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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다들, 그저 ‘아웅다웅’하다 마는 거라서
크리슈나무르티 : 꺼지지 않는 불꽃,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위하여
-- “聖人”의 시대를 살면서, “내가 안 바뀌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Always wanting freedom outwardly -- to go against the society, against a particular structure of society. And this revolt against society, which is taking place all over the world, is a form of violence, which indicates that one is concentrating on outward change without inward change. /
Without freedom man withers away, however great his work, whether in art, science, politics or religion.
다들 외면적인 자유를 원하고들 있습니다 -- 사회에 저항하고, 특정한 사회 구조를 반대하곤 하지요. 사회에 대한 반란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결국 그것은 폭력의 한 형태입니다. 인간들이 내면적인 변화 없이 외부적인 변화에 매달리겠다는 거거든요. /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시들어버립니다. 제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냈다고 해도 말이지요. 예술, 과학, 정치, 종교에서까지, 전부 다 마찬가지지요.
-- Jiddu Krishnamurti, San Diego Talk 3,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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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그러니 교육에서는 더더욱!
‘산다’는 거 자체가 다들 “폭력의 한 형태”라서 말씀입니다. 그래서 더 종교랍시고 “사랑과 자비, 박애” 운운해쌌는 걸까요?
그러니까 그 꼴에 어찌 ‘니나, 잘하세요!’ 그 말이 틀린 말이겠습니까. 오히려 그런 소리 한마디나마 감지덕지지요. 세상 실속 챙기고, 보다 덜 ‘폭력’적이게..
핵심 단어가 ‘내면’과 “자유”겠는데요. 그게 ‘자유민주주의’ 어쩌구 할 때의 그런 ‘자유’가 아니지요. ‘신자유주의’ 따위는 더 아니겠고요. 저건 진짜배기 “종교”로 이어지는. “자유인” 할 때의 그 “자유”니까요.
그나저나 오늘이 ‘그날’입니다만, 3·15, 4·19 아니라 기미년 ‘독립만세’도 정유년 “촛불혁명”도 저렇게 ‘내면’과 “자유”로 향한 것은 아니었지요? 그래도 “내면”에 그 무슨 영향을 끼친 게 있기는 있을까요? 행여, 있다고 해도 그게 얼마쯤이겠습니까.
정작, 오늘도 전쟁으로 얼룩져가는 이 지구촌, 그것도 하나 두나 늘어만 갈 것 같지요? “러·우 전쟁”에, “이·팔 전쟁”에, “이·이 전쟁”에.. 내 일도 아닙니다만, 똑똑하다더니, 멍청하게 어쩌자고 그 꼴에 전선을 두 개 세 개 더 늘이겠다고 설치고 있는 꼬락서니라니요. 중동전쟁은 전부 다 지들 때문에 일어난 건데도, 부끄러운 줄 모르기는 꼭 누구 닮아서리······. 구약, 신약, 고작, 그러라고 ‘신’께서 선택했다고요?
저런 얘기들이 우리랑 뭔 상관이겠습니까.. 게다가 ‘내가 왜..?’ 싶습니다. 어쨌거나, 우째, 4·19날 새벽, 텁텁한 공기, 겨우 두세 시간 자고는 깨버렸습니다. 황사 극심한 대기에 창문도 못 열겠는데요. ‘황사’ 아니라도 두문불출입니다만. 인류사라는 것이 진짜로 좀 평화로운 때가 언제 있기는 있었단 말이겠습니까. 각자 ‘나’ 자체가, ‘자아’라는 것 자체가 이미 “포악”한 것이니까요. 그렇게 부대끼니까 거의 날마다 전쟁이 터지곤 하는 거지요.
한평생 천하백수 비슷한 처지, 그저 ‘습관’적으로 하루이틀 궁시렁거리다 보니, 그마저 사흘나흘 점점 뜸해져갑니다만, 무엇보다도 먼저 ‘니나 잘하세요!’ 그 말이 갈수록 더 새록새록 다가옵니다. ‘잘하는 것’ 같지가 않아서 더 그렇고요. 하지만 문득, 거기서 혼자 내지르는 악다구니 같습니다만. 과연, ‘잘한다’는 게 뭐 어떤 걸까요? 그저, 고마, ‘아몰랑,’ ‘가만히 있는 게’ 제일로 ‘잘하는 짓’일까요? 마냥 흐르는 세월에 이래저래 더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안 해야 될 짓’부터 “확실하게 하지 말아야지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거기서는 그러니까 이 꼴에 아무 ‘하는 짓’이 없으니, 어쨌거나 대충 이대로만 게기기만 하면 되는 거겠군요? 뭔가 ‘하고저’ 하면, 그건 ‘나’의 조건화에서 나오는 “생각”에 뿌리들 둔 거뿐이겠지요? 그래서 더, ‘아무것’도 안 해야 한다는 걸까요? 인간이라는 게, 기어이 ‘뭔가를 하도록 진화해온 머리’ 진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오히려 ‘고역’입니다, 그지요? 평생토록 어찌어찌 ‘게긴다’는 게..
여튼, 그렇게 저렇게 언제나 뭔가를 ‘하도록’ 되어 있는 게, 이래저래 “의지”를 작동시키는 ‘버르장머리’로 단단히 굴러온 게, 그렇게 끊임없이 ‘망구 지 생각’에 시달리자는 게, 자그마치 인류 내력 수백만 년이라는 거 아닙니까! 거기서, 흔히들 말하는 무슨무슨 ‘명상법’과는 무관하게, 정말로 저렇게 “‘의지 작동’ 안 하는 존재 상태”가 바로 진짜배기 “명상”인가 합니다. 그렇게 ‘아무 의지 없이 존재하는 상태’가 바로 “고요”겠고요. 거기서 그게 또 “공[空]”이라는 것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까요?
더는, 그걸 ‘나’의 “죽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비로소 그게 철학적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바로 “죽음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공”이란 ‘나’가 죽는 거라고.. 우째, 이게 그냥 이렇게 연결이 되어버리네요. 그쪽으로도 별로 아는 게 없으면서 말씀이지요. 하기사, 정확하게 맞는지 아닌지는 그닥 문제도 아니지요? 대한민국, 몇 사람 읽어보지도 않는 ‘궁시렁거림’에, 그 무슨 오류가 있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큰 허물’이겠습니까. 스스로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닐 테고, 일부러 틀리게 말하고저 하는 것도 아니겠고 말씀입니다.
그러고 보니, 더, 이딴 끄적거림의 가장 근본 바탕은 ‘스스로 공부삼아’ 하는 거라고 봐주심이 가당하겠습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자기 공부삼아 이렇게 끄적거려보는 사람도 그 몇 사람 안 되지요? 혼자, 그저 “일기장”에나 적어보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읽어볼 수도 없겠고 말씀입니다. 저로서는 그런 ‘일기’ 비슷한 거라도 더러 좀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나이 아주 지긋하게 드신 분이라면, 또한 인터넷마저 잘 안 닿는 데서 유유자적하시는 분 계시다면, 멀리 찾아 뵙고 넙죽 절이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라서 더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간에, “자유”란 그 어떤 형태의 ‘폭력’도 용인할 수 없는, 그런 ‘경지’겠군요? 용인 문제가 아니라, 아예 ‘폭력’이 나올 수 없는 성품·인품이겠지요. 다들 ‘아웅다웅, 티각태각’ 살다 가는 건데, 거기서 또 진짜배기 “종교” 아니고는 저런 ‘경지’가 달리 있을까 싶습니다. 또한 “고요” 혹은 “공” 아니면, 진짜배기 “자유”가 아니겠고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이건 “학생들 피에 보답하라!”고, 다시 선생들이 더 외치던 4·19의 ‘자유’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차원이겠습니다. 이게, 우째, 4·19날 새벽에 하는 말로는 좀 그런가요? ‘자유’가 “자유” 아니라서 말씀이지요. 다시 “독재”로, 단 하루나마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지금, 요모냥요꼴’의 “대한민국 아닙니까? ‘이러자고 대통령 했나?’ 하던 그때 그 시절 생각이 나는군요. ‘애들 떼거리로 다 죽이고 온전했던 정권이 어디 있었다고..’ 그나마 저때는 교수님들께서 길거리 나서기도 했었건만. ‘영정사진’도 없이 죽어간 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쩌라고······.
그게 누구누구할 거 없이, 얼핏 보기에 외면적으로 ‘자유’롭게 보일지는 몰라도, 실제로 “내면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겠지요? 자기 스스로 세상 저 오만 가지 ‘가치’들에 아웅다웅 두루 다 시달릴 거 아니겠습니까? 그 상태로 ‘만족’한다면 거기서 끝이겠고요. 그런 면에서 ‘정치’에 대해서도 그 어떤 “사실의 지적”까지는 몰라도, 더이상 자신의 ‘감정’까지 개입시켜서 티격태격 시달리지도 않을 터입니다. 더구나 오늘날 한국 정치라면, 더 볼 것도 없지 않습니까?
꼭 정치 아니라도 이래저래, “편지 부치려고 우표를 한 장 사도, 그게 전쟁에 기여하도록 되어 있다.”는 말씀도 있는데요. 거기서 “자유”와 “공(空)”과 ‘나 없음[無我]’이 엮이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인생 최고 “행동”이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때 세상 꼬라지, 나라 꼬라지, 공동체 꼬라지’는 어찌 되는 걸까요? 물론 ‘내 꼬라지’가 먼저 나아져야겠지만요. 하지만 그건 딴 사람이 알 수도 없는 거라서요.
게다가 여기는, 오늘날 한류니 방산이니 국운이니 선진·선도국이니 해쌌지만, 완전 거꾸로 세상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인간들이 제일 많이 악바리로 사는 나라, 나아가서 결혼이고 뭐고 간에, 도대체 애 하나 낳기를 ‘지 죽는 일’보다 더 무서워하는 나라! 기어이 ‘딱, 나까지만 살고 말겠다’고······. 그 본을 봐서 그런지, ‘정치’라는 것도 고스란히 그 꼴 빼다 박고 있는 걸까요? 뭔가 “실속”이 좀 있어야 말이지요.
그 위대하다고 설레발 쳐대던 “촛불혁명”으로도 딱 5 년만에 ‘도로 니가 해봐라!’ 하고 권력을 그야말로 평화적으로 적폐들에게 이양해버리는 나라! 그 정권을 도로 뺏어가고도, “딱! 지까지만 다 해먹고 ‘사라지겠다는 결심’”으로 저러고들 있는 거지요? 명색이 최고로 배웠다는 인간들이 말씀입니다. 아무리 ‘딴나라당’이란 이름이 쪽팔린다고, 설마 아니, 이제 그만 해쳐먹겠다는 ‘결심’은 아닐 텐데요.
여전히 무한정 끄적거려지는 궁시렁거림에, 매양 그 말이 그 말이라서, 이딴 걸 자꾸 게시하기도 그렇고 말씀입니다. 안 그래도 ‘길면 읽어보지도 않는다’고들 더러 따뜻하게 만류하는 판인데요. 게다가 더는, 여전히 저들 ‘종교’의 탈을 쓴 말종들, 이 흐름을 막겠다며 망나니짓으로 설치면서도, 기어이 쉬쉬하고 있는 판이지만, 도대체 세상에 “인류사 새로운 성인”께서 왜 오셨겠습니까?
어쨌거나 간에, 결국은 세상에 ‘종교’라고 내세우는 무리들마저 저 “자유”에는 닿아보지도 못한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도대체 삼천리 금수강산, 오늘날 그 어떤 ‘종교인’이 그야말로 “자유인”이란 말입니까? 아무도 없는 꼴 아닙니까? 그저 ‘기복신앙’을 종교라고 우기고 있을 뿐이니·······.
이 땅에, 참으로 종교인다운 자유인들께서는, 우리들 가까이 계시지도 않고 말씀입니다. 더 멀리.. 지금,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 그 어드메 계시온지. 마냥, 그립고 부럽고..
그나마 “인류사 새로 오신 성인” “지두 크리슈나무티,” 그 분 소문이 이 땅에도 퍼져가고 있으니, 드디드디 간다 해도, 아주 ‘다행’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그러니 마땅히 종교는 ‘기복신앙’ 따위 차원에서 저 최고 “지성”의 경지로 올라서서, 반드시 “인간이 되고저,” 제 길을 제대로 가야지요.
그러지 않고서는 어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실속 있게 그 길을 “선도국”이 먼저 가보자, 그런 말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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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9] ‘정치’에서도 역시 “자유!”
철저히 ‘나,’ 그 철옹성에 갇혀 한평생 고달프게 살다가는 인간들에게, 그 때문에 ‘종교’마저 고작 ‘기복신앙’으로 끝인데요.
4·19날 새겨보는 말씀,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시들어버립니다.” 설령 ‘위대한’ 일을 해놨다고 해도.. 그게 “촛불혁명”이었다고 해도.. 그 열매는 딴 데로 가 썩어버렸고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4·19혁명” “촛불혁명”의 의미를 얕잡아보겠습니까마는. 더는 ‘시스템’이 아무리 좋게 갖춰져 있다고 해도, 그걸 굴리는 건 사람이니까요. 허접하게 굴러온 대한민국 현대사 애달픈 내력이 어찌 ‘대통령제’라는 시스템 탓이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잘 만들어놔야겠지만요.
더러 각 영역의 인간들이 다들 오로지 ‘지꺼챙기기’만 일삼았으니 요모냥요꼴이지요. 그러면서도 ‘개인’을 얘기해보자 하면 코웃음이나 치고 앉았고 말입니다. 결국은 그런 인간이 만들어놓은 사회 ‘분위기’랄까, 얼기설기 엮여 있는 ‘기저’ 흐름 탓이랄까, 얽히고설킨 ‘친일기득권’ 세력 카르텔 때문이랄까, ‘정치판’은 여전히 ‘나라 망해 먹자’고 북치고 장구치고 꽹가리까지.. 정신 하나도 못차리고설랑.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아무래도 ‘이게 무슨..’ 싶은 게 ‘선진국’ 같지가 않습니다. ‘경제대국’ 같지도 않고, 더구나 “홍익인간”이 더더욱 헌법에 적혀 있는 나라 같지가 않아서 말씀이지요. 그러니 “빼버리자!”고 야단법석 망나니 발광들이나 쳐대고 있고 말씀이지요. 그냥 ‘나는 빨간 불한당이다’ 얼굴에 써붙이기라도 했으면 좀 덜 밉겠지요? 버젓이 에헴 톨톨 교언영색에 모가지 기부스나 하고 댕기면서들.
하루하루 어둠이 더 짙어가고 시간은 ‘자정을 지나 새벽으로’ 가고 있으니까, “야심성유휘”에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웠다.” 그러지만.. 오히려 여전히 ‘닭 모가지 비틀어 재끼는 판’ 아닙니까? 여러 선열들 그때 그 마음에도 불구하고, “노짱”께서 ‘나라’를 잘못 보신 건지, ‘사람’을 잘못 보신 건지, 왜, “개인” 또는 “자유”도 아닌, 그저 ‘좀 고치는 것’도 아예 마음을 못 먹는 꼴들이란 말인지. 이게 그나마 좀 고쳐진 꼴입니까?
니나 내나 다들 저렇게 ‘외면적인 자유’나마 원하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자유”고 뭐고 간에, 그냥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그야말로 ‘두문불출’ 그런 ‘인간’들이 늘어만 간다지요? 고작, 기껏, 이웃 나라 본보자는 건지.. 안 그래도 ‘잃어버린 20 년’ 다 닮아가는구만. 저다지 이다지 방방 뜨기만 하면서 말씀입니다. 젊은이들 ‘영끌’ 집사기로 애시당초 인생 올가미 쓰고 시작하게 만든 거 아닙니까? 그런 젊은이 누가 ‘이런 거, 좀 고쳐보자’고나 하겠습니까?
역시 못 믿겠습니다만, 정치적으로는 ‘내각책임제’로 친일매국엘리트세력들이 항구집권을 노리는 거라지요? 빤히, 본보기가 있지 않습니까. 이웃 섬나라 말씀이지요. 정부관료, ‘개·돼지론’도 그런 와중에서 나온 걸까요? 왜, 어째서, ‘우리가 영원히 개·돼지로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그런 아우성은 왜 안 들리는 걸까요? 물론, “개인”이 먼저고 “자유”가 먼저입니다만, 하도 답답한 머리 말씀이지요. 게다가 이런 거 저런 거, ‘뙤·왜,’ ‘딴나라’ 얘기 좀 안 끌어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대로 좀 살아들 가주지.
오늘날 저 ‘노론’ 당수는 과연 누구란 말인지. ‘이완용 손주뻘쯤 될랑가..’ 왜, ‘잘 살게 되었다!’면서, 애를 안 낳는단 말인지, 왜, ‘선진국 되었다!’면서 젊은이들은 ‘빚쟁이’가 되어야 하는지, 그러고도 “선도국”은 무슨.. 그건 역시, 서구 저 사람들의 아첨이요 립스비스지요? ‘멍청하기는.. 뭐 하나 얻어먹을 게 있다고..’ 아부질은.. 세상, 너 나 갈라져서는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거지만 말씀입니다.
우째도 이냥 이대로 굴려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꼭 ‘이런 나라’ 아니라도 그러할진대.. 거기서 오로지 “개인”과 “자유”를 말씀하시니까는.. 그래서도 ‘강나루 건너서 / 밀밭 길을’이겠습니다만, ‘이어질 것이다, 어디론가 / 가다 보면 별 하나’ 내릴까요?
의식이건 마음이건 간에, 갈가리 쪼개진 채로 대상을 본다면, 문제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겠습니까? 쪼개져서는 ‘별’이 내린다 해도 안 될 터입니다.
진실로 “자유”라는 것은, 이 ‘나’라는 밴댕이소가지를 못 벗어난다면, 말짱 도루묵이란 말씀인가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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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끄적거려놓은 건 몇 년 사이 ‘사족’인데요, 그저 내다버리지 못 하는 ‘집착’ 때문에 달아놓은 것뿐입니다. ‘이딴 걸 왜 못 버리냐?’ 하시겠지만, 혹시나 관심 있으신 분, 흘낏이나마 보시라고 그대로 달아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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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6] “고작, 정권 한번 바꾸는 거밖에 못한 혁명!”
또 충격적인 말씀 아닙니까? 1970년 샌디에고에서 하신 말씀이니까,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반전운동과 제3세계 운동 등으로, 온 세상이 상당히 들썩이던 시절이었다고 보겠습니다.
시기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런 예가 아니라도, 세상은 그 어디에선가 항상 저렇게 부글거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시 오늘날 대한민국의 '촛불혁명' 열기를 대입시켜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언감, ‘정치’적인 영역이지요.
하지만 결국은 개인들의 내면적인 혁명 없이는, 설령 그게 '촛불정신'이라고 해도 별로 의미 없다는 뜻이지요? 이 말씀의 타당성을 찬찬히 짚어보기도 전에, 누군가는 화부터 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제 아무리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해도, 나아가서 '한민족, 배달민족, 흰옷 입은 사람들'의 “자랑거리”라고 해도, 결국은 개인들의 '내면적인 혁명,' 즉 “자기로부터의 혁명”이 없다면, 사회라는 것은 언제나 굴러온 그대로 ‘괴로운 바다’ 위에서 굴러갈 것입니다.
못된 권력 엘리트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권력을 다시 장악할 것이고, 왜냐면 권력이란 본래 자기들만의 차지였으니까요, 그들은 오늘날 한국 상황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나쁜 놈’들한테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재벌들은 여전히 저따위 권력에 빌붙어서 검은 돈 거래나 하겠고요. 예술 역시 '돈' 앞에서 '정의'를 주장하는 팀은 몇 안 된다고 봅니다. 더욱이 종교는 자기 이권만 보장된다면 왜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겠습니까? 그 모두가 다 “자기로부터의 혁명”에 방해되는 것들뿐입니다.
얼마 전에 번역 게시한 내용 가운데, '열 명이라도 지켜나가라'시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일으킨 사람, 열 사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싶지만, 더구나 한국에서는 다들 피기도 전에 꺾어버립니다. 그러면 반으로 깎아서 5천만 명 가운데 5 명은 어떻겠습니까?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예, 분명히 어딘가에서 드러나지 않게 존재하고 계실 것입니다.
언젠가는 한 번을 만나도 만나게 되겠지요.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전에 말입니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세대에서 해놔야지요. 꼭 ‘돈’ 있다고 그냥 되는 일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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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장자”의 ‘나비 꿈’ 같아서
혁명은 무엇보다도 인간 각자의 “내면 혁명”이 우선이란 말씀이네요. 그게 궁극적인 혁명이지요.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는 ‘촛불혁명’도 여기서 꽉 막히는 것입니다.
무슨 혁명 무슨 혁명 해도, 오로지 자유로 가는 인간 내면 혁명 없이는 끝내 잠시 벌어지는 모종의 분출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이라는 것도, 결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지는 못할 터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혁명, 이것을 한때의 일로 끝나버리지 않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냥 이대로라면 여타 저 모든 혁명들과 다를 게 전혀 없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제 아무리 ‘촛불혁명’이라고 추켜세우고 해도, 언제나 그게 눈에 밟힙니다. ‘인간 내면의 혁명’ 아니라면 끝내 가물가물 사라져가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게 가슴 저리지 않으십니까? ‘촛불혁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각자의 ‘내면적인 혁명’을, “자유인”의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꼭 ‘촛불혁명’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에, 그냥 ‘인간’으로서 자기 스스로를 구원해야지요. 그러나 세월이 가면 갈수록 공동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는 날로 시들고 있습니다. 사례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반 기업체에서의 ‘노조’ 가입도 시들해진다고 하고, ‘전교조’ 가입하는 선생님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답니다. 하물며 ‘촛불혁명’이겠습니까? 오늘날까지 우리가 세계사에 기여한 게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그런 면에서도 ‘촛불혁명’의 불꽃 하나만은 어떻게든 살려나가야만 하겠다, 그런 마음들이 안 생길까요? 그러나 시대 추세가 ‘탕진잼’이니 ‘소확행’이니 극구 ‘텅장’이니 해가면서 개인주의가 극심해진다는 진단이지요? 그러면 이제 더 이상 전체는, 공동체는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이며, 나아가서 스스로 기꺼이 책임을 지려고 하겠습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등, 심지어 종교까지, 사회 어느 분야에서 전체를 살핀다는 말일까요? 더 나은 대한민국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가게 되겠습니까? 이게 기우가 아니며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아니겠지요?
크리슈나무르티 왈, ‘한 사회에서 단 10 명이라도 지성을 지켜나가라’ 하시던 말씀도 더 새록새록 또렷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그 이상 여러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도, 그런 분들께서는 서로들 교류가 없이 살아들 가시는 걸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문제는 그래도 진짜 아무런 ‘힘’이 없다는 뜻일까요? ‘힘’에는 “사랑·자비의 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들이라면 ‘삶’이 도와준다고도 하셨는데 말씀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 준다,’는 말도 있었지요? 그런 말이라도 이런 데서 뭔가 좀 현실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은 마침 또 저 세월호 생명들을 더 기억해야 할 날입니다. 우리가 그런 꼴의 나라를 만들어놓고 ‘샴페인’이나 터뜨리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언제나 경계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쥐박이 ‘외국에 빼돌려놓은 비자금은 인간 상상력을 초월한다’든가 하는 말도 나돌고 있지요? 여전히 ‘그렇고 그런 모습의 나라’라는 말 아닙니까? 그런 돈으로 그가 할 게 어떤 뻘짓 또는 삽질 아니면 망나니짓이란 말일까요?
‘자유’가 없다면 인간은 시들어버린다고 하시지 않습니까. 정치나 종교에서까지 말씀입니다. 언감, 진짜 어찌 감히, 하필 명박에게 ‘자유’가 어디 한 구석 가서 닿을 틈이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수도를 어디에다가 ‘봉헌’한다고 했던가요? 그래도 그 책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다지요? 저 인간 때문에 ‘자유’라는 말 더러워지겠습니다. 궁극적으로 저런 조직 종교들은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지 않습니다. 보이는 현상들부터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날에도 사람 잡아다가 폭력으로 ‘강제개종’시키는 짓을 하기도 한다는군요. 그러니 좀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세상에.. 여튼 그런 인간들은 아예 끼어들지도 못 하겠지만, 진짜로 대한민국을 자유로운 나라로 만들어가야지요? 인간들이 전부 자유로운 나라, 자유로운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나라, 역시 자유와 사랑과 지성은 등가니까 그때 그 공동체는 그 얼마나 팔팔하게 살아 있는 사회가 되겠습니까! 그쯤 돼야 명실 더불어 “재조산하”로 “사람 사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때는 정말로 세상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이다’고 하겠지요. 꼭 그런 말을 듣기 위해서 해야 하는 건 아니겠습니다만.
모름지기 우리는 실속을 다져야만 하겠습니다. 개인 각자가 꾸준히 혁명을 일으켜야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같이 진짜배기 혁명에 관심들이 없으며, 주변에는 오히려 방해하는 조직들만 버젓이 지들 꼴이 일장춘몽인 줄도 모르고 득실거립니다. 그래서 사회는 점점 망해가는 거지요? 그런 ‘조직’이라는 게 어떤 것들이겠습니까? 개인의 혁명에 따르는 실속이 없다면 ‘모래 위에 집짓기’밖에 더 됩니까? 금방 무너지겠지요? 그렇다면 정치 영역에서만 보더라도 친일기득수구꼴통들이 또 정권을 잡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집회결사의 자유는커녕 또 다시 말도 한 마디 뻥긋 못하는 세상에서 마구 구겨져서 살아야만 합니다. 다시 더 ‘대공분실’ 어쩌고 하면서 부지기수로 죽어나가야 하겠지요.
이제는 저렇게 젊은이들이 ‘소확행’이니 하면서 점점 더 개인주의로 빠진다는데, 설령 나라 잃는다고 해도 독립운동이나마 하겠습니까? 삼대가 망한다는데요? ‘헬조선’에 결혼들도 안 하는 추세라고 하니까, ‘삼대’까지 내려갈 수도 없겠습니다만.
그러니까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진짜배기 혁명이 필수적인 요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다가가는 길을 닦아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시대적 사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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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 팬데믹에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 말 또 하는 걸로 되어버립니다만, 저런 것들이 하나의 ‘희망사항’으로 끝나지는 않아야지요? 참으로 그렇게 진짜배기 “사람 사는 세상” 만들어보라고, 크리슈나무르티, ‘새로운 성인’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겁니다.
정말로 ‘재조산하’ 해보라고 고타마 싯다르타 이후 2,500 년만에 다시 “부처님”께서 오신 거고요. 이 엄청난 일을 대한민국에서는, 이게 이렇다는 사실을 바야흐로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 곳곳에서 이 사실 하나를 못 퍼지게 하려고, 온갖 더럽고도 야비한 짓들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 역시 웬만큼 알 만한 사람은 이제 다 아는 ‘비밀’이 되어버렸지만요. 오랜 시간 그런 뻘짓을 업삼아 해왔음에도, 그래도 끝내 ‘잘못했다’는 소리 한마디도 안 하고 버티고 굳히고 뽀개고 게기고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정희 시절 사람들 죽어나가던 것에 비기면 아주 나아졌다고 하겠지만, 여전히 이 꼴이라면 민주화 ‘활짝 피는 것’은 요원한 거 아니겠습니까? 왜, ‘아닌 걸’ 보고 ‘아니오’ 소리 한마디를 “여전히” 못하게 한단 말입니까? 그런 소리 한마디 막는다고 자기네들이 행복하게 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개인이고 국가고 간에, “자유가 없다면 시들어버린다.”십니다. 설령 제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냈다 하더라도 말씀이지요. 여기서는 딱 “촛불혁명”이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무엇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한때 진짜로 온 세상을 달구었던 그 수많은 촛불의 열기는 이미 다 식어버렸다고 봐야겠지요? 외국인들의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던 찬사도, 그다지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자.”던 그 아우성들도, 시나브로 다 사그라들어버렸고, 이제는 다들 마치 아예 돌아앉아버린 꼴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는 그러거나 말거나 더이상 별로 상관도 안 하는 것 같지요? 그런 마음 한 줄기나마 끈끈하게 이어갈 생각도 안 하는 모양입니다. 이러면 다시 또 그리운 ‘노란 아저씨,’ 그 말씀 비슷하게 ‘뭔가 많이 변하게 한 것 같았는데, 돌아보니 쪼르라니 다 그대로더라’ 하는 소리는 안 나오겠습니까? 그러니 “촛불혁명으로 딱 정권 바꾸는 것밖에 못 했다.”는 소리나 들릴 뿐인 거 아닙니까? 하기사, 은근히, 그런 거 하나만 해도 ‘그게 어디냐! 세계사 유례도 없다는데. 평화상이라도 받아야지.’ 다들 김칫국이나 마시고 있는 것일까요?
이게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가 이다지도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세상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서, 다시 반문하고 새겨보지 않으면 안 될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가 없다면 다른 건 아무런 의미도 없기가, “예술에서나 과학에서나 정치에서나 끝내는 종교에서까지 전부 다 마찬가지”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여기서의 “자유”가 어찌 꼴랑 기껏 겨우 ‘휴식’이나 ‘일탈’이나 ‘방종’ 따위들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또 그런 거 아닌 저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역시 마음과 가슴은 없고 ‘말로만’인 거지요?
“창조”와 “사랑”과도 등가인 저 “자유”를 두고, 흔히들 무슨 ‘아름다운 구속’이니 어쩌니 하는 따위들의 소리로 사람들을 흐뭇하게 해줄 뿐이지 않습니까? “자유”나 “사랑”이나 간에, 그게 어찌 ‘구속’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고서도 그게 ‘아름답기’는 어찌 어느 모로 아름다울 수 있단 말입니까? ‘촛불’들 역시, “자유”와 “사랑”이라는 근본은 하나도 다져놓지 않고, 마냥 날뛰기만 하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있을 뿐인 거지요? 이런 대목에서는,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급행열차 유리창에 코를 처박고 달려가는 인간들’이라는 “어린왕자” 한 구절도 생각납니다.
‘우리 보이는 데는 없는 사랑을 / 어찌 불러야 노래가 될까?’ 그냥 말로만 ‘자유’고 말로만 ‘사랑’일 뿐인 겁니다.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저 “촛불혁명”에도 불구하고 다들 그 ‘나’ 주변으로 가라앉는 거지요. 그래서 진짜배기 “혁명”을 반드시 일으켜야만 하겠다, 그런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아무도 안 듣는데 어쩌겠습니까? 더욱이 ‘이게 이렇다’고 말도 한마디 못 하게 아주 생매장시켜놓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참된 “종교” 얘기라서, 조직 종교들이 쌍수 들고 환영할 리도 없는 거고 말씀입니다.
우짜든지 간에 젊은이들한테는 얘기라도 해줘야 할 텐데 말씀이지요. 저다지 주눅만 잔뜩 들게 만들어놓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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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6] ‘민초’들이 먼저 깨는 나라..
한 해 사이, 세상이 좀 변했습니다. 작년 재작년, ‘촛불’들도 꺼져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또 다시 ‘코로나19’라는 펜데믹 상황에서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세계적인 찬사가 들린다고들 합니다.
진짜로 우리가 좀 나은 거 맞을까요? 그런 구석이 어디 좀 있다고 해도, 절대로 “자만”하지 말아야지요. ‘고작’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게 뭐라고..’ 사필귀정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저 “홍익인간”이란 ‘종교 영역’입니다. 무한한 “사랑”의 영역이지요. 그게 안 돼서 문제지만요.
최근의 국회의원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했다고들 하지만, 정작 ‘민초’들은 또 다시 이리저리 갈기갈기 찢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유명한 누군가가 먼저 해놓은 말입니다만, 소위 지금의 여당이 그나마 좀 ‘보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요번에 폭삭 다 망한 군소정당들이 제대로 ‘진보’ 역할을 해야 되는 거라는 시각도 있지 않습니까? 또한 쥐꼬리만한 ‘양심의 가책’으로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새로 뽑힌 사람들이 다들 그분 반의반만큼이나마 된다면, 훨씬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건데 말씀입니다.
게다가 보이는 꼬락서니부터, 반성도 없고 정책도 없고 역량도 없는 무리들이 또 저렇게 어마어마한 세력으로, “헌법개정”까지 막을 수 있는 세력으로 등장했으면서도, 정작 ‘죽는 소리’밖에 안 하고 있습니다. 속지들 마시라니까요. 한번두번 속았습니까? ‘민초’들은 해방 이후 저들에게 속고만 살아온 것 아닙니까? 핍박만 당하고 살아왔습니다. 이왕 찍힌 몸에 이런 소리 못 할 것도 없고요. 겨우 인터넷 한 귀퉁이, 읽어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어떻겠습니까? 더구나 한적한 별장집에 은둔한 사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거 하나도 없을 텐데 말씀이지요.
저런 자잔한 일들은 제껴 두고, 어쨌거나 이 세계적인 펜데믹 상황에서도 의사든 간호사든 필부든 간에 자발적으로 필요한 곳에 ‘봉사’하러 가는 사람들의 행렬.. 그 분들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인명피해가 적게, 고맙게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저 ‘자발적’인 행동들.. “IMF 금모으기”가 그랬고 “태안반도 기름닦이”가 그랬고.. 저 “혁명의 촛불”들이 그랬지 않습니까? 전체가 위험할 때는 어김없이 발휘되는, 그야말로 “참 이상한 나라” 아닙니까? 그때 그게 영어 단어로 ‘wonderland’였는데, 그걸 ‘이상한’이라고 번역한 게 좀 걸립니다만. ‘놀라운’이라고 하지..
아마도 이랬기에 저 고조선 때부터 결코 중국에게 아예 점령당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근처 밉상인 나라를 ‘뙤놈 · 왜놈’이라고 은근히 부르기 시작한 거 아닌지나 모르겠습니다. 땅이야 또 얼마나 졸아들었든지 간에 말씀이지요. 그점저점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였으면 좋겠다셨던 김구 선생 말씀도 생각납니다. 정작 “이게 나라냐?” 했던 외침이 가리켰던 나라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지 “가장 강한 나라”가 아니었겠지요? “도덕경”에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요? 미국도 그렇고 중국·일본도 그렇고 소위 ‘유럽’도 그렇고 말씀입니다. “유약승강”도 생각납니다.
잠시, 김구 선생님 그 말씀 한번 찾아볼까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富)력이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强)력이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토씨 하나 틀린 데도 없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김구 선생 말씀. -- ‘높은 문화’ 그 어찌 저 “종교적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저 말씀이 그 말씀이 어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저’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는 저 “홍익인간”의 정신을 너무도 오래 팽개쳐버리고 살아온 듯합니다. 다시는 권력을 잡고 휘두르는 무리들이 등장할 수 없기를.. 아주 사라져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야, 그게 온전한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그 판에 쥐꼬리만한 제 권력을 ‘극력거중,’ 힘껏 다 휘둘러보겠다고 저리도 발광에 망나니짓일까요? 그만큼 우리는 ‘강함’에, ‘폭력’에 속속들이 절어 살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어쨌거나 사람들이 정말로 ‘자유’롭기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가는 길목에 있고, 그런 시절이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유”와 “사랑”과 “지성”은 등가입니다. 매순간에 “창조”적인 삼천리지요. 그런 자세로 세상, 시절, 역사, 그 어디 한 곳에 머무르는 일 없이, 그야말로 “아름다운 나라”로 가고가고 또 가고 해야 할 일입니다.
문득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하는 그 노래가 떠오릅니다만, 진짜로 그런 나라는 그냥 되는 게 결코 아니겠습니다. 언감, 이런 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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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7] 도대체 이런 궁시렁거림들이..
해마다 같은 날짜에 돌아오는 ‘내추억보기’인데요, 하루 이틀 차이가 나네요. 들쑥날쑥.. 그만큼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닌 거지요. 딱딱 끊고 맺고 안 된다는 거고.. 그래야 그게 “지금·여기”에 산다는 의미겠건만.
하기사, 내 모습, 이모냥요꼴로는 택도 없는 얘기입니다만. 더욱이, 안 써지는 글을 어떻게 더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어쨌거나 이런 모습으로나마, 어디까지 가게 될는지도 모르지만, 그저 최대한 가는 데까지는 가보는 수밖에요. 무엇보다도 이 행위가 ‘즐거워야’ 하겠거늘.. ‘과연 그러냐?’ 싶습니다.
펜데믹 때문에 대한민국 ‘선도국’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는데요. 그게 세상 어느 정부고 간에 이 ‘펜데믹’이 정권에 유리할 수도 있을까요? 이런저런 나라들 다 판판이 나가떨어지는 판국 아닐까.. 정권교체불가 독재국가 빼고 말씀입니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에도 불구하고, 역시 그다지 잘 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때 당시 이미, 그 혁명의 의미는 단지 정권창출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대통령 바꾼 거 말고는 그냥 옛날 그대로 굴러온 거밖에 안 된다고 느껴지는 게 저뿐일까요? ‘노심초사’ 하신 여러분에게 송구할 뿐이고요.
어쨌거나 간에, “자유” 아니면 ‘민주’니 ‘정치’니 ‘종교’니 ‘예술’이니 사회니 문화니 말짱 다 그저 그렇게밖에 안 된다는 말씀이지요? 심지어 ‘혁명’으로도 안 된다는 거 아닙니까. “자기로부터의 혁명” 아니라면 말씀입니다. “자유인” 말씀이지요. 제대로 전해질 리도 없는 일이었지만, 이런 글로서 언제가 대통령께 ‘임기 마치시고 부디 자유인이 되시라’고 말씀드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본래 정치하실 생각도 없으셨던 분을, 억지로 대통령 자리에 앉게 해서는 혹시나 그 “자유인”에 대한 관심까지 버리게 되는 건 아닌지.. “자유인”이라면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라도 단 한 사람이 무지무지 아쉬운 세상인데 말씀입니다.
본문이 바로 “자유” 말씀입니다. 대한민국 “촛불혁명”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동남아 미얀마 ‘민주화 시위’ 역시 “자기로부터의 혁명”에는 턱도 없겠지요? 어느 한 나라 군바리 무리들은 ‘전두환과 그 부스러기들’ 보다 훨씬 더 무식한 거 같은데.. 왜, 우째, 저 나라 일이 ‘남의 일’ 같지만 않은 게 말씀이지요. 도대체 얼마가 더 죽어나가야 하는 건지.. 역시 ‘남의 일’이겠지요? 대한민국 안에서 하도 요상스런 일도 많은 주제에. 심지어 아주 ‘어린 애’들을 저다지 무자비하게 죽이고 말입니다. 미국 총기 사건들은 그냥 일상이라고 치고 말씀이지요. 하기사, 여기 주변국 망나니짓에 우리 정신 시끄럽기도 마찬가지입니다마는.
펜데믹 시대,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저 조직 ‘종교’들 막나가는 모임들 때문에도 더 역병이 사그라들 조짐이 안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도 일상 영업도 제대로 못 하게 하는 판에, “종교,”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면서 그렇게까지 서로들 꼭 직접 만나서 무슨 ‘모임’을 가져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서든지 꼭 바이러스19 하나라도 더 퍼뜨리고야 말겠다고..’ 원격모임, 화상회의, 뭐 그런 것들도 있다더구만요. 왜, 그런 데서는 저런 거 적극 활용 안 하는지.. 대한민국더러 ‘선진국’이니 ‘선도국’이니 하면서 불러준다는 소위 ‘강대국’들은, 도대체 나라꼴을 어떻게 만들고 노닐었는지.. 최근 몇 세기를 그다지 떵떵거리고 살아왔으면서도.. 제국주의에 식민지에 자본에.. 전부 다 자기들 차지였으면서 말씀입니다.
구태여 “자유” 들먹일 거 없이, 이전부터 정치적으로는 “촛불혁명”도 다 꺼져간다 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펜데믹 상황에서 대한민국 역시 ‘선도국’ 어쩌고 해주는 소리에 잠시 기분 좀 좋았다가.. 물론 그 사이 이것저것 이상한 조짐들에 ‘촛불’들이 ‘이거 아닌데..’ 했겠지요. 그러다가 급기야 부동산 문제가 터뜨려져서 이전 수구 세력들이 득세하는 세상으로 돌아가버렸지요? ‘대통령 노릇 못 해먹겠다’던 그 시절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수구보수의 ‘태극기부대’에 해당하는 뭔가가 ‘촛불’세력에도 있다고 하고.. 몸과 마음 다 합쳐도 턱없이 모자라는 판에, 왜 ‘친문’ ‘비문’ 하는 분열이 있어야만 하는지.. 오로지 ‘내꺼 챙기기“에만 혈안이란 말이지요?
애초부터 세속의 권력으로부터도 아주 멀찌기 떨어져 있는 게 “자유”겠습니다만, 세상 되어가는 꼴이 눈에 안 들어올 수는 없을 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이라면, “자기로부터의 혁명”에다가, 몇 년 전부터 ‘촛불’ 열기에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거였을까요? 분명히 그랬지요. 그 흐름에 좀 올라 타보려고 했었지요만. 역시나 그게 되는 일은 아니지요? 어쨌거나 지금 ‘나 생겨먹은 모습’ 전부를 다 부정하고 무화시켜야 가능한 차원이 “자유”니까, 과연 누구라서 그런 “자유”를 바라고나 있겠습니까. 그러니 다들 그저 “인생은 고해다” 하고 살다 가자는 거지요. 그래서 가장 시급한 일이, 바로 “삶”이란 그저 ‘이런 차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진리”를 알게 하는 일이겠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먼저 말씀입니다.
“촛불혁명”도 “민심”의 ‘저항’이었고, 지금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시위 역시 하나의 ‘저항’이지요? LH사태로 불거진 민초들의 불만에서도 나온 ‘저항’으로, 아예 정권마저 적폐로 되돌아갈 조짐 아닙니까? 설령 그렇게 된다 한들, 뭐 어쩌겠습니까? “표밭은 ‘민심’”인데요. 전부 다 ‘내가 뿌린 씨’ 아니겠습니까? 어떻게든 ‘더 나은 나라,’ 진짜로 “사람 사는 세상”은 쉽게 올 수가 없는 이치겠습니다. 더구나 구성원 전부가 다 오로지 “욕망”에만 끄달릴 뿐이라면, 그게 어찌 ‘금수세상’보다 나은 “인간세상”이겠습니까? 짐승들에 대해서는 ‘욕망’이라고도 안 하지요? 그것은 “지성”일 터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유”겠습니다만, “자유”란 “지성”과 등가 아닙니까? 그만큼 지금 우리들 모습으로는, 지금 ‘내 모습’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차원이지요. 느긋할 거 하나도 없구만..
몸담아 본 것도 아니고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해본 것도 아니면서, “정치”적인 발언을 눈곱만치 해보았습니다만, 역시 정치란 “자유인” 말하는 범주에서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나 봅니다. 입도 뻥긋 안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해도, 기껏 ‘괜한 미움’ 사는 짓일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엉거주춤 ‘버릴 걸 못 버리고’ 온 것 같고요. “촛불혁명”에 기대어보고자 했던 ‘의존성’을 반성 아니 할 수가 없는 듯합니다. 그것도 ‘억지로’여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만. 제 자신도 그렇지만, 정치고 국민이고 간에 거의 전부가 어떤 ‘넘침’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변명’ 삼아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니나 내나 어느 결에 두드려보고 건너던 ‘돌다리’를 잊어버린 건 아닌지.. “자유”라는 게 어찌 ‘방심’하고 가까울 거라고.. 그저 이내 꼴 헤아려주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폭력의 한 형태’겠습니다. 제 자신의 ‘폭력성’이 다 사라졌다고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만, 그리고 애초에 주변에는 지천으로 널린 게 ‘폭력성’ 아니겠습니까. 그게 “세상”이라는 것이지요. 진짜로 세상 어디에 “사랑”이 널려 있겠습니까.
한동안 ‘글’ 나부랭이도 잘 안 써지더니만, 그게 바로 무의식 가운데서나마 ‘자신의 폭력성’을 더 문제 삼아라, 하는 일깨움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거기에만 매달려 있다가는, 한평생 다 가버릴 것만 같아서 말씀입니다.
하기사, 그런들 또 어쩌겠습니까만요. 대한민국! 지금, ‘펜데믹’이 제일 큰 문제가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제대로 대응해야 하겠지만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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