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아무튼 저의 국민학교 시절은 온통 프라모델과 같이 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돈암동에 있었던 학생백화점내의 모형점, 삼원사, 삼선교 아카데미, 학림사, 명륜동의 김순학 모형, 혜화동 동성중학교 앞에
에이스 모형, 종로5가 동서과학, 돈암동에서 버스로 10정거장 이내에 8개의 모형점이 있어서 프라모델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환경 이었습니다.
또 국민 학교 몇 학년 때인지 확실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겨울 방학 때는 돈암동 집에서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까지 약 2시간
동안 걸어 간적도 있었을 정도로 너무 좋아 했었습니다.
당시 저보다 한살 위의 동네 형님이 둘이 있었는데, 그 형님들도 프라모델을 좋아해서 저와 같이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 형님들 집에 가서 라면을 먹기도 했구요, 그 형님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황금 박쥐와 타이거 마스크등과 같은 만화도
잘 그렸습니다.
그 형님들 중 한분은 현재 중형병원의 컴퓨터 담당부장인데 피겨, 비행기, 자동차, 전차, 총 등을 좋아했고,
또 다른 형님은 아직 미혼이신데 국내에서 상당히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로 요즘도 프라모델에 흠뻑 빠져서 돋보기 쓰고
열심히 만들고 있다고 하십니다. 어렸을 때는 물건이 다양하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는데, 지금은 경제적 능력은
되지만 시간이 없어서 만들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틈틈이 즐기신다고 하십니다.
국민 학교 6학년 때에는 처음으로 제가 태어난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짐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프라모델은 거의 다 버렸습니다.
새로 이사 간 집은 푸른 잔디밭에 제방이 따로 있었고, 수세식 화장실이 3개나 되는 깨끗한 2층 양옥집 이었는데,
그 전집의 경우 재래식 화장실이 집안에 있었던 것과 비교 해 보면 정말로 좋은 집 이었습니다.
또 새로 이사한 집 뒤로 백운대와 인수봉,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도봉산도 있었으니 정말로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집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북한산 자락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대략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었고,
산에 올라 갈수록 공기가 신선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고 힘들게 올라간 산 정상에서 산 아래를 보면 기분이 정말로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저의 아버님께서는 거의 매일 산책삼아 올라 다니셨고, 저는 아버지를
따라 가끔 올라갔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국민 학교를 우수한(?)성적으로 졸업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친구들이 다 받는 상을 하나도 못 받았습니다. 그 때 생각하면 정말로 창피하네요.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뺑뺑이’라고 하던 중학교 입학 추첨을 했습니다.
고명 중학교만은 안됐으면 했는데, 정확히 그 학교로 배정을 받았습니다.
고명 중학교는 미아리 고개 꼭대기에 있는 학교였는데, 높을 고(高), 밝을 명(明), 영어로는(High Light Middle School)
이었고 당시 제가 살던 집은 84번 종점 부근 이었는데 그 버스는 미아리 고개 꼭대기에는 서지 않고 미아리 고개 전 정류장
인 길음 시장에 서고, 고개를 넘어가서 돈암동에 서는 버스여서 저는 미아리 고개를 매일 등산 다니듯 걸어 다녔습니다.
학교를 파한 후에는 탁구장에 들러서 약 2시간 정도 운동도 했었고, 돈암동에 있었던 학생 백화점내의 모형점(나중에 제일
과학으로 바뀜)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 곳에 가면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 당시 에어 브러쉬로 완성품을 칠해 주기도 했었는데 대략 한 달에 한번 정도만 칠을 해주니 운이 없는 사람은 오래 기다
려야 했지요. 그렇게 거의 매일 가면서도 ‘이러면 않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너무나 프라모델이 좋았고 또 빠져 들었
기 때문에 가는 순간만큼은 즐거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 그 모형점 주인아저씨는 정말로 보기 드문 자가용까지 있어서 저는 장래에 모형점 주인이 되었으면 한 적도 있었습
니다.
그렇게 다니던 제일 과학사에서는 타미야 독일군 밀리터리류를 주로 샀었고 독일군 4호전차를 약 4.500원 정도에 사서 만들
고 칠을 했는데 물론 타미야 에나멜 원액에 붓으로 칠을 했었습니다.
한번은 4.5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M113을 산적도 있었습니다.
내부 재현은 물론이었고 보병이 시계도 차고 있었고, 흑인 병사도 있었으며, 지금 시각으로 보면 정밀도는 별로지만 처음 봤
을 때는 정말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그 당시 타미야에서는 1/16 M4 셔먼전차가 나왔었는데, 처음 보는 캐터필러와 서스팬션등이 정말로 좋았고 신기 했습니다.
심지어 학교 수업시간에 창밖을 보면 동산이 있었는데, 그곳에 셔먼이 올라가는 상상을 한적도 있을 정도였으니 공부는 잘
할 수가 없었겠죠. 그렇게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프라모델을 했으니 여러분들도 대충 짐작이 가실 겁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은 점점 떨어져서, 70명정도 되는 반에서 20등 안에 겨우 들 정도가 됐습니다.
집에 프라모델을 사가지고 들어갈 때는 어머니께 들키지 않으려고, 가방에 숨겨서 현관에서 바로 인사드리고, 이층 제 방으
로 올라가다가 걸려서 혼나기도 한 적도 많았던 것 같네요.ㅋㅋㅋㅋㅋ
중학교 때는 키가 커서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겼는데, 한반 70여명 중에서 주로 65번에서 69번 정도 했었고,
비록 3년 개근상이었지만 중학교 졸업 때는 상도 하나 타면서 평범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요즘에는 서울지역은 연합고사가
없지만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연합고사를 봤기에 시험을 쳐서 고려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굳게 결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향상되어 반에서 5등안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하면 이른바 스카이 대학에 들어가지 않나 하는 희망을 가지고 했으나 성적이 점점 떨어져서 대입 예비
고사도 잘 보질 못해서, 결국에는 인천에 있는 모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프라모델은 하지 않고, 옥상위에 올라가 안테나에 낚시줄을 걸로 비행기를 찍는것에 빠졌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는 커다란 상(?)을 하나 받았습니다.
바로 새마을 금고 이사장 상이었는데 저축을 많이 했다고 주는 상이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프라모델을 별로 하지 못해 용돈을 그대로 저축 했으니, 졸업할 당시에는 20만원정도를 가진 나
름 큰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둑한 자금을 바탕으로 대학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레벨사의 USS 컨스티튜션 전함을 사서 만들면서 허리가 아파 몸
살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생스럽게 만들어서 결국 범선은 완성을 했고 약 15년 후에 모 패션에서 디스플레이 한다
고 하여 500.000원을 받고 판 기억이 나네요.
이어서 코스모스 백화점 모형점에서 약 4만원을 주고 타미야 1/6 경찰용 하레이 오토바이를 사서 열심히 만들었고 유리 케
이스까지 주문해서 넣었습니다. 나중에 후배가 자기 선배 가게에 디스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하길래 빌려주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어 몇년이 지난 후 이야기 해서 케이스 값은 받지 못하고 키트로만 받았습니다.
참으로 씁쓸하더군요. 정성을 다해 만들어 소중하게 보관하고자 케이스까지 주문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을 빌려 달라고 사정
을 하기에 후배였기에 믿고 빌려 준건데 아무 말이 없어 결국에는 먼저 말을 꺼내니 별 말도 없이 그냥 키트로만 주는 게 사
뭇 아쉬웠습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수유리에서 인천에 있는 학교를 다니려면 아침 6시에 나와서 저녁 7시쯤 집에 오니 학기 중에는 프
라모델을 거의 하지 못했고,(사실 흥미도 잃었습니다.) 방학 중에 1~2개정도 아카데미 1/10 오토바이를 만드는 정도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중 우연히 프라모델을 다시 하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중학교 동창이 군대 간다고 해서 환송식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다른 동창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도
중학교 때부터 프라모델에 흠뻑 빠져 있었고 그 당시에도 열심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는 아카데미 회장님과 아주 잘 아는 사이였고, 나중에
는 아카데미 개발실에서 몇년 일하다가 나와서 모형점을 약 10년 정도 하다가 약 3년 정도 모형 도매상을 했는데 지금은 노
래방을 개업해서 지금은 취미로 프라모델을 하고 있습니다.
잠실에 있는 아버지 소유의 건물에 작업 공간도 있어서 작업도 가끔 한답니다.
대학 4학년 때는 군대를 가기 위한 신검을 받게 되었고, 제가 알레르기 체질이라서 진단서를 가지고 갔는데 무종 판정을 내려
서 1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년간 백수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중간 중간에 아카데미 샘플 알바도 같이 해서 약 3개월 동안 45만원을 받은 적
이 있었습니다. 그 알바비를 받던 날 10만원짜리 수표를 분실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물론 작은 돈은 아니지만 그 당시로는 정말로 거금이었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웃음만 나네요.
이렇게 대학4년을 다니면서 평범하게 마쳤습니다. 프라모델을 조금 밖에 하지 않아서인지 장학금도 몇 번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중학교시절부터 대학을 마치기까지 평범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끝내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어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두서없고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조만간 나오겠지요. 글을 하도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무튼 재미없는 글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릴 때는 판에 박은 위인전을 읽으면서 감동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일반인의 지난 날 이야기에 감동합니다. 프라를 좋아하던 학창시절의 고초를 생각하면 지금은 천국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의 시간은 정말 너무 소중하네요.
저는 아직도 살얼음 판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나올때마다 읽겠습니다!!
아이고 부담됩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으앗!!! 경쟁자 생겼네요 빨 리 도망 가야지 휘이익~~~~~ 말~~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