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멍 / 하청호
아궁이에 타는 불을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불타는 것을 멍하니 본다
시쳇말로 멍 때리는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지난날,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일이 있으면
슬그머니 일어나 부엌에 불을 지피는 것을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을
오늘 불타는 아궁이 앞에 있다
어머니가 슬그머니 내 곁에 앉는다
애비야, 힘들지!
환청인가, 탁탁 불꽃 튀는 소리
[시의 감상 ]
객지에 있다 고향집에 갔습니다. 어머닌 꼭두새벽에 일어나 군불을 땠더랬습니다. 간밤 친구들과 어울려 늦게 와 자던 내방이 춥지나 않을까 해서였겠지요, ‘불멍’은 불을 때며 ‘멍 때라는 것’이란 걸 시를 읽고 압니다. 어머니는 방과 부엌을 연결하는 깨진 구멍창의 희미한 호롱불 아래 그 ‘멍불’을 지피곤 했지요. 아무래도 피어날 가망없는 살림에다 아버지 병환, 더구나 내 입학금 걱정에 어머니는 벽의 끄을음처럼 까만 속내였을 테지요. 불앞에 그만 ‘좌불(座佛)’인 어머니의 ‘멍불’은 생각해 보니 ‘묵불( 佛)’이었군요. 지금은 사철 자동난방에, 첨단 공기청정기에, 건강에 좋다는 황토침대이지만 웬 불면증은 자주 올까요. 꿈엔 듯 고향집에 갑니다. 녹슨 무솥 앞의 멍불, 아, 도시에 없는 부처가 그곳에 와 거친 손을 내밉니다. 마른 콩대의 다비 속에 ‘힘들지!’도 하십니다. 취한 애비는 대답 대신 끄응, 어머니를 향해 웅크립니다. 하청호 시인은 경북 영천에서 나, 1972년 매일신문과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다비 노을’(2012), 동시집 ‘잡초 뽑기’(1986), ‘무릎학교’(2003) 등 많습니다. 그는 삶에 대한 체험적 성찰을 절제된 시어로 가장 나답게 사는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