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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이념,” “교육이념,” ‘그딴 게 다 뭐냐?’는 세태
크리슈나무르티 : 꺼지지 않는 불꽃,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위하여
-- "성인(聖人)"의 시대를 살면서, “내가 안 바뀌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Real culture is neither a matter of breeding, nor of learning, nor of talent, nor even genius, but of the timeless movement to find happiness... truth. When this movement is blocked by authority, by tradition, by fear, there is decay.
참된 문화라는 것은, 교양이나 배움이나 혹은 재능이나 심지어 천재니 하는 따위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을 찾아내는 시간성 없는 흐름입니다... 진리 말입니다. 이러한 흐름이 권위나 전통이나 두려움 따위들에 의해 가로막힌다면, 바로 거기에 부패가 있는 거지요.
-- J. Krishnamurti, Think On These Things,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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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참된 문화”로서 “홍익인간”
“진리”에 대한 말씀에, 항상, 과연 ‘니가 이러쿵저러쿵 궁시렁거릴 깜냥이나 되냐?’ 스스로 그런 소리가 먼저 올라오는 머리, 좀 많이 그렇습니다······.
여튼, 본문 첫머리가 “참된 문화”입니다만, 여전히 또는 더더욱, 전쟁으로 얼룩진 오늘날 지구촌에, 달리 또 누가 저런 말씀에 기꺼이 얼마만큼이나 관심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더구나 “신”께서 약속하셨다는, 저 “사막문화” ‘선택 받았다’는 인간들 하는 꼴을 보면······.
황량한 사막의 얄팍한 문화로는, 아니, “문화”가 아니라 ‘무력’뿐이라고 해야겠지만요, 하여튼 저들이야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도! 여기는 바야흐로 “국운”이 좀 트여서 한국문화가 온 세상으로 벋어나간다는 이 시절에.. 그 밀물 드는 이때, 좀 더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할 거 아닐는지······. 더구나 그게 “인류”에게 꼭 필요한 진짜배기 “문화”라면 더더욱 절실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어제·오늘 일도 아닙니다만, 인간들이 다들 과연 무엇이 진짜로 필요한지 모르고 있는 거지요? 인류 역사 오랜 세월! 지난 농업혁명 또는 산업혁명 동안 인간들은, 더구나 서구에서는 저러한 참된 문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양에 소위 부처님 가르침이 있었다고 해도, 그게 조직‘종교’로 되어서 수천 년 흘러온 그대로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을 터이고요. “진리는 조직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저렇게 참된 흐름의 문화에는, 권위·전통·두려움 따위도 얼씬 못한다는 말씀 아닙니까. 온 세상 그러한 “참된 문화”가 절실절박한 이때, 하물며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새로운 문화’나마 어찌어찌 만들어가도 모자랄 판에, 여기서는 “헌법” “교육법” 조문에까지 들어 있는 그, 인류사적, 세계사적 “문화”를, 명색이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이 몸소 빼버리자고 날뛰는 머리······. 도저히 그 어처구니없음이 떨쳐지지가 않아서요. 기어이 저더러 ‘지가 뭐라고..’나 하겠지만요. 더는, 이딴 걸 읽어보기나 하겠습니까.
제 스스로 누군가의 흑색선전에 넘어간 건지 어떤지, 아니면 조직적인 ‘에코 체임버’에 가두어졌는지, 또는 ‘확신범’ 비슷한 처지인지, 여튼 ‘내 탓’으로 돌려야 하겠습니다만, 그때나 지금에나 간에, 저건 ‘분명히 시커먼 누군가가 시켰을 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얘기는 안 해야 하는 건가?’ 그런 ‘두려움’도 일어나고 말씀이지요. “자유” 운운하면서 ‘두려움’을 지니고 살아서야 쓰겠습니까? 그래서는 역시 ‘말짱, 도루묵!’이겠지요? 그러면서도 “홍익‘ 고운 마음씨 운운하고저 하는 아쉬움은 고스란히 그대로라서 말씀입니다.
다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 휘둘리는 거라고는 해도, 다들, 꼭, ‘성장’에만, “돈”에만 아주 환장을 하고 있는 삼천리, “흰옷 입은 사람”들에게, 저런 고운 마음들이 짜다라 그 얼마나 밑바닥에 깔려 남아 있기나 할지. 글쎄요, 세상 어디를 봐서 ‘만족’할 만하겠습니까마는, “풍요보다는 만족”이라는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검색해봐도 안 나오는군요. 이래저래 확실히 늙는 거 맞습니다. 훨씬 전부터 ‘환갑·진갑 다 지났다’던 나이니, 몸이 어찌 옛날 같겠습니까만, 그나마 ‘얼마나 더 남았을까..’ 하는 ‘근심’도 한번씩 치고 들어오는 신세입니다.
문득, “남아 있는 날 중에 오늘이 제일 젊은 날이다!”던 친구 말이 생각납니다. 좀더 달리 생뚱맞은 거 같은데요, 우째, ‘지족원운지’ 그 구절이 생각나는 건 또 저들 무슨 계략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구천문!’ ‘궁지리!’ 그 시를, 하나의 ‘만류’나 ‘청유’나 ‘조언’쯤으로, 아니면 ‘경고’쯤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심한 “조롱”이었다고 하는군요. 하기사 “전쟁”에서의 일이었으니.. 누구 좋으라고 ‘조언’을 해주겠습니까. 공격이든 방어든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 게 “전쟁”이니까.. 전쟁 아니라도, 다들 ‘인생’ 모든 것들이 “지성”을 위한 게 아니라 오로지 ‘욕망’을 위한, 그것도 처절한 몸짓들 뿐이라서 말씀이지요. “고해”니까요. 끝내, 참는 게 이기는 길, 아니, 참을 것도 없어야 이기게 되는 이치인가 합니다만.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 공통이라 할, 지금·여기, 각각, 각자 그 “생명력의 발현”으로서의 “삶”이, 하물며 “인간”이라면서 저다지 이다지 경제 영역의 ‘성장’ ‘자본’ “물질” “시장만능주의” 따위에 매몰되게 해놨으면서도, 오로지 단 하나, 그것만 따라 못해서 안달이던 이 나라! 하기에 거기 못 따라가는 사람들은 저기 마포대교에서 서성거리다가 기어이 난간도 붙들어보고 해야만 하는 나라! 그래서 사람들이 더 이상 아예 애를 안 낳는 나라! 그런 그 바탕을 좀 살피고 다져보자는 생각들은 미처 못 하는 금수강산 아닙니까? 그게 꼭, 조선조 붕당정치나 세도정치나 더는, 딱 지까지만 살고 말겠다는 ‘결심’의 매국노들 때문은 아니지요? 역시, 그들을 단죄 못 한 탓이 아니라는 말은 못 하는 거겠지만요.
더구나 “교육”이라면서, 왜 저따위 이따위 형편없는 ‘고통의 바다’ 꼬락서니로 만들어 놓고서도, 아예 ‘한번 돌아보자’는 생각도 못하게 가르치고 배우자는 건지, 도대체 감도 못 잡고 흘러가는 공동체 실상 아니란 말인지, 하기에 “학생들보다는 선생들을 먼저 가르쳐야 된다.”고도 하신 거겠습니다. ‘배금주의,’ ‘물질만등,’ ‘인심 각박’ 따위의 말이 나온 지도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만. 거기서 더, “종교”가 깨어야 안 되겠습니까? 막바로, 그야말로 “혁명” 수준으로 말씀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말로만’이겠고요. 그냥, 종교를 포함해서, 가깝게 다들 ‘선진국,’ ‘선도국’ 소리에 마냥 어깨 힘, 우쭐하고만 있는 건 아닌지부터 돌아봐야겠습니다.
바람직한 전통이 아니라 수구꼴통 무리 수준에서는, 나아가서 그게 크리슈나무르티 말씀의 “자기로부터 혁명”이라고 하면 전혀 더 환영 안 하겠지요. 더구나 ‘종교’의 영역이라면, 더더욱, ‘열흘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 꼬라지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소위 조직 ‘종교’는 ‘타락’이지 “문화”라고 볼 수도 없지 싶습니다. “서구에 무슨 문화가 있단 말입니까?” 그리 답하던, 인도 간디 말씀이 다시 생각납니다만, 그런 거 아니라도, 안 그래도 불쌍한 중생·신도들, 오히려 착취해먹자는 걸 어찌 “문화”라고 부르겠습니까? ‘무력’이고 ‘폭력’이고 ‘기만’이지요. “인간들 스스로 속아넘어가는 거고요.” ‘무지’라는 게 바로 그걸까요?
그러니까 여기 역시 근대·현대 이전부터, 오래오래 흘러오는 “문화”의 참된 흐름을 철저하게 막고 있는 꼴이니, 하필 오늘날 ‘정치’ 아니라도 공시·통시, 사회·역사 전체가 다 ‘부패’한 거라는 말씀이네요? 그런 걸 가지고, 하필 또 ‘조선조 후기부터 망하기 시작한 나라!’라고 둘러댈 것도 없겠습니다. 소말리아, 시리아, 남수단, 북한 등등등, 부패지수 최고라는 나라들 들먹이고 있어서야 쓰겠습니까? 하기사, 아무리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개인으로서 저 “두려움”이 제일 큰 걸림돌이겠지요. 거기서는 더 참, ‘눈물 나는 요지경’이라서 말씀입니다. ‘두려움’을 해결 못 한다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고 하시니까요.
오늘날 대한민국 “문화,” 온 천하, 세계만방으로 벋어간다는 ‘한류’라고 하면서도, “선진국,” “강대국” 심지어 “선도국”이라고 하면서도, 왜, 어째서, “새로운 성인”의 출현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라고는 후진국, 개도국, ‘추종국’만도 못하다는 말일까요? 세상 유례없는 ‘발전’으로 반도체, 자동차, 조선, 심지어 방산까지, 더는 영화, 노래, 음식, 옷, 화장품 등등등! 여튼 ‘국운’이 트인다지요? 헌데도 “밤새 자고 아침에 눈 뜨고 보니 도로 후진국!”이라나. 그 말은 그 말이 아니지요?
요하문명, 홍산문화 이전부터였을, 그야말로 수수만년 “찬란한 문화의 나라!” 가깝게는 백범 선생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저 “참된 문화의 흐름”이, 애시당초 “단군” 이전부터거나 아니거나, 누군가 참으로 “행복”하다는 “자유인”이거나 “신선”이거나 간에, 이 땅에 본래 있는 흐름이라고 하니까, 유라시아대륙 동쪽 끄트머리에는 이런 흐름이 끊이지 않고 흘러왔다고 하니까, ‘눈 떠보니,’ 어쩔 수 없이 “도로 후진국” 맞지 않습니까. 그 말이 그 말이네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전부 다 각종의 신과 믿음으로 갈가리 쪼개져 있는 판입니다. 거기서 제 각각의 밥그릇’과 자기 세력의 확충에만 안달인 “조직”들과, 그 ‘종사자’들의 소신과 주장과 교리와 제반 의식들을 우선시하는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근절되지 않는 한, 크리슈나무르티께서 저런 말씀을 백 년, 이백 년 더 들려주셨다고 해도, “평화”란 참 아득한, 까마득한 일이지요? 그 꼴에 ‘평화상’ 천 개 만 개 만들어봤자 아니겠습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또 듭니다. 그리 오래는 아니지만, 한평생 살아오면서 사회 고마우신 분, 나이를 떠나서 정말 만나 뵙고 ‘넙죽!’ 절이라도 드리고 싶은 분도 여러분 계실 거 아니겠습니까. 어떤 분은 단 한번 찾아뵙기도 전에 기어이 돌아가시고.. 여전히, ‘아직은 아니다!’ 싶으면서도 이러다 또 돌아가시기라도 해버리면·······.
설령 연락을 해온다고 해도, ‘친구’ ‘후배’들 마음대로 만나볼 수도 없고, 신세 진 분께 ‘인사’나마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 하여, 무슨 테러나 사고나 허물 따위 뒤집어 쓰고, 내 이 길, 여기쯤에서 그친다 해도. 과분하지만. 부디, 한 인문학도, “가상타!” 여겨주시기만을 ······.
‘격이 맞을까?’ 싶으면서도, ‘한류’라는 것으로, “개인”들이 궁극적인 저 참된 “문화”에 닿아볼 도리는 없을랑가.. 그런 ‘헛된 꿈’이나 꾸어볼 따름입니다.
[일주일도 더 전부터 쓰다 냅두다 말다 한 글이라서요. 동에 시들 서에 구질, 이딴 걸 계속 끄적여야 하는 게 ‘해야 할 일’ 맞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저, 그만두면 될 것을요. ‘그래도’ 싶어서 억지로.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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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7] “한류”와 “문화” 그리고 “홍익”
“또 그 소리냐?” 하실지 몰라도, 인도 마하트마 간디가 “서구에 무슨 문화가 있단 말입니까?” 했을 때, 서구 ‘무력’은 어떤 꼴이었을까요? 고작, “여타의 신을 숭배하지 말라!” 그게 벼리였을까요?
여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것도 세상에 “나라”를 세우면서 그 건국이념으로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저..’ 했으니, 그렇게 “사랑”이 바닥에 깔려 있는 ‘문화’라면, 그건 틀림없이 저 “참된 문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상에 그런 문화는 희귀하겠지만요.
최근에 새롭게 다가온 말씀 가운데 하나, “고요가 사랑이다.” 그 말씀도 있는데요. “주의” “고조된 에너지 상태” “깨어 있음” “고요” 그런 것들이 전부 다 “사랑”이지요? 혹시, “한류”라는 ‘문화 현상’이 “창조” 쪽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까요? 억지일까요? 그런 쪽으로 퍼져가지 않으면, “한류”라는 것도 역시 정체해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 “참된 문화”라는 것은 인간들의 얽히고설킨 ‘됨됨이’를 풀어가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루하루 진짜배기 “인간”으로 변해가는 거지요. 문맥에 잘 안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일신우일신”이라는 말도 그런 엇비슷한 뜻일까요? ‘새로우려면’ 어제와의 단절, ‘과거’와의 단절이어야 한다고 보고, 또 혹시, 그게 저 “고요”로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보고 말씀입니다. “공자님 말씀”으로는 좀 무리겠지요?
오늘날 잘나간다는 “한류”를 가지고도 진짜배기 저 “참된 문화”로 가꾸어 가려면 반드시 “홍익인간”으로 이어져야만 하겠습니다. 그런 “고운 마음씨”들이 바탕에 좌악 깔려 있어야겠지요. 하다못해 제조업 무슨 물건을 하나 만들어도, 중국·일본은 발뒤꿈치 따라도 못 올, 그런 “고운 마음씨”로 만들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비로소 오늘날 저 전쟁통, 이 난장판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선도국” 체면을 차릴 수 있을 터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는, 언제나 ‘아전인수’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있어서, 침도 잘 안 넘어갑니다만. 게다가 저 서구 사람들의 ‘립서비스,’ “선도국”이라는 말 역시 딱 그 꼴입니다만. 무슨 수를 어떻게 쓰든지 간에, 오늘날 세상, 나라, 가깝게는 내 주변, 요모냥요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보자면, 저런 “참된 문화”에 대한 갈망 없이는, 전혀 가능성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다들 그런 마음을 안 먹어서 문제지요. 아예, 그런 생각조차도 안 하고들 살지요? 고조선 이후 국운이 가장 크게 일어난다고도 하는데요. 그게 고작 서구 해먹던 꼬라지 그대로라면, ‘국운,’ 크거나 적거나, 일어나나 마나 아니겠습니까?
바로 거기서, 세상에 “행복을 찾아내는 시간성 없는 흐름”의 “참된 문화”라면, 그 땅에서는 그야말로 누군가 ‘전지전능’ 하거나 말거나, 그따위 ‘여타’의 “신” 나부랭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딴 건 당연히 “섬기지 말아야지요.” 그 따위 ‘종교’를 앞세우고 침략해온 소위 서구열강들은 아직 하나도 안 죽고, 펄펄 살아 있지요? 무슨 ‘각설이’도 아니고, 그야말로 좀 ‘죽지도 않고’ 해마다 꼬박꼬박 들이닥치는 거 아닙니까? 오로지 자기네들 ‘이익’을 위해서, 어느 민족, 종족 멸종시키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그런 족속들, 그런 종교에.. 그런 심성들이니! 그 꼬라지에 아예, ‘문화’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는 뜻이겠지요. ‘간디’ 말씀 아니라도 말씀입니다.
그런 거 역시, 오랜 시간을 두고 더 모질게 이어져왔을 터입니다. 로마 이전부터겠지요. 언뜻 떠오르는 작은 예로서, 각종 영화에서 보듯이, 로마의 승전 개선 장군들의 그 의기양양, 분기탱천, ‘모가지 기부스,’ 그런 모습들부터, 도대체 거기에는 저런 “문화”의 싹수는 그야말로 노리끼리, 아주 ‘떡잎’ 때부터 알아보게 되는 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군인’이라는 게 어디나 다 그렇다고 하겠지만 말씀입니다. 그런 흐름으로 최근세까지 내려와서는, 저다지 천하에 말도 안 되는 “인종주의”까지 다다른 거 아닙니까? 거기서는 한때, “유색인종들은 문명화될 수 없으니, 멸종이 답이다.” 그랬다던가.. 수많은 종족들 멸종시켜가면서.. 게다가 세상에 유명한 서양철학자들 누구를 골라봐도, 제 각각 거기에 동조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지 않습니까!
그쯤 되면, 그야말로 “막가자는 거지요?” 거기에 무슨 “문화” 운운할 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소위 ‘신’의 ‘사랑’을 말할 때에도, 그 ‘신’에게 좀 잘못 보이거나, 말을 약간이라도 삐딱하게라도 들을라치면, 그냥 ‘신의 노여움’을 사서 바로 보복, 복수 당하고 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행여,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대표격이 바로 “마녀사냥”쯤 되겠지요? 한두 사람도 아니고.. 그 ‘마녀’들이 실제로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신”이 존재한다는 흐릿한 증거도 없는데 무슨.. ‘그런 말’ 단 한마디 안 해도, ‘그냥, 그렇게 몰고 가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물 위로 걸어 봐라! 빠지면 너는 마녀다!’ 그딴 식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딴 어거지들한테 무슨 “문화”씩이나.. 더구나 저 유명한 ‘면죄부’라는 것도, 이미 ‘지은 죄’뿐만 아니라 앞으로 ‘지을 죄’에 대해서도 팔아먹었다는 거 아닙니까! 무슨 ‘공명첩’도 아니면서..
“참된 문화” 말씀에.. 우째.. 막상, 본문 말씀은, 사회 최소 단위, “개인”을 “자유인”으로 키워내자는 “문화”겠으니, 세상에 거의 없는 문화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 사람이 아예 하나도 없기야 하겠습니까만. 더구나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 어디쯤에는 그런 “문화,” “그런 흐름”이 오래 안 끊기고 이어져오고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런 게 다 저 “홍익인간” 마음씨 바탕에서 나오는 “신선” 같으신 분 아닐까 하는 말씀의 되풀이기도 하고요. “자유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저 “신선”이라는 분들도 오늘날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계신 분들 아닙니까. 과장 좀 하자면, 저젓거리에서 만나뵐 수도 있습니다. ‘볼 수 있는 ‘눈’만 있다면요.
막상, “문화”의 “이러한 흐름이 권위나 전통이나 두려움 따위들에 의해서 가로막힌다면,” 그만 ‘썩어버린다’고 하시니까, 모름지기 ‘방해’할 생각들일랑 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드러난 것이든 숨겨진 것이든 간에 말씀입니다. ‘방해’ 없어도 쉬운 일 아닙니다. 하여, 여전히 아득한 말씀이지요? 그만큼 우리는 니나 내나 간에 하나같이 냅다 헐레벌떡 여전히 쫓기게만 가르칠 뿐입니다. 그야말로, 말로나 따나 “혁명”으로 뒤엎어야 할 세상에 말씀이지요. 저런 것부터 말씀입니다.
거기서, 무슨 평화의 “백의민족”이니 “촛불혁명”이니 “홍익인간”이니 “선진국” “강대국” “선도국” 같은 소리에 우쭐할 게 아니라, 조금이나마 어떤 ‘실속’을 챙겨야지요. 그래야 세상, 그 어디 어느 구석에서나마 좀 써먹기라도 할 거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아 있을 테니까, 어떻게든 그 시간 “행복”하게 살다 가야지요.
그냥 대놓고 말하자면, 저 “참된 ‘문화’”라는 것에, “홍익인간” 이상의 것이 뭐 더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런 말에, 무슨 ‘선민의식, 민족의식 고취’ 어쩌구 하는 비판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이 저러한 걸 어쩌겠습니까. 모름지기, ‘의미’ 있는 쪽으로 가야지요.
세상 누구라도, 모쪼록, 부디, 남은 시간이나마, 진짜 “행복”하게, “보람” 있게, “참된 문화인”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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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7]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젊을 때, 한때, ‘인간이란 지구에 암적인 존재다.’ 그런 생각을 하고는, 흠칫 놀랐던 때가 있었는데요. 오늘날, 별로 놀랄 일이 아니지요?
그 꼴이라도, “참된 문화”는 저 ‘시간성 없는 흐름’을 찾아내는 것이고, 그게 바로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시간성 없음’이 바로 ‘나 없음’이고 ‘무아(無我)’지요? ‘나’는 ‘시간’입니다. “생각은 시간(Thought is time)”이니까요. 그러니까 ‘시간’과 ‘생각’으로는 저 “참된 문화”에 닿을 수도 없다는 말씀이지요?
제대로 되는 무아라는 건, 백척간두.. 상황에서야.. 득도·견성·확연대오·대오각성, 뭐 그런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 어떤 도약을 거쳐 되는 것이기에, 그런 흐름에 대한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도약’을 위한 분위기, 그런 사회, 그런 “알아채기” 흐름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라야, 비로소 “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 말씀 아니겠습니까? “동양”에서는 몰라도 ‘서구’에는 전혀 있어본 적도 없는 문화겠지요? 이런 대목에서는 “서양에 무슨 문화가 있단 말입니까?” 했던, 인도 마하트마 간디 말씀이 또 생각납니다.
아울러 한반도 삼천리금수강산,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는 아시아 동쪽 끄트머리, 그 지역을 두고 ‘동방의 밝은 빛’이라고 노래한, 인도 시성 타고르 생각도 납니다. 게다가 ‘아시아 동쪽 지역에는 그런 흐름이 있어 왔다.’고 하신 크리슈나무르티 말씀도 기억나고요. 그게 “참된 종교”적 흐름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누구 어느 분께서 어떻게 말했든 간에, 이런저런 말 없어도, 우리는 그러한 “참된 문화”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구촌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말씀입니다. ‘부국·강국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소원이셨던 백범 선생 생각이 왜 안 나겠습니까.
해동성국, 오늘날 그 사람들 보자면, 저 부국강병으로 향한 격동은 끊이지 않을 듯합니다. 그거라고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렇다고 진짜로 저 “참된 문화”를 위한 꿈틀거림을 아예 싹 밟아 뭉개버린대서야 쓰겠습니까? 더구나 보잘 것 없는 어느 한 인간, 평생을 다해서 걷는다고 걸어도 진짜로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밟아뭉개기’는 아주 쉬운 일일 터입니다. 그건 땅 짚고 헤엄치기에, 도랑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 줍고.. 그냥, 식은 죽 먹기지요. 문득, 동양·서양 두루 섭렵했다며 ‘철학자’라고 뻐기던 어떤 사람 고함 소리도 생각납니다. ‘그딴 걸’ “내가 알 게 뭐야!”
이런 거 저런 거 아니라도, “부패”는 언제나 ‘건설’보다는 쉬운 거지요? “나라” 역시 세우는 것보다 망해 먹는 게 훨씬 쉽지 않았습니까? 멀리 올려볼 거 없이, 사람 하나 안 다치고 1,700만 개 ‘촛불’로 일으켜 세운 나라라고 해도, 딱 5 년 만에 다 망했습니다. “이게 나라냐?”에서 “이건 나라냐?”로 바뀌었다지요? 그 꼴을 보고 이제 더 잘 세워 갈지는 두고 봐야겠고요. 그러나 아무래도 부국강병만 추구해서는.. 저 “문화강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한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닐 듯합니다.
‘니나 잘 하세요!’ 모름지기.. 남 얘기할 거 없이, 제 스스로 더 안 썩어가게, 좀 덜 썩어가게, 최소한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은 안 되게 살아야 할 텐데요. 싹수가.. 우째 ‘노리끼리한 색’이라서 말씀입니다. 지난 일에다가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앞으로가 더 문제입니다.
그러고 보니, “홍익인간”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니, 그런 말들은 제가 할 수 있는 말도 아닌 듯하군요. 그저, 그 말들마저 다 사라지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램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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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2] 비로소 “홍익인간”으로..
하다못해, '촛불정신'으로라도 대한민국에 뭔가 진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력, 폭력’ 말고 “문화” 말입니다.
비로소 '행복을 찾아내는 시간성 없는 흐름'으로서의 문화 말이지요. 그게 과연 '촛불'로서 가능하겠습니까? 억지겠지요? 역시 '열흘 삶은 호박' 얘기가 딱 맞을까요?
'정치'에도 '문화'라는 것이 있겠습니다만, '정치'로서 인간들의 '행복을 찾아내는 시간성 없는 흐름'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여기서는 더 ‘이빨도 안 들어갈’ 소리겠지요? 그러면 아예 응석을 부려볼까요? 어떻게든 '정치문화로서 대한민국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만들면 안 되까요?' 비로소 그쯤 되면 좀 자랑할 만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보나 따나 아주 뜬구름 잡는 얘기일까요? 왜, 그나마 촛불 “혁명”이라고까지 하면서, 꼭 근대 시민혁명 수준에서 머물러야 한단 말이겠습니까? 앙뜨와네트 모가지 칠 일이 아니지요? 유모차 끌면서 이룩한 “혁명”답게. 그 아이들한테 과연 어떤 “문화”를 물려줘야 할까요? 이런 얘기는 안 해야 될 얘기입니까? “참된 문화” 얘기 아닙니까.
제 아무리 세월이 흐로고 시대가 변해도, 물질보다는 정신이 우선입니다. 구태여 인문학 운운할 것도 없어요. 그냥 “사랑”할 수 있으면 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을 말이지요. 학문의 으뜸이라는 인문‘학’이 여지껏 뭘 그리 짜다라 “사랑”하고저 했습니까? 거기에는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꼭 스님ㆍ목사ㆍ신부가 되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오로지 '나'만이 문제입니다.
일자무식 나무꾼으로 '깨달은 사람'도 있다지요? 그 옛날에 오죽했으면 '분서갱유' 했겠습니까? 하도 ‘말’이 많으니, 그 사람도 참다참다 확 싸질러버렸겠지요? 찬송하는 거 아닙니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요,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 뭐 그런 구절도 있지요?
'나'만 없다면,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결코 안 되는 일이 아니고요. 하다 못 해, 조그맣게라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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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2] 그래도 행여 “홍익인간”은 좀 억지스러울까요?
우리는 너나없이 저 “행복을 찾아내는 시간성 없는 흐름”이 뭔지 모르기에, “참된 문화”가 어떤 건지 알지도 못하는 겁니다.
여타 이런저런 주장들이 온 세상에 부지기수라고 해도, 다 ‘자기’ 나름대로, ‘나’ 나름대로 머리 굴리고 짐작하고 정의하고 하는 거고요. 다들 인간으로 태어나서 “시간성 없는 흐름” 자체를 모르고 살다 죽는 거지요.
바로 “시간성 없음” 그게 저 “종교의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소위 ‘종교인’들을 위시해서 다들, 아주 평생을 저 “시간성” 속에 짓눌리고 파묻혀 살다 가는 거니까 말씀입니다만. ‘조직 종교’들도 “시간성 없는 영역”에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된 문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서구에 무슨 문화가 있단 밀입니까?” 그랬으니 더 말씀이지요. 그러니 비록 말은 이것저것 이래저래 ‘종교’라고 붙인다 해도, 그건 진짜로 ‘으뜸 가르침[宗敎]’이 아닌 거지요?
“행복”이란 오로지 “무시간성의 영역”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또, 마구 가져다가 붙인다.’고 하실는지 몰라도. 저 “참된 문화”라는 게 바로 “홍익인간”과 이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짜배기, 참된 것” 그거 아니면 어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참된 흐름’ 아니라면 또 어찌 그게 “행복의 영역”이겠습니까? 그러나 세속이니 탈속이니 해도, 다들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정확하게 속세에 일치하는 꼴로 “시간” 속에 묻혀서 늙어가고 타락하고 부패해가고 있으니까 말씀입니다. 글쎄요, 그 누구도 ‘그거 아니다.’라고 말 못 할 터입니다. 그만큼 “홍익인간”이란 그야말로 “세계사의 유례가 없는” “건국이념” 아니겠습니까?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게 있다면 마냥 더 좋겠고요. 게다가 동양 서양 할 것 없이, 정말로 대한민국에 대한 이미지가 그다지 많이 달라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너무 빨리 터뜨린 샴페인’ 비아냥 나온 지 얼마나 지났습니까?
이런저런 사정이니, 설령 열번백번 양보해서 “홍익인간”이 본래 저런 배경에서 나온 게 아니라 해도,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라도 가야만 할 판으로, 참 무지막지하게 막돼먹은 “세계” 아닙니까? 어제오늘 일도 아닙니다만, 역시 그야말로 전지구적인 기아와 전쟁과 난민과 환경과 생태계입니다. 더구나 팬데믹 아닙니까. 이게 또 언제 금방 사그라들지 말지 알 수도 없고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억지라고 하실까봐 보태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그나마 언제적부터였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동아시아 지역에는 이런 흐름이 있다.’시던 크리슈나무르티 말씀도 있거든요. 그 말씀 속의 ‘이런 흐름’이 바로 저 “참된 흐름,” “시간성 없는 흐름”이 바로 “행복”의 흐름이겠고, 그래야 그게 진짜배기 “종교의 영역” 아니겠습니까? 구태여 “홍익인간”과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말씀이지요.
제가 과문하고 교류가 없어서 그렇지, 오늘날 삼천리강산과 더 널리 바다 건너에까지 분명히 이런 생각이신 분에 계실 터입니다. 그게 “홍익인간” 비슷한 ‘이름’이야 달든지 말든지 간에 말씀이지요. 진짜 “행복”으로 가자는 말씀일 테니까요. 바로 요 앞에 드린 말씀 가운데, 김구 선생 소원의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이 말씀과, 본문에서 보듯이 케이 말씀에서 “참된 문화”라는 것은, “행복을 찾아내는 시간성 없는 흐름입니다.” 그러셨으니, 그게 바로 저 ‘높은 문화의 힘’ 아니겠습니까? 여전히 한낱 아전인수에 지나지 않는 말일까요? 또 양보해서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가고야 말 길이 딱 그 길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께서는 달리 그 어떤 길을 가고 계신지요?
오로지 발이 땅에 닿아서 실제로 그리 살아야지요. “참된 문화”에 대한 말씀입니다만, 오늘날 바야흐로 대한민국이 세상에 우뚝 서려고 일어나는 이 세계사, 인류사적인 시점에서 말씀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종교사, 지성사 분야에도 동참하는 흐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삼천리 금수강산 누구 하나 아무도 대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나라꼴”이 또 어떻게 되겠습니까?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마는. 그러나 그런 영역에서도 전혀 동참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가 좀 앞선 사람들 따라서라도 가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는 찬사가 부담스러워서라도 “진리의 영역”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놔야, 그나마 저 사람들에게 체면이 좀 서는 처사 아닐는지요? 하지만 “민주” 운운하면서도 독재자의 딸, 박근혜 같은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아주는 ‘칠푼이’ ‘팔푼이’와 같은 사람들과,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사람들이 겹치는 비율은 도대체 얼마쯤 될까요? 도대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교육받아왔단 말이겠습니까?
전혀 황당한 생각이라면 ‘창조적’이라고 불러주지는 않겠지만, 이런저런 말씀들이 오늘날 세계적인 칭송을 받고 있는 한반도 상황이니 더더욱, 작금의 현실을 완전히 깨부수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게 그리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지도 않는 일이라서 더 어려운 것입니다. 신문마다 언론마다 떠드는 소리들, 왜 하필 코로나 이후 무슨 ‘경제질서’만이 문제일까요? 코로나 이후 긍정적인 인간들의 ‘심성변화,’ 뭐 그런 건 좀 얘기해주는 사람은 별로 안 보이지요? 코로나 이전이나 이후나 간에 다들 고해 속으로 어푸어푸 허우적허우적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엉망진창으로 살아들 가니까,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하면서 그건 그저 체념해버리는 탓일까요? 어쨌거나 당장 급한 일은, 세계적인 호평은 제쳐두고, 펜데믹 그게 어느 한 나라만 극복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니, 우선은 그 문제에 협동할 일입니다만.
게다가 참으로 세계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면, 그때 우리를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작전”은, 그런 백년지대계, “천년지대계”는 그냥 물리·물질적인 영역이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세상 온 천지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조직’ 종교로써도 하지 못했고 여전히 못 하는, 그 어떤 ‘문화운동’이랄까 ‘마음씨 드러남’이랄까 그런 경지에서 일어나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구태여 거기에다가 이름을 붙이자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저” 하는 마음씨, 이른바 “홍익인간”이라고 붙여볼 수는 또 없겠습니까? “홍익인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자”는 말이 너무나도 생소하면서도 그 의미나마 제대로 넓혀야만 하는 시대라서, 이렇게 궁시렁거려보는 것뿐입니다. ‘말을 부풀려 한다.’거나 ‘함부로 말한다.’시며 너무 나무라지 마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나 어쨌든지 간에, “홍익인간”이든지 “인류공영”이든지 또는 한낱 ‘호평’ 선도국이든지 간에, 결국은 그게 하나의 슬로건 차원이라면, “말로써 말 많은 세상 말 많을까 하노라.” 꼴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때는 이거나 저거나 간에 아무 의미 없이 허무맹랑한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러나 “이게 나라냐?” 하던 시절에 이어 바로 “굉장한 나라”라는 소리까지 듣는 처지 아닙니까? 그걸 본다면, 펜데믹으로 다급한 서구 사람들 아첨이야 그 어떻든지 간에, 저 “홍익인간”이 마냥 꿈같지만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오로지 그 국민들, 민초들, 사람들 ‘지성’에 달린 문제일 것입니다. 아이들을 그렇게 키워나가야지요. 그 “홍익인간”이라는 게 역시 “대한민국 교육이념”이라고도 하던데요. ‘그건 그냥 이념이지!’ 핀잔이나 주워 먹지 말았으면 합니다. 건국이념, 국가이념이기도 한 그 말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저’에서 더 달리 해석해볼 필요도 그리 없을 터입니다.
“참된 문화”라는 것이 “행복을 찾아내는 시간성 없는 흐름”과 이어지는 거라면, 그것은 2500여 년 전의 저 “싯다르타 부처님 ‘마음’”과도 같은 영역 아니겠습니까? 부처님 ‘말씀’ 말고 “마음” 말입니다. 비약일까요? 그 마음이 마음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일컬어 이심전심이라고 하는 거 아닌지나 모르겠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에는 이런 흐름이 있다.’고 하신 케이 말씀도, 바로 그것을 가리키는 말씀 같거든요.
그런 흐름에 그 어찌 수구 따지고 진보 따질 수 있을 것이며, 강원도 따지고 전라도 따질 수 있겠습니까. 보다 더 넓게 본다면, 중국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 역시 ‘그저 불쌍한 중생’들일 뿐이지요? 하는 짓들이 더욱이 그리 곱지가 않아서 그렇지요.
그러나 마나 우리는 우리 할 대로 더더욱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저’ 하는 수밖에 달리 다른 길도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이러나저러나 간에, 아무래도 ‘너무 나간 거’ 같다실까 봐 그저 그렇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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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7] “홍익인간” 가지고 일으키는 풍파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닙니다. 어쨌거나 ‘우째,’ “홍익인간” 얘기가 “내추억보기”로 자꾸 뜨는군요. 작년, 재작년 또 그 전부터, 오늘 즈음에 대한민국에서는 소위 “홍익인간”을 가지고 누군가가 풍파를 일으킬 줄 미리 알았던 모양이지요?
인류사 새로 오신 성인(聖人)께서 하실 말씀이, 딱 저 “홍익인간” 말고 달리 뭐가 더 있겠습니까? 설령,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저” 하는 마음이 “사랑”과 “자비”와 완전히 똑같은 말은 아니라고 해도, 저때 ‘이롭게 하고저’ 하는 마음이 하필 ‘인간’만 살리고 다른 만물은 다 ‘죽이자’ 하는 뜻은 더 아니겠지요?
“헌법”이고 “교육법”이고 간에 “홍익인간” 폐기해버리자는 ‘풍파’는 바로 수그러드는 조짐이라고 해도, 그게 한번 일어난 이상 언제고 다시 드러날 수 있을 터입니다. 그게 소위 무슨 세력이 배경에 진을 치고 있는 거라면, 그저 ‘한번 푹 찔러보고’ 말겠습니까? 배경이야 따로 있으나 마나, 그런 풍파를 일으킨 무리들이 그냥 곱게 사라져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있는둥마는둥’ 교육이념이라니까 점점 더 애들을 그리 가르치지도 않을 거 아니겠습니까? 가르쳐도 모자라는 판에 아예 가르치지도 않겠다고요? 다들 하도 나 몰라라 하고 있는 머리 ‘아예 폐기하자.’는 소리가 나오는 거겠지요. ‘식민사관’이나 ‘일대일로’나 ‘배금주의’가 더 문제인 것은 아닐 터입니다. “공동체의식”이 문제겠지요. 그러니 거기서도 소위 정치가, ‘국회의원’이 제일 문제란 말일까요?
우리가 소위 ‘대학’이랍시고 가서 짜다라 뭐 그리 ‘크게 배웠’습니까? 오늘날 대학이라는 건 그저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소’ 비슷한 짓밖에 더합니까? “진리의 전당”이라는 말은 아예 재껴 놓더라도, “상아탑”이 ‘우골탑’ 된 지도 오래됐습니다. 한 세대 이전부터 나온 말이니까요. ‘물질만능’이라는 말은 우리 아주 어릴 때부터 듣곤 했던 말 아닙니까? 거기서부터 “홍익인간”은 딴 세상 얘기였지요?
왜 그런 말이 나왔겠습니까? 소위 ‘종교’에서도 ‘돈’ 많이 내는 사람이 ‘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신자’겠지요? 물론 ‘돈의 위력’을 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언감. 제대로 좋은 데, 더 좋게 써야지요. “인간세상” ‘돈’도 제 위치가 있는 거지만, 왜, 다른 모든 가치들을 짓누르고는 딱 그게 제1가치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나머지는 ‘다 망가지는데’요. ‘기본소득’에서 쫌만 더 가지면 안 되겠습니까? 배부른 소릴까요?
‘자본주의’를 무시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그런 ‘자본의 속성’만 따라 다니다가는 ‘인생을 종치는 겁니다.’ 별로, 거의 의미 없이 살다 가게 되는 거 아닙니까? 물리적인 폭력이 일차적인 문제라고 보면, 자본의 폭력은 아주 교묘하겠지요? 어쨌거나 그런 면에서도 저 홍익인간을 들추어봐야겠습니다. 왜, 오로지, ‘죽어라~~~ 살다 죽어라!’고 가르쳐야 한단 말입니까? 그럴수록 “홍익인간”은 쓸데없는 소리로 되는 거지요. 그게 오늘날 저 사태 아니겠습니까?
며칠 전에 이 사태를 두고,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만, 그 말에서 “꼰대” 냄새가 난다고 또 뭐라 그러신다면 요새 말로 바꿔봅시다. “이기, 머선 129” 그런 말도 하대요. 하여간에 생각을 좀 많이 해봐야 하는 조짐 아니겠습니까? 여튼 “교육”도 그렇거니와 “종교”까지 다 망가진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샴페인’ 아니라 ‘막걸리’도 일찍 딸 시절이 아니지요. 과연 언제 적부터 떵떵거리고 살았다고..
이래저래 “욕망”과 “쾌락”으로서의 인생을 두고, 그저 “홀가분하게, 자유롭게 살아라.” 하는 말씀이니까, 그래야 “삶”이라는 게 의미가 좀 있는 거다, 그런 말씀이니까, 그게 제대로 들릴 리도 없습니다. 그 말씀 적힌 책을 한 권 건네줘도, 그냥 저만치 밀쳐놓기나 하겠지요. 아예 받지도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받으면 ‘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테니까.. 참.. 다시 누군가가 그리워지는군요.
“널리 인간들이 이롭게 살아보자.”는 마음먹기도 예삿일이 아닌데, 그게 저런 가치들 등쌀과 시선 따위 또는 ‘권위나 전통이나 두려움’ 따위들에 휘둘리고 짓눌린다면, 채 피지도 못하고 꺾여버린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해도, 그렇게 ‘가르치지’를 않겠다는 거니까요.
거기서는 “교육”도 권위요 “종교”도 전통이고 아예 “삶” 자체가 “두려움” 아닙니까. 그러니 그게 ‘부패’라는 말씀이겠지요. 모르고 간다면 또 몰라도, 왜, 일부러 그쪽으로 몰고 가자는 건지.. 토왜들일까요? 토뙤, 토구들일까요?
꼭, 그리 가고 싶으면, 지 혼자 흘낏흘깃 슬금슬금 가든지 말든지. 왜, 구태여 “헌법”에까지 손을 대고는, ‘같이 말아먹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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