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에 내려온지 3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서고 있다. 이곳에서의 삶은 처음엔 평화로웠으나 평화이상의 고통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지난 번 교보에 들렀을 때 시집하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분홍색 흐느낌>이란 제목의 시집이다. 책 표지를 여니 신기섭 (1979-2005)라는 작가의 약력이 보인다. 2005. 2005년에 죽었어? 한 줄 더 내려가니 문경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되어 있다. <문경>이라는 두 글자가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책을 집어들고 시를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시집 속에서는 내가 살고 있고 내 아이가 커가는 문경의 그 소읍이 고스란히 살아오는 것이었다.
신기섭은 할머니 손에 자랐다. 엄마와 아버지는 어디로 갔는지 그는 말하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와 아빠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대신 토끼인형의 눈깔을 붙여주던 할머니와 치매에 걸려 할머니와 자신을 괴롭히던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뿐이다. 시 한편을 읽는데 목이 턱턱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푸른 산과 너른 벌판 꽃들의 화려함이 주는 평화를 넘어선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지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어렴풋이 느꼈다.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나를 짓누르던 것, 내가 느끼는 이 수치심, 그것은 내주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느끼는 안타까움과 슬픔, 고통에서 비롯된다.
그의 읍내사거리라는 시를 읽자 읍내의 사거리의 모습이 여지없이 떠오른다.
읍내사거리
신기섭
읍내사거리에 가면 중앙약국이 있다.
우리 동네 영란이 누나가
약사보조로 일하고 있다.
거미줄같이 침착한 주름의 약사,
언제나 내가 다른 병을 얻어 들르는 날에도;
변비는 어때요? 꼭 묻곤 한다.
읍내사거리에 가면 문방구 " 종이나라" 가 있다.
초등학교 때 물체주머니 훔치다 잡힌 경력 탓에;
호적에 시뻘건 줄 죽죽 그어지면
빨갱이처럼 인생조지는 거라!
할머니 말씀, 아직까지 듣고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주 인생을 조지진 않았지만
읍내사거리에 가면 담배파는 신발가게가 있다
고등학생들도 담배를 산다
그곳에서 신발을 사는 이들은
노인들 뿐 청년들은 담배만 산다
청년들은 그곳을 담배가게라고 부른다
한 번 그곳에서 신발을 사신은 나는
동창들에게 늙은이 취급을 당했다
읍내사거리에 가면 왕순댓집이 있다
장날마다 극장처럼 사람들은 줄을 서고
검은 봉지에 한가득
순대를 돌무덤같이 담아간다
오래 기다린 입덧처럼 봉지가
불끈불끈 흰 김을 토해낸다
읍내사거리에 가면 꽃집이 있다
그 위층에는 辛치과가 있다
꽃냄새와 약냄새처럼
그 치과 간호사와 나, 연애를 했다...
꽃집에서 장미 한 송이씩 늘 사서
계단에 놓아두곤 했다 어느날,
장미를 짓밟고 그녀는 퇴근을 했다
읍내사거리에 가면 다방이 두 개 있다
산유화다방과 개미다방
산유화는 늙은 레지들이 많고
개미는 어린 레지들이 많다
산유화 레지들은 밤마다 술집을 돌고
개미 레지들은 밤마다 여관으로 간다
읍내사거리에 가면 나에게 침 밷는 법과
좆춤 추는법을 가르친 선배들이 있고
장날마다 땅바닥에 뒹구는 몇 알의 튀밥이 있다
어린아이들도 누구나 다 침을 밷고
여자아이들은 여관처럼 잘 더러워진다
한번 이읍을 떠났다 돌아온 사람은
겨울잠을 자고 온 곰처럼 온순하지만
금세 사나움을 되찾고 만다
그리고, 다시는 떠나지 않는다
읍내사거리에 가면
아무것도 없다
지금 종이나라 문방구는 없어졌지만 왕순댓집은 아직도 있다.
문경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가끔 순대국을 먹곤한다.
신기섭이 사는 동넨 문경읍이고 내가 사는 동네는 가은읍이지만
읍네 사거리의 풍경은 비슷비슷하다.
저녁이면 학교를 끝나고 어슬렁대는 교복입은 아이들은
터머널에 모여 침을 찍찍밷고
한떼의 아이들은 다리 밑으로 들어가거나 으슥한 숲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한다.
어디 그들이 갈만한 곳도 놀만한 곳도 없다.
아이들은 이곳의 자연이 좋은 줄 모른다. 아이들에게 자연은 그저 자기들에게 아무 혜택도 주지 않는 무용지물의 화폐일뿐이다. 오히려 저 높은 산은 서울로 갈수 없는 벽이며 도시 아이들을 뛰어넘을 수 없는 열등감의 상징이다. 부모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가 있는 아이들보다 더 많아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너무 어린애 취급을 당하기 일수다. 1학년은 2학년을 피해다니고 2학년은 3학년을 피해다닌다.
어떻게 하면 이 답답한 소읍에서 벗어날까 아이들은 구시렁거리고 빨리 스무살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서울에서 온 우리들은 별 회괴한 인간이다. 다들 서울로 가고싶어 안달인데 그 좋은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여길오다니 저새끼들 뭔가 잘못됐어. 이상한 종교집단일뿐이라고 생각하기 좋다.
만약 신기섭이 죽지 않고 살아서 이 시집을 발표했더라면 나는 그를 만날 수 있었을까?
내가 문경에 내려가서 산지 3년이 되었다고 했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마도 난 그가 호의의 눈빛을 보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문경은 늘 벗어나고싶은 어떤 곳이었을게다. 잊고 싶고 날려보내고 싶은 기억들이 있는곳, 이 시집 속에 그는 그 기억들을 토해내고 있다.
그는 이 시집이 나오기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시집 속에 어두운 기억들을 모조리 모아놓고 불태워버렸으니, 그래도 좀 가볍게 그는 가버렸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 기억들은 그에게 고통이지만 그래도 그의 삶의 자취이므로 그는 절대로 떨쳐버릴 수는 없었을 게다. 그는 시를 쓰면서 더럽고 비참한 그 기억들을 삭히고 또 삭힐려고 노력했다. 그는 시를 쓰면서 어두운 그의 자취방에서 참 많이도 흐느겼을 것이다. 어두운 방한 구석, 그의 좁은 어깨가 흔들리고 작은 불빛이 그래도 분홍색 사랑의 색으로 변하길 기대하면서....
비오는 날 우는 새가 있다. 휘이~ 휘이~ 구슬픈 휘파람 소리이다. 어디 계곡 에서 누군가가 우는 소리같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니 그 새이름이 저승새란다. 그 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단다. 소리만 들릴뿐 그 새를 본 사람은 없다.
처마끝에 빗방울 소리를 긋고 가끔 저승새가 운다.
아! 저 저승새의 저 울음소리, 나는 그소리가 어쩌면 분홍색 흐느낌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저는 문경의 신기섭시인과 전주에 박성우시인은 다 70년대 출생인데, 그 삶과 시가 50~60년대 밑바닥을 기면서 살아온 사람이 온몸으로 쓴시로 느껴져 시를 읽으면서 나이를 알면서도 자꾸 나이를 확인해 보았어요. 신기섭시인이 세상버린 소식을 신문에서 보며 지인들이 몇편 소개하는 시를 읽고 가슴미어터지던 기억이 아득합니다. 물푸레샘의 '분홍색 흐느낌'에 이어져 '연분홍 슬픔'이 가슴을 흔드네요
뭐랄까..내려깔은 목소리가 느낌이 더 강하게 오듯이 참 담담한 글이 더 아픔을 전해온다고 해야하나?....저도 너무 슬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