제집 사고 이틀지났으니까.. 40쪽이상 풀었어야지? 펴봐~”
“좋아!!”
준수는 자신만만해하며 선뜻 문제집을 나에게 주었다.
난 차르륵~~ 문제집을 손으로 넘겨보았다.
헉!! 여기저기 표시되어있는 검정 글씨들.. 그리고 빨간펜으로 이미 채점이 되어있었다.
난 표시가 되어있는 마지막 장을 펼쳤다. 페이지수는... 무려 100페이지였다ㅡㅡ;;
뜨아악!!! 이틀만에 100쪽을 다 풀었다는 말인가?
“헙... 준수야.. 100쪽까지 다 푼거야? 이틀만에?”
“그럼~ 공부 열심히 한다고 했잖아! 이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어? 나 이문제집 일주일만에 다 풀어버릴수 있어~”
“와~~ 대단해!! 예뻐 죽겠어~~>_<”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준수의 모습에 감동했다!
이대로라면... 우리학교도 문제없다! 아직 1년 넘게 여유가 있으니까.. 준수가 이대로만 해준다면..
모의고사를 볼 날이 기다려진다... 후훗~
1시간동안 열심히 과외를 하고 잠시 쉬는 시간.. 준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준수는 액정에 뜨는 번호를 확인하고는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상해!!
“누군데 전화를 안 받아??”
“아... 그냥 좀 받기 싫어서...”
“누군데?? 나도 아는 사람이야?”
“아니~ 넌 모르는 사람이야..”
잠시 후 전화기가 또 울렸다. 이번에도 같은 사람인지 준수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는 가만히 있었다.
“너.... 수상해!! 핸드폰 이리 줘봐!”
“뭐가 수상해;; 안받아도 되는 전화라서 안 받는거야~”
“아니야... 너 지금 하는 행동이 딱 바람피는 남자가 하는 행동같아!! 빨리 내놔~~”
난 준수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었다. 준수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가 아닌지, 액정에 번호 외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궁금하다... 난 핸드폰을 열어버렸다.
“여보세요”
“.............”
내 목소리에 당황했는지 저쪽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뚝!! 저쪽에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이거 뭐니?? 아무래도.. 남자가 전화한 것은 아닌거 같고.. 100프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휴대폰을 닫고는 준수를 째려보았다.
“민준수!! 너 솔직히 말해!! 이거 여자번호지? 누구야??”
“어... 어... 그게 말이야...”
어쭈? 말까지 더듬는다. 뭐야!! 준수가 지금 나 몰래 여자를 만난거야? ㅠ_ㅠ
“너!!! 여자 맞구나? 준수 너 뭐야! 날 두고 바람 피우는거야 지금??
참나..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더니! 나보고 딴 남자 만나지 말라고 하더니...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잠깐, 잠깐!! 바람이라니!!!! 내가 무슨 바람을 피웠다고? 그런거 아니야..
설명해줄께;; 그러니까 오해부터 하지마! 내가 너를 두고 왜 다른 여자를 만나겠어?“
“바람 피우는거 아니면 뭔데? 누구야?? 어떤 기집애야?”
“흥분 가라앉히고~ 화내지마.. 무서워ㅠ_ㅠ 다 얘기할께!!”
난 아직 화를 삭히지 못하고 씩씩 거리며 준수를 노려보았다. 과외고 뭐고 필요없어!!
“걔가 누구냐면..... 내가.. 전에 말했지? 너하고 사귀기전에 딱 한번 여자친구 있었다고..
그 여자애야.. 얼마 전에 어떻게 연락이 와가지고... 요즘에 매일 전화 와. 물론 내가 잘 받지는 않지만..“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 걔가 너한테 왜 전화해? 전학가고서는 연락 끊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벌써 2년가까이 됐는데 그동안 연락한번 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내 친구들중에 한명이 그 여자애랑 우연히 만나게 되었대.
근데 그 여자애가 내 소식 물으면서 연락처 가르쳐달라고 하는 바람에.. 내 친구가 그냥 가르쳐줘버렸어;
그 후로 계속 전화오고 문자오고 그러는거야. 걔가 자꾸 연락하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그 여자애랑.. 만났어? 얼굴 봤어?”
“아니야!! 안 만났어.. 처음에 걔인지 모르고 전화받았을 때 나한테 만나자고 했었는데,
내가 안 만나겠다고 말했어. 그리고 나 지금 여자친구 있다고도 했어!“
“그 여자애한테 언제부터 연락왔던거야?”
“한 일주일 전에ㅡㅡ;;”
“일주일 전?? 근데 왜 나한테 말 안했어! 지금까지 숨긴거야??”
“별일 아니니까.. 너가 신경쓸만한 일은 생기지 않게 할거라서 일부러 말 안했어. 미안해”
하아.. 나도 바보다... 왜 수상한 걸 눈치 못챘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준수가 약간 이상했다.
멀쩡한 전화기를 나와 함께 있을 때 꺼놓지를 않나.. 전화가 와도 잘 받지 않았다.
준수 말대로 별일은 아닌데.. 왜 자꾸 화가 치미는걸까? 준수가 날 속이려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 같다.
나도 준수에게 숨기는 일들이 있으면서도;; 준수가 날 속인다는 것은 너무나 속상
한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나 집에 갈래!”
난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린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화 풀어라~~ 응?”
“됐어!! 너 미워!! 나한테 거짓말이나 하고... 싫어!!”
“채린아.. 진짜 미안! 근데 정말 걔한테 일방적으로 연락온거라니까~ 나 걔한테 문자한번 안보냈어! 믿어줘..”
“몰라!! 지금은 너랑 말하기 싫어... 따라오지마. 따라오면 물어뜯어버릴 거야!!”
쿵쾅쿵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2층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대문을 꽝 닫고 나와버렸다.
준수는 내 협박에 못 이기겠는지 정말로 날 따라오지 않았다..... 바보!!
내가 인상을 확 쓰고 걸어가는 바람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어떻게 버스를 타고 집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준수가 밉기도 하면서.. 내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에 이기적인 내 자신이 밉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침대에 누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보려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서 저녁 9시쯤이 되었다. 조용히 놓여있던 내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준수인가?? 다시 한번 사과하려고 전화한 것일까? 난 책상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집었다.
하지만.... 준수가 아니었다ㅡㅡ;; 내 핸드폰에서 지워진 번호이지만 내 머리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번호.
원규선배의 번호였다. 이 사람이 무슨 일로 나한테 전화를 한거지??
난 받을까 말까하다가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원규...”
“네. 무슨 일이세요?”
“나 지금 너네 집앞이야. 잠깐 나와줄래? 너에게 꼭 하고싶은 얘기가 있어서... 기다릴께”
이 사람은 나에게 아직도 볼 일이 남은걸까? 난 내가 나오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기다릴 이 사람이 불쌍해서 한번 나가주기로 했다.
집에서 입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그냥 나갔다. 화장기도 없는 수수한 얼굴로... 모자를 하나 푹 눌러쓰고;
아파트 입구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원규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내쪽을 바라보았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어요? 전에 살던 집에서 이사했는데..”
“동아리 주소록에 써 있더라고. 그거 보고 찾아왔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할까 했었는데,
그럼 너가 안 만나겠다고 할 것 같아서..“
“잘 아네요ㅡㅡ;; 다음부턴 저희 집에 찾아오지 마세요. 만약 선배가 이러는거 알면..
남자친구가 무지 화낼거예요. 저한테 아니라 선배한테요;;
제 남자친구가 약간 성깔이 있어서요~ 제가 다른 남자 만나는 꼴 못보거든요..
하고 싶은 얘기가 뭐예요? 빨리 하세요. 저 들어가봐야 되요“
“너... 남자친구가 정말 고등학생이야? 전에 S대 다닌다고 했었잖아. 내가 잘못들었나?”
“아.. 그게 말하자면 길어요; 어쨌건 준수 고등학생 맞아요. 세진고등학교 다니고 있어요..
하고 싶은 얘기가 그거였어요?“
“고등학생.... 고등학생하고 사귀는 거.. 안 힘들어? 주변의 반응도 좋지 않을텐데..
여러 가지 제약도 많을거고. 너가 연하를 사귈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넌 연상을 좋아하잖아. 그게 더 어울리구..“
“그런 얘기.... 하기 싫어요. 선배한테 들을 이유도 없구요. 준수 얘기라면 가주세요..”
시준이도 그렇고.. 원규 선배도 그렇고 왜 내가 힘들거라고 생각하지? 가끔 힘들어질때도 있지만 견딜 수 있는데..
“잠깐만, 나... 다음 학기에 휴학하고 중국으로 유학 가. 지금 준비중이야..
송별회는 조만간 애들이 해줄 것 같은데... 그때... 넌 안 오겠지?
그래서 미리 작별인사하려고 온거야. 나.. 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상처줬던거는 정말 미안해. 하지만.. 진심으로 널 사랑했어. 건강하게 잘 지내“
원규 선배는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먼저 돌아섰다. 선배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였다...
그래도 한때는 날 정말로 행복하게 해줬던 사람인데.... 잘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 건넬 수가 없었다.
이별이란... 이렇게 씁쓸한 것이다.
#68.
선배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서있었다. 20살 때 선배와 즐거웠던 순간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내 인생에 있어서 첫키스를 했던 가슴 떨렸던 때, 선배와 함께 봤던 영화들, 술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나도 뒤돌아서 아파트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전화가 왔다. 준수였다! 하필이면 원규선배를 만나고 들어가는 순간에 전화라니. 무지 찔렸다.
“여보세요”
“어디야?”
“나 지금 집에 들어가는 길. 왜 전화했어?”
“거기서 잠깐만 기다려. 나 지금 너네 집 가는 길이니까.. 5분후면 도착해”
“시...싫어! 오지마.. 너랑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지금 너 얼굴 보기도 싫어”
“기다려. 내가 갔을 때 입구 앞에 안 서있으면 나 너네집으로 쳐들어간다”
“오든 말든! 문 안 열어주면 되지..”
“너가 문 열어줄 때까지 아파트 단지에 다 들리도록 크게 소리지를거야! 맘대로 해”
준수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준수라면 정말.. 아파트 떠나가도록 고래고래 소리지를 놈인데;
난 할 수 없이 입구에 서서 준수를 기다렸다. 근데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ㅡㅡ;;
20분.... 난 꼬박 20분을 기다렸다. 오면 화내야지!! 금방 온다더니 기어 오는거야, 뭐야!
곧 저만치에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준수의 모습이 보였다. 난 팔짱을 끼고 나에게로 오는 준수를 째려보았다.
내가 기다리는 걸 보고도 뛰지도 않고, 빨리 걷지도 않고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난 기다릴 수가 없어서 빠른 걸음으로 준수에게 향했다.
“5분 후면 도착한다더니... 20분 지났잖아!! 왜 이렇게 늦어?”
“너... 어디 갔다가 집에 들어가는거야?”
응?? 준수가 내 눈을 쳐다보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알고 있는 것인가;;
아니야.. 준수가 알 리가 없는데... 사실대로 말할까 하다가 끝까지 숨기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원규선배와는 더 이상 얽힐 일이 없을테니까..
“나야 잠깐 비디오 가게에 비디오 가져다주러..”
“그리고? 또 다른 일은 없었어? 누구 만나지 않았어?”
준수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약간 화가 난 듯하다. 거짓말... 내가 원규선배를 만난걸 알고 있나?
“대답.. 안할거야? 그럼... 내가 말해볼까? 너.. 원규인지 뭔지 그 사람 만났잖아”
허억!! 진짜로 알고 있잖아! 어떻게 안거지? 설마.. 줄곧 아파트 단지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나?
“다.. 봤어? 언제부터?”
“너와 그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본 게 아니야. 내가 여기로로 오고 있는데, 그 사람하고 마주쳤어.
너한테 전화하고 끊자마자.. 그 사람도 날 알아보더라. 잠깐 얘기하고 왔어.
그 사람이 널 만나러 왔다고 하더라고..“
“원규 선배랑 얘기를 했어? 무슨 얘기 했는데?”
“궁금해?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은데?”
“준수 너 설마.... 주먹질 한건 아니지??”
“주먹질 하고 싶었지만 참았어. 주먹 안 쓴다고 약속했었으니까......
근데 너... 그 사람 만난 거 왜 나한테 숨기려고 해? 숨기고 싶은 일이 있는거야?“
“치... 너도 나한테 숨기는 일이 있는데 난 그러면 안돼? 나도 이제 너한테 비밀 만들거야!”
“걔는 진짜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이미 끝난지 오래고, 다 잊었어.
내가 사랑한 여자도 아니었고... 내 마음 너한테 하나도 남김없이 다 줬어..
아직도 날 그렇게 몰라? 내 마음을 얼마나 더 보여줘야 해?“
“니 마음을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야! 너가 크게 잘못한거 아니라는거 나도 다 알아..
하지만... 화가 나서 미치겠어! 그냥 화가 나는걸 어쩌라고..“
“휴우.. 내가 어떻게 하면 너의 기분이 좀 풀리겠어?”
“몰라.. 모르겠어.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준수야.. 오늘은 이만 가줄래? 나중에 보자..”
“알았어. 채린아.. 난 너가 나와 그 여자애 사이의 일을 의심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다고 너를 향한 내 마음까지 의심하지는 말아줘. 오늘은 푹 쉬어. 잘 자..“
준수는 힘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삼일동안을 준수와 연락 없이 지냈다. 원래 어제가 준수와 과외하는 날이었는데 내가 안가버렸다.
준수에게서도 연락이 없었다ㅡㅡ;; 이자식! 내가 안하면 자기라도 해야할거 아니야?
지금같은 때에 나에게 막 애교를 부린다면.. 못이기는 척 하면서 화 풀어줄텐데..ㅠ
준수의 얼굴이 보고 싶어질 때는 핸드폰 줄을 만지작거렸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겨우 삼일 안 봤는데 왜 이렇게 보고 싶을까? 이러다가 나중에.. 준수가 군대가면.. 어떻게 참지?
종일 밥도 안 먹고 숨쉬는 인형처럼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에 깼다.
핸드폰은 이미 꺼놨고.. 집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저러다가 끊어지겠지... 했지만 계속 울려댔다. 엄마가 전화한건가??
“여보세요”
“왜 전화 안 받아? 핸드폰도 꺼놓고..”
“누구...세요?”
“나참.. 벌써 내 목소리도 잊어버렸어? 이거 진짜 섭섭하다ㅠ_ㅠ
어떻게 남자친구 목소리도 못 알아봐!!“
“............."
"어제 과외하는 날인데 오지도 않고.. 내가 그렇게 미워? 오늘 좀 만나자!!
보고 싶어 죽겠으니까..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나와줘;; 5시에 너네 집 앞으로 갈께!“
난 무뚝뚝하게 대답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지만 내 입은 웃고 있었다ㅡㅡ;;
전화를 끊고 거울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눈밑에 굉장한 다크써클..ㅠ_ㅠ 초췌함의 극치였다.
이런 모습으로 준수를 만날 순 없지! 난 자주 안 입는 하얀 치마를 골라 입고 공주풍의 블라우스를 입었다.
그리고 머리는 고데기로 말아서 웨이브를 주었다~ 좀 여성스럽나?
준비를 하다보니 약간 늦어져서 난 5시 10분에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나왔다.
또각 또각.. 내 샌들 소리에 뒷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준수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어!! 누가 이렇게 이쁘게 하고 오래~”
나를 보고는 환하게 웃어주는 준수.. 전혀 싸웠던 사이 같지 않다. 평소와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
그러고보니 오늘 준수도 평상시에 잘 안 입는 옷을 입고 나왔다. 하얀바지에 깔끔한 셔츠.
셔츠를 입으면 활동하기 불편하다고 항상 티셔츠나 니트만 입고 다녔는데.. 웬일이지?
게다가 운동화가 아닌 샌들까지 신었다.
“와.. 우리 꼭 커플룩으로 맞춰입은 것 같지 않아? 넌 하얀 치마에 난 하얀 바지..
역시~ 우리 뭔가 통했나봐^-^“
준수는 진짜로 아무렇지도 않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누가 어깨에 손 올리래? 치... 나 아직 화 풀린거 아니야!”
“에이~~ 왜 그래~ 빨리 가자! 오늘 누구를 좀 만나기로 했거든. 늦겠다!!”
“누구 만나러 가는데?”
“그건 가보면 알아~”
누구를 만난다는 거지? 준수 친구들을 보여주는 건가? 흐음... 알 수가 없다.
난 얌전히 준수를 따라서 신촌에 있는 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준수는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는지 커피숍 안을 둘러보고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 조금 일찍 도착했네? 6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20분 남았다”
“도대체 누구를 만나는거야? 말 안해줘?”
“기다려봐! 밥은 먹었어??”
“아니.. 하루 종일 한 끼도 안 먹었어”
“진짜? 어쩐지.. 얼굴이 반쪽이 됐다 했지! 왜 밥도 안 차려먹고 그래!! 하여간..
배고프겠다.. 우선은 너가 좋아하는 파르페 먹어~ 그리고 밥은 좀 이따가 나가서 먹자!“
파르페가 금방 나오고 난 말도 안하고 먹는 것에 열중했다. 입가에 아이스크림이 묻은 줄도 모르고;;
콜라를 마시며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준수가 갑자기 내 얼굴에 손을 뻗었다.
“뭐야~ 애기처럼.. 아이스크림이나 묻히고..”
준수는 내 입가에 아이스크림을 손가락으로 닦은 후 그 손가락을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파르페를 빠른 속도로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시간은 준수가 약속했다는 6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그때 준수가 내 어깨 너머에 있는 커피숍 입구를 응시하였다. 약속한 사람이 온 건가?
난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69.
여자.. 웬 여자 한명이 커피숍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여자 역시 우리 쪽을 보고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준수를 바라보고 있는 듯.
혹시 저 여자가 준수가 만나기로 한 사람? 누구지? 난 처음 보는 사람인데..
꽤 예쁜 여자였다. 얼굴도 하얗고 조그맣고.. 키도 크고 늘씬한 스타일이었다.
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쪽으로 왔다. 그 여자도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이쪽으로 앉아”
그 여자는 나를 쳐다보고는 우물쭈물 하면서 망설이다가 결국 내가 앉은 쇼파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준수는 내 옆에 앉아서 처음 보는 여자 앞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는 건 기본이고, 손에 깍지를 낀다든지 등등 다양한 스킨십을 시도했다;;
이 여자가 누구길래.. 준수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지? 난 준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누구야?”
“아... 소개해줄께! 얘는 내가 말했던.. 너가 궁금해하던 예전 여자친구야.
이름은 전혜민이고 2년만에 만난거야. 혜민이 너 변하지 않았구나. 똑같아..
그리고.. 혜민아! 인사해. 여기는 내 여자친구야. 김채린.. 고등학생 같지 않지?
사실 대학생이야~ 나보다 2살 많거든..“
어머! 이 여자애가.. 그 여자애였어?? 너무 갑작스러웠다.
“아.. 안녕하세요...”
난 매우 어색하게 혜민이라는 아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그 아이도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얘도 많이 당황했는지 표정이 썩 좋지 않다.
“혜민아, 나 왜 만나자고 한거야? 너가 계속 만나자고 해서 나오긴 했는데..
원래 끝까지 너 안 만나려고 했어. 내 여자친구가 신경쓰는 게 싫어서..
그래서 여자친구 데리고 나온거야. 너랑 단둘이 만나면 오해할까봐.. 괜찮지?“
“으...응.... 난 그냥 오랜만에 너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어서... 좋아 보인다!
너도 그대로야.. 키가 좀 큰 것 빼고는.. 학교는 잘 다니고 있지? 하진이도 잘 지내?“
“응.. 하진이 녀석도 요새 연애하느라 정신없어~ 넌 이제 고3이지? 공부하느라 힘들겠다?”
“아.. 별로 힘들 것도 없어. 남들 다 하는건데 뭐..”
둘 사이에 대화가 끊겼다. 난 조용히 그 여자애의 얼굴을 뜯어보고 있었다.
준수가 이 여자애랑 사귀었단 말이지? 나랑 공통점이 있다면.. 얼굴이 하얗고 눈이 크다는 것;
이 여자애한테도 나한테 하는 것처럼 잘해줬을까? 얘하고 오래 사귀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키스는 해봤겠지?
싫어... 준수가 나 아닌 다른 여자하고 키스했다고 생각만 해도 불쾌해!!
이런 생각들로 내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 그리고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인 건지도 모르지만 그 여자애도 인상을 썼다.
이 자리에 있는게 불편해서 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여자친구랑.. 얼마나 오래 사귀었어?”
“음.. 우리가.. 지금 한 130일 쯤 되었을껄? 처음 만난거는 3월이었고..”
"꽤 오래되었네? 근데 저 언니도 대단하다. 너가 고등학생인거 알면서 사귀다니.."
"그런 것 때문에 한번 헤어졌었는데 다시 날 받아줬어..."
“그렇구나.. 여자친구가 있었구나.... 몰랐어~ 넌 여자한테 관심 없다고 했었잖아.
여자한테 다정하게 구는 너의 모습은 처음 봐.. 난.. 나한테 무뚝뚝한게 너의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나 여자한테 별로 관심 없었어. 여자친구 있어도 잘 해줄 자신도 없었고..
그런데.. 정말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니까 바뀌더라. 한없이 잘해주고 싶어져.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그저 기분이 좋아~“
“하하... 여자친구를 정말로 사랑한다고? 좀 속상한데? 나하고 사귈 때와는 너무 다르잖아.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난 너에게 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헤어지고 나서 내가 널 생각하는 만큼, 아니 그거의 반에 반만큼이라도 너가 날 생각해주길 바랬는데.. 내가 착각했나봐“
“그래. 헤어지고 나서 가끔 너가 생각이 나긴 했어. 하지만.. 채린이를 만나고부터는 단 한번도 널 떠올린 적이 없었어.
채린이 한 사람에게만 내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버려서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었거든“
“냉정하구나. 거짓말이라도 날 생각했다고 해주면 좋을텐데.. 이런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원래 이기적이고 못돼먹은 성격이 어디 가겠어? 그런데.. 만나서 할 얘기가 뭐야?”
“나는.. 나는... 매일매일 널 생각했어. 널 그리워했어. 니가 엄청 보고 싶었어..
너와 함께 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용기내서 말해보려고 했는데...“
“미안. 그건 안되는 거 너도 알고 있지? 미안하다...
그리고.. 이건 더 미안한 얘기인데. 앞으로 나에게 연락하지 말아줬으면 해.
내가 채린이한테 너 얘기했거든. 예전 여자친구라고.. 근데 그게 무지 신경이 쓰이나봐.
너 얘기 꺼내고 나서 싸우기도 했어;; 이젠... 그러기 싫어..“
“그냥 친구사이로 연락하고 지내면 안돼? 만나지는 않더라도.. 연락은 하고 지낼 수 있잖아. 그것도 안되겠어?”
“미안... 너가 보통 아는 여자애였다면 괜찮겠지만 내가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라서 안돼.
그리고.. 난 여자하고 친구 안하는 거 너도 잘 알잖아?“
혜민이는 실망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눈에는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혔다.
“혜민아.. 내가 또 너에게 상처를 줬다면 미안해. 용서해달라고는 하지 않을게.
너도 행복해져라.. 나보다 훨씬 좋은 남자 만나서 사랑 받으면서 잘 지내.
만나서 반가웠다. 난 그만 가볼게“
준수는 채린이의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 앞에서 채린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화장실에서 대충 시간을 때웠다. 한 10분쯤?? 음.. 이제 슬슬 나가볼까?
둘만 자리에 두고 오니까 더 신경 쓰이잖아!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서둘러 화장실을 나왔을 때 난 깜짝 놀래서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준수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것이었다! 한손에는 내 핸드백을 들고..
“왜 이렇게 늦어! 빨리 가자~ 배고프지? 밥먹자!”
난 우리가 앉아있던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어? 아직 그 여자애는 앉아있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조금 있다가 눈을 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리는 걸 보니 울고 있는 모양이다.
저런... 쯧쯧쯧 ㅡㅡ;; 준수가 뭐라고 했길래 저렇게 우는 거지?
“빨리 가자~~”
준수는 그 아이에게 고정되어 있는 내 시선을 돌리며 날 커피숍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니가 뭐라고 했길래 쟤가 우는거야? 여자나 울리고;; 나쁜 남자!!”
“어쩔 수 없잖아! 그럼.. 내가 쟤한테 다정하게 잘 대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또 난리칠거면서ㅡㅡ;; 바람을 피우느니 어쩌느니.. 안그래?“
“그건.. 맞는 말이긴 하지만.....”
“됐어! 혜민이 얘기는 이제 하지 말자~ 정말로 끝냈으니까!
아마 연락오는 일도 없을거야~ 안심해!! ㅋㅋ 뭐 먹고 싶어? 나도 배고프다..“
“너가 먹고 싶은거 먹어..”
난 뭐든지 준수의 뜻에 맡겼다. 사실 배가 고프기는 했지만 그다지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우린 식당에 들어가서 맛있는 부대찌게에 밥을 먹었다. 준수가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한다며 데려간 곳 이었다.
“혜민이 일로 더 이상 화 안낼거지? 난 진짜 너한테 숨기는 거 없어! 결백해~ 너는?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어??“
으윽.. 원규선배의 일을 아직 말하지 않았구나. 말해줘야겠다. 물론 키스 당했던 건 절대로 말하지 않고!!
“그때 원규선배가 날 찾아온 건...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대.
선배 휴학하고 곧 중국으로 유학간다고.. 내가 송별회에 안 나올 거 같아서 인사하러 왔대.
나도 더는 원규선배하고 만날 일 없어~ 결백해!!(컥ㅡㅡ;;)“
“그래.. 그럼 우리 약속하자! 앞으로는 서로에게 비밀 만들지 않기... 어때? 약속 할 수 있어?”
“당근이지! 잘 지킬 수 있어~ 너도 나랑 한 약속 잘 지켜주고 있으니까^-^”
우린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서로를 의심하지 않기-_-;; 이것도 약속해야 돼!!
바람피운다고 물증도 없이 상대방을 몰아세우지 않기!!”
“아.. 알았어;;”
이것으로 준수의 예전 여자친구문제와 나의 예전 남자친구문제는 원만히 일단락 지어졌다~
#70.
쉬는 날.. 지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나자고..
목소리가 안 좋아 보여서 원래 준수와 영화보기로 했는데 그 약속도 미루고 지현이를 만나러 갔다.
준수는 약간 삐진 듯 했지만 자기도 그럼 하진이를 만나겠다고 했다.
우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사귄지 얼마 안되었는데.. 대판 싸웠나?
커피숍에서 만난 지현이.. 얼굴이 많이 어두워보였다.
“지현아.. 너 얼굴이 왜 이렇게 어두워? 예쁜 옷도 입고 왔는데.. 이게 뭐야~
왜 그러는데? 말해봐.. 하진이랑... 싸웠어?ㅡ.ㅡ;“
“나 하진이랑 헤어질까봐...”
“뭐? 하진이랑 왜 헤어져!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하진이가 바람이라도 피웠어?”
“아니.. 그 반대야. 내가 바람피웠어-_-;;”
“지현아!! 바람을 피우다니? 자세히 말좀 해봐!”
“예전 버릇 도진거지 뭐~ 나 원래 한 남자한테 만족 못하잖아.. 친구 부탁으로 소개팅나갔었어.
그 남자.. 군대도 갔다 왔고 대학도 졸업했고.. 회사원이야~ 당연히 하진이랑 비교될 수밖에 없잖아.
하진이는 아직 고등학생이고... 한 2년후면 군대갈텐데.. 난 하진이 기다릴 자신 없거든.
어차피 헤어질 바에는 서로에게 정이 덜 들었을 때 헤어지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거짓말! 내가 볼 때는 넌 벌써 하진이에게 정 많이 든 거 같은데?”
“아니야.. 난 깨끗이 헤어질 수 있어. 까놓고 말하면 그런 조건 좋은 남자 놓치기가 아까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거야? 너의 마음.. 속이려고 하지마..”
내 말에 지현이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가득 맺혔다.
항상 도도하고 강한 모습만 보여주던 지현이의 눈에서 믿을 수 없는 눈물들이 떨어
졌다.
난 매우 당황했다. 지현이의 이런 약한 모습은 처음 보는 거라서..
하지만 곧 휴지를 꺼내어 지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지현이는 소리내어 울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울고 싶은걸 애써 꾹꾹 누르며 참는 듯 했다.
“지현아~ 울고 싶으면 울어.. 그렇게 참으면 더 마음 아프잖아....”
“미안... 나 너무 추하지? 흑..”
“야! 내 앞에서 우는 건데 뭐 어떠냐? 하나도 안 추하니까 걱정마~
거봐! 이렇게 울면서 하진이랑 헤어지겠다고? 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너 마음 가는대로 하라고..“
“나.. 하진이한테 상처를 줬어. 하진이가 슬픈 표정으로 뒤돌아서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
내가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하고 하진이를 비교했거든..
다른 사람하고 비교당하는게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지 잘 알면서도.... 말이 막 나오더라.
하아~ 난 역시 안되나봐! 난 너가 준수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진이를 사랑할 수가 없어.
하진이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까지 사랑할 수가 없나봐... 안되겠어....“
“지현아~ 나도 처음에 준수가 고등학생이라는 거 알았을때 많이 힘들어했잖아.
헤어지려고도 해봤고.. 근데 준수를 내 마음에서 밀어내려고 할수록 내가 너무 힘들어졌어.
분명히 너도 그럴거야~ 하진이가 너한테 많이 잘해줬으니까..
지금은 헤어지는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막상 헤어지면 하진이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질거야.
그러니까.. 무조건 헤어지려고 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을 해봐~“
“아~ 나 너무 힘들어. 이렇게 힘들줄 알았다면 하진이와 시작도 하지 않았을거야.
그냥 누나 동생 사이로 지냈다면 좋았을텐데... 하진이랑 헤어지면 누나 동생 사이로도 지낼수 없겠지?“
“왜~ 헤어져도 보고 살수도 있지 뭐..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니까!! 힘내!”
“야!! 술이나 마시자!! 나 오늘 그냥 확 죽어버릴라니까~~”
난 최대한 지현이의 기분에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단둘이 소주를 마시러 갔다.
겁나게 술을 마셔대는 지현이.. 결국 취하고 말았다. 내가 한잔 마실 때 지현이는 한 3~4잔 마신 것 같다.
지현이가 술에 취해 헤롱헤롱거리고 있을 때 준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디야? 지현누나랑 같이 있어?”
“응~ 둘이 술 마시고 있는데.. 지현이가 완전 취해버렸어;; 어쩌지?
지현이 혼자 집에 못 데려다줄거 같은데.. 준수야! 너가 좀 올래?
나랑 같이 지현이 집까지 데려다주자~~“
“누나 취했다고? 음.. 내가 누나 데려다줄 필요가 뭐 있어? 하진이보고 데려다주라고 하면 되지~
나도 아직 하진이랑 같이 있으니까 그 쪽으로 갈께. 어디야?“
난 준수에게 우리가 있는 술집을 가르쳐주었다.
한 20분 후에 하진이와 준수가 들어왔다.
지현이는 이미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지현이의 모습을 보고 하진이는 많이 놀란 듯 뛰어왔다.
“누나!! 일어나봐~ 나 왔어..”
“으..........음.........”
“채린누나! 지현누나 왜 이래요? 술 얼마나 마셨어요?”
“혼자서 소주 3병정도 마셨지;; 지현이 혼자 데려다줄 수 있겠어? 도와줄까?”
“아니요.. 지현누나랑 할얘기도 있고.. 술좀 깨워서 집에 들여보내야죠. 괜찮아요~ 준수랑 가보세요”
“하진아.. 근데.. 지현이랑 좀 안 좋다며? 지현이는 너가 화났을까봐 걱정하던데..”
“화났죠!! 당연히.. 제가 무슨 바보예요? 여자친구가 소개팅 했다는데 화도 안내게..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가 지현누나를 더 많이 좋아하니까 참아야죠... 이해해요~
제가 누나 소개팅한 그 남자보다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요..“
“하진이 너무 착해~~!! 맘에 들어^-^ 고마워~ 지현이 많이 사랑해줘서..”
“하하.. 저도 고마워요 누나~ 오늘 지현누나랑 같이 있어줘서..
준수야! 누나 집까지 잘 모셔다드려라~ 누가 잡아가지 않게ㅡㅡ;;”
“내 여자친구 데려다 주는거야 당연하지! 너가 왜 남의 여자친구 걱정하고 있냐?
지현누나나 걱정해 임마~~ 누나 업어가야될거 같은데.. 등에 업혀줄까?“
“응..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준수는 지현이를 부축해서 하진이의 등에 업혀주었다.
하진이는 준수보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데.. 저렇게 축 늘어진 지현이를 잘 업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사람은 술에 취해 온몸에 힘이 빠지면 매우 무거워진다ㅡㅡ;;
하진이는 처음엔 약간 휘청거렸지만 곧 중심을 잡고 지현이와 먼저 가게를 나섰다.
준수와 나는 천천히 걸어서 우리집까지 가기로 했다. 집에 가는 길..
“지현누나가 뭐래? 너한테 다른 남자 만났다고 말하든?”
“응.. 말했지~ 하진이랑 헤어질 생각하고 있더라. 내가 볼 때 지현이 지금도 하진이 많이 좋아하는데..
하진이가 고등학생이란 것 때문에 힘든가봐~“
“지현누나.. 이번엔 좀 심했다. 하진이 녀석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얼마나 맘 상했는 줄 알아?
회사원이랑 비교나 하고.. 우린 고등학생인데 어쩌라는거야? 내가 다 열받더라..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너.. 지금.. 지현이 욕하는거야?? 지현이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난 이해 되는데?
솔직히 고등학생남자랑 떳떳이 사귈수 있는 대학생 여자가 몇 명이나 되겠어?
나도 많이 힘들었어~ 지현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야!!“
“넌 그럼.. 남자친구를 두고 바람피운 게 잘한 짓이라는 거야?”
“아.. 됐어! 더 이상 내 친구 욕하는거 듣고 싶지 않아!! 쳇!!!! 데려다줘서 고마워! 안녕!!”
난 준수에게 톡톡 쏘아붙였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해져있는 준수를 두고 먼저 집으로 들어와버렸다.
하진이와 지현이는 뭐하고 있을까? 지현이.. 좀 술이 깨었을까? 하진이와 얘기 잘 하고 있을까??
71.
지현이를 등에 업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하진..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우...... 욱... 잠깐.... 내려줘...”
“누나! 왜? 토할 것 같아??”
하진이는 놀라서 지현이를 얼른 내려놓았다. 그리고 구석진 곳에 데려가서 등을 두드려주었다.
하지만 지현은 침을 뱉을 뿐 오바이트를 하지는 않았다.
“하아.. 이제 괜찮아..”
“물 좀 사다줄까? 여기 앉아서 잠깐만 기다려!”
지현을 벤치에 앉혀놓고 하진은 근처 편의점으로 마구 뛰었다. 잠시 후에 하진이 돌아왔다.
아직도 몸이 늘어져있는 지현을 잡아주고 물을 먹이는 하진.
몇 모금 마시고는 물도 잘 안 넘어가는지 하진의 손을 밀쳐냈다.
지현은 속이 뒤집히는지;; 콜록 콜록 기침을 해댔다. 하진은 그런 지현의 등을 다시 두드려 주었다.
“이렇게 괴로워할 거면서 술은 왜 마셨어? 마셔도 조금만 마시지..”
“너 때문이잖아.. 바보야!”
“자기가 술마셔놓고 그게 왜 나때문이야ㅡㅡ;; 오히려 술은 내가 마셔야 되는거 아닌가?
나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 누나 때문에 많이 속상하다고.. 화도 났고...
그런데도 이렇게 누나 데리러 오고! 나 정말 속도 좋지?“
“내가 그 사람 만나서.. 화났어?”
“그럼! 여자친구가 나 두고 다른 남자 만나는데 화 안낼 놈이 어디있어?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고 그래!!“
“그럼... 헤어져. 헤어지면 되잖아....”
“..........헤어지자니? 나 심하게 화난거 아니야!! 다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어..”
“이젠 내가 더 널 못 만나겠어. 우리 헤어지자. 하진아... 미안해...”
“왜? 혹시.. 그 사람이 좋아진거야? 내가 싫어졌어?”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너랑 사귀는게 힘들어... 못 하겠어. 이제는..”
“내가.. 고등학생이라서? 그게 그렇게 힘들어?”
“그래. 난 채린이와 달라. 채린이는 잘 버텨내지만 난 못해. 할 수 없어...
난 너하고 헤어져도 전처럼 누나 동생 사이로 지내고 싶지만..
너한테 그런 것까지 부탁하지는 않을께. 그럼 내가 너무 잔인하니까..
다음엔 너와 비슷한 상황에, 너를 많이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나.. 그리고 행복해져. 나 보란 듯이..“
하진은 지현의 말에 화가 났는지 벌떡 일어났다.
“누나!! 그걸 말이라고 해? 누나가 지금 하는 말들은.. 잔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거야?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보다 더 잔인한 말은 없어. 나 누나랑 사귀면서 행복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누나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아직 우리 만난지 얼마 안 되었잖아.. 나에게 조금만 더 기회를 주면 안돼?
노력할게.... 누나 힘들지 않게 내가 더 노력할게... 나 잘할 수 있어. 나 믿어..“
“하진아. 이러지마. 이러면 나 더 힘들어져.. 너 나 많이 좋아한다고 했지? 나 사랑해?”
“사랑해... 너무나도 많이....”
“날 사랑한다면 이쯤에서 날 보내줘.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놓아줄 줄 아는 것도 사랑이야..”
“안돼!! 사랑하는데 왜 놓아줘야 해? 누나도 나 좋아하잖아.. 내가 싫어서 떠나려는게 아니잖아.
그래서 놓아줄 수가 없어.. 조금만 참아줘..... 아주 조금만... 나 누나 행복하게 해줄 자신 있다니까!“
“넌 아직 어려. 시간이 지나면 내가 널 먼저 떠난 것에 감사하게 될지도 몰라..”
“웃기지마! 나 누나가 지금 날 떠나버리면.. 평생 누나 생각할거야.
그게 누나에 대한 원망이든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든.. 누나가 뭘 알아?
고작 2살 더 많다고,. 모든 걸 다 아는 척 하지마! 내 마음을 누나가 어떻게 알아?“
“김하진!! 어린애처럼 피곤하게 굴지마.. 제발.... 너와 깨끗하게 헤어지고 싶어.”
지현을 내려다보는 하진의 눈... 그는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물이 나오려는 듯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곧 하진은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이럴거면... 왜 나하고 사귄다고 했어? 아예 시작도 하지 말지.. 나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너 가지고 논거 맞아. 나 원래 이런 여자야. 실망했니? 미안하다..
그래서 너하고 연애는 하기 싫었던 건데.. 너처럼 순수하고 여린 애는 피하고 싶었는데..“
일부러 심한 말을 하는 지현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파왔다. 하지만 하진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누나를 사랑했던 것만큼 많이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좋아?”
“그래. 실컷 미워해. 날 미워해도 돼..”
“누나는.. 이별이 슬프지도 않아?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가 있어?”
“난 널 사랑하지 않으니까.. 내가 널 사랑했다면 이런 말 꺼내지도 않았을거고.. 너 앞에서 눈물도 보였겠지”
무서운 침묵이 이어졌다. 지현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하진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지현은 정신을 조금 차렸는지 벤치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동안 나같은 여자 많이 좋아해줘서 고마워. 안녕”
지현은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발을 떼었다. 하진과 이별을 하고 뒤돌아서는 발이 천근만근 같았다.
하진도 뒤돌아섰는지 ‘탁 탁 탁’ 발걸음이 들렸다. 정말 이별이다. 하진과 헤어졌다.
하진이의 멀어지는 발걸음이 들리자 이별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이젠 하진이의 환하고 밝은 웃음을 볼 수가 없다. 항상 자신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필사적이던 하진을 볼 수가 없다.
지현은 미어지는 가슴을 손으로 부여잡았다. 그리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좀처럼 울지 않는 그녀.. 어두워진 길 한복판에서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가는 사람들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난.... 난.....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하진이를 많이 좋아했나봐... 사랑했나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아이에게 너무 많이 빠져버렸어.....
얼굴이 눈물 범벅이 된 지현.. 가슴이 아픈 것도 모자라 다리에 힘 마저 빠져 나가고 그녀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저앉아서 또 얼굴을 묻고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 때, 누군가 부드러운 손길로 지현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익숙한 손길...
놀란 지현은 눈물을 미처 닦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 보았다.
하진... 바로 하진이었다. 하진의 눈에도 눈물 자욱이 있었다.
자신이 우는 모습을 다 들켜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현은 울음을 그치고 하진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하진은 그런 지현을 놓아주지 않았다. 따뜻하게 꼬옥 안아주었다.
“바보같이 왜 울어? 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가잖아..”
“놔.... 놔줘....”
“싫어. 안 놔줄거야... 혼자 보내놓고 걱정되서 다시 와봤더니.. 울거면서 왜 마음에 없는 말을 해?”
“뭐가 마음에 없는 말이야...”
“나 사랑하잖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던 거 다 거짓말이잖아. 날 사랑한다면 내 앞에서 눈물 보였을거라며?”
“그... 그건.... 아니야!”
하진은 아직도 지현의 눈에서 나오고 있는 눈물들을 조심조심 닦아주었다.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 정말 아니야? 날 사랑하는 게 아니야?
누나...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감정에 솔직해져봐. 한번만.. 딱 한번만 마음을 보여줘..
더 이상은 나 바라지도 않아. 누나에게 감정 표현해달라고 조르는 일도 없을거야.
한번... 딱 한번이면 돼. 날 사랑한다고 해줘... 그럼... 나 두 번 다시 누나 놓지 않을거야.“
지현은 자신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하진이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숙이려 했다.
하지만 하진은 지현의 얼굴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신의 눈을 바라보게 했다.
말없이 하진의 눈을 바라보는 지현.. 아직도 눈물방울이 맺혀 빛나고 있는 그의 눈안에 자신의 모습만이 가득 담겨있다.
그의 눈이 말하고 있다. 사랑한다고.. 진심이라고.... 옆에 있어달라고.....
지현은 더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사랑해....... 사랑해... 하진아.......”
지현의 입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말을 들은 하진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지현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한참동안을 그 자리에서.. 계속 그러고 있었다;; 사람들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72.
다음 날, 점심때가 지나서야 눈을 떴다.
준수는 벌써 일어났을텐데 전화 한통, 아니 문자 한개도 없다ㅡㅡ;;
어제 하진이와 지현이 때문에 약간 말다툼을 했는데..
그거 때문에 준수도 아직 나한테 삐져있는 걸까? 내가 좀 심했나....
어제 지현이는 집에 잘 들어갔는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보려던 참에 마음이 통했는지 지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지현이야?”
“응~ 나야~~!!”
“야! 너 어제 집엔 잘 들어간거야? 걱정되서 전화해봤더니 전화기도 꺼져있던데..
몇시에 들어갔어? 하진이가 집까지 잘 데려다줬어?“
“응.. 잘 들어왔으니까 너한테 이렇게 전화를 하지!”
“하진이랑은 얘기 좀 해봤어? 어떻게 됐어?”
“응...... 그게..........”
“궁금해! 빨리 말해봐~~”
“아.. 만나서 말해줄게! 너도 집에 잘 들어간거지?”
“응~ 근데... 나 준수랑 또 싸웠다!”
“응?? 왜?? 왜 싸웠는데?”
“자세히 말하기는 좀 그렇고.. 하여간 너랑 하진이 때문에 싸운거야! 치..
준수가 삐졌는지 전화도 없고 문자도 없는 거 있지? 속도 좁아ㅡㅡ
아니, 여자친구가 삐져있으면 먼저 연락해서 달래줘야 하는거 아니야? 자기도 화났다 이건가?”
준수 얘기를 하다보니까 흥분이 되서; 지현이에게 준수 욕을 한바가지 했다.
“야야~ 그만해라! 그러다가 금방 준수 좋다고 난리 칠거면서.. 너네 제발 그만 좀 싸워!
우선 만나자~ 오늘 시간 되지? 5시에 어제 만났던 데서 보자~“
기분 전환도 할 겸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화장도 평소보다 진하게 해보고..
5시를 조금 넘겨서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어제 앉았던 자리에 앉아있는 지현이가 보였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하진이가 있었다. 아주 다정하게..
하진이는 지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서로를 매우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저것들! 뭐야? 지현이 기집애.. 헤어진다고 난리치더니 결국 저렇게 되어버린거야??
평소와는 다르게 지나치게 다정해 보이는 커플이었다. 왠지 속이 쓰리다ㅡㅡ;;
내가 가까이 오는 것을 눈치채고는 하진이와 지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어느새 손을 내리고 정자세로 앉았다.
“채린아! 왔어?”
“누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손은 왜 내려? 그냥 올리고 있지ㅡㅡ;;”
“아... 하하;; 근데 왜 그 녀석은 안 오지? 약속시간 어기는 녀석이 아닌데..”
“누가 또 오기로 했어?”
“누나! 제가 준수 불렀어요~ 준수랑 싸우셨다면서요? 화해하시라고~^-^ 아! 준수 들어오네요~”
난 하진이가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았다. 정말로 준수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준수는 하진이를 먼저 보고는 그 다음에 나와 지현이를 보았다.
준수도 내가 나온다는 것을 몰랐나보다. 하진이만 나오는 건 줄 알았나?
“준수야 안녕?”
“아... 안녕하세요. 누나”
“왜 늦게 와 임마!! 뭘 멀뚱멀뚱 서있냐? 어서 앉아~”
준수는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난 준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정면만 보고 있었다.
준수 역시 나에게 먼저 말을 붙이려 하지 않았다. 우린 연인사이이지만.. 누가 보면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 줄 알겠다!
우리의 살벌한 분위기에 하진이와 지현이도 어쩔 줄 몰라했다.
“야... 야... 채린아;; 말 좀 해봐~”
“준수야! 너 뭐하냐? 입에 본드 발랐냐?”
“나보고 무슨 말을 하라는거야? 할 말 없어서 가만히 있는건데..”
난 차갑게 말했다. 나의 냉담함에 하진이와 지현이는 더욱 당황했다.
“에이~ 누나! 왜 그래요~ 무섭게.. 누나!! 저랑 지현누나 때문에 걱정 많이 하셨다면서요?
저희 이제 안 헤어질거예요~ 지현누나도 헤어지자는 말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러니까 누나랑 준수도.. 화해하세요! 닭살 커플로 돌아오란 말이예요!“
난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하진이는 도저히 상황 수습을 못하겠는지 준수를 화장실로 끌고 갔다.
결국 나와 지현이 둘이서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야! 너 진짜 왜 그래;; 준수랑 화해안할거야? 너가 그렇게 차갑게 나오니까 하진이가 당황했잖아;”
“기집애.. 넌 내가 화난 것보다 하진이가 당황하는게 더 걱정되지? 그래~~ 알았다!”
“얘가 얘가.. 안 부리던 심술까지 부리네~ 야! 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내가 외로운 솔로일 때.. 너 준수랑 온갖 쇼를 다하면서 내 염장 질렀잖아!
그래 놓고 나 참;; 개구리 올챙이 때 생각 못한다더니~“
할 말 없다ㅡㅡ;; 내가 지현이 염장 지른 것은 사실이니까..
“하진이가 아마 준수랑 잘 얘기해서 올거야~ 너희 둘이 있을 시간 조금 줄 테니까 화해해!
준수가 미안하다고 하면 무조건 받아들여! 알았지? 또 튕기지 말고;;
왜 싸웠는지 자세히는 몰라서 누가 잘못한 건지 편들 수는 없지만.. 어쨌건!
우리 때문에 싸웠다니까 괜히 신경 쓰이잖아!“
“그런데.. 너 하진이랑은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됐어? 어제만 해도 헤어진다고 난리치더니..”
“아... 그... 그게! 헤어지자고 말 했었는데 말이야... 어쩌다보니까 이렇게 됐어;;
나.. 너가 해준 말 듣기로 했거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하려구! 나.. 하진이를 정말 많이 좋아하고 있더라.
헤어지자고 막상 말 꺼내놓고 나니까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픈 거 있지?
아직은 하진이에 대한 마음이 너가 준수를 사랑하는 것만큼 깊지는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이제 시작하는 커플이니까.. 채린아... 나.. 잘한걸까?“
“그럼, 그럼~~ 마음 털어놓고 나니까 어때? 후련하지 않아? 나도 그랬었는데..
우리 준수한테 한번 상처줬다가 아파서 죽을 뻔 했잖아~ 나중에 다시 준수 받아들였을때는 진짜 후련했어!!“
“푸웁.. 채린이 너.. 역시~ 입으로는 준수 욕해도.. 뭐? ‘우리 준수’? ㅋㅋ”
“억.. 내가 그랬나ㅡㅡ;; 이거 무의식중에 그냥.. 말이 튀어나와버리네;;”
“그니까 준수랑 얼른 화해해!!”
곧 하진이와 준수가 자리로 돌아왔다. 우린 커피숍에서 일어나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하진이와 지현이는 앞서서 걷고 뒤쪽에서 나와 준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준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도 이제 준수한테 삐졌던 마음은 다 풀어졌는데..
왠지 말을 꺼내기가 어색해서 준수에게 먼저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흠... 흠....”
어색한 침묵을 깨고 준수가 헛기침을 하며 은근슬쩍 한쪽 팔로 내 허리를 감았다.
“어머? 이 팔 뭐야?? ㅡㅡ+”
“앞에 지현누나랑 하진이도 저렇게 다정하게 걸어가잖아! 우리도 질 수 없지~”
“치이.. 손 치워! 간지러워..”
“간지러워? 에잇!!”
준수는 장난스럽게 내 허리를 간질간질 주물렀다. 난 웃음을 참지 못하고 길 한복판에서 크게 웃어버렸다.
“아직도 화 안 풀렸어? 미안해~ 나 많이 반성했어! 만약 나라도.. 내 친구 욕했다면 정말 화 났을거야!
내가 잘 알아보지도 않고 막 말해서 미안... 앞으로 주의할게!“
“아니야;; 나도 잘 한거 없는데.. 괜히 흥분해서 화내고ㅡㅡ;; 나도 미안해~”
“헤헤~ 우리 앞으론 싸우지 말자!! 우리 요새 너무 자주 싸워...”
“응~ 진짜로 싸우지 말자~! 화나는 일 있어도 서로 조금만 참아주기!”
“응응~ 사랑해...”
쪽!! 준수는 길을 걸어가면서 내 볼에 입술에 뽀뽀를 했다. 큰 길인데ㅡㅡ;;
사람들의 시선이 매우 민망하게 느껴졌다.
앞서가던 하진과 지현이도 어느샌가 멈춰서서 뽀뽀를 하는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냉전이 얼마나 가나 했다! 쯧쯧쯧... 저런 바보커플!!”
하진이와 지현이는 우릴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치만 바보커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마냥 좋다^^
#73.
여름방학도 이제 끝나가고 있다. 준수와 함께 보내서 그런지 길었던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여름방학 내내 준수의 얼굴을 보면서 지냈다! 둘이 영화도 많이 보고, 날 더울 때는 준수네 집에서 편한 데이트도 하고..
하진이, 지현이 커플과 더블 데이트도 많이 했다! 여름방학이 이렇게 금방 가버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교 방학은 무려 3개월 가까이 되어서 처음에는 방학했다고 좋다고 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료하게만 느껴졌다;
어떤 때는 어서 개강해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방학은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준수 역시 방학이 끝나가는 것에 매우 아쉬워하는 것 같다.
개학을 하면 또 우리가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테니까... 난 나대로 학교 생활에 바쁠 것이고, 준수도 공부에 치여살테고..
준수네 아버지가 내건 조건 때문에 준수는 방학동안에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결과는 개학하고 첫 번째 모의고사를 보면 알겠지만.. 잘 나와야 할텐데.......
오늘은 개학 전에 준수와 마지막으로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아.. 오늘은 뭘하지? 평소와는 다른 조금 특별한 데이트를 하고 싶은데..
준수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유난히 신경을 써서 치장을 했다.
약속시간을 한시간 정도 남기고 있는데 준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준수야?”
“응~ 나야!”
“왜 전화했어? 한시간 있으면 볼텐데... 설마... 약속 취소하려고?ㅡㅡ;;”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있지.. 내가 깜빡했는데 오늘 성권이 녀석 생일이거든!
전에 한번 봤었지? 왜 그때 지현누나랑 수란누나 있었을 때.. 그녀석이 수란누나 데려다줬잖아!“
“아.. 아~ 걔? 오늘이 생일이래? 친구 생일도 까먹고 잘한다... 그래서! 나 못만나겠다는 거지?”
“아니라니까~ 너... 나랑 같이 갈래? 오늘 나 따라가면 아마 처음 보는 애들도 많을거야.
너가 불편해할까봐 걱정되기는 한데... 같이 가자~ 여자친구 한번 보여달라는 녀석들도 많아서..“
“너 친구들 모이는 자리인데 내가 왜;; 난 됐으니까... 그냥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아!
친구 생일인데 어쩔 수 없잖아? 하루정도는 내가 양보해야지 모.....“
말은 이렇게 했지만 준수가 선뜻 ‘알았어’ 라고 하고 나하고의 약속을 취소해버리면 화가 날 것 같았다.
“근데 왜 목소리는... 전혀 양보하고 싶지 않은 목소리인데? ㅋㅋ
내가 친구 생일파티 가겠다고 하면 화낼거면서~ 내가 너 속을 모를까봐?“
윽... 준수는 이제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다.
“피... 아니다 뭐!”
“에이~ 그러지말고.. 같이 가자!! 내가 있는데 뭐 걱정이야?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쓸께!
나도 내 친구 녀석들한테 너 소개해주고 싶단 말이야. 같이 가주세요! 공주님~“
“너 친구들 전부 남자잖아! 여자애들도 있으면 몰라도.. 남자만 있는 자리에 내가 어떻게 껴?”
“아니야~ 하진이도 지현 누나 데려온다고 했어~! 그리고 불편하면.. 아! 수란누나랑 미나누나도 부르면 되겠네~
누나들이 좋아하는 나이트에서 생일파티 하니까 꼭 오라고 해!
녀석들도 누나들 오면 되게 좋아할껄? 그럼 생일파티 가는거다! 누나들한테 연락해봐~
공주님~ 이따가 데리러 갈께요~~!! 예쁘게 하고 와!“
“잠깐.. 잠깐!!!”
준수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나의 외침은 준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준수 녀석.. 갈수록 막무가내로 변해가는군..ㅡㅡ;; 교육을 잘못시켰어!!
난 지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현아! 나야!”
“응~ 알아 ㅋㅋ"
"뭐해?”
“나야 나갈 준비하지~ 너도 오는거 아니야? 하진이랑 준수 친구 생일파티!
내가 너 가면 간다고 하진이한테 그랬는데...“
“아아.. 나도 방금 알아서.. 가게 되었어;; 원래 오늘 준수랑 데이트하려구 했는데ㅠ
준수가 불편하면 미나랑 수란이도 부르라고 하던데..“
“안 그래도 내가 어제 미나랑 수란이한테 연락했어^-^ 나이트 간다니까 좋다고 온다던데;”
“그래? 그럼 좀 안심이다... 알았어! 이따 봐~”
5시가 되어 준수를 만나고 친구들이 모이기로 했다는 술집으로 갔다.
나이트에 가기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술집에서 먼저 생일파티를 한다고 했다.
내가 술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하진이와 지현이는 오지 않았었고, 웬 남자애들만 득실거렸다.
뭐가 이렇게 많은 지... 쪽수에 괜히 위축되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녀석들인데..
“민준수! 왔냐?”
“야~ 오랜만이다!”
“개새끼; 연락한번 안하고 방학 끝날 때되니까 얼굴 비추냐!”
“미안 미안~ 그러니까 니들도 연애하란 말이야! 성권아! 생일 축하한다~”
“고맙다! 어~ 채린누나 안녕하세요~ 전에 한번 봤죠?”
“아... 네... 생일 축하해요~”
“누나~ 왜 존댓말하세요! 말 놓으세요~ 전보다 더 이뻐지셨네요 ㅋ”
“고.. 고마워”
“야! 성권이 너 경고다!! 작업용 멘트 날리지마~ 생일이니까 생일빵해야지!”
준수는 성권이에게 다가가서 주먹으로 복부를 가볍게 쳤다.
“욱!”
가볍게 쳤는데도 아픈지 성권이는 배를 움켜쥐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씨.. 이게 생일빵이냐?? 졸라 아프네;”
“살살쳤는데 왜 그래ㅡㅡ;; 야! 니들은 형수님한테 인사 안해?
니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내 여자친구 김채린이야~“
“안녕하세요”
준수 친구들이 떼지어 나에게 인사를 했다. 우렁찬 목소리에 또 한번 위축되어서 나도 모르게 준수의 등 뒤에 숨고 말았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준수 친구들 중 몇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웃기다고 웃는지;;
준수 역시 자신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는 날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푸하하.. 준수야! 너 여자친구 무지 귀엽다~”
“원래 좀 귀여워~ 야! 니들이 무서운가보다.. 미안; 얘들이 인상이 좀 더럽지? ㅋ”
준수는 손에 힘을 주어 내 어깨를 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옆자리에 나를 앉혔다.
하진이와 지현이는 한 30분정도 뒤에 도착했다. 지현이 역시 친구들에게 신고식을 했지만 긴장을 하나도 안했나보다.
나와는 달리 매우 당당하고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난 지현이를 내 옆자리에 앉혔다! 이제야 좀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는구나~
“수란이랑 미나는 왜 안와?”
“좀 늦을거래~ 한 9시쯤 올 거 같은데?”
드디어 생일파티가 시작되고 얘네들의 전통인 생일주를 또 보게 되었다.
성권이가 불쌍하구나.... 갈수록 점점 심해지는 듯;; 다들 기분좋게 술을 마셨다.
“자! 채린 누나~ 누나도 한잔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술 잘하세요?”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처음 보는 아이가 나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아.. 난 술 잘 못하는데;;”
그러면서도 따라주는 술을 받아서 무작정 원샷을 했다. 양주였는데.....ㅡㅡ;;
지현이도 친구들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지현이야 원래 술을 잘 마시니까 괜찮지만!
흠... 그래도 오랜만에 마시는 양주라 그런지 오늘 술이 잘 받네? 그리고 왠지 취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아이가 와서 반갑다며 나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한잔 마시고 나니까 또 다른 아이가 오고ㅡㅡ;;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레이스였다!
이미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한 다섯잔 정도를 마신 뒤였다.
“누나~~ 저랑도 한잔해요!”
“야;; 얘 술 잘못한다니까~ 오늘이 채린이 생일이냐? 성권이 생일이지.. 왜 이렇게 술을 먹이려고 해;;”
가만히 보고 있던 준수가 내가 좀 위험해보였는지 친구들을 만류했다.
“아니야! 괜찮아~ 만나서 반가워!!”
하지만 난 준수가 말리는데도 양주잔을 홀짝 비워버렸다.
“그만 마셔;; 너 그러다 취한다!! 불안한데.. 이제 그만!”
“싫어~ 더 마실래~ 오늘은 술 많이 마시고 싶단 말이야! 기분 좋아서~
내가 취하면 어때? 너가 나 잘 챙겨줄 거잖아^-^“
“으휴... 또 발동 걸렸지? 그럼 할 수없지.. 오늘 만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구..”
난 준수 옆에서 술을 마음껏 마셨다~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9시가 넘어서 미나랑 수란이가 도착했다.
“미나야~ 수란아~~”
“응? 채린아! 얘 봐라;; 맛탱이 갔네.. 오랜만에 만나서 취한 모습 보여주는거야?”
“아냐~ 나 아직 안 취했어!”
“킥킥킥.. 으이구~ 못본 사이에 더 예뻐졌네! 준수랑 잘 지내고 있나봐?”
“그럼 그럼~~ 준수와 나는 완벽한 커플이잖아~! ㅋ”
“너 취한거 맞다ㅡㅡ+”
미나랑 수란이가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서 우린 나이트로 이동했다. 나이트 역시 오랜만이라 기분이 들떴다!
#74.
2차로 간 나이트.. 10명정도가 함께 했다.
애들이 고등학생이라 민증검사를 당연히 할 줄 알았는데 전혀 하지 않고 무사통과였다.
오히려 입구를 막고 있는 사람이 들어가려는 나를 잡고 몇 년생이냐고 물어봤다;; 내가 그렇게 어려보이나?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준수 친구들 중 한명의 삼촌이 운영하는 나이트라서 무사통과였다고 한다.
준수는 나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나이트에 데려갔다. 신촌에 있는 곳이었다.
나이트야 뭐 시끄럽고 화려한 분위기는 다 비슷비슷하지만~ 이쪽 나이트가 훨씬 더 크고 물이 좋은 듯 했다!
우린 룸이 아닌 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룸에 갈까 했지만 시끄러운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서~
술기운이 한창 오르는 중이라 불안하게 비틀거리는 나를 준수가 꽉 잡아 쇼파에 앉혀주었다.
애들이 워낙 많은지라 테이블을 여러개 차지하고 앉아야했다. 남자 여자 섞어서 왔기 때문에 부킹은 안 해주겠군;;
오랜만에 부킹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준수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2차에 와서도 우린 양주를 시켰다. 이번엔 맥주와 섞어서 폭탄주를 마셨다.
난 알딸딸한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폭탄주를 2잔 마셨다. 마시고 나니까 머리가 핑핑 도는게 죽을 것 같아ㅠ_ㅠ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준수의 어깨에 기댔다.
“괜찮아?”
“어지러워~”
“그러게 자제 좀 하라니까~ 폭탄주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나한테 좀 기대있어!”
준수는 날 안아서 내 몸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빨갛게 달아오른 나의 볼에,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왕 닭살이야ㅡㅡ 또 바로 앞에서 염장질이냐? 준수야...
오늘같이 기분 좋은 날에는... 이 형님이 태어나신 날에는! 좀 참아주지 않으련?ㅡㅡ^“
우리 바로 앞에 앉아있던 성권이가 모든 장면을 보고는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말했다.
“부러우면 너도 연애하라고~ 몇 번 말해 ㅋ”
“이거 정말 배 아파서 살겠나ㅡㅡ”
내 옆에 앉아있던 수란이가 툴툴거렸다.
“앗! 누나 죄송해요~”
“에이.. 나이트 온다고 좋아했더니 뭐야~ 이러면 재미가 없잖아.. 부킹도 안해줄거 아냐!
나이트에 와서 부킹 안하기는 또 처음이네;;“
수란이는 부킹 때가 되었는지 웨이터에게 손목을 잡혀 다른 테이블로 끌려가는 여자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야! 우리 부킹하자~~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미나, 너랑 나랑 둘이? 둘이 무슨 재미야;;”
“그럼 채린누나랑 지현누나 끼어서 넷이 하세요~ 테이블 하나 떼어드릴께요!
저흰 모르는 척 하고 있죠 뭐 ㅋㅋ“
생일을 맞은 성권이가 말했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채린이가 너 여자친구냐? ㅡㅡ+ 안돼!
내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부킹은 무슨 부킹이야!“
“에이~ 준수 속도 좁다!! 채린이는 그냥 머릿수 채우는 건데 뭐 어때~
설마 채린이가 너가 바로 옆에 있는데 바람 피우겠어? 채린이를 그렇게 못 믿어?“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어! 하진이 너는? 너도 지현이가 부킹하는거 싫어?”
“싫긴 하지만... 누나들 위해서 양보할게요~”
“역시^-^ 하진이는 시원시원하다니까~ 준수야! 남자는 저래야 되는거야 ㅋ”
준수의 입이 또 오리주둥이가 되어버렸다.
“준수야! 나 부킹해도... 돼?”
“해라 해;; 수란 누나말이 맞긴 하지.. 부킹한다고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고...”
“진짜? 음... 그럼... 우리... 오늘 벌어지는 일들은 서로 이해해주고 넘어가기로 하자! 너도 나도~”
“어쭈? 무슨 일을 내려고 그러시나? 그 말은... 나도 부킹해도 된다는 거야?”
“그래~ 뭐.. 가끔은 솔로기분 내고 싶기도 하겠지! 하지만.. 오늘 하루만이야! 더는 안돼~”
“좋아!! 나중에 딴 소리하기 없기다...”
의미심장한 준수의 표정에 괜한 소리를 했나 싶었지만 부킹을 한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기껏 테이블 하나를 떼어서 지현, 미나, 수란, 나.. 이렇게 넷이 앉았는데 부킹이 들어오지 않는다.
원인을 따져다보니까.. 웨이터들이 우리 쪽에서 알짱거린다하면 준수가 엄청난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준수 뿐만 아니라 준수 친구들이 전부 우리 쪽에 주목하니까.. 웨이터들이 일행인 것을 알고 부킹을 해주려 하지 않았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ㅠ_ㅠ
기다리다 지루해진 우리는 결국 포기하고 준수 친구들과 함께 스테이지로 나갔다~
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열심히 몸을 흔들었다~ 우리끼리 원을 만들어 신나게 춤을 추었다!
그런데... 춤을 추고 있는 상태에서 굉장히 야한 옷을 입은 어떤 여자가 준수에게 접근을 했다 +_+
저 여자.. 아까부터 우리 쪽에서 계속 알짱거리더니 이젠 아주 대놓고 준수에게 달라 붙는다.
준수는 원래 같았으면 매몰차게 그 여자를 떼어 놨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 여자의 춤에 적당히 응해주고 그 여자와 눈빛까지 주고 받았다!!!! 나의 착각인지는 몰라도ㅡㅡ;;
설마 아까 나랑 한 얘기 때문에? 내가 부킹한다고 해서 삐졌나;; 복수하려는 건가...
그래도 난 결국 부킹 안했잖아!! 이런 억울한 경우가....
그 여자는 준수도 자기를 마음에 들어한다고 생각했는지 준수의 몸을 은근슬쩍 더듬었다!
난 참고 참았다.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춤에 열중했다. 나보다 주변의 친구들이 더 당황한 눈치였다;;
드디어 댄스음악이 끝나고 잔잔한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우린 떼를 지어 자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여자가.... 들어가려는 준수의 팔을 덥썩 잡았다!
준수는 그 여자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데 난 약간 떨어져 있어서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블루스까지 춘다면 정말 한대 패주려고 했건만.. 다행히 눈치는 있었는지 준수는 그냥 들어와 앉았다.
“준수 너 인기 좋네? 저 여자가 뭐래? 너 마음에 든대?”
“질투하는구나? 오늘 일은 다 눈감아 준다며~ 너가 먼저 그런 말 했잖아!”
“누... 누가 뭐래?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난 아직도 몽롱한 정신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조심조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내 손목을 덥썩 잡더니 날 어디로 마구 끌고갔다!
웨이터 오빠잖아? 그렇다. 난 지금 부킹을 하러 가는 것이다~~
처음엔 “저 부킹 안해요~” 하면서 잡힌 손목을 빼내어보려 했지만 웨이터 오빠는 무작정 나를 끌고 갔다.
몇 번 저항하다가 아까 준수가 그 여자와 춤을 추던 장면을 떠올리며 두말 않고 웨이터 오빠를 쫓아갔다.
흥! 어디 너도 당해봐라~~
웨이터 오빠가 나를 앉힌 곳은 남자 3명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우리 테이블과는 멀리 떨어진, 구석진 곳에 있는 테이블이었다.
3명 다 나이는 내 정도 되어보였고 내 앞에 앉은 두 명은 보통수준 이하였지만.. 내 옆에 앉은 사람은 꽤 봐줄만 했다~
“안녕하세요”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나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시끄러운 음악 탓에 그 남자는 내 귀 가까이에 대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몇살이예요?”
“저 21살이예요~ 그쪽은요?”
“전 24살이요! 제대한지 얼마 안 되었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왔어요?”
“아.. 네! 친구들은 저쪽 테이블에 있어요~ 여기서는 잘 안보이네요..”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되요?”
“김채린이예요~”
“저는 박정훈이예요! 술 드리고 싶은데.. 벌써 많이 드신 것 같네요? 더 마실 수 있겠어요?”
“네~ 괜찮아요! 한잔정도는~”
한잔이라고 했지만... 이 테이블에 와서 그 남자의 끊이지 않는 질문에 대답해주며 술을 마시다 보니까 한 5잔은 마신 것 같다.
술이 더 취해서인지 준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몸으로 실천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난 이 테이블에서 30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또... 화장실 간다며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나를 준수가 애타게 찾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채린이가 화장실을 간지 10분 경과... 준수는 나이트 안을 두리번 거렸다.
“왜 채린이가 안 오지? 혼자 보내는게 아니었는데..”
지현이 역시 걱정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게요.... 왜 안 오죠? 설마.. 부킹하고 있는거 아니예요?”
“부킹??? 에이~ 설마...”
“웨이터들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여자 손목 잡고 그냥 끌고 가잖아요ㅡㅡ;;”
아까.. 제가 그 여자랑 잠깐 춤춰서 좀 화난 것 같던데.. 홧김에.....“
“아... 아닐꺼야~ 한번 찾아보자! 내가 화장실 갔다와볼께!”
5분 후에 지현이가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채린이는 없었고 혼자 돌아왔다.
“화장실에 채린이가 없는데? 얘 정말 어디로 간거야??”
“정말 부킹하러 갔나봐요.... 홀 한번 둘러볼께요!”
준수는 약 10분가량을 홀을 정신없이 누볐다. 하지만 구석진 자리에 있는 채린이는 발견하지 못하고 초조해했다.
술 취했는데... 어디서 뻗어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너무 걱정이 되었다.
#75.
술이 마구마구 오르기 시작했다. 내 얼굴에선 겉잡을 수 없이 열이 났고 잠이 쏟아졌다.
이젠 안되겠다 싶어서 난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내가 시계를 봤을 때는 이미 화장실에 간다고 나온지 40분이 지나있었다ㅡㅡ;;
윽.... 돌아가면 준수한테 엄청 혼나겠다ㅠ_ㅠ
“저기요.. 저 이만 가볼께요~ 즐거웠어요!”
“잠깐만요. 어디가요?”
정훈이라는 사람이 일어서는 내 손목을 잡았다.
“아.. 친구들이 기다릴거 같아서요~ 가보겠습니다!”
그 사람의 손에 잡혀있는 손목을 빼어내려고 했는데 그 사람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왜 이런담?? 난 이상한 눈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취한 것 같은데.. 자리 잘 찾아갈 수 있겠어요? 데려다 줄까요?”
“아... 아니예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이 사람을 데려갔다가는.. 준수가 이 사람을 패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돼!!
“저기... 손목 좀 놔주실래요?ㅡㅡ;;”
“아.. 미안해요~ 채린씨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그래요! 연락처라도 가르쳐 줄래요?
아니면 조금 있다가 여기로 다시 와주세요~ 친구 데려와도 상관없구요!“
“연락처는 좀 그렇구요.... 저기... 사실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죄송해요”
“아..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그래요.. 어쩐지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럼 아쉽지만..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겠죠?^-^“
그 사람은 그제서야 나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자유로워진 나는 한걸음씩 걸음을 옮겼다.
비틀비틀... 이게 내 몸같지가 않다! 나는 똑바로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발이 꼬여서 넘어지려는 찰나에 정훈이라는 사람이 날 두팔로 잡아주었다.
“거봐요~ 혼자 못간다니까.. 어디예요? 데려다줄께요”
“아.. 괜찮은데;;”
그 사람은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내 몸을 일으켜 주었고 난 그 사람의 몸에 완전히 기대어 있었다.
누가 보면 포옹을 하고 있는 걸로 오해할 소지가 충분히 있는 자세였다.
어지러워서 그 사람에게 기댄 채로 이마를 손으로 짚고 있었다.
“김채린!!!”
누군가 굉장히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목소리만은 또렷이 들렸다.
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앞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준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준수는 무서운 표정을 하고 나와 정훈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채린씨, 누구예요?”
정훈은 나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난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준수는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나에게로 걸어와서는 거칠게 내 팔을 잡아당겼다.
정훈에게 기대어 있던 내 몸이 곧 준수에게 확 안겨버렸다. 준수의 단단한 가슴에 부딪혀서 아팠다.
“당신, 뭐야? 뭔데 채린이 데리고 노닥거리고 있어?”
준수는 내 팔을 잡은 채로 정훈에게 다가가서 정훈의 어깨를 손으로 밀쳐버렸다. 정훈은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준수야... 하지마;; 자리로 가자...”
“넌 가만히 있어!!!”
“채린씨, 이 사람 누구예요? 누구길래 처음 본 사람한테 이렇게 예의없이 굴어요?”
“아... 죄송해요;; 제 남자친구거든요... 죄송해요.... 준수야~ 가자니까!”
“가만히 있으랬지!!!!”
“준수야!!! 제발!! 그만해... 가자....”
“당신.. 한번만 더 남의 여자한테 찝적거려봐. 가만 안둬....”
“정훈씨; 죄송해요..”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훈을 세워두고 간신히 준수를 끌고 자리로 돌아왔다.
“채린아! 너 어디 갔다온거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준수가 계속 너 찾아다녔어!”
지현이가 자리로 돌아온 날 붙잡고 말했다. 준수에게 엄청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ㅡㅡ;;
날 찾고 있었구나.. 그런데도 난 자리로 돌아올 생각도 안하고 다른 남자하고 있었으니...
“성권아. 나 먼저 간다. 미안. 다음에 보자! 누나들.. 저 가볼께요. 집에 잘 들어가세요!”
준수는 한쪽 손에는 내 핸드백을 들고 한쪽 손에는 내 손목을 잡고 나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아! 아퍼~~ 팔 좀 놔줘!!”
나이트 밖에 나와서야 준수는 내 팔을 놔줬다. 그리고는 여전히 무섭게 인상을 썼다.
“김채린!! 너 뭐하자는 거야? 제정신이야?”
“내.. 내가 뭐!!”
“몰라서 물어? 어떻게 부킹을 하고 올 수가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찾았는지 알기나 해?
난 너가 취해서.. 누구한테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몰라서 무척 걱정했다고!!“
“아.. 아무일 없었으니까 된거잖아;;”
“뭐야??? 야!! 너 나랑 장난해?”
준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잡았다. 준수의 손에 힘이 들어가서 매우 아팠다.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내가... 내가 부킹 하고 싶어서 한것도 아닌데!
웨이터 오빠가 그냥 끌고 가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럼 그 자리에 가자마자 일어나서 일행있다고 우리 테이블로 돌아왔어야지!
좋다고 가서 놀고 있냐? 사실은 부킹이 하고 싶어서 갔던 거 아니야??“
“그래!!! 하고 싶어서 갔다! 왜? 나는 그러면 안되냐?
자기는 모르는 기집애랑 좋다고 춤춘 주제에... 나는 왜 다른 남자랑 놀면 안돼?
먼저 날 자극한건 너였어! 나만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내가 너처럼.. 그 여자하고 30분 넘게 같이 있었냐? 그 여자가 내 품에 안겼어?”
준수가 이렇게 말하니까 할말이 없었다;; 난 대답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할말 없지? 다른 남자한테 안기니까 좋든? 내가 아무리 오늘일은 눈감아준다고 해도 그렇지..
니가 이정도로 심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지금이라도 그 놈한테 가!! 가라고!!“
정말 이렇게까지 펄쩍 뛰며 화를 내다니.. 한대 치겠다;; 난 그런 준수의 모습에 놀라서 눈물을 흘렸다.
되게 서러웠다. 그 사람한테 안기고 싶어서 안긴 게 아니었는데.. 연락처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잠깐 얘기한 것 뿐이었는데.... 난 엉엉 소리를 내면서 크게 울었다.
“뭘 잘했다고 울어!”
준수의 호통에 난 더욱 더 서럽게 울었다. 이젠 달래주지도 않다니ㅠ_ㅠ
내가 울 동안 준수는 나를 달래줄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는 듯 했다. 가만히 내 앞에 서있었다.
난 울음을 그치지 않은 채로 준수의 손에 들려있는 내 가방을 거칠게 뺐었다.
그리고 택시를 잡으려고 큰 길 쪽으로 걸어나갔다.
“어디가?”
준수는 내 팔을 꽉 움켜쥐었다.
“놔! 택시타고 집에 갈거야!”
“너.. 지금이 몇시인 줄 알고나 하는 소리야? 너혼자 택시타면 위험해!
비틀거리는 주제에.. 집에나 찾아갈 수 있겠어?“
“갈 수 있으니까 놓으라고!”
준수가 내 팔을 놓은 순간 또 비틀비틀;; 넘어질 뻔 했다.
왜 이렇게 술이 안 깨는거야?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집에 가야된다고 ㅠ_ㅠ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준수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지나가는 택시를 한대 잡아세웠다.
그리고 날 먼저 태우고 자기도 내 옆에 탔다.
“넌 왜 타는데? 내려! 나 혼자 갈거야!!”
“시끄러워!! 한마디만 더 해봐!!”
준수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서 난 찍소리도 못하고 조용히 있었다.
우리 집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난 몽롱한 정신을 애써 붙잡고 있다가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정신을 놓아버렸다.
옆에 준수가 있다는게 안심이 되어서 그런지 한없이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으................”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함께 속이 뒤집어짐을 느끼며 감겨있던 눈을 살짝 떴다.
잠깐.... 햇살???? 어제 새벽에 택시탔는데.. 그리고 거기서 잠들었는데... 나 집에 잘 온건가?
내가 눈을 뜬 곳은 내 방, 내 침대가 아니었다. 많이 보던 곳이다....
준수... 준수 방이었다! 뭐야?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어??
근데.. 뭔가 이상하다; 썰렁한 기분이 들었다. 난 천천히 정신을 바짝 차렸다.
왜 썰렁한거지?? 헉!!!!!!!!!! 옷!!! 내가 어제 입고 있던 블라우스와 치마가 없었다.
옷이 벗겨져 있음을 알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 준수가... 내 옆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랬다.... 더군다나 준수도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바지는 입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위에는 확실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일까? 어젯밤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 사고 친 거 아니야?? ㅠ_ㅠ 기억도 못하다니.............. 정말 대책없다.
소설제목 : ◆ 나이트에서 만난 그녀석 ◆
작가명 : ★MIRACLE★
E-mail : lovely8479@hanmail.net
연재장소 : 꽃잎소설 2 게시판
총편수 : 총 118편 완결(번외 5편)
장르 :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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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소설닷컴 (http://cafe.daum.net/youllso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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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소설①
[★MIRACLE★] ◆ 나이트에서 만난 그녀석 ◆ [61 ~ 75]
⑥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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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1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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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내가1빠다
원래내가일빠인대..ㅜㅜ오류때매..ㅜㅜ아씨아깝다..ㅜㅜ힝힝....어쩄든,,키스장면너무좋아요^ ^
나는2빠다 ㅋㅋㅋ*^^* 잼있당
ㅈ ㅐㅁ ㅣ ㄸ ㅏ/ㅋ
재밋다 ㅋ 준수 진짜 내 스타일이다;; 너무 멋있다;;ㅋ
준수 너무 멋있다.. 저런 남친이 하나 있으면은..ㅠㅠ^
또 6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