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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색소폰 소고
23화 화류계 단상 part 1.
화류계를 종류라고 분류 하려니까 좀 걸리는 게,
지금은 화류(花柳계= 꽃花자, 버들柳 )지만
예전의 그 뭔가 있어 보이던 멋졌던
기생분들을 같이 화류계로 넣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큰 카데고리의 의미 에서는 같은 화류계다.
예전의 관기들은 그래도 나름 자기 자신을
그렇게 함부로 낯추어 행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춘향이나 (그는 완전 로또 잡음. 암행어사 남편...ㅋ
남원에서 바로 서울 압구정동으로...)
논개, 황진이등..
황진이의 시는 지금도 이선희 "노래 알고 싶어요"로
지금도 불려지고 있다.
奉別蘇判書世讓---黃眞伊
月下庭梧盡 (달빛 어린 뜰아래 오동잎 다 지고 )
霜中野菊黃 (차가운 서리에도 들국화는 노랗게 피어 있네)
樓高天一尺 (누각은 높아 하늘과 한척 사이로)
人醉酒千觴 (우리는 천잔의 술에 취하네 )
流水和琴冷 (흐르는 물소리 싸늘히 내 거문고줄에 녹아 들고 )
梅花入笛香 (그대 부는 피리소리에 매향이 스미네)
明朝相別後 (내일 아침 우리 서로 헤어지며는 )
情與碧派長 (님 그리움 푸른 물결따라 여울져 갈것을..)
30일 간 함께한 진심으로 사랑한 소세양을 떠나보내는
황진이의 시 입니다.
후에 소세양은 대제학까지 올랐다지요.
알고 싶어요 - 황진이
蕭寥月夜思何事(소요월야사하사)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굴 생각하세요?
寢宵轉輾夢似樣(침소전전몽사양)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問君有時錄忘言(문군유시녹망언)
붓을 들면 때로는 내 얘기도 쓰시나요?
此世緣分果信良(차세연분과신량)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바쁠 때 나를 돌아 보라 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悠悠憶君疑未盡(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일일염아기허량)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망중요고번혹희)
바쁠 때 나를 돌아 보라 하면 괴롭나요? 반갑나요?
喧喧如雀情如常(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황진이가 유일하게 사랑 했던 남자
소세양에게 동선이를 시켜 보냈던 한시
가수 이선희가 부른 "알고 싶어요"는
황진이 시의 번안곡이랍니다.
황진이 이야기가 좀 긴가요?
좌우간에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지만 옛 여인들의
사랑이 이토록 지고지순 할진데
요즘은..?
오래된 관기가 퇴물이되어 뒷방으로 나가 앉으면
(Retire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서럽다..그쵸?)
그 옛날 자기와 풋 사랑을 나누었던 많은 대감들과
그들이 남겨준 정표를 통해서 영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한양에서 온 수령이야 뭐 지할겄?
다 하고 복무기한이 다 되어서 서울로 돌아가면 그만 이지만
남겨진 관기는뭐고 ??
자기도 사람인데 좀 약오를 때도 있었을터,
거기다 떠나가는 그 놈이 인물 잘 생겨, 매너좋아,
거기다 속궁합까지 찰떡이면...휴..
나도 춘향이처럼 서울로 따라가고 싶었을 겄이다.
그래서 생각한게 "못 먹는감 스크래치나 내자...."
요래 가지고는 애인을(고을사또를)졸라가지고
생 어금니를 하나 빼 달라고 한다.
"보시요 사또, 영감이 내 유일한 사랑인데
이제 가면 또 언제 보겄소?
내가 영감이 보고 잡을때 언제든지 꺼내보게
정표로 영감 이빨 하나만 뽑아주소.."
( 우와! 지금도 어금니는 빼기 어렵고 아픈데 하물며...그 예전에야..)
그래도 의리를 앞세운 그동안의 현지처의
애교+눈물+공갈+=
(영감이 그냥 가시면 내는 고마 바로
확 죽을라요.. 나는 고마...콱.가뿐다 )
이래서 사또는 죽을 고통을 참으면서
그동안의 쾌락의 댓가로 생 어금니를 하나 뽑아주는데,
퇴물기생은 이렇게 모은 빌딩 아닌, 어금니 한 주먹을
고이 고이 간직했던 화장대에서 꺼내서 외로을때면
그걸 하나하나 들여다 보면서,
울면서 웃으면서 옛추억을,
지나간 젊음을, 옛사랑을, 하나하나 되새겨 본다.
어금니 1을 보면서는 /
"아이고~~ 김대감 하고 울면서도 속으로는 말한다...
(이 시키는 토끼하고 친척일껴...필시..
도대체 2분을 못 버티니..사람이가?.)
어금니 2를 보면서 /
"하이고오~~ 박대감 / 코를 잡으며
(이 자식은 도대체 뭘 처 먹길래 왜 그렇게
아가리에 똥내가 났던겨??)
어금니3을 보면서는/
"아이고~~ /서대감 그래도 살짝 웃으며...
(이놈이 거시기 사이즈는 쪼까
미디움이라도 무브먼트는
겁나게 날렵햇제...ㅎㅎ)
어금니4/
"아이고 최대감/ 어금니를 노려 보면서
(이새끼 처럼 짠돌이는 난생 처음이여..
.내 쌈지돈까장 털어간 눔..)
어금니 5/ "오홋~~
안대감 /만면에 미소가 번지며../
("어제밤에 그놈 나는 암만해도 못 니즐레라...
어쩌고 하는(" 필자주/):=
기생이 오랜만에 완전 밤일을 완전히 죽이는
임자를 만난듯한,
*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는 그 옛 시는
필시 여기서 나온게 아닐가? 생각해 봄..)=
결론은 죽여 줬다는 말씀..
등등으로 수 십개의 어금니 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면서
풋사랑으로,또는 마음은 안 내켰지만 몸이 움직여
불 태웠던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면서,
눈물로 밤을 지새울 만큼 나름 그래도 미련, 회한,
약간의 지조 비슷한겄도 있었나본데,
그 뒤로는 화류계가 변하기를 일제시대의
요정에서부터-캬바레- 나이트클럽- 룸- 클럽,등으로
화류계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 가면서
그곳에서 만남과 혜어짐이 생겨나고 따라서 남정네들의
여인들의 정조에 관한 개념도,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옛날 사람들 일수록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생각들은 지고지순 하였던가?
못 이룰 사랑에 현해탄에 몸을 던진
"사의 찬미를 부른 가수 "윤심덕"과
동반자살한 "김우진" 도 있는데..
(윤심덕은 동경음악대학 성악과 소프라노전공)
요즘은 원나잇 스탠드 어쩌고해서 사람끼리의
사랑의 중심이 인간본연에서 즉흥적이며, 조건을따지며,
물질,그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빈,부의 차이로 옮겨진것 같아서 씁쓸하다.
하기야 우리 때도 일단 음악을 직업으로 한다면
당연히 정상적인 결혼은 이미 물 건너 갔다.
뚜렸한 장래도 없고, 거기다 수입도 불규칙하고,
또 딴따라 라며 경시하던 풍조에서는 더 더구나
제대로 장가를 가기가 어려웠다.
어쩌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도
여자쪽에서 먼저 택도 없는일이라며 뒤로 빼었고
그리고 음악하는 사람들도 지례 포기한 나머지
애시당초 여염집 규수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래서 유유상종... 가령, 고고장 죽순이와+ 밴드맨,
또는 룸싸롱 마담과+ 그곳의 기타맨,
같은 밴드 멤버끼리의 결혼
(여자 드럼, 남자 기타..)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그래도 어려운 가운데도
둘이서 굳세게 서로 도우며 잘 살아서
나중에 아이들 대학교 다 보내고 노후에도 끝까지 잘사는 커플도 있고
특히 요위의 내글 앞편" 영어 몰라도 음악한다"편의
그 부부 밴드들은 한동안 음식장사로 돈을 많이 벌어서
조물주의 위라는 건물주가 되어
똥폼을 잡으며 사는 커플도 있고..
그러나 슬프게도 생활고를 못이겨
여자가 술집에 다시 나가다가
그만 다른 남자와 바람이나서
헤어지는 케이스도 많았으나
그때는 그래도 형편이 어려워져도
굳세게 음악을 계속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음대를 졸업하면 거의 대부분 음악선생님이 될 수 있던
그때에도 선생 월급이 적다하여
다시 밤무대로 돌아오는 바람에 음악선생이 못되어
지금껏 땅을치며 후회하는 선배도 있고..
반대로 도저히 밤무대의 생태가 몸에 맞지 않아
할 수 없이 중 고등학교 음악선생으로 만족하며 꾹참으며
일생을 지낸 연주인들도 있었고
그들도 이제는 거의 모두 정년퇴직을 했을 겄이다.
(요새는 음악수업 자체가 별로 없는 갑더라...
또, 학교에서 음악선생 되기도 겁나 어렵고..
(교원적체?)
이 글 앞 부분에 내가 말통 기름값 미수금을 받으러 가다가
우연히, 다시 음악계에 픽업되어
한동안 요정에서 일을 했다는걸
이야기 했는데 , 바로 그곳에서
어리고, 청순하고 ,예쁘고, but, 반항기 가득한
아가씨를 한 사람 봤다.
23화 화류계 단상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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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류계 단상 하
그때의 화류계라는게 주인마담이 큰가계를 하나 오픈하면
그 밑에 새끼마담들이 두어명 있었고
(이들은 손님유치,외상값수금등 적잖은
책임과 권력?이 좀 있는 편이었다.)
각 각의 마담밑에는 아가씨가 보통 수십명씩 있었는데
간혹, 얼굴은 이쁘지만 공부하기가 싫어서,
또는 집안이 어려워져서 집안도 도우고 동생들을 공부시키러
할수 없이 화류계에 몸을담은 아가씨도 있었다.
내가 생각나는 그때의 아가씨는 뭘하다 왔는지는 모르지만
반항기가 좀 있고 화류계 고참언니들과 잘 사귀지를 못해서
(말을 잘 안듣는듯.. 필시 학교짱 비슷한거 하다가 짤린 애 같았음...)
화류계 중고참 언니들과 머리채를 쥐고 싸우는 날도 자주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투입되어(그때는 나도 젊은 피...)그 싸움을 뜯어말리고
또 그 아가씨를 우리가 대기하는 방으로 (밴드 대기실) 데리고 와서
담배도하나 주고 하면서 달래고 위로하면서 노래도 한곡 가르켜 주고 했다.
(그때 요정에서는 손님방에 들어가면 아가씨가 무조건 노래를 해서
손님들을 즐겁게 해야 했고 그래서 아가씨들은 당시의 유행가를 몇곡 정도는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지금도 그런가?
그 아가씨는 내가보니 아는 유행가도 별로없고 해서
내가 기타를 치면서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몇곡 가르켜 주기도 했는데
그래도 피차에 서로 연애감정은 싹트지 않았던게,
자기나 나나 하루하루 살기에 바쁜 처지 였으므로 그랬다.
대신 ,그녀 말고 다른 여자가 붙은?케이스로 어떤날은 집에가려고하면
왕마담격인, 나 보다도 조금(많이)연상인 왕마담이 있었는데
이여자가 평소에도 꼭 나만 보면 한복의 치마 말기?를
치켜 올려 달라고 부탁도하고,(뒤에서 땡겨 올려야 했음)
자기집도 시내 종로호텔 뒤여서 일하는 가계에서 거리가 얼마 안되는데도
어쩌다 손님이 빨리 끊기는 날은 꼭 나더러 자기집에까지 바래 달라고 해서
할수없이 둘이 나란히 밤늦은 시내 가로등 밑을 걸어서 데려다 주기도 했는데
뭐 여자가 워낙 이쁘니까 기분은 나쁘지 않더라.
술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왕 마담들은 남편이나 애가 없는 경우가 99%..
왜냐 하면 개인 마이킹을(선금)어머어마하게들 땡기는데
가정이 있는 여자는 일단 제외 됨.)
그래서 내가 자기 집앞에까지 데려다 주면
(그때 나보다도 5~6년 연상?)"
애, 들어와서 커피한잔 할래" 하고 물어왔다
(요즘으로 치면 들어와서 라면 먹고 갈래요?.. 인데
나는 병신처럼 그 마담을 거시기?할 용기가 첫째 없었고
(여자가 겁나 이뻣음...)
둘째로, 나는 모처럼 잡은 이 찝찔한
(짭짤은 결코 아니고..)수입의 일자리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였다.
(왕마담하고 어쩌다가 걸리면 바로 짤림)
요즘 생각해 보면 요 위의
퇴물어금니 보따리 기생처럼 후회막급이다..
하여튼 그렇게 좀 지내다가 이 병아리 기생아가씨를
다음에 우연히 우리가 해인사에 낮일을 가다 보니까
(그때는 낮에도 악사를 부르는 행사가 많았음)
어떤 돈 좀 있어 보이는 뚱뚱한 중년아저씨와 손을잡고
해인사부근의 여관에서 나오는걸 봤는데
나는 그녀가 무안해 할까봐 모르는척 빨리 지나가 버렸다..
(속으로 제발 돈많고 매너좋은 홀아비 사장님이라도 만나서
너라도 잘 살아라..하는게 내 진심이였다..
동병상련이랄거 까지는 없어도 어쩐지 처지가 비슷한것 같아서
그녀만 보면 늘 마음이 짠 했는데,
그뒤,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드디어 나는 밴드들의 선망인
(메이저 리그격인)
나이트 클럽의 밴드멤버가 되었고 (마스타는 아직 아닐때.)
덩달아 수입도 좀 많아졌다( 80년대초에 월 80 여만원 정도를 ..받음.
나는 평생 그렇게 벌이가 이어질 줄 알았음...)
그러다가 호텔나이트클럽에 불이나는 통에
수리때문에 우리도 한달 정도를 쉬어야 했는데 ,
모처럼 쉬는기간에 쉬지도 못하게 어느 요정팀에서
엑스트라 요청이 들어 왔다.
(색소폰을 불면 일할데가 너무많던 시절...ㅎㅎ)
그래서 좀 쪽 팔리지만 돈을 많이 벌 수있는 요정에
한달정도 일하기로 하고 어느 큰 요정에 갔다
(요정은 큰 마루나 안방에 평풍을 뒤로 치고
보통 3~4인조가 연주함 .Gt,sax,drum,accodian 정도...)
그래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 웨이터가 와서 마담이 좀 보자고 한다.. .
"어..나는 오늘 이집에 처음이고
손님과 싸운일도 없는데...왜?" 하면서 가보니
오우~ 그 큰 요정의 주인이 바로
그 예전의 그 쌈닭 아가씨였다..!!!
그동안 그 큰 요정의 주인이 되느라 무슨 고생을 했는지
예전의 그 복숭아 빛의 발그레하던 뺨이며
초롱초롱하고 푸른빛 마저 감돌던 눈동자,
거기다 언니들과 맞짱을 떠도 지치지않던 그 늘씬하고 탄탄했던
바디라인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여전히 이쁘기는 하지만 세파에 찌든 관능미
(좋게말해서.)와 조금 쓸쓸해 보이기 까지도한 그녀였다.
그 녀가 내게로 다가와 나직히
"아직도 음악해? "하고 내게 물었고,
나는 속으로 "시바.. 나이트 클럽에서 일하다 불이나서 잠시 요정으로
(K리그에서 뛰다가 잠시 사회인야구로?)
왔는데 하필... 쪽팔리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씩씩하게 "그래, 나는 아직도 이러고 있다
너는 그동안 돈 많이 벌었구나."하고 말하고 그녀를 보니
얼핏 보기에도 당시로도 수십만원이 넘는다는
무슨 프랑스제 티셔츠에
비싼 곤색의 양복바지를
(그때는 화류계 캡틴들이 그런 복장을 많이함..)
입은 그녀가
쓸쓸함이 그득하게 넘치는 눈빛으로
" 돈만 많으면 뭐하니...." 하고 쓸쓸하고도 공허하게 대답하면서도
(그 예전에 처음 요정에와서 언니들과 싸우고 나서 ,
내가 말려서 우리 대기실에 데리고 와서 담배라도 주면서
그녀를 달랠때 그때 잠시 보았던 그런 천진하면서도
슬픈 눈동자를 빤짝이면서,)
"너 일 다 끝났으면 나랑 술한잔 할래? 물어왔고,
이 여전한 이 천지 바보 등신은 그때도 한방 더 하려고
(한시간 더 다른방에서 일해서 돈을벌려고..)
"아니, 난 아직 일이 덜 끝났어.."하고 대답해 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할 수 없다는듯, 또는,
그런 정도의 실망은 늘 익숙하다는듯 살짝 쓸쓸하게 웃으면서
"그래 그럼 다음에 우리가계에 또 와" 하고 그대로 헤어 졌는데
나는 그뒤로 그 요정에 일부러 안갔다..쪽 팔려서..
그 뒤로는 지금껏 그녀를 보지 못했고,
그날의 나의 행동은 요 위에서 말한 퇴물관기의 뽑혀진 어금니이상으로
마음 한구석에 자릿한 아픔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건 결코 그날밤 놓친 절호의 기회이자 십 수년만의 재회를 발로 차버린,
어쩌면 확실히 보장된, 알걸 다아는 사람들 끼리의 욕정을 못 풀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서로 성별이 바뀐 또 하나의 나를 보는듯,
그때 내가 그녀를 좀더 적극적으로 보살피거나
그 생활에 발을 들여 놓지못하게 말리지 못한, 아니 말릴 이유도,
형편도 못 되었지만
이상하게 자꾸만 마음이 아려 왔다.
비록 지금은 돈도 많이 벌었고 화려한 옷도 입은 그녀 였건만..
세월에 비켜 살짝 시들게 변해버린 그녀가 왜 그런지 나를 몹씨 슬프게 만들었다. 둘이 아무 사이도 아니였는데도..)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그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더 컷던겄같다.
장래도, 돈도, 뭐하나 보장된게 없던 암울했던
그 나의 젊은시절은 그렇게 퇴물기생의 화장대 설합속 가죽주머니에
있는 옛 애인들의 어금니들처럼 지금도 나를 슬프게 한다.
고로. 부모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 생긴다...
(엄마가 음악 그딴거 하지 말라고 무지하게 말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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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그때 그 애기 기생에게 내가 가르켜준 노래가
정종숙의 "님 오시는길" 정훈희의 "꽃길"
들이였는데,
만약에,,, 만약에,,, 그때 개랑 나랑 둘이서 잘돼서 같이 살았더래도
피차의 급한 성질때문에
벌써 찢어졌거나 아니면 동네에서
둘이 가장 많이 싸우는 집으로 소문이 났을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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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들면...
"에구 저집은 어른만 그런게 아니라 애들도 그렇게 늘 싸우고 다니더라...."
아줌마 A. 그집 마누라가 얼굴은 이쁜데 성깔 꽤나 있어 보이 잖아...
아줌마 B. 그러게 그집 아저씨도 한 성질 하겠던데...
그래도 난 저집 아저씨 좋더라..옷 입고 다니는게 연예인 같아..
아줌마 A.아이고 그런 소리마...그집에..
머리칼 몇개 안 남은거 다 뜯기고 싶어?
그 집 아줌마 얼마전에 택배 총각이랑 싸움이 붙었는데
말도마, 택배 총각이 덩치도 황소만 한데도
그집 아줌마 한테 그곳을 잽혀서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제발 놔 달라고 애원하던데....
지금은 두목급 퇴물기생이 되었을
그녀생각이 가끔 나는게 다행?히도 그때 우리가
아무짓도 안해서 그런겄이다 생각하고,
(만약 그때 섬씽이 생겨버렸으면 이상하게 더 생각이 안 날듯,
심지어 어떤 아저씨와 같이 여관에서 나오는겄 까지 봄.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왜 저렇게 이쁜애가 저 늙은 사람하고..)
그뒤로 나는 되도록 여자들을 조심하고 살아와서 (쉿...넘어가자 그냥..^^)
그나마 지금 이정도라도 살고있는게
다 그녀 덕이다 생각하며 늘 고맙게 생각함.
이름도 이제는 생각나지않는
그대여, 부디 부디 행복하여라~~~~
Don't worry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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