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 소년>을 읽고
배움터 공부모임에서 읽었던 책입니다. 한 혁명가의 어린시절(초등학교)을 회상하면서 쓴 글입니다. 동시대에 동향인지라(군만 같지 면은 다릅니다.) 더 진지하게 읽었던 같습니다.
지금까지 감동받은 책들이 많았지만 보는 내내 울컥거리면서 읽었던 책은 <세기와 더불어>와 <중국의 붉은 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목이 메일만한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보는 내내 먹먹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이 책을 통해서 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서인 듯합니다. 부모님을 포함해서 가족 그리고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소환하다보니 먹먹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헤아릴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언제나 고마우면서 이 관계가 구조적으로 사람 냄새 나는 모습으로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진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 시대는 공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배움을 누가 강요해서 하기보다는 이를 할 수 있도록 판(상황)을 만들어주었다고 봅니다.
우리가 성장할 때는 고샅길을 통해서 이웃 간 정을 주고 받은 관계로 맺어졌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가 심화되면서 자연은 말할 것도 없이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교환가치 즉 화폐로 평가하고 맺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는 자연파괴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력파괴 더 나아가서 인간관계도 종종 파괴를 일상화하게 만듭니다. 자본주의 탄생 자체가 철저히 개인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인생관이 세워집니다. 한국 사회는 기존의 농어촌의 공동체 문화가 파괴되었고 그렇다고 국가가 복지국가를 통해서 계산된 인간관계를 완화할 수 있는 상황은 아주 미흡합니다. 다시 옛날의 복고주의적인 농촌의 공동체문화로 갈 수 없으니 개인이기주의에서 집단주의로 향할 수 있도록 옛 공동체문화를 발전적으로 만들어 가야가겠습니다.
눈물꽃 소년
사람이 길인께.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안다 하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귀인이니께. 잘 물어물어 가면 다아 잘 되니께. (12쪽)
알곡들 잘도 말렸네. 근디 놀멘 놀멘 하제이. 그리고 열심히 쫓아다닌다냐아. 새들도 좀 묵어야제.(16쪽)
김남주 조선인의 마음 ‘찬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아깝고 좋은 것일수록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말이다. 할 말 다 하고 사는 거 아니란다. 억울함도 분함도 좀 남겨두는 거제. 잘한 일도 선한 일도 다 인정받길 바라믄 안 되제. 하늘이 하실 일도 남겨두는 것이제. 하늘은 말없이 다 지켜보고 계시니께. (16쪽)
개한 사람인가 참한 사람인가 주변머리 있는 사람인가 얼이 든 사람인가 멋, 그 무엇이 있는 사람인가 (25쪽)
알사탕이 달고 맛나지야? 그란디 말이다. 산과 들과 바다와 꽃과 나무가 길러준 것들도 다 제맛이 있지야. 알사탕이 아무리 달고 맛나다 해도 말이다. 그것은 독한 것이제. 유순하고 담박하고 부드러운 맛을 무감하게 가려버리제. 다른 맛들과 나름의 단맛을 가리고 밀어내 부는 건 좋은 것이 아니제. 알사탕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그리하믄 사는 맛과 얼이 흐려져 사람 베리게 되는 것이제. (32쪽)
원한은 말이시, 참말로 중헌 것이네. 원은 보듬고 풀어서 해원해야 하나, 한은 깊이 고이 품어가야 하는 것이제. 한에서 정도 나고 눈물도 나고 힘도 나오는 게 아니겄는가.(109쪽)
재미진 길인께. 먹을 게 많응께. 노래하는 길이고 생각도 못 한 인연을 만나는 길인께. 평아, 길은 말이제. 햇님과 바람이 가는 길이고 나무랑 꽃이 피는 길이고 땅의 숨소리랑 새와 풀벌레의 속삭임이 들리는 길이고 그리운 님을 만나는 길이고 추억이 쌓이는 길이제. 그랑께 길을 빨리빨리만 가믄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아 이 말이제.
힘들긴 허제이. 근디 그 길로 걸어온 날은 말이다. 신묘하게도 밥맛이 좋고 단잠을 잔다야. 그라믄 하루살이가 속이 꽉 차오르는 것만 같제.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도 고되고 병들지만 너무 가벼우면 뿌리 없이 떠다님시롱 휘둘리는 것만 같단 말이시. 사람은 걸음이 묵직허니 실해야 쓰는 것이여. 그래야 마음도 단단해지고잉.
열네 살인가 처음 머슴살이.....좀 고생돼도 성실하게 잘 배우고 꾸준하면 쌓이는 게 있으랑께.순전히 내가 나를 써서 내 힘으로 해낸 것인께. 긍께 사람은 마음을 잘 먹어야제.(118쪽)
그 여름날 이후 나는 솔찬히 변한 것만 같았다. 내가 무언가에 집착할 때, 악착같이 이기려 할 때, 빛나고 좋은 건 내가 한다고 욕심이 들 때,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 여름의 비밀한 일이, 소스라치게 바닷물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퍼뜩 힘 뻬! 얼른 놓아버려! 하는 소리와 함께 제정신을 차리곤 하는 것이었다. 비밀한 그해 여름, 시퍼런 바다의 가르침이었다.(146쪽)
^도서실의 등불 하나///청년의 멍석말이/수그리선생님
그랑께 물은 다 기억을 하니께. 물이 흘러 흘러 전해주니께. 저녁에 정안수를 떠 놓으면 말이다. 별들이 총총히 내려와 물 속에 담기제. 아침 이슬 속에 기도를 드리면 말이다. 정한 마음으로 비는 그 바람을 하늘에 전해주시제. 눈물은 아래로 흘러서 저 은하수로 하늘님께로 가닿는 것이니께. (175쪽)
그인들 그러고 싶어 그리했겄는가...평아, 한 많은 세상 한 많은 사람들 모다 품고, 악한 것 못 들게 선한 맘 북돋아 가그라. (178쪽)
나가 젤 좋아하는 꽃 중 하나여, 섣달부터 피어서 봄까지 피고 지니께. 붉은 꽃이 붉은 목숨 같은껭. 노래에서는 정이라 부르든디 나가 보기에는 한이제. 붉은 한의 사랑만 같아서 늘 가슴이 시려온당께. (195쪽)
<자운영 핀 꽃길에서 네가 걸어왔지
홀로 가는 등 뒤에서 네가 걸어왔지
모두가 등 돌려 떠나간 길에서
나랑 같이 놀래
눈물꽃 소년에게 빛으로 걸어왔지
텅 빈 내 가슴에 시처럼 네가 걸어왔지> (197쪽)
뜻이 먼저다. 꿈을 딱 정해놓으믄 뜻이 작아져 분다. 큰 뜻을 먼저 세워야제. 그라고 성실하고 꾸준하면 되는 거제.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하랴 (217~218쪽)
네 이름대로 네 길을 걸어가면 이미 유명한 사람 아니냐. 다른 사람 이름 가리지 말고, 제 이름 더럽히지 말고, 자기 이름대로 살면 그게 유명한 사람 아니냐. (220쪽)
어머니가 내게 좋은 자식이 되어주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나는 나 자신이 되고 나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었다. (225쪽)
경험하는 나와 기억하는 나는 다르다. 기억은 또 해석과 표현에서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품고 오늘 여기에서 진실을 살아내는 것이다.
내가 가진 단 하나의 확실한 근거는 내 살아온 동안이라는 나의 기억, 나의 역사다. 그 불꽃의 만남과 상처의 통증과 내밀한 각성이 내 안에 생생히 흐른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야기다. 자기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해온 이야기, 자신만이 살아온 진실한 이야기, 그것이 최고의 유산이다.
오늘도 이렇게 몸부림치며 쓰는 것 내 안에 품어온 오래된 희망의 불씨가 있기 때문이다. 가이 없는 우주의 한 모퉁이 지구의 오직 그 장소 그 시간에 내가 겪은 세상과 시대, 내가 만난 인간의 분투와 경이를 기억하고 전승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체험과 증언이 있고, 나에게 계승된 한의 사랑과 비밀한 전언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참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사신 할머니와 어머니와 앞서 간 이들의 오랜 꿈과 여정, 온몸으로 깨쳐온 사람의 도리와 지혜, 그 헌신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이야기 속에 자라나 오늘의 내가 되었으니.
어린 나를 품어 기른 이들은 나보다 더 힘들고 괴로운 시대를 견뎌냈다. 그들이 내 안에 살아있다. 그들이 내 안에서 말을 한다. 우리는 그 모든 걸 품은 위대한 역사적 존재다. 아무리 오늘이 힘들어도, 다시 고난이 닥쳐와도, 그래도 우리는 살아왔고 그래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내 안의 소년이 말을 한다. 힘든 거 알아. 나도 많이 울었어. 하지만 너에겐 누구도 갖지 못한 미지의 날들이 있고 여정의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어. 그 눈물이 꽃이 되고 그 눈빛이 길이 될거야. (245~248쪽)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