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오후 10:20 ·
연미복 잡감(2) … 군사문화와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
그럼 한국으로 넘어와 보자. 19세기 말 근대화에 뒤쳐졌던 조선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연미복을 통상예복으로 규정한 메이지 정부를 흉내 내며 1900년 4월 17일 칙령 제14호 문관복장규칙(대한제국 문관의 복장을 규정한 칙령)을 공표하며 연미복 착용을 명시했다. 고종 황제가 장식이 화려한 대례복과 더불어 심플한 연미복을 입은 사진은 유명하다. 이처럼 한국에 연미복이 처음 등장한 것도 ‘제국’(帝国)의 등장과 함께였다. 특권층, 귀족, 지배자의 옷이다.
그런데 이 옷을 탄생시킨 진짜 뿌리는 '군대'였다. 17-18세기 유럽의 군인(보병, 기병)들이 착용하던 코트가 승마나 행군, 훈련 시에 앞과 옆 부분이 활동에 지장을 주고 방해하였기에 앞 자락을 뒤로 넘겨 단추로 고정하면서 나중에는 아예 뒤로 접거나 잘라 버리면서 제비 꼬리처럼 뒤로만 길게 늘어진 코트가 탄생하였다. 이것이 나폴레옹 시대 유럽 각국의 군대에 널리 퍼졌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영국 귀족 만찬 등에서 유행하다가 국왕 알현의 예복으로까지 승격되어 간 것을 다시 일본제국이 수입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해방 이후 한국 내 친일파들이 장악한 대한민국의 현대사 속에서도 이 옷은 오랜 세월 권위주의와 특권을 상징하며 그 기능을 이어 갔다. 이승만 때부터 노태우 때까지 대통령들은 취임식이나 각종 외교 행사에 연미복을 입었다.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이 ‘한국형 오리엔탈리즘’으로 재탄생한 시기이다. 일본이 거쳐 간 올림픽과 박람회의 역사를 계속 뒤밟아 갔던 것처럼…
작위를 받은 친일파들이나 입던 옷을 신생 독립국가의 지배층이 다시 입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군사 문화에 뿌리를 둔 이 옷을 가장 즐겨 입은 것은, 역시나 일본육군사관학교과 관동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였다. 박정희와 그 패당은 틈만 나면 연미복을 입으며 찬탈한 권력에 흠뻑 취해 있었다. 하지만 불의한 군사독재에 저항한 87년 민주화 항쟁 직후의 노태우는 대통령 취임식에 처음으로 연미복을 입지 않고 단상에 올라섰다. (자기가 "보통사람"이라서라나...) 그래도 미련은 남았는지 완전히 없애지는 않고 안 보이는 무대 뒤에서는 즐겨 입었다.
그 다음 등장한 문민정부의 김영삼은 취임식 때도 연미복을 안 입는 것은 물론 1993년부터 의전 간소화 조치를 통해 대통령과 고위 관료, 군인들의 연미복 착용 문화를 완전히 없애 버렸다. 결국 군대 옷이었던 연미복은 김영삼이 단행한 ‘하나회 척결’과 함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친일에 기반한 권위주의 정치와 오랜 군사독재의 구역질나는 특권 문화의 상징이 바로 ‘연미복’이었으나, 그 이후 한국의 정치외교계, 매스컴 등에서 연미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로서 역사 드라마나 결혼식장의 신랑에게서나 종종 볼 수 있는 옷이 되었다.
물론 노무현, 이명박, 지금의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유럽 순방에서 연미복을 입은 경우가 있긴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에 와서 한복을 입는 것과 같은 지극히 자연스럽운 상대 국가에 대한 예의와 문화 교류의 차원이다. 하지만 3년 전 새 일왕의 즉위식에서 총리 이낙연이 연미복을 입은 모습은 유럽의 그것과는 다른 위화감을 안겨준 게 사실이다. 뭐라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이낙연의 연미복 시전을 보며 시각적 불편함을 느꼈던 사람은 나 말고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이 된 지금이다. 5000만 주권자인 국민의 대표자로서 이웃 국가 일왕의 즉위식에 참석한 것임을 그는 좀 더 무겁게 받아들였어야 했다. 나는 이낙연의 복장 자체 보다도, <동아일보>가 자사 기자 출신의 총리 이낙연의 즉위식 참여를 보도하던 행태에 더욱 아연했던 기억이 있다.
30년 전 ‘일왕 즉위식’ 취재한 이낙연…이번엔 총리 신분으로 <동아일보> 2019-10-22
https://www.donga.com/.../article/all/20191022/98012486/2
아무래도 이낙연은 내심 연미복을 입고 싶던 것이 아니었을까? 관례상 모두가 연미복을 입는다는 변명 뒤에 숨는 것은 이명박에게나 어울릴 법한 수사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총리가 일본과 한국에서 연미복이 지닌 어두운 역사를 모른 척하며 태연하게 입고 뿌듯해하던 모습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필부로서 홀로 모욕감을 느끼며 매스꺼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더욱이 이낙연은 본인이 몸담고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신학교(한신대학) 수유 교정에 늦봄 문익환 목사 시비 건립을 주도한 위원 중 한 명이었다. 문목사께서 친우 장준하 선생 죽음 이후 반평생을 두루마기를 걸친 채 민주화, 통일 운동에 매진한 것을 잘 아실 분께서 어찌 박정희와 그 졸개들이 즐겨 입던 연미복을 걸쳐 입고는 희희낙낙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연미복’의 역사를 청산한 대한민국, 그리고 그 나라의 총리가 일본 땅에서, 그것도 천황 앞에서 연미복을 입고 일본의 신민(臣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참례한 것은 여전히 유쾌하게 바라 봐 줄 수가 없다. 그가 일개 자연인으로서 연미복을 입든 별로 관심도 없고 큰 의미도 없다. 그가 국민의 대표자였다는 것이 문제이다. 규정상, 관례상으로도 문제없을 수 있다. 단지 이것은 복잡다단한 역사의 지층 위에서 형성된 깊은 정서, 감정의 문제이다.
3년 전 <동아일보>가 보도한 “30년 전 ‘일왕 즉위식’ 취재한 이낙연…이번엔 총리”라는 기사 제목이 이낙연의 무의식 속 욕망과 <동아일보>의 지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다. 특파원 기자로서 일반 정장을 입고 참석했을 이낙연은 헤이세이 덴노의 즉위식에 연미복을 입고 늘어선 일본의 관료들과 세계 정상들을 보며 꽤나 부러웠던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부터 줄곧 보아온 역대 대통령과 권력자들이 입은 연미복을 꽤나 동경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전두환을 “위대한 영도자”라고 반복해 지칭해가며, 방미 후 귀국하는 학살자의 외교 업적을 향해 “국내에 몰고올 훈풍이 기대된다”고 썼던 1980년의 <동아일보> 기자 이낙연의 펜 끝은 그의 마음과 정녕 이어져 있던 것인 아닌가 싶어 한없이 씁쓸해졌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95996.html
3년 전 즉위식에서 총리 이낙연은 자국 전통의상을 입고 참석한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총리 등, 여러 자국 전통의상을 입은 지도자들과 대화나누고 있다. 이낙연은 저 날 선진들이 즐겨 입었던 두루마기를 걸치고 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게 다소 부담스러웠다면 일반 정장으로도 충분했다.(일반 정장을 입은 외국 내빈도 꽤 있었음.) 2005년 부산에서 개최된 제2차 APEC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정부는 21개국 정상에게 아름다운 두루마기를 선물하고 다 함께 두루마기 차림으로 사진을 찍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입었다. 우리의 두루마기 차림이 일황의 즉위식에 실례가 될 리 만무하다.
백범 김구, 성재 이시영, 우사 김규식을 비롯한 수많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해방 이후에도 공식 석상에서 두루마기를 즐겨 입었다. 심지어 보수 우파에서 국부라 섬기는 우남 이승만조차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일 당시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초대 대통령 선서를 했다. 3년 전 패전 직후 연미복을 입은 채 군복의 맥아더 앞에서 초라하게 서 있던 쇼와 덴노와 비교할 때, 두루마기를 걸치고 맥아더와 나란히 앉아 영어로 환담하는 이승만의 모습은 오히려 저 초라한 연미복에 비해 더욱 당당한 그것이었다.
예의 진중권 씨처럼 나 또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일본에 선교사로 나온 입장에서 일본의 전통 기모노나 유카타를 얼마든지 입을 수도 있다. ‘기모노’(着物) 말 그대로 ‘입는 물건’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4년이 되도록 나는 공식 행사나 료칸 투숙 등의 순간에도 한 번도 기모노나 유카타를 입은 적이 없다. 일본인과 가족이 된 입장이지만 그 선 만큼은 여전히 넘어서기가 조심스럽고 어렵다. 물론 내 딸아이들이 기모노를 입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바라본다. 아마도 근대 천황제 가족국가를 꿈꾼 근대 일본의 ‘가부장성’, ‘남성적 폭력성과 지배욕’에 대한 거부감이 마음 속 어딘가에 여전히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는가 보다. 연미복도 나에게는 똑같아 보인다.
이낙연이 총리로 지명되었을 때, 전여옥 씨는 <동아일보>가 경영하는 채널A ‘내부자들’에 나와 그의 총리 임명을 대환영한다면서, 3년 간의 특파원 시절 도쿄에서 함께 했던 시절의 추억담을 늘어 놓았다. 그 때부터 속으로는 “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다시 3년 전 새 일왕 즉위식에 연미복을 입고 뭔가 기뻐 우쭐해 하던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쎄…” 했었다. 그런데 요즘 선거판에서 그 점잔 떨던 모습을 뒤로 하고 소모적 네거티브로 정치판을 진창으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 긴 한숨만 나온다.
나도 한 때 그의 지지율이 구름 위를 누빌 때, 누가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DJ 이후 “백제인의 후예(?)”가 다시금 전국민적 지지를 받고 새 지도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 지역적 사고야말로 연미복과 함께 얼른 떨쳐 내야 할 구시대 유물임을 다시금 느낀다. 그러고 보니 <동아일보>를 만든 친일파 김성수도 호남인이다. 연미복을 향한 욕망은 영남이고 호남이고, 기호고 서북이고 관계가 없는가 보다. 5.18로 인해 호남인에게 빚진 마음 가득했기 때문일까? 이낙연 씨의 말과 행동, 뭐든 좋게 보려 애써온 수년이지만, 연미복 입은 그의 모습이 남긴 흐릿한 잔상은 여전히 내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
황제가 주인인 대한'제국'은 연미복이 있었지만,
시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엔 연미복이 없다!!!
(산돌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