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지상 창작 강좌>
이 지 엽
현대시조의 올바른 창작 방법
(이 글은 금호문화에 연재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1. 들어가면서
현대시조에 대한 창작이론은 아직까지 이렇다할 단행본 하나가 없는 실정이다.
현대시조의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요소는 첫째, 형식이요 둘째, 내용이다. 무척이나 간단해 보이지만 어느 하나고 만만하지가 않다. 이 '현대시조 지상 창작 강좌'는 처음 현대시조를 창작하려는 이들과 이에 정진하고 있는 젊은 문학도들에게 필자가 평소 생각하고 있는 현대시조 창작 원리를 나름대로 담아보고자 한다.
2.잘못된 기본형
현대시조를 창작하려는 이들에게 제일 먼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형식이다. 시조형은 일반적으로 자수율에 의해 규정되어 '3장 45자 내외'라 하여 초장 3'4'4(4)'4 중장 3'4'3(4)'4 종장 3'5'4'3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시조의 일반형으로 인식되어온 이러한 자수 개념의 논리는 수정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형식장치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고시조의 수천 편의 작품을 통해 이 일반형에 맞는 작품은 4∼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다른 기준에 의해 그 형식장치를 규명해야할텐데 이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풀어놓은 논저가 없다. 결과적으로 기성 시조시인들도 불편하지만 배웠던 방식대로 이 자수율에 의한 창작을 후학들에게 지도하게 되고, 당연한 결과로서 나타난 작품들의 형식 장치는 거의 이를 따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짜맞추기식의 부자연스러움과 나무토막을 툭툭 분질러놓은 듯한 단절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고시조에서보다 더 협소하고 좁은 틀로 옮겨왔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이것은 분명 바르지 못한 흐름이다. 혹자는 말한다. 차라리 잘못 규정되었다할지라도 이 자수율에 의해 다같이 창작되어지면 국민시조의 한 장르로 모두 공유하게 될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이는 아주 근시안적인 태도다. 시조가 기계적인 자수로만 규정된다면 앞으로도 시조는 영원히 주도적인 장르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장르의 발전적인 흐름에 기대어 보았을 때, 거기에 담아야할 내용은 많은데 과거에도 그러하지 않았던 더 협소하고 기계적인 틀을 아무 근거 없이 고집한다는 것은 분명 시대에 역행함은 물론 잘못되어진 것이다. 더욱이 위의 기본형 아닌 기본형을 설정해놓고 여기에서 한 두자리라도 벗어나면 탈격이니 파격이니를 운위하는 한심한 작태는 시조단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독소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현대시조의 기본틀은 어떻게 제시되는 것이 옳을까. 여기에는 보다 면밀한 분석과 검토가 뒤따라야한다
3.시조의 기초단위 - 음보(音步)
하나의 장르로서의 요건을 따질 때 우리는 대개 담당층과 세계관 형식의 세가지 요소에 주목한다. 현대시조는 그것이 비록 자연발생적은 아니라 할지라도 고시조와는 다른 담당층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점은 '내용'을 살피는 부분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려고 한다. 문제는 형식이 어떠하냐 하는 것인데 적어도 고시조의 형식장치와 무관하게 오늘날의 현대시조를 논의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해서 고시조의 형식장치를 그대로 옮겨와서 재생시키고자 함도 아니다. 형식장치를 고려할 때 고시조와 오늘의 현대시조 사이에 가장 중요한 변별점은 전자가 노래를 전제했다는 점이고 후자는 온전한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되어야한다. 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고시조에서 현대시조에 이르기까지 몇 작품을 인용한다.
①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 니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② 이마에 마구 짓이기던 그 독한 꽃물도
몸에 둘렀던 그 짙고 어두운 그늘도
이제는 다 벗을 수밖에....... 벗을 수밖에......
채어올린 물고기 그 살비린 숨가쁨
낱낱이 비눌쳐 낸 지난 뜨락에 나서면
보아라 혼령마저 적시는 이 純金의 소나기
③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①은 黃眞伊 (1511 ~ 1541)의 작품이고, ②는 김상옥의 <가을 뜨락에 서서> 초반부, ③은 이우걸의 <팽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다 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난 시조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①에서는 봄밤이 짧은 외부 세계와 서정자아의 갈등이 同化(assimilation)의 기법에 의해 그려지고 있고, ②는 시적대상에 대한 서정자아의 뼈아픔 인식과 회귀하는 반성적 자기 성찰이, ③은 시적대상(팽이)에 자아를 투사(projection)하여 그 의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 작품들의 모두를 포괄하는 형식장치는 무엇인가. 통념상 알고있는 자수의 개념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①을 다음과 같이 표시해보자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春風/ 니물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이 작품을 율독(律讀)해 보면 /에서는 짧은 휴지(休止)가, //에서는 중간 휴지가, ///에서는 긴 휴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문법의 가장 큰 단위는 문장 (sentence)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음절이 모여서 낱말이 되고 낱말은 어절이, 어절은 문절이, 문절은 문장이 된다. 시로 보면 음절 - 음보- 句 - 행 - 연- 한 편의 시로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 ①의 작품을 분석해보면 /은 음보에, //는 句에 ///은 행에 연관되어 진다. 다시 말해 시조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는 음보임을 알 수 있다.
음보(音步)! 그러나 우리 시에 있어 음보는 영시의 음보(foot)와는 전혀 다른 개념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영시에서의 음보는 한 행에서 반복되는 운율 단위를 만드는 하나의 강한 강세와 그와 연합되는 하나 또는 몇 개의 약한 강세들의 조합이지만 우리 시에 있어 음보는 롯크(lotz)가 분류한 음수율, 고저율, 강약률, 장단율의 어느 것과도 다른 시간적 등장성(時間的 等長性)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적 등장성이란 용어가 다소 생소할 것이다. 좀 더 쉬운 얘기로 해보자.
음보(音步)는 쉽게 말하자면 음의 걸음걸이이다. 사람의 걸음걸이를 생각해보자 평상시 걸어다닐 때의 걸음걸이는 그 보폭이 대개 비슷비슷하다. 이 걸음에 시간의 개념을 얹었다고 생각해보자. 일정시간, 그것은 불과 1~2초 몇 초에 불과 하겠지만 일정 거리를 걷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 걸음걸이가 대개 몇 음절로 될까? 그러나 이것은 일정하지가 않다. 이 말은 아주 불규칙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앞서서 잘못된 기본형에서 보듯 3'4'3(4)'4와 같이 기계적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말의 단어는 대개 2음절과 3음절로 된 것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조사나 어미가 붙어 실제는 3음절 내지 4음절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음절수가 늘어나 6, 7, 8음절이 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렇게 늘어날 경우라도 얼마까지 늘어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여기에 제한이 가해지는 것이 바로 시간성이다. 앞에서 말한 시간적 등장성이란 바로 이를 얘기하는 것이다. 율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시 말해 한 걸음을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이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범주까지 가능한 것이다.
인용시 ①을 환기해보자.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을 율독하는데 있어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으로 하지않고 '오신날 밤이여든'을 한 보폭으로 율독함이 자연스러움을 상기해보자 마찬가지로 다음의 작품들도
④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홍랑]
⑤ 둥 둥 둥/ 그 큰북소리// 물안개 속에/ 풀어놓고///
-윤금초의 [주몽의 하늘]에서
⑥ 아 바람,/ 미처 못다 부른// <청보리의/ 노래>여///
-박시교의 [바람집·1]에서
④에서 '새잎 곧 나거든', ⑤에서 '물안개 속에', ⑥에서 '미처 못다 부른', 은 다 한 보폭 안에서 자연스레 율독이 된다.
②와 ③의 작품에서도 '다 벗을 수밖에', '혼령마저 적시는', '쳐라,' '가혹한 매여'와 같이 자수와는 전혀 상관없이 한 보폭으로 읽혀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에 평시조의 초장에 "그대여, 그대라는 바람은 곧은 금긋는 외로운 뼈소리" 라는 구절이 있었을 때 이 경우도 "그대여,/ 그대라는 바람은// 곧은 금 긋는/ 외로운 뼈소리"로 하여 아무렇지 않게 넘길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를 율독 해보면 정상적인 걸음으로는 옮겨놓기 벅차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대라는 바람은'이나 '외로운/ 뼈소리'가 모두다 각각 두 음보로 나누어지는 것이 가능하고 더욱이 이들이 한 장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이러한 경우를 피하는 것이 보다 좋은 시조를 쓰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4.작품의 수정
지금까지 얘기해온 바를 토대로 다음의 작품을 추고해 보자
⑦
비온 뒤 하늘은 축축한 화선지에
파아란 물감을 찍어놓은
방금 세수한 아이의 마알간 얼굴
달도 가버린 새벽이면
이슬같은 눈물을
풀잎으로 씻어낸다
어둠이 밀려와 고요만이 밀려오면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또 하나의 세상에 귀를 기울인다.
⑧ 술이 좋아 한 잔/ 친구 좋아 한잔/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우리 집 그이/ 아침엔 얼굴이 부어 두 얼굴의 사나이
다시는 입 안대겠다 헛된 맹세/ 쓴 맛 술이 무엇이 좋아 또 다시 한잔 술/이러단 그이는 날 두고 황천길
보고픔과 외로움을 나는 짊어지고/
그 긴 세월을 나홀로 어찌 보낼거나/ 근심에 오늘 밤도 해가 뜨누나
⑨ 나무며 세상바람 나들이는 즈이들이 나오고
난 들어갔네 암자까지 숨통을 틔러
갈수록 죽을 동 살 동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⑦은 이제 갓 시조 입문에 들어선 시조의 형식장치에 대해 듣기는 들었으나 아직 명확히 모르는 학생의 <동심>이란 작품이고, ⑧은 금호문화 94년 6월호에 실린 ⑨는역시 같은 잡지 95년 5월호에 실린 <선암사 맑은 물>이란 작품이다
우선 ⑦의 작품은 지금까지 설명한 형식장치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그러나 시조에 이제 입문하려는 사람에게는 아주 흔한 일이므로 작품의 의도를 크게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시조 작품으로 만들어 보자.
의미상으로 보아 이 작품은 1연과 2, 3연을 나누어 두수의 연시조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리라 본다.
우선 ⑦의 1연을 보격으로 나누어보면 중장과 종장에서 각각 한 보격이 모자람을 느끼게 된다. 다시말해 '찍어놓은'의 앞의 뒤에 적합한 어휘를 넣어야 하고, '마알간 얼굴'을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두 보격으로 맞추어주어야 한다. 한 번 생각해보자. 2연은 초장으로 3연 첫 행은 중장으로 둘째 셋째 행은 종장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리라 본다. 보격이 많이 늘어나 있으므로 대폭적으로 간결하게 다듬어야 한다. 위와 같은 단계를 밟아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다.
비온 뒤 하늘은 축축한 화선지에
파아란 물감을 꾹꾹 찍어놓은
이제 막 세수한 아이의 말갛고 고운 얼굴
달도 가버린 새벽마다
풀잎으로 눈물 씻고
어둠이 다시 밀려와 고요만이 출렁이면
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좋은 작품이라 하기엔 문제가 있지만 일단은 시조의 형식 장치를 갖추게 되었다.
⑧의 작품 역시 첫 수에서 초장의 '한 잔'의 연 첩이 불규칙한 음보를 유발하고 있고, 첫 수의 중장, 둘째 수의 초장에서는 한 보격이 셋째 수의 초장과 중장의 불규칙한 음보, 둘째 수와 셋째 수의 종장의 미적 장치 결여가 지적된다. (여기서 불규칙한 음보란 시간의 등장성 개념에서 볼 때 율독의 시간이 다른 걸음걸이에 비해 짧게되는 이를테면 '나는'이나 '어찌'에서 보게되는 불균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적된 내용을 보완하여 일단 시조의 형식을 갖추어 보자.
술이 좋아 딱 한 잔/ 친구 좋아 또 한 잔 /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우리 집 큰 철부지/ 아침엔 얼굴이 부어 두 얼굴의 사나이
다시는 입 안대겠다. 헛된 맹세 남발하고/ 쓴 맛 술이 무엇이 좋아 또 다시 한잔 술/ 이러다 그이는 날 두고 영영 갈라 황천길
보고픔과 외로움을 나는 애써 짊어지고/ 그 긴긴 세월 강을 어찌 혼자 건널거나/ 이 밤도 잠 못 이루며 대문 밖에 서성이네.
작품의 내용적인 면은 무시하고 우선 형식적인 면을 갖추는 것에 유의해 주기 바란다. ⑨의 작품은 초장에서 한 보격이 늘어나고 중장에서는 외려 '틔러' 에서 는 음보가 불규칙적임을 발견된다. 이를 유념하여 초장과 중장을 고쳐보면 '나무며 세상바람 즈이들은 죄 나오고/난 들어갔네 암자까지 환한 물살 만나러' 정도가 어떨까. 종장도 고칠 필요가 있다.
'죽을 동 살 동' 과 '도란도란 얘기' 꽃은 이미지 전개상 부자연스러우므로 한 번 고쳐보기 바란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조 창작의 가장 기초단위는 음보(音步) 임을 살폈고, 이는 시간적 등장성의 성질을 갖고 있으며, 한 음보에서 허용되는 범주는 자연스러운 시간의 보폭 내에서 허용됨을 보았다. 이것을 토대로 보면 시조의 최소 형식 장치는 三章을 근간으로한(三章에 대해서는 종장의 미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곳에서 함께 논하도록 하겠다.), 각 장이 네 마디의 음보를 지닌 총 12마디의 고유한 형식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정리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의 짧은 휴지(休止) 곧 음보는 //의중간 휴지, 곧 句와는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 이는 함께 고쳐본 작품 ⑦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고쳐진 작품 ⑦의 첫 수를 주목해보고 이 작품이 왜 시조의 작품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5.아버지는 일생을 먹을 갈듯 사셨다.
비 온 뒤 하늘은 축축한 화선지 위에
파아란 물감을 꾹꾹 찍어 놓은
이제 막 세수한 아이의 말갛고 고운 얼굴
이 작품을 주목해서 음보와 句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나 살피고, 어떠한 문제를 지니고 있나를 같이 고민해 보자고 하였다. 시조의 초장. 중장. 종장은 각각 율독을 해보면 짧은 휴지(休止), 중간 휴지, 긴 휴지를 갖는다. 부언해 보면
비온 뒤 / 하늘은 // 축축한 / 화선지 위에 ///
/ 은 짧은 휴지, // 은 중간 휴지, /// 은 긴 휴지의 형식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대개 각 장이 독립적 성격을 갖고 있어 긴 휴지에서 말의 한 매듭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점에 착안해 보면 위의 인용작품에서 초장의 첫 구(비온 뒤 하늘은)는 초장의 긴 휴지에서 맺어지지 않고 중장도 건너 뛰어 종장의 마지막 구에서 맺어지고 있는 것이다(비온 뒤 하늘=아이의 얼굴임에 유의해 보라).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긴 휴지를 무시해 버림으로써 축축 늘어진 호흡적 율격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시인의 문체와 관련된 문제여서 때로 각 장의 긴 휴지까지 무시하고 건너 뛰어 시조의 형식을 더 다채롭고 자유롭게 활용하는 시인도 있긴 하겠지만 필자는 아직까지 이 경지에 오른 시조시인을 본 적이 없다. 습작의 초보 단계에서는 되도록이면 중간 휴지(句)와 긴 휴지(행.章)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나중에는 句와 章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구사하는 경지의 초석이 됨을 명심 해 두자.
다음의 작품을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자.
⑩ 한들거리는 들꽃과 억새와 갈대들
장불재는 험하지 않으며 오르는
나에게 위안과 기운을 주는 산
이 작품은 이제 시조를 쓰기 시작한 학생의 「무등산에 올라」라는 연시조 중 한 수인데 중장과 종장에서 휴지부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장불재'는 '산'에 걸리어 어법상으로도 문제가 있다. 휴지부 중 중간 휴지가 놓일 '험하지'는 문맥상 그 다음의 '않으며' 와 띄어 놓으면 안되므로 짧은 휴지가 들어갈 간극조차 빠듯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험하지 않으며'를 한 걸음으로 바꾸든지 다른 어휘로 대체하여 상을 새롭게 잡아주어야 한다. 한 걸음으로 바꿀 경우 축약에서 오는 한 걸음 부족 분을 '오르는' 앞쪽에 배치하여 고쳐 보면
장불재는 험하지 않아 쉬엄쉬엄 오르는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종장의 '산'을 '고개'로 고치면 된다. 이렇게 고쳐놓고 보아도 문제는 역시 남아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6.평이한 걸음걸이에 탄력을 주는 법
시조의 초.중.종장이 각각 네 걸음씩 총 열 두 걸음의 형식장치를 가지고 있음은 이제 이해가 됐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평이한 걸음걸이가 계속되는 것은 지루하고 답답하기 마련이다. 시조의 걸음걸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평이한 걸음걸이에 어떠한 탄력을 어떠한 부위에서 줄 것인가.
⑪ 언제나 흰 두루막 해서체로 꼿꼿하신
아버지는 일생을 먹을 갈 듯 사셨다.
사랑채 큰 그림자가 빈 뜰 가득 젖는 밤
⑫ 청진동 막소주집
자네 몫의 빈 잔엔
철철 넘치게 가득가득 채워지는 한 잔의 바람
아 바람. 미처 못다 부른「청보리의 노래」여
⑪은 유재영 시인의 「생가의 밤」중 둘째 수이고 ⑫는 박시교 시인의「바람집 1」둘째 수이다.
위의 작품을 율독하며 걸음걸이를 실제 내딛어 보라. 처음부터 끝까지 평이한 걸음걸이인가.
실제로 한 걸음걸이에서 걸리는 시간이나 보폭이 달라진 것은 아닌데 - 이것은 전 호에서 말한 '시간적 등장성(時間的 等長性)'의 개념이다 - 그 걸음걸이에 유달리 힘이 주어지는 부분과 그 힘이 풀리는 부분이 있다.
⑪에서는 '사랑채 큰 그림자가'가 이에 해당되고 ⑫에서는 '아 바람, 미처 못다 부른'이 이에 해당된다. 자수 개념으로 보더라도 종장의 첫 걸음은 석자로 축약되어 있고 두 번째 걸음은 다섯자 이상으로 늘어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똑같은 걸음걸이로 걸어가되 종장 첫걸음은 석자로 줄어든 그 공간을 힘을 주어 그 간극을 메꾸고, 종장 두 번째 걸음은 다섯자 이상이므로 힘을 빼도 그 공간이 충분히 차게 된다고 말이다.
평이한 걸음걸이의 계속적인 내딛음에서 오는 따분함과 지리함에 변화를 주어 일시의 조임과 늘어짐. 순간의 긴장과 이완을 주는 종장의 형식장치야 말로 시조의 맛과 멋을 더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⑩의 작품은 문제가 있다. 종장에서의 긴장과 이완의 묘미가 거의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장의 첫 걸음과 둘째 걸음은 '나에게'와 '위안과'라고 볼 수 있는데, 전자는 자수 석 자는 맞지만 풀려 있으며 후자는 다섯 자 이상의 늘어짐이라 보기 힘들다. 둘째 걸음을 늘려잡아 '위안과 기운을'까지 포함시킬 경우도 다섯자 이상의 조건에는 합당할지 모르나 완전히 풀린 느낌이라 한 걸음걸이로는 적당치가 못할 뿐더러 한 걸음이 부족하게 되므로 이 부분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
이런 여러 요인을 검토해 보면 ⑩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수정을 해야 할 필요가 있게 된다. 여기서는 ⑩의 초장과 중장을 바꾸어 종장의 이완성을 방지하고(여기서의 이완성이란 중장 첫 걸음의 '장불재'가 걸리는 부분이 종장 마지막 걸음걸 이 '주는 고개'에 해당되므로 종장 처리를 아무리 잘하여도 수식어로 연첩되어 늘어나게 되는 언어 구조와 관련된 것이다) 종장을 초.중장의 주된 시적 대상인 '장불재'와 이미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수정을 가하기로 하겠다.
다음은 이러한 작시 의도에 맞춰 수정한 작품이다. ⑩의 작품과 한번 비교해 보기 바란다.
구름따라 쉬엄 쉬엄
장불재에 오르면
한들거리는 들꽃과
몸 부비는 억새들
땀방울 훔치는 손등엔
힘줄이 마주 선다.
7.한 여자가 지나간다 바람같이 바람같이
지금까지 우리는 시조의 형식 장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①시조는 초.중.종장의 3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②각 장은 걸리는 시간이 비슷한(時間的 等長性을 지닌) 걸음걸이 넷이 모여 이루어지며 ③종장의 첫 걸음은 긴장과 조임의 석자, 둘째 걸음은 이완과 풀림의 다섯자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형식장치의 산물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근간으로 보면 시조에서의 행의 구분은 어떻게 하라는 철칙이 없는 셈이다. 걸음걸이나 호흡의 가장 작은 단위인 짧은 휴지부에서 끊어 한 걸음걸이를 1행으로 잡을 경우 12행의 작품이 될 것이고, 중간 휴지의 두 걸음걸이를 1행으로 처리할 경우 6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12행, 6행 등만이 절대적인 행 구분 방식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때에 따라서 시조 한 수는 1행이나 2행, 3행, 4행, 5행은 물론 십 수행까지도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⑬ 질주한다. 탄탄한 어망 속의 새 울음들이...... 찔려서 아픈 기억마다 살비늘로 일렁이던, 그래 도 포선을 그리는 아아 어린 날 팔매 끝을
⑭ 뜰귀에 풍뎅이 한마리 죽어 넘어져 있다.
다리 오그리고
목 비틀린 채.
그 위로 마른번개 치고
짧은 낮비 지나가고
⑮ 寒天에 / 칼 한 자루 / 거꾸로 박혀 있다 //
어느 일순이면 / 떨어져 뇌수에 박힐 //
눈부신 / 단조를 꿈꾸는 / 저 殺意의 충만! //
한 여자가 지나간다 / 바람같이 / 바람같이 /
쓸어내면 폴폴거리며 / 먼지로 내려앉을 여자 /
온몸에 / 실리는 강물 / 회빛 얼굴 / 쾡한 / 눈빛
우선 내용을 접어두고 시조의 다양한 연 가름과 행 가름을 보기 위해 몇 작품을 인용해 보았다. ⑬과 은 필자의「일어서는 바다·2」의 첫 수와「北岳」의 작품이고 ⑭와 ⑮는 박기섭시인의「풍뎅이의 죽음」 첫 수와「寒天」이란 작품이다. ⑬은 1행으로, ⑭는 2연 5행으로, ⑮는 3연 8행으로 은 10행으로 짜여져 있다.
새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시에 있어서 연 가름과 행 가름은 자기 멋대로의 임의적인 것이거나 사치스런 것이어서는 안되리라. 마땅히 한 행으로 잡아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하며 연가름을 할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⑬에서는 탄력적 이미지의 가속력을 위한 1행 처리가 ⑭에서는 시적 대상과 공간의 차별화에 의한 연 가름이 ⑮에서는 점층적 효과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에서는 스치듯 지나가는 한 여자를 원근법에서 그려내고 거기에서 느끼는 죽음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각각 연 가름과 행 가름을 하고 있는 것이다.
8.1행에서 십수 행까지 자유롭게 써보자
시조가 지녀야할 형식장치가 3장 6구 열두 걸음이라면 이러한 형식장치를 아울러 고정된 3행이나 6행으로 제어하는 것은 가뜩이나 꼭 막힌 공간을 더욱 옥죄임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현대인의 사고와 시적 대상은 보다 더 복잡 미묘하게 심층적으로 파고드는데 유독 3행이나 6행으로 고집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더러 시조 작품을 심사할 때 필자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3행이나 6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만큼 시조의 걸음걸이 - 가락밟기에 자신이 없다는 뜻일 게다. 답답한 심경을 표현하는데는 쉼표 마침표 없이 띄어 쓰지 아니고 1행처리가 가능할 수도 있으며,
친구의흰살결그풋푸한향내맡으며나는울수도없
었다부끄러워라부끄러워라저문들두둥둥북소리
낮게낮게들리던그날 -「가로등 산책.3」에서
느릿하고 적료한 느낌을 표현하거나 강조하기 위해서는 한 글자도 과감히 한 행으로 처리하는, 그래서 작은 그릇, 제한된 틀이지만 최대한의 사유를 담아낸다면 훨씬 더 좋은 시조 작품에 접근할 있으리라 본다.
가고 없는 만이 / 눈뜨는 / 山에 / 들에 / 허
전한 공복 몇 개 / 휘파람으로 날리며 / 맨발로 /
달리는 六月 / 떠도는 / 넋 / 아득한 / 江
-「六月 이미지 ② 空」에서
이 작품의 종장은 무려 6행으로 처리되고 있는데 이 작품의 종장을 "맨발로 달리는 六月 떠도는 넋 아득한 江"으로 1행 처리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의미의 반감은 물론이려니와 전혀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작품 내용의 전개에 따라 1행으로도 써보고 십 수행까지 늘려서도 써보자. 새로운 것에의 도전과 시도는 눈에 띄게 당신의 작품을 다양한 세계로 끌어올릴 것이다.
9.노래의 마지막 정점
지금까지 현대시조의 형식 장치에 대해 살폈다. 외형상으로만 본다면 시행(詩行)이 십수 행까지도 늘어나므로 오늘날의 시조는 언뜻 자유시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일정한 보폭의 걸음걸이가 있으며 긴장과 풀림의 특수한 미학적 장치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를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 ○// ○/ ○///
○/ ○// ○/ ○///
○/ ○// ○/ ○///
↓ ↓
(긴장: 3자) (풀림 5자 이상)
현대시조의 형식장치가 고시조의 형태를 기초로 하여 위와 같은 모델이 제시되었다 치더라도 고시조와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종장의 첫 걸음에 있는데 고시조에서는 이 부분이 현대시조의 중요한 미학적 측면인 '긴장'과는 달리 가장 완만하고 여유있는 대목이었다. 왜냐하면 고시조는 창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가곡창 창법에 의하면 초장은 59박, 중장은 75박이며 종장 첫걸음만 27박의 길이로 유장하게 끌었다.)
그러나 창의 개념이 문학으로 전이되는 개화기 시조를 거쳐 오늘날의 현대시조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문학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이다.
10.뚝배기 장맛과 부대찌개의 맛
현대시조가 고시조의 형식장치를 계승하여 독보적인 미의식의 그릇을 창출해 냈다면 거기에 담은 내용물 또한 달라져야 함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아직도 기성 시조시인의 많은 수는 '뚝배기에 장맛'을 고집한다. 형식도 자수의 개념으로 보아 3 . 4 . 3 . 4의 기계적 율격으로 맞추려고 하고 거기에 담아내는 내용도 천편일률적으로 '된장국 맛'과 '장맛'을 고집한다. 그러나 현대는 복잡 미묘한 세계여서 '카레'나 '오무라이스'도 있을 수 있으며 '짬뽕'과 '부대찌개'도 먹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복잡 미묘한 사고가 가미되지 않고 생활 단면의 어떠한 것들까지도 다 흡수하지 않는다면 현대시조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다.
아해야 그믈 내여 어선(漁船)에 시러 노코
덜괸 술 막걸너 주준(酒樽)에 다마두고
어즈버 배 아직 노치 마라 달 기다려 가리라
도심에 높이 서는 신축건물 뼈대 위로
혈루병 앓는 여자가 공사장을 넘보다가
이래 전 죽은 얼굴로 기중기에 걸려 있다.
는 청구영언 등에 전하는 작자미상의 고시조이고 은 정해송 시인의 <기중기에 걸린 달> 이란 현대시조이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현대시조의 내용이 과거의 것과 얼마나 다른 세계관을 담고 있는 지는 극명하게 차이를 드러낸다. 의 작품은 김대행 교수도 지적했다시피 '무위자연으로서의 자연관'에 기초한 작품이다. 인공이 가해지지 않는 천연 그대로의 상태나 사물인 것으로 자연을 보는 관점이 극대화되면서 자연에 몰입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시조라고 해서 현실에 대한 반영이 도외시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현실을 보는 시각의 문제로 파고들었을 때 비판하고 풍자하는 '상황으로서의 현실'보다는 '당위론적, 운명론적 현실'이 더 지배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사회가 그러했고 고시조의 주 담당층인 사대부의 사상적인 기반 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갖는 한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는 현대를 통괄할 만한 사상의 지배원리도 없고 담당층 또한 어떤 특수한 계층으로 고정되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용된 작품 에서 보듯 도시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현대인의 고독이 전혀 동질감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달'과 '기중기'의 부조화를 통해서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삭의 단잠을 털고
신새벽 헤치며 간다.
맑은 입김 호호 부는
한 소년의 긴 외침 뒤에
던져진 작은 세상이 막 탯줄을 끊고 있다.
덜컹거리는 꿈의 바닥
유리창을 닦는다.
방황과 그 많은 시작
호호 불며
손이 시리다.
기우는 복도의 저쪽
불길한 예감 하나.
의 작품은 '95년 5월호 [금호문화]에 소개된 손상철 씨의 <새벽신문>이라는 작품이고, 는 필자의 <겨울일기> 중 '창을 닦으며'라는 작품이다. 일부러 이 작품들을 인용하는 이유는 현대시조의 내용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현대시조에 관한 한 '세계에 대한 철저한 인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위의 인용 작품들은 현실에 대한 냉엄한 바라보기 이거나 생활의 경험 에 기초한 것들이다. 관념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세계에 의존하지 말자. 모방론적이거나, 역사주의 입장에 선 편협한 시각이라고 비난하여도 좋은 시가 그러하듯 좋은 시조의 요건은 분명 현실의 바탕 위에 기초해야 한다. 오늘의 시조단은 매너리즘과 음풍농월식 자기 만족과 저 혼자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짐 지고 가는 듯한 자기 도취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 여기'의 것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접근하고 작품화 시켜보자. 현대시조를 쓰려는 이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다.
11.촘촘하고 빠른 사설시조의 형식
현대시조 창작의 가장 중심적인 두 기둥- 형식장치와 내용에 관해 이제까지 살펴보았다.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에 빗대어 보았지만 실상 이 공간은 자유시에 비하면 너무 좁다. 담을 내용은 많은데 공간이 좁으면 숨이 막힌다. 이 숨막히는 공간을 열어보자는 시도- 다시 말해 사설시조의 창작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창작방법은 누구 하나 얘기하려 들지 않는다. 기성 시조시인들 누구를 붙잡고 얘기해도 막연한 얘기이거나 아예 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습작인들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쓰면서도 이렇게 쓰는 것이 맞는 것인지 ....... 이 점은 기성 시조시인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필자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사설시조 창작방법에 관해 그 요점만을 정리해 보겠다.
평시조가 형식장치가 열두 마디(각 장 네 마디)임은 이미 밝혔다. 사설시조 역시 그 기본형은 열두 마디라고 생각된다. 다만 평시조에서는 한마디가 한 걸음이지만 사설시조에서는 한 마디가 두 걸음도 되고 네 걸음으로 그 이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똑같이 열두 마디가 된다는 논리적 근거는 창으로 연행될 때 그 노래 길이가 거의 같았다는 점에서이다. 평시조는 그러므로 완만한 곡조에 실었던 것이고 사설시조는 한 마디에 여러 걸음이 들어갈 때 촘촘하여 급박하면서도 빠른 곡조에 담아냈음은 자명한 이치이리라. 이를 실제 작품을 통해 살펴보자.
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험우희 치다라 안자
건넌山 바라보니 白松骨이 떠잇거늘 가슴이 금즉하여 풀덕뛰여 내닷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날낸 낼싀망졍 에헐질뻔 하괘라.
(두험 : 두엄, 치다라 : 위로 향하여 달려. 白松骨 : 흰 송골매. 금즉하여 : 끔찍해서,
쟛바지거고 : 자빠졌구나. 모쳐라:아차, 낼싀망졍:나라고 할지라도, 에헐질 뻔:어혈할 뻔)
이를 마디별로 나누어 보자.
1)두터비 2)파리를 물고 3)두험우희 4)치다라 안자 5)것넌山 바라보니 白松骨이 떠잇거늘 6)가슴이 금즉하여 7)풀덕뛰여 내닷다가 8)두험아래 쟛바지거고 9)모쳐라 10)날낸 낼싀만졍 11)에헐질뻔 12)하괘라
열두 마디로 나누어지되 한 마디에 한 걸음인 것도 있고 5)와 같이 네 걸음인 경우도 있게 된다. 위의 작품은 중장만 늘어난 경우지만 좀 더 복잡한 경우는 각 장이 다 늘어난 경우도 있다.
바독이 검동이 청삽사리(淸揷沙里)중에 조 노랑암캐갓치 얄믭고 잣믜오랴
믜온任 오게되면 꼬리를 회회치며 반겨 내닷고
고운任 오게되면 두발을 벗띄듸고 코쌀을 찡그리며
무르락 나오락 캉캉 즛는 요 노랑 암캐
잇틋날 門 밧긔 개 사옵새 웨는 장사 가거드란 찬찬 동혀 내야 쥬리라.
이를 마디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게 된다.
1)바독이 검동이 청삽사리 중에 2)조노랑 암캐갓치 3)얄밉고 4)잣믜오랴 5)믜온任 오게되면 꼬리를 회회치며 반겨 내닷고 6)고운任 오게되면 두발로 벗띄듸고 코쌀을 찡그리며
7)무르락 나오락 캉캉 즛는 8)요 노랑 암캐 9)잇틋날 10)門밧긔 개 사옵새 웨는 장사 가거드란 11)찬찬 동혀 12)내야 주리라
역시 열두 마디로 나누어짐이 가능하다. 현대의 사설시조 한 편을 인용해 본다. 바로 마디를 나누어 보겠다.
1)삽사리
2)선하품에
3)늘어진
4)유월 한낮
5)뒷짐진 오리새끼 장죽물고 거닐다가
6)사랑 샌님 큰 기침에
7)기절초풍 간 떨어져
8)고꾸라지고 엎어지고 천방지축 뛰는데
9)장닭은
10)고개 비틀고
11)키득키득
12)웃었다
장순하 시인의 [뜨락에서]란 작품이다. 역시 사설시조의 형식장치에 맞추어 열두 마디로 나누어지고 있음에 주목해보라.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초장·중장·종장 중에서 늘어날 경우 어떤 규칙을 갖고 있는가 아니라면 아무런 제약 없이 늘어남이 가능한가. 여기에는 일정한 규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의 인용시조를 열두 마디로 나눈 것 중 5),6),7),8)의 마디에서 걸음이 늘어났는데 그 걸음 수는 4 - 2 - 2 - 4가 되었다.
의 인용시조를 보면 그 걸음 수는 5)∼8)에서 늘어났는데 각각 4 - 2 - 2 - 4로 늘어났다. 정리해 보면 그 걸음 수에 있어서 짝수 걸음이 되고 있음에 주목이 된다. 이는 짝수 걸음의 호흡적 율격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이를 선호한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평시조에 있어서 두 걸음 뒤에 중간휴지가 자연스레 놓임에 유의해 보라. 그러나 반드시 짝수의 걸음걸이로만 되고 있지 않음에 사설시조의 매력이 또한 있다. 의 인용 작품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12.'열거→반복→절정'의 표현기법
'사설시조'에서 '사설'은 과연 어떤 성격과 특징을 지니는가. '사설'의 어원은 '사설'(銷)과 '사셜'(辭說)로 음운변화를 일으킨 것이고, 후자는 말이나 글을 길게 늘어놓은 것이다. 아무튼 둘은 똑같이 길게 늘어놓는 공통자질을 갖고 있는데 이는 박영주 교수의 지적([판소리 '사설치레'연구]성대 박사학위 논문,1991)대로 그 속성을 '엮음'(編)으로 규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설시조에서 걸음이 늘어나는 마디의 가장 중요한 표현기법이 바로 이 '엮음'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쇠사슬같이 고리와 고리가 엇갈리게 맞물려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작정 계속적으로 이어놓는 것으로 능사가 아님은 인용한 사설시조를 통해 알 수가 있다. 늘어난 부분에 유의하여 보면 에서는 白松骨에 놀란 두터비가 놀라면서 저 혼자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는 광경이, 에서는 노랑 암캐의 얄미운 짓거리가 구체적으로, 에서는 한낮 오리새끼의 기절초풍하는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해학의 배면에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의미가 존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 시적 대상인 白松骨 혹은 샌님은 지배세력이나 위정자, 노랑 암캐는 친일파의 세력들을 상징한다고 보았을 때, 골계적인 미의식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설시조의 기저자질로 어떤 이야기나 사건이 전개되고 있는 서사성과 그것이 비교적 구체화되고 있는 사실성과 스스로 웃음 짓게 만드는 해학성과 웃음 뒤의 골계성 등을 추출해 볼 수 있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반드시 그러해야 된다는 필수적인 요건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아주 중요한 기저자질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사설시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살펴보면서 이 글을 맺도록 하겠다. 앞서 사설시조에서 걸음수가 늘어나는 곳에서는 대개 2 , 4 , 6 , 8 등의 짝수 걸음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과 의 정격인 리듬의 흐름에 비해 는 파격의 리듬일까? 아니라면 무엇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고심한 결과 필자는 다음의 잠정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과 의 짝수 걸음으로 가게 되는 경우는 대개 표현기법상 반복과 열거에 의해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리듬의 기류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는 조금 다르게 반복과 열거의 수법으로 엮어가다 한 군데 모두 몰아쳐 마치 노래의 마지막 정점에서 딱 끊어버리듯 '절정'의 표현기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두 걸음보다는 당연히 한 걸음이 더 적합할 것이다. '열거―반복―절정'은 사설시조의 가장 중요한 표현기법이라 할 수 있으며 그 묘미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금호문화에 연재되었던 것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