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화산리 송영길 생가와 11대 조모 묘(3백년만에 발복?)
1. 송시장의 숙부를 만나다.
* 7~8년전에 지인과 함께 4형제 급제로 유명하다는 명당터를 구경 갔다. 당시만 하여도 송시장(1963生, 94년 사시합격, 2000년 국회의원, 2010년 인천시장)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은 때이었다. 송시장의 생가터는 고흥 화산리 평촌마을 안에 있었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자 할머니들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알겠다고 하더라.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답사온다는 말이다. 골목안을 기웃거리다가 때마침 어떤 집 담장 넘어 노인이 있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 그 노인은 송시장 숙부된다면서 자기 맞은 편 집이 송시장 집이라 하고 선영은 뒷산에 있다면서 친절히 그 분의 트렄에 태워 안내해주더라.
2. 평촌마을의 생가
* 생가는 위에서 세 번째 집(화산리1631-2)인데 조부때 이사왔다고 하고 지금은 다른 사람의 소유라고 한다. 양택은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하였고 골목 맨 윗쪽에 있는 채소 밭이 좋게 보였는데 그 노인의 소유라 했다. 최근에 다음지도로 보니 2017년경 예전의 채소밭에 집을 크게 신축하였더라.
* 숙부의 말에 따르면, 평촌에는 양택명당이 있는데 처음에는 송씨가 발복받고 그 다음은 임씨가 발복받는다는 전설이 있다. 평촌은 송씨들 집성촌이고 양택명당이 될만한 곳(아마도 내가 좋다고 한 채전밭을 말하는 것 같았다)은 자기 소유이고 팔지 않을 터인데 어찌하여 임씨가 거주한다는 것인가. 평촌에서 30리 거리에 任씨 집성촌이 있는데 훗날 임씨 총각이 평촌 송씨 처녀에게 장가들어 와서 명덩터에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하였다.
2. 집장지
* 선영은 자동차로 20분쯤 간 뒤 걸어서 7분쯤 갔다. 고조부모 묘이하 부모묘까지 10기가 있었는데 조모묘외에는 2000년경 이장하였다. 명당급은 아니고 겨우 동네 길지급이었다.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노인은 서울 풍수들의 말에 의하면 청룡쪽 맨 아래 묘(입수에 바위가 있는 조모묘)가 명혈이고 쌍룡그룹 선산중 시집가지 아니한 딸이 이와 같은 모양의 혈에 묻혀서 발복을 주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속으로 왠 시답잖은 소리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노인도 여기 묘는 근년에 이장하였다고 하면서 비중을 두지 않는 눈치였다.
3. 장후 10대에 발복한다는 할머니 묘
노인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다 건너(고흥)에 자기 선조 할머니 묘가 있는데 지관이 10대 후에 발복할 것이라 하였고 마침 자기代가 10代이어서 자기를 비롯한 10대들이 모두 은근히 기대하였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한 대 아래인 송시장집에서 4형제 등과(여동생과 형은 행시합격)를 하였다고 한다. 바다건너에 있는 10대 할머니 묘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비밀에 붙여두고 자기가 쭉 벌초하면서 관리해 오고 있다. 집안에 술이나 먹고 건들거리는 조카가 있는데 먼 곳에 있는 할머니 묘를 가까운 곳으로 이장하자고 제안하기에 야단을 쳤으나 자기가 죽고 난 뒤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걱정이 태산같았다.
4. 간산 소감
* 평택마을의 주산인 취령산은 장군봉에서 봉두산을 거쳐 과협을 잘하고 왔다. 그러나 주산은 규모가 작고(노쇠한 듯 보였다) 근안은 요대처럼 잘 펼쳤으나 미약하다. 원안은 바다건너 고흥반도의 산인데 힘차다(운암산과 팔영산이 보인다). 양택자체로도 래룡과 근안이 약해서 발복에 장시간이 소요될 징조가 보이고 고흥에 있는 먼 안산은 너무 멀어서 발복에 5대이상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으나 10대이상 기다려야 된다는 것을 점치기는 어렵다.
11대 발복지라는 조모 묘는 연구감인데(노인이 거짓 말한다고 보이지 않았다)비밀이라고 하므로 묻지 않았다.
* 양택 하나로는 부족하고 아마도 음양택이 합쳐서 역량을 발휘하였으리라. 평촌에서 출생한 송시장 동기라하여도 모두 등과하는 것도 아니고 생가지가 그 동네에서 제일 좋은 곳도 아니고 보면 연이 맞아야 발복을 받는 것이다.
* 이러한 기혈은 발복이 일회성이다. 고흥 과역리 일이승결의 대사당도형은 6백년후 발복지라 하고, 5자 등과형으로 장흥 봉미산 오공형(일이승결)이 있고, 경남 의령 오방리335에 4자 등과(사법2 외무1 행정1)한 양택(형님 집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4남을 출산), 노사 기정진의 조부 묘인 순창 황앵탁목등의 기혈이 있으나, 기혈은 대개 한번 크게 발복하고 소진된다. 몇 대에 걸쳐 4자 등과가 계속되면 세상은 불공평하여 천지운행에 반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장례후 3년이 되면 발복이 없는지 애태우는 세상인데 3백년 뒤의 발복을 믿고 비용을 투자하겠는가? 3백년 동안 묘를 관리할 후손들이 있겠는가? 끝으로 그 묘를 잡아준 지관은 어떤 실력자일가. 풍수신안으로는 부족하고 영기가 있는 사람이 아닐가. (2022.11)
* 평촌국세--
첫댓글 스토리 잘 봤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