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6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마태오 7,15-20
거짓 예언자: 양의 옷차림을 한 게걸든 이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란 어떤 말씀을 전하여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넓게는 우리가 모두 예언자들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과 행동으로 타인에게 분명히 영향을 주고 살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명한 야구선수가 은퇴한 후 강연을 다닐 때 교도소에서도 강연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강연 중 야구를 하다 남의 집 유리창을 깼을 때 힘이 좋아 훌륭한 메이저리거가 될 거라고 칭찬 받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한 수감자가 “저희 아버지도 언젠가는 제가 감옥에 갈 것이라고 하셨죠.”라고 말했습니다.
피카소는 어머니에 대해 “저희 어머니는 ‘네가 성직자가 되면 교황이 될 것이고, 군인이 되면 장군이 될 것이며, 정치인이 되면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저는 화가가 되었고 피카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각자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예언해 준 말을 믿고 그 예언을 성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거짓 예언자가 아니라 좋은 예언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주위에 강력한 좋은 예언자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 예언자들을 어느 정도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거짓 예언자들을 감당할 힘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이상한 예언을 하는 이들을 빨리 떠나야 합니다.
아니면 그 이리들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람을 굳이 선별해서 만나야 할 때 선별기준이 될 것입니다.
2015년 6월 14일 사람들의 관심 속에 애정과 후원을 받아 오던 한 모녀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상한 게시물이 포스팅됩니다.
“그녀는 죽었다.” 딸이 엄마를 살해했다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지난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에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했습니다.
가장 큰 손해를 입은 지역은 뉴올리언스였습니다.
폭우로 제방이 붕괴하면서 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겨 1,8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정말 대참사였습니다.
이 모녀도 피해 이재민 중 하나였습니다.
이들은 뉴올리언스 정부 임대 주택에서 살고 있었는데 허리케인으로 집이 파괴되면서 갈 곳을 잃게 된 것입니다.
엄마 디디 블렌챠드는 24살의 나이에 남편을 만나서 임신과 함께 결혼하였지만 딸 집시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이혼을 합니다.
결국, 엄마 혼자 양육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딸이 태어난 지 3~4개월쯤 됐을 때 엄마 디디가 보니 아이가 잠을 잘 때 이상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때 이후 집시는 잘 때마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집시가 7살이 되었을 때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근육위축증이라는 장애를 얻게 됩니다.
아이는 걷는 것을 포기하고 늘 휠체어를 타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시는 백혈병, 천식, 간질 같은 크고 작은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청력에 시력까지 좋지 않아서 항상 보청기와 안경을 착용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음식마저 삼키지 못해 소장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서만 겨우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병약하게 아이가 성장하다 보니 엄마 디디는 딸이 10대가 되어서도 정신연령이 약 7살 수준이라면서 딸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위급상황이 생길 걸 대비해서 약 꾸러미를 들고 다니며 정말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당연히 직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에 이전 남편이 매달 보내는 양육비를 가지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허리케인으로 집마저 잃어버린 겁니다.
이 모녀의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각종 구호단체의 러브콜이 쏟아졌습니다.
특히나 그중에 일명 사랑의 집짓기로 유명한 한 단체가 손을 내밀게 되면서 모녀를 위해 미주리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해 줍니다.
몸이 아픈 집시를 위해 휠체어가 갈 수 있게 경사로도 있고 또 따뜻한 목욕을 할 수 있는 욕조까지 집안에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모녀는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뉴스 인터뷰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엄마 디디는 누구보다도 딸을 자랑스러워했고, 집시 역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는 엄마밖에 없다면서 인터뷰 내내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넘쳐흘렀습니다.
이런 모습의 모녀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여졌고 선행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2015년 페이스북 계정에 난데없이 올라온 포스팅이 바로 “그녀는 죽었다!”였던 것입니다.
결국 경찰이 밤 10시쯤 모녀의 집안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경찰들이 침실로 들어선 순간 엄마 디디가
잔인하게 칼에 찔린 채 침대에 엎어져 있었고 휠체어만 덩그러니 남은 채 딸 집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경찰이 들이닥친 곳은 집시의 남자친구 닉의 집이었습니다.
이때 집시는 놀랍게도 두 발로 걷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정밀진단 결과 집시는 어떤 건강상의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집시가 남자친구 닉에게 더는 못 견디겠다며 엄마를 죽여달라 사주한 것입니다.
닉은 종신형을 받고 집시는 10년 형을 받았습니다.
왜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냐고 묻는 경찰들의 말에 집시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말했다면 누가 믿어줬을까요?”
무려 20년간 이어진 엄마의 폭력을 통한 사기극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출처: ‘14년간 장애인 딸과 엄마의 애틋한 '거짓사랑'’, 유튜브 채널, ‘디바제시카’]
집시의 엄마는 좋은 예언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딸을 이용해 돈을 벌었습니다.
돈에 미치면 딸까지 그렇게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 예언자를 알아보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세상 것을 좋아하면 그 사람은 100%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딸의 처지에서는 엄마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세속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잘 모르겠다면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살피면 됩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넌 모든 것을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 예언자입니다.
하지만 나의 능력을 규정해버리고 “넌 나 없이는 안 돼!”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것을 통해 상대를 이용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속아서 그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면 안 좋은 결말을 맞게 됩니다.
예수님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할 때 그 ‘열매’를 보고 구별하라고 하십니다.
열매는 마지막에 맺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맺으려는 목표입니다.
지금 나에게 해 주는 것을 보지 말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보라는 말입니다.
그저 나를 사랑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인지 그것을 통해 어떤 다른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인지 보라는 말입니다.
거저 주며 행복한 순수한 사랑이 목적이 아닌 모든 말과 행위들은 늑대의 꾐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거짓 예언자에 속지 말고 거짓 예언자도 되지 맙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6월26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7,15-20
비정상의 정상화를 배격합시다!
우연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방문 장면 관련 뉴스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두 정상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와 환호성을 올리고 손을 흔들고...정말이지, 끔찍했습니다.
이 지구상에 아직도 저렇게 한 사람을 우상화시키고, 강제동원령을 내리고, 꼭두각시 쇼에 동참하지 않으면 엄청난 불이익이 뒤따르고, 운집한 군중은 영혼 없는 얼굴로 환호를 하고,
그런 모습에 독재자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오늘 하루 온종일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우리 민족에게 이토록 가혹하신지? 하는 탄식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 남북한 동포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남북 분단의 고착화를 너무나도 당연히 여기는 태도입니다.
평화 통일은 이제 완전히 물 건너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입니다.
불과 이삼십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체벌이나 구타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지금은 큰일 날 일이지만, 당시 선생님이 때리면 당연히 맞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찍소리 못하고 때리는 데로 맞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용납 못하지만 군부 독재자 시절, 천상천하유아독존인 그의 한 마디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체포영장도 없이 어딘 지로 모르는 장소로 끌려갔고, 변호사도 없이 별의별 형태의 고문을 당하고...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 시대를 살아온 것입니다.
남북 분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너무 오랜 세월 분단되어 살아오다 보니, 이게 비정상인데, 정상처럼 착시 현상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갈라서 있는 것이 편하니, 괜히 통일이나 왕래다 하다 보면 세상 복잡해지고,
그냥 이대로 쭉 갈라서서 가는 것이 더 낫다는 비정상적인 생각이 정상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남북한 동포들이 어떠한 희생과 노고를 다 치르더라도 반드시 일궈내야 할 과제요 숙명이 곧 통일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아예 포기하지만,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예측을 훨씬 능가합니다.
함께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노력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남북 사이의 관계가 화사한 봄날처럼 풀릴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굳게 가로막혀 있는 철조망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서로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지금까지 해오던 노력을 계속해나가야겠습니다.
매일 밤 9시 알람이 울리면 온 정신과 마음을 모아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을 위한 주모경 바치기를
계속해나가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강론>
(2024. 6. 26. 수)(마태 7,15-20)
<가짜가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15-20).”
1) 이 말씀은, ‘종말 전의 재난’에 관한 말씀에 연결됩니다.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마태 24,4-5).”
“그때에 누가 너희에게 ‘보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
또는 ‘아니, 여기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둔다(마태 24,23-25).”
<오늘날에도 ‘재림 예수’ 라고, 또는 ‘메시아’ 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사도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여러분 가운데에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을 끌어들이고, 심지어 자기들을 속량해 주신 주님을 부인하면서 파멸을 재촉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들의 방탕한 행실을 본받아, 그들 때문에 진리의 길이 모욕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또 탐욕에 빠져, 지어낸 말로 여러분을 속여 착취할 것입니다(2베드 2,1-3ㄱ).”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가 선포한 예수님과 다른 예수님을 선포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은 적이
없는 다른 영을 받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받아들인 적이 없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데도, 여러분이 잘도 참아 주니 말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위장한 거짓 사도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그러니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한다 하여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실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2코린 11,3-4.13-15).”
<거짓 예언자들도 자기는 진짜 예언자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자기 입으로 ‘나는 거짓 예언자다.’ 라고 말하는 거짓 예언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는 것인데, 속는 사람이 있으니까 속이는 자들이 계속 나타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은 범죄자들이고, ‘속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2)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라는 말씀은, 거짓 예언자들을 식별하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고, 그들이 거짓 예언자라는 것을 알아보았다면 적극적으로 물리치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맺은 열매’ 라는 말은, 여기서는 ‘그들의 활동 결과’를 뜻합니다.
어떤 예언자의 활동으로 사람들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되었다면 그 예언자는 진짜 예언자입니다.
반대로, 어떤 예언자 때문에 사람들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졌다면, 그 예언자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런데 활동 결과를 보고 나서 거짓 예언자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결과가 분명하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너무 쉽게 속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거짓 예언자, 또는 사이비 종교에게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자들에게 속으면 그자들의 탐욕과 착취의 피해자가 된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고, 그자들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3)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라는 말씀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은 나무일 수 없고,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나쁜 나무일 수 없다.”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를 보면, 신자들이 처음부터 그를 사도로 믿어 준 것은 아니었는데(사도 9,26), 바르나바 사도가 바오로 사도를 위해서 증언하는 등의 중개를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떻든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사도라는 것을(좋은 나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 즉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은 그의 선교활동입니다.
4) ‘열매’에 관한 말씀은 각 개인의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그 경우에, ‘열매’는 ‘구원’을 뜻하는 말이 됩니다.
신앙인은 ‘자기 자신의 구원’이라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는 나무입니다.
그 열매를 완전히 맺을 때까지는 아무도 방심하거나 자만하면 안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한, 위대한 사도이고 선교사인데도, 자만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실격자가 될 수도 있음을 두려워했습니다(1코린 9,27).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그런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