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2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중국 네이멍구 탄광 붕괴 4명사망 49명 실종
2023년 미국 북부 34년 만에 겨울 폭풍, 남부는 87도의 폭염
미 기상청은 서부 캘리포니아부터 중부 미네소타, 동부 메인주까지 29개 주 6500만여 명 주민을 대상으로 경보를 내리면서 혹한과 눈보라, 결빙, 폭우와 강풍 등에 대비할 것을 경고했다. 겨울 폭풍으로 항공기 운항도 대거 중단됐다. 항공 추적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미국 서부 시간 기준 오전 11시 현재 북부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국내선과 국제선을 합쳐 모두 1300여 편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다.
미네소타와 위스콘신, 와이오밍, 사우스다코타, 노스다코타 등 중북부 지역에는 폭설 경보가 내려졌다. 기상청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에 23일까지 많은 눈이 내리면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최대 60㎝ 이상 적설량을 기록했다.
또한 남부지역 미시시피주는 87도의 폭염이 되기도 했다
2017년 영국 과학학술지 「네이처」 태양계와 똑 닮은 행성계(트라피스트-1) 발견 사실 게재
2014년 염수정 대주교 바티칸서 추기경(우리나라 세 번째) 서임식
염수정(廉洙政, 1943년 12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직자이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추기경이다.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며, 제13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교구장 주교 겸 평양교구의 교구장 주교 서리를 역임하였다.
2014년 1월 12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염수정 서울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하였다. 염 대주교는 2014년 2월 22일 바티칸 시국에서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이로써 한국에서는 김수환·정진석 추기경을 이어 한국의 세번째 추기경이 탄생하였다.
2014년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총리(39세) 마테오 렌치 취임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6.3 강진
인구 40만명 규모의 뉴질랜드 2대 도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22일 규모 6.3의 강진과 수차례의 여진이 발생, 최소 65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최대 1분간 지속된 강력한 진동으로 시내 일부 도로에서는 무너져내린 벽돌과 콘크리트 부스러기로 인해 교통이 두절됐고 인도에도 크고 작은 균열이 생겼다. 도심에 위치한 유서깊은 교회는 맥없이 무너졌고, 건물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헬기들이 진화작업을 벌였다.
지진의 진앙지는 남위 43.6도, 동경 172.7도로 해저 5㎞ 지점이다. 쓰나미 경고는 발령되지 않았지만 이날 인명피해는 물론 도시 전체에 심각한 피해를 남겼다.
이후 사망자수가 148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실종자는 여전히 200여명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현지 언론들은 사체 발굴 추세로 볼 때 강진에 따른 사망자가 200명을 훨씬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한인 피해는 영어 유학생 유모씨 남매 실종 이외에 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크라이스트처치 일대에는 수차례 진도 4.0이 넘은 지진이 발생해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지난해 9월4일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한 이래 수백 차례의 여진이 계속됐다. 당시 지진으로 막대한 물적 피해가 발생하고 일부 부상자도 나왔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2010년 2월22일~3월31일까지 원불교 박장식 원로교무의 100세 기념전이 원불교 역사박물관 주관으로 열리다.
2011년 MS사에서 윈도 7 서비스팩 1이 발표되다
2009년 인도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아카데미상 8개 부문 석권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제8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2009년 2월 22일 오후 5시(미국 현지시각) LA 코닥극장에서 개최됐다.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최다 후보작은 작품상, 감독상 등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데이빗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하 벤자민 버튼)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린 시상식 결과는 달랐다. 올해 아카데미는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택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작품상과 감독상, 주제가상을 비롯해 총 8개 부문의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가는 기염을 토했다.
2009년 대니 리, 유럽프로골프투어 조니워커 클래식 최연소 우승
아마추어 신분의 뉴질랜드 교포 이진명(19.영어 이름 대니 리)이 세계 강호들이 출전한 프로골프대회에서 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만 18세213일)으로 우승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진명은 2009년 2월 22일 호주 퍼스의 바인스 리조트 골프장(파72.7천101야드)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투어 조니워커 클래식 4라운드에서 보기는 2개로 막고 버디 7개를 잡아 5언더파 67타를 치는 맹타를 휘둘렀다.
합계 17언더파 271타, 단독 1위로 경기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기다리던 이진명은 챔피언조에 있던 로스 맥거원(잉글랜드.16언더파 272타)의 이글 퍼트가 빗나가면서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9살 때 부모를 따라 뉴질랜드로 이주한 이진명은 2008년 US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18세1개월의 나이로 우승,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최연소 우승 기록(18세7개월)을 경신해 골프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선수이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열린우리당 탈당 의사 공식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007년 2월 22일 정세균(丁世均) 의장 등 열린우리당 새 지도부를 초청, 만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열린우리당 탈당 의사를 공식화했다. 이달 말까지 탈당 절차를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열린우리당 창당(2003년 11월 11일) 3년3개월 만에 노 대통령은 당을 떠나고, 당은 여당 지위를 잃게 됐다.
그러나 이 자리는 고별의 자리이면서도 ‘결별’의 자리가 아니었다.노 대통령은 당의 성공을 축원했고, 당 지도부는 국정 지원을 강조했다. 탈당하는 대통령이 당 지도부를 불러 식사를 하는 형식부터가 이례적 이었다.
오간 말들도 ‘언젠가 다시 만나리’ 계열이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출범 자체가 역사적 의의가 있고, (남은) 역사적 과업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열린우리당이 계속해서 성공해 나가고 잘 되길 기원한다”고 했다. 이어 “(2월14일) 전당대회가 무사하게만 치러졌으면 하고 기원했는데 스페인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는 보고를 받고 기뻤다”고 했다.
정세균 의장은 “전당대회를 통해 앞으로도 대통령이 하시는 일을 잘 뒷받침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면서 “대통령이 당적을 갖고 있든 아니든 우리는 참여정부 성공을 책임져야 하는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또 “항상 마음 써주시는 대통령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격려와 지도 바란다”고 했다. 이날 만찬은 예정시간을 35분 넘겨 2시간5분 동안 포도주를 곁들여 진행됐다.
2007년 주가 사상 최고치 경신
세계 증시 동반 상승에 힘입어 주가가 9개월여 만에 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007년 2월 22일 유가증권 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4.03포인트(0.97%) 오른 1465.41로 마감, 작년 5월 11일 (1464.70)의 사상 최고치 기록을 깼다.
최근 주가 상승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 경기 호전에 따라 전 세계 증시가 함께 상승하고, 이에 따라 외국 투자자금이 한국 증시로 흘러 들어오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증권 김학균 선임연구원은 그러나 “세계 증시가 지난 9개월 동안 조정없이 올랐기 때문에 상반기 중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고 말했다
2007년 첫 여성 전투기 편대장 ‘화려한 비행’ 박지연 대위
대한민국 창군 이래 처음으로 1997년에 여자 사관생도 19명이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한지 10년만인 2007년 2월 22일, 이들 중 박지연 (29) 대위가 첫 여성 전투기 편대장이 됐다. 박 대위는 4대로 구성된 전투기 편대를 직접 자신의 전투기를 조종하며 지휘하게 됐다.
22일 강원도 원주 8전투비행단. ‘ㅡ’자 대형으로 4기의 F-5 타이거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을 가르다 갑자기 ‘V’자 대형으로 갈라졌다. 이날 비행은 박 대위가 편대장으로 승급하기 위한 마지막 평가 비행. 가상 적의 지대공 미사일을 피하기 위한 편대 대형을 몇 차례 시험한 박 대위는 편대를 이끌고 활주로에 안착했다. 1997년 공사 49기로 입교해 최초의 여자 ‘사관생도’ ‘전투기 조종사’ ‘조종사 부부’란 이력을 이어오며 금녀(禁女)의 벽을 하나씩 허물어온 박 대위가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박 대위가 비행기에서 내려서자 가장 먼저 남편 정준영(29) 대위가 축하 꽃다발을 들고 달려왔다. 정 대위 역시 전투기 조종사다. 박대위는 “비행을 시작한 이후 하늘이 가장 푸르게 보인 날이었다”며“하지만 이제 진짜 조종사로서 임무가 시작돼 어깨도 무겁다”고 했다. 임관 후 2년간의 비행훈련과 4년간 비행대대 임무를 거친 끝에 오르게 된 편대장은 ‘베테랑’으로 불리는 교관급 바로 아래 단계의 직책이다. 공중에서 독립전투를 직접 지휘하는 만큼 임무 범위도 넓다. 높은 기량을 요구하는 악천후 비상대기 임무도 부여되기 때문에 전투조종사로서 편대장은 한 가족의 ‘맏형’이 되는 셈이다.
이날 박 대위의 편대장 승급으로 우리 공군의 여군 조종사 ‘실험’이 성공을 향한 본 궤도에 올랐다. 총 비행시간 652시간을 소화해낸 박 대위가 공대공, 공대지 전술능력, 위기조치 능력 등 8단계의 평가를 거쳐야 하는 편대장 심사를 통과해낸 것부터 성공사례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2007년 정대영 블로킹 9개 여자배구 최다기록
2007년 2월 22일 현대건설의 센터 정대영(35점)이 한 경기 최다 블로킹 기록을 세우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현대건설은 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힐스테이트 2006~2007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경기에서 KT&G를 3대1로 꺾었다.
정대영의 철벽 블로킹이 빛난 경기였다. 정대영은 이날 9개의 블로킹을 기록하며 지난달 29일 GS칼텍스전에서 자신이 세운 종전 기록(8개)을 넘어섰다. 현대건설은 이날 승리로 도로공사와 같은 11승7패를 기록했으나 점수 득실률에 앞서 2위로 올라섰다
2006년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이 새 추기경에 임명
2006년 필리핀 군, 장교 14명의 쿠데타 음모 적발 발표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 자살
2005년 2월 22일 영화배우 겸 탤런트 이은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25살의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수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를 통해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그녀의 자살소식은 국내외 팬들에게 큰 안타까움을 주었다.
1980년 군산출생인 그녀는 군산초교, 군산여중, 영광여고를 거쳐 2005년 2월 18일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77년 선경 스마트 학생선발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그녀는 이듬해 SBS 드라마 ‘백야 3.98’에 아역으로 출연한 이후 SBS ‘카이스트’에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 영화 ‘오!수정’에서 내면 연기를 제대로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아 대종상 신인 여우상을 수상했다. 이병헌과 함게 출연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이후 ‘하늘정원’ ‘연애소설’ ‘안녕 유 에프 오’ 등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며 한국 영화계 재목으로 우뚝섰다.
2004년 MBC 드라마 ‘불새’와 영화 ‘주홍글씨’에서 보여준 그의 농익은 연기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큼 강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주홍글씨’에서 재즈 싱어역을 맡은 그녀는 숨겨진 노래 솜씨까지 선보여 O.S.T 음반에 그녀의 노래가 실리기도 했다.
그녀는 사망 당일 함께 살고있는 가족들과 얘기를 하다 자신의 방에 들어갔으며 시간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긴 오빠가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가 숨진 그녀를 발견해 신고했다.발견 당시 그녀는 이동식 옷걸이에 넥타이 끈으로 목을 맨 채 숨져있었다. 침대 위에서 연필깎이용 칼과 혈흔이 발견됐고, 손목에는 자살 흔적도 남아 있었다. 또 그녀가 쓴 것으로 보이는 “엄마, 미안해. 사랑해”란 혈서가 발견됐고, 이와 별도로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살아도 사는게 아니다.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돈이 좋은데... 돈을 벌고 싶었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다.
그녀의 사망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울증과 이에 따른 불면증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그녀의 시신은 일산 자유로 청아공원에 안치됐고, 유족으로는 부모님과 오빠가 있다.
1999년 일본 NTT 도코모 `i모드` 출시
일본 NTT 도코모가 1999년 2월 22일 휴대전화 IP서비스 "i모드`를 출시했다. i모드는 출시후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 2000년 3월에는 500만명을 넘어섰고 12월에는 1550만명에 달했다. 가입자는 매월 200만명씩, 6개월마다 2배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과거 `꿈의 통신`으로 불렸던 종합정보통신망(ISDN)이 1988년 도입된 이후 가입자 500만명을 넘어서는데 10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10배가량 빠른 속도다. 소형 단말기를 통해 공급되는 생활정보 뉴스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보는 일보인 특유의 정서에 부합하면서 i모드는 1970년대의 `워크맨` 이후 일본의 또 다른 세계적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
i모드를 통해 검색이 가능한 사이트는 2000년 11월 당시 2만개를 돌파했고 i모드 사용자의 하루 접속 건수도 1인당 10회를 넘어섰다. 콘텐츠 제공업체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600여개의 공식 사이트 외에도 `오!뉴!`라는 i모드 전용 검색엔진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1996년 12.12사건 관련 박준병 의원 등 3명 구속
12.12 및 5.18 사건을 재수사중이던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는 1996년 2월 22일 12.12 사건과 관련 박준병의원에 대해 반란중요임무 종사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1월 18일 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장세동 전수경사 30경비단장, 최세창 전3공수여단장 등 2명에 대해서도 이날 헌법재판소의 5.18 합헌 결정문을 송달받은 서울지법 김문관판사가 영장심사를 재개함에 따라 함께 소환했다.
12.12 및 5.18 재수사와 관련, 구속되는 의원은 정호용, 허삼수, 허화평의원 등 모두 4명으로 박의원은 12.12 당시 반란모의의 주체인 `경복궁 모임`에 가담, 정승화 당시 육참총장의 강제연행 계획을 수립하고 20사단 병력을 신군부세력에 가담시킨 혐의를 받아 구속됐다.
1987년 팝 아트 운동의 창시자 앤디 워홀 사망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 1987년 2월 22일 사망했다. 소수의 ‘가진 자’ 혹은 ‘고급 대중’ 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미술이 ‘일반대중’ 에게까지 참여의 문이 넓혀진 것은 전적으로 앤디 워홀의 공로였다. 그의 팝아트가 선보이기 전까지 서양미술은 고급스럽고 난해한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워홀이 이루어 낸 미술의 대중화는 그가 선택한 작품의 소재에서부터 비롯된다. 콜라병, 수프 깡통, 가루비누 통, 마릴린 먼로 같은 대중스타 등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중적 이미지들은 일반인들에게 ‘낯익은 것들’ 이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일반인들로 하여금 자신들도 이제는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문화주체라는 느낌이 들게 한 것이다.
미국의 체코 이민2세로 태어난 워홀은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며 늘 스타를 동경했다. 대학시절에는 교수들로부터 ‘가장 장래성 없는 학생’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백화점 점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상업예술가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뉴욕으로 진출, 광고그래픽, 초상화, 삽화 등 닥치는대로 일거리를 맡았다.
고상한 예술가들이 고집하는 전통적 예술관을 뒤집고 상업예술에 집요하게 매달린 끝에 그는 마침내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으며 자신이 그토록 부러워했던 스타들보다 더 유명한 ‘대중스타’ 의 자리에 올라섰다. 워홀에 대한 미술계의 평가는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 는 찬사와 ‘지나친 상업주의’ 라는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1980년 한국-나이지리아, 국교수립
1980년 정부, 모스크바올림픽 불참결정
1979년 세인트루시아, 영국으로부터 독립
1979년 국제탁구연, 평양세계탁구대회에 남북한 단일팀구성 거부
1977년 농진청, 볍씨 이리327호 육종에 성공
1974년 충무 앞바다서 YTL함 침몰로 159명 익사
1974년 2월 22일 오전 11시 8분경 경남 충무항 남쪽 7백m 해상에서 해군 신병 3백11명과 승무원 5명 등 3백16명을 태운 해군 소속 YTL함이 침몰해 1백59명이 익사했다.
사고는 한산도 제승당과 충무시내의 충렬사를 참배하고 모선인 LST 815함으로 돌아가던 중 배를 모함에 대기 위해 선수를 왼쪽으로 돌리다가 강풍으로 밀어닥친 파도에 휩쓸려 선체가 복원력을 잃고 전복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당시 사고해역에는 초당 최대풍속 18m의 강풍이 불어 파고가 1-2m로 높아 구조활동이 부진해 피해가 더 컸다. 해군 헌병대는 사고책임을 물어 인솔 책임자인 박순동 대위 등 3명을 구속하고 LST 함장도 직위해제했다.
1974년 여자탁구, 서독 국제오픈대회서 우승
1973년 미국-중국 공동성명(북경-워싱턴에 연락사무소 설치 합의)
1972년 동독, 서베를린 시민의 동독 방문 허가
1967년 인도 수하르토가 전권 장악
1966년 프랑스, 나토서 탈퇴의사 발표
1964년 미국, 소련 에코위성중계로 첫 우주교신 성공
1958년 통일아랍공화국 발족
1958년 미국, 영국간 유도탄기지협정 조인
1958년 신민법 공포
1957년 한일 억류자 상호석방 합의
1955년 국군예비사단 창설
1949년 캐나다의 프랑스계 미생물학자 데렐 사망 - 박테리오파지의 발견자
1938년 일본, 육군특별지원령 공포
1933년 일본, 남양군도 영유성명
1925년 짧은 체온계를 발명한 영국의 의사 올벗 사망
1913년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 사망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 구조주의의 원류, 기호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1913년 2월 22일 사망했다. 그는 20세기 지성계를 휩쓴 구조주의적 사유의 입안자였으며, 언어구조의 기호학적 체계를 밝힘으로써 기호학이라는 새 학문을 연 학자로 평가된다.
그는 생전에 학위논문을 제외하고는 책을 내지 않은 학자로 유명하다. 20세기 언어학 최고 명저 중 하나로 꼽히는 ‘일반언어학강의’(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도 그의 사후인 1916년 제자들이 강의 노트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책이다.
소쉬르가 서구 언어학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 재학 중이던 21세 때 인도유럽어의 모음교체 현상을 설명한 논문 `인도 유럽어 원시 모음체계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이 논문은 프랑스 학계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독일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산스크리트어, 고트어 등 사어(死語)를 연구하던 소쉬르는 베를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880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연구활동을 계속한다. 1891년 고향으로 돌아와 주네브대학에서 언어학과 교수직을 맞았다.
여기서 1907년부터 유명한 `일반언어학 강의`를 시작했다. 1907년 1월부터 6개월 간, 1908년 11월부터 7개월 간, 1910년 10월부터 8개월 간 3차례에 걸쳐 진행된 일반언어학 강의는 비록 수강생은 6∼12명으로 많지 않았지만 이 강의를 통해 `랑그` `파롤` `공시태(共時態)`와 `통시태(通時態)` 등 그의 언어학을 설명하는 핵심개념들이 발표됐고, 이들 개념은 20세기 언어학 뿐 아니라 구조주의, 기호학 등 인문학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1903년 영국, 티베트와 수교통상조약 성립
1886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 등장
1886년 2월 22일 한성순보의 후신인 한성주보 제4호 15, 16쪽 두 면에 ‘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 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광고가 등장했다. 24줄짜리 순 한문 광고였다.
광고주 세창양행(世昌洋行)은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무역상으로 홍콩을 중심으로 중국의 상해와 천진, 일본의 고베(神戶), 그리고 인천에 지점을 설립(1884년)하고 동양 방면으로 무역업을 하고 있던 터였다. 광고는 쇠가죽, 호랑이가죽, 여우가죽 등과 사람 머리털, 호랑이 발톱 등을 사들이고 자명종 시계, 뮤직박스, 서양 천, 성냥 등을 판다는 내용을 실었다. 도안이나 사진은 없는 활자만으로 이루어진 광고였다. 제목 ‘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 에서 덕상은 독일 상인이라는 뜻이었고, 고백은 광고의 중국식 표현이었다.
세창양행은 ‘금계랍(키니네)’ 와 바늘로 인지도가 높은 회사였다. 키니네는 원래 말라리아 치료약이었지만 부인네들이 아기 젖을 뗄 때 애용됐고, ‘세창바늘’ 은 끝이 쉽게 무뎌지거나 부러지지 않아 인기를 끌었다. 세창양행은 일제 초기까지 영을을 하다가 1914년 일본의 대독 선전포고로 서울의 총영사관과 함께 폐쇄됐다.
한편, 한성주보와 달리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 은 ‘광고’ 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정기적으로 광고를 게재한 첫 신문이다. 독립신문은 광고에 대한 계몽역할을 하고 현대적 의미의 광고단가를 정하기도 했다. 1899년 6월 1일자 국문판 독립신문을 보면 1단 28행 기준, 40원(1년), 24원(6개월), 5월(1개월), 1원 50전(1주), 50전(1회)으로 장기 게재시 요금을 우대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파 광고는 신문 광고보다 한참 뒤인 1956년 5월 12일(TV)과 1959년 4월 15일(라디로)에 각각 처음 시작됐다.
세창양행의 광고는 동년 7월 5일자 제23호까지 약 6개월간에 걸쳐 게재됐고 한성주보는 개화문명에 앞장을 서서 그 사명을 다하다 누적된 적자운영을 감당하지 못하고 1888년 7월 7일 2년 6개월 만에 폐간됐다. 이후 1896년 서재필이 ‘독립신문’ 을 창간한 뒤부터 광고가 정기적으로 게재되기 시작, 1910년 국권피탈 후부터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민간지가 발간될 때까지 10년간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가 된 매일신보가 유일한 우리말 신문으로 광고매체 역할을 했다.
1875년 프랑스 화가 코로 사망
1857년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 출생
1848년 프랑스 2월혁명 발발
1836년 다산 정약용 선생 별세
조선 후기의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36년 2월 22일 7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1762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진주목사 정재원에게서 태어난 다산은 22세 때 진사, 27세 때 문과에 급제했다. 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1792년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와 기중가설을 지어 올려 정조가 부왕 영조를 생각하며 축조 중인 수원성 건립에 기여,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경기도 암행어사로 연천현감 서용보를 파직시키는 등 관리로도 크게 활약, 1797년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아 자명소를 올리고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다. 정조 말기 다산은 천주교에 심취하는 바람에 신유사옥-기해사옥 때 귀양을 가서 엄청난 고초를 겪는다. 그는 슬하에 6남3녀를 두었으나 4남2녀가 요절하는 가정적인 불행은 물론 손위 형 약종이 순교하고 나머지 두 형도 귀양살이로 전전, 집안이 풍비박산됐다.
정조가 죽자 보호막이 사라진 다산은 1801년(순조1년) 11월 다시 전남 강진의 다산 기슭에 있는 유배지로 향한다. 그는 이곳에서 19년간 경서학에 전념하며 대표작인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권의 방대한 저서를 남긴다. 유학이 판을 치던 시대에 다산은 현실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사상을 펼치며 시대를 앞서 나간 선각자였다.
1810년 미국 소설의 아버지 찰스 브라운 사망
1788년 독일 철학자 쇼펜하워 출생
1732년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 출생
622년 일본, 성덕태자(聖德太子)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