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머리가 되다
박기옥
30년 동안 병아리처럼 품었던 아들을 타향으로 보내는 어머니의 애틋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의 처연한 이별 장면도 여기에 비길 수 있었으랴!
무슨 큰 영화를 누리겠다고 늙으신 부모님을 뒤로하고 유지로 인식된 공무원생활을 마다하고 대구로 떠나온 지 3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나를 되돌아보니 아쉽고 씁쓰레한 미소가 입술에 번진다. 금의환향도 아니다. 떠날 올 때는 일확천금으로 벼락부자가 될 것 같은 야심과, 장밋빛 삶이 기다리기나한 듯 가슴이 부풀었는데 그러하지 못하였으니.
도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외국계 회사에 취직하였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영업을 시작하였지만, 거래처 개발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랐다.
“어서 오세요 내가 당신을 물건을 사 드릴게요.”라며 기다리는 고객이 어디 있겠는가. 사업을 벌인지 일 년도 채 못 되어 석유파동으로 말미암아 거래처가 부도를 내었다. 그 바람에 논을 팔아 장만한 밑천은 한방에 날아갔고, 겨우 극복하여 제자리에 서는가 했더니 IMF의 회오리바람은 모든 자본금을 공중분해 시켜버렸다. 의욕은 사라지고 어깨는 비 맞은 생쥐처럼 축 늘어졌다. 당장 걷어치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칠순 가까운 부모님과 시골을 등지고 도시로 나가더니 별 볼일 없구나.”라고 쑥덕일 것 같은 이웃의 이야기가 귓전을 때릴 텐데……. 나의 자존심은 이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안쓰러워하실 모습이 눈에 밟혀 배수진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웠던 체험은 나에게는 소중한 무형의 재산이다.
대구의 30년 생활은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술이 엄청나게 늘었다. 술집골목으로 유명한 대구 삼덕동 술집을 안방 드나들 듯하였다. 퇴근하면 집보다는 술집을 먼저 찾았고, 사업을 핑계로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거나해지면 간덩이가 커져 끝장을 봐야 했으니까. 그 영향인지 몰라도 나의 간은 약간 부어 있고 핏속에 기름기도 더덕더덕하다는 의사의 진단은 자업자득이다. 주머니도 많이 축냈으리라.
“당신이 마신 술은 자그마한 저수지를 채웠을 것이고 요량만 했더라면 아파트 몇 채를 사고도 남았을 것이다.”라는 아내의 긁어대는 바가지에는 할 말이 없다. 역마살이 끼였다는 핀잔에도 부정할 수 없다. 못할 짓을 많이 하였는데 알고도 모르는 채 눈감아준 아내가 대견하고 고맙다.
우리나라 이름난 산은 거의 올랐고, 테니스 원정도 무던히도 다녔다. 바둑은 도낏자루 섞는 줄 몰랐다. 명예와 이익이 관련된 사회단체에도 참여하면서 남들의 얄팍한 속은 잘도 들여다보면서 나의 추한 면은 연막을 쳤으니…….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나의 눈에 들보는 왜 보지 못하느냐?’라는 성서의 말씀이 무색하다. 도시의 생활 중에 행운은 수필 배우기였다. 그 순간만큼은 정서가 순화되고 혼탁한 영혼이 맑아짐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나이를 먹으면 시골로 가야지.’라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막상 장롱과 나의 분신들을 옮기려니 까닭 모를 서운함이 콧잔등에 시큰하다. 한창 일할 나이에 떠났다가 용도폐기 시점에서 고향을 찾으니 묵묵히 고향을 지키는 분들에게 양심이 찔려온다. 탄력을 잃어가는 살가죽은 밀물처럼 밀려오긴 하였어도 썰물 될 줄은 모른다. 얼기설기 날을 세운 뼈마디 사이로 정맥이 굵게 흐르니 그 기력으로 내가 할일 남아 있을지.
30개 성상, 강산이 3번이나 변하였다. 흙먼지를 꼬리에 문 버스는 하루에 한 번만 왕복하던 그 길은 4차선 국도 위에 질주하는 차량으로 옛날의 정서가 사라졌다. 솔방울 따고 토끼 사냥하던 무학산, 그 허리는 포항 간 고속도로가 두 동강을 내어버려 사색의 심연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들어선 양옥은 둥근 박을 얹은 초가지붕의 낭만을 앗아간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를 지켜주는 팔공산 갓바위와, 나래 펴 감싸는 무학산이 있음에 안온하고 시원하게 뚫린 출퇴근길은 나를 부드럽게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도 죽어서는 머리를 고향으로 둔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헌 집을 대충 손을 보았다.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 自遠方來不亦樂乎 친구가 있어 멀리서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이 구절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삶을 살고 싶다. 따뜻한 차 한 잔, 텁텁한 막걸리 투발 앞에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워내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겠나?
첫댓글 선배님의,추억이,덤뿍묻어나는것같습니다,이제,편히,쉴나이도,되어가는가봅니다,,,,,
경인새해는 동생도 건강하게. 하는일마다 잘 되도록 빌게^^
고문님 이사를 하셨나봐요... 겨울이라 추운날 고생하셨겠네요..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고향의 품에서 더욱 멋진 소설 쓰시고 저희같이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집들이 꼭 하셔야 해요.. 핑계삼아 놀러가고 싶어서요..
시골에 정착하였습니다. 따뜻할 때 한번 모실게요. 지난 일 년 동안 지기님 너무 고생많았습니다. 도와드리지 못해 미안하구요, 경인 새해는 열심히 참여할 수있도록 노력할게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