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설악을 보자고 나선 길이었지만 설악의 겨울은 채 깊어지지가 않았더라...
내가 아는 겨울 설악은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더라
백담계곡의 그 두꺼운 얼음은 아직은 가장자리만 살짝 얼어있고,
얼음 아래로 맑은물이 유유히 흐른다.
마치 해빙기의 이른 봄날처럼...
수렴동 대피소를 예약 하겠다는 말을 듣는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지난 시간속으로 유영을 한다.
8년전 그날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함께 머무는 그 곳.
특히나 수렴동 산장에서의 추억들은 그 무엇과도 비길 바 없는 귀한 시간들이었음이니...
토요일 아침 동서울터미널에서 9시40분 간성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2시간여만에 목적지인 용대리에 도착.
3년전 황토산장을 다녀갔을때와는 완전 새롭게 변모한 모습.
아니, 지난 여름과도 달라졌다.
시골스러움이 많이 사라지고 도회지의 가게들처럼 깔끔한 상가들이 즐비해졌다.
여행객의 마음은 언제가도 정겨운 옛것을 찾기 마련이고
생활의 터전인 사람들은 늘 새롭게 변화하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어쩌다 찾는 여행객이 터줏대감의 변화까지야 어찌 탓할 수 있으랴...
동영상 촬영을 해주었던 식당이 새롭게 변하여 주인도 바뀌었나 싶어 백담식당으로 간다.
주인은 바뀌지 않고 인테리어만 새롭게 했다고 한다. 조금은 아쉽지만 어쩌랴...
백담식당도 예전과 달라졌다, 내부 인테리어를 새롭게 했더라.
순두부 정식과 황태구이 정식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식당에서 순두부 정식을 먹으면서도 만감이 교차한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면면들...
추억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하지만, 때론 가슴 시리게 하기도 한다.
느긋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출발~ 12시40분.
겨울이라 셔틀버스는 당연히 운행 중지고...
12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오랫만에 백담사까지의 계곡길을 걸어가는 호사를 누린다.
차량이 운행될때는 걷고 싶어도 오가는 차량 때문에 되레 스트레스라 차를 타는게 편하지만
호젓한 눈길을 걷고 또 걷는 기쁨은 이 겨울이 아니고서는 누려보기 어렵다.
금. 수. 강. 원 이라는 이름의 다리 네개를 지나며
나 또한 그 옛날에 내가 들었던 것처럼 일행에게 설명을 한다.
이런저런 설악의 노래와 설악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친구를 떠올리며...
산노래도 함께 부르며 걸어야 제맛인데... 이번 일행들은 산노래를 잘 모르니 혼자 설악가를 중얼거릴밖에...
의외로 봄날처럼 따뜻한 날씨다.
여전히 그랬던듯, 길엔 눈이 녹다얼다를 반복하며 빙판길을 만들어놓고 있다.
눈길보다 더 힘겨운 빙판길을 조심스레 걸으며 우린 무슨 배짱인지 아이젠도 않고 스틱만으로 그 길을 걷는다.
1시간 반쯤 걸어 백담사에 도착한다.
잠시 들려 다리쉼을 한다.
바람에 눈이 거친 얼음이 되었다.
백담사 계곡엔 지난여름 수많은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들이 한껏 겨울을 뽐내고 있다.
자잘한 돌맹이들에 얹힌 눈이 하얀 돌무덤을 만들어 봉긋봉긋 솟아오른 모습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백담사를 지나 수렴동으로 진입하는 길은 다행히 눈길이다.
산길을 너무 잘 닦아놔 불만이던 길이 하얀눈으로 포장을 해서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계곡은 채 얼지 않아 맑은물이 졸졸졸 소리내며 흘러 마치 해빙기의 계곡을 지나는듯.
그러고보니 12월에 설악을 다녀간 적이 없는것 같다.
되레 2월이 더 깊은 겨울이었던 설악을 떠올린다.
그땐 계곡얼음이 두껍게 얼어 계곡 얼음 트레킹도 했더랬는데...
열발 아이젠의 위력을 마음껏 뽐내며... ㅎㅎ
계곡 트레킹을 하던 옛날 사진
2시간여를 걸어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하니 5시경.
이미 어둠이 깔린 대피소엔 저녁을 짓는 손길들이 분주하다.
우리팀도 바로 저녁준비에 돌입.
식수는 꽁꽁 얼어붙어 계곡 얼음을 깨고 그 물을 길어다 밥을 짓는다.
얼음이 동동 떠있는 물을 한모금 마신다. 가야계곡 일급수 물이니 맛이 일품이다.
고기와 김치가 반반인 돼지고기 김치찌개로 맛난 저녁식사를~
커피까지 한잔 챙겨먹고나니 얼었던 몸도 다 풀린다.
숙소를 배정받아 자리에 들지만 아직 채 7시도 안된 시각.
에효~ 여러사람이 함께 묵는 곳이라 조용해야하고, 딱히 할 일이 없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데 벌써부터 아래층에선 코 고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흠... 오늘밤도 다 잤군. 역시나... 한숨도 못자고 아침을 맞고야 말았땅~ ㅠㅠ
9시가 되니 소등을 한다.
이제부턴 이야기 소리도 삼가야 한다.
이 긴긴밤을 우야노... 매일 12시가 넘어야 자는게 습관이 되어 있으니 클났다.
게다가 여기저기 하모니를 이루며 탱크부대들이 시끄럽다.
조용히 밖으로 나가자니 3층에 자리잡은 상황에선 것도 쉽지가 않네....ㅜㅜ
잠 못드는 밤, 지나간 설악에의 추억들에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여름 수렴동까지만이라도 다녀오고 싶다던 가는세월님 덕분에 잠시 다녀갔던 일도.
다람쥐와 과자를 나눠 먹으며 동영상을 남겼던 그해 여름도,
둔전골을 거쳐 가야계곡까지 계곡 트레킹을 한 그 여름의 마지막 지점이었던 수렴동 산장.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산장지기를 위해 부러 원통시장에 들려 고기를 사던 친구, 장작난로에 고기를 함께 구워먹었던 일,
산장지기 아저씨가 추위를 못이기는 날 위해 특별히 당신방을 빌려주었던 일들까지...
수렴동 산장에 대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는데 산장은 이젠 대피소라는 이름으로 관리공단 소관이 되었다.
정겨움이 사라지고 편리함이 들어선 자리, 아쉬움이 크지만 그래도 추억은 고스란히 남아 날 깨운다.
대청봉을 오르려는 사람들인지 새벽 2시가 조금 지나자 대피소를 나가는 팀이 있다.
사실 수렴동 산장에서 잠을 자고 대청봉을 넘으려면 꼭두새벽부터 나서야 할 것이다.
중청이나 희운각에서 하룻밤을 더 묵을 계획이 아니라면....
그 시각에 나서면 대청봉 일출은 볼 수 있겠다.
잠이야 이미 물건너 갔지만, 우린 7시가 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오세암을 들려서 다시 용대리로 내려갈 계획이니 느긋하다.
누룽지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대피소를 나선 시각이 9시30분.
오늘은 시작부터 아이젠을 하기로 한다.
아침에서야 담아보는 수렴동 대피소 주변
구곡담으로 오르는 길
잠시 예전의 수렴동 산장
출발~!
잠 한숨 자지못한 몸이 정상일리 없다.
혈압이 약간 낮은쪽인 난 그렇잖아도 아침이 힘든데 잠까지 못잤으니...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들던지 몇번을 쉬어가며 오른다.
하지만 길게 쉬지도 못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추워서 힘들어도 계속 움직이는게 낫다.
능선에 올라서면 칼바람이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현저히 떨어진 기온을 실감.
만경대로 오르는 길은 눈이 덮혀 차마 오르지 못한다. 만경대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멋있는데 아쉽다.
쨍하게 추운날 하늘빛이 너무 맑다.
은주님도 힘드나부다.
오세암은 공사중이어 수선스럽다. 여기저기 공사자재에 포크레인까지...
지난해 겨울 폭설에 스님들 머무시는 요사채가 지붕이 가라앉아 새로 짓는 중이란다.
일행중에 조계종 임원이 계신 덕분에 묻지도 않고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으라고 챙겨 주신다.
에효~ 아침도 채 소화되지 않은 시각인데... 그 마음이 고마워 안먹을수도 없다.
하지만 결론은 된장국에 밥이 속을 편안하게 해주더라, 역시 한국인은 된장과 밥이야~!
역시나 낮시간이 되니 내 몸은 다시 일상을 되찾고 오세암에서 나오는 길부터서는 힘들지가 않다.
추위탓에 디카 베터리는 오세암을 끝으로 방전.
이번 산행에선 폰을 꺼내어 사진 담기는 포기한 상태다. 우모장갑을 끼고선 도저히 사진을 담을 수 없고,
우모장갑을 벗었다하면 손가락이 금새 얼것처럼 차가워지니... 사진을 찍기도 힘들다.
하산길에는 백담사는 들르지 않기로 하고 구 백담산장 자리인 관리사무소를 들린다.
내겐 특별한 의미인 백담산장이 사라진건 늘 아쉬움이다.
추워서 제대로 쉬지도 못한 다리쉼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금연 캠페인에 서명도 한다.
이것도 옛날 사진
용대리에 도착하니 4시30분.
버스는 6시에야 온다는데.... 무려 한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한다.
어찌된게 마을이 산보다도 더 춥다.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대는지 잠시도 밖에 나가 있지도 못하겠다.
흠... 그래도 아이스크림 한개로 피로는 풀어야지?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먹는 맛이 으뜸^^
매표소 가게 난로앞에 여러 산객들이 둘러서서 이런저런 한담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버스가 당도.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20분이다.
우와~ 서울이 설악보다 더 춥다!!!
강변역에서 해산, 각자의 집으로~
하산주가 없으니 난 GooooooooooooD~!!!!!!!
기대했던만큼의 깊은 겨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하얀 설원을 원없이 걸었다.
지난시간들과의 교감도 충분히 하면서...
그럼 된거지....
이번 산행을 주선하신 은현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다음에 또 멋진 산행 함께해요^^*
은현님께서 보내주신 사진^^
첫댓글 수북히 눈쌓인 계곡의 신비함과 뾰족한 바위능선의 경이로움은
건물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으니
혜영님의 마음에 만감이 교차하는듯 하군요~~
어느샌가 추억거리가 더 많아져버림을 실감합니다.
설악의 차고 깨끗한 공기를 저도 들이마신 듯 하군요.
이 겨울 산 속에 며칠 들어가 지내고 싶은 충동이...
시간만 허락된다면 정말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굳이 정상을 오르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악의 정기를 마시고 올 듯 합니다.
모가 일케 사진이 좀 허전하지 .아주 눈덮힌 설산,을 기대해서 그런가봅니다..그래도 설악을 가셔서 전 부럽고 요무사히 갔다오셔서 다행이네요.
ㅎㅎ 대청봉이 없어서... 아주 가비얍게 댕겨 왔답니다. 토요일 근무도 안하고 가면서 어찌나 아쉽던지...
사실은 울 언니를 모시고 가려고 계획했던거라... 허나 언니는 가지도 못하고...ㅠㅠ
한 겨울에 눈길을 헤치며 거침없는 산행인것 같군요.
백담사까지는 두번 가봤는데 그 뒷쪽은 말로만 들었는데 궁금하고 가보고 싶네..........
백담사까지 갔다가 어찌 그냥 내려 오실수가 있으실까??? ㅎㅎ
요즘은 포장도로처럼 길을 잘 닦아서 다니기 편해요.
전 그런길이 싫지만... 일반인들도 다닐 수 있을만큼 편하답니다.
지난 11월초 그코스로 다녀온 기억이 나네요
설악은 언제봐도 황홀 그자체인거 같아요 멋진 산행..
정말 부러워요!
부러우면 지는거다~ 힛~,^
순희씨는 단풍 끝자락이나마 구경하고 왔겠는걸요?
구곡담 단풍은 정말 장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