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글러의 책
학교에서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기 위해 학생들과 같이 읽을 책으로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를 생각하고 있다.
예전 같이 소위 사회과학 서적이 유행하던 시절이라면 장 지글러의 책들은 대학 신입생들의 필독서였을 것이다. 요즘은 모르겠다.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채 각자의 생계와 스펙쌓기에 매몰되어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생각이 든다.
장 지글러는 스위스의 사회학자이지만 2000년 이후 유엔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세계 기아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체제의 구조악을 질타하는 실천하는 투사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의 책들이 남반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비참을 묘사하고 그것의 원인을 다국적 기업의 과두체제과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동조에서 찾는다. 왜 현재 세계 인구의 두 배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이 있음에도 기아는 사라지지 않는가? 오히려 늘어나는가? 왜 의학 기술이 발전해 약을 쉽게 제조할 수 있음에도 가난한 나라에는 치료가 불가능한가? 왜 최대 산유국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최대 빈곤국이고, 최대 곡물수출국인 나라들이 동시에 기아로 시달리는 일이 벌어지는가?
지글러는 이런 모순을 읽으키는 세계의 족쇄를 깨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현대의 정신을 규정하는 프랑스혁명기 사유재산을 절대시하며 부르주아의 편을 들었던 자들의 승리를 지적한다. 가진 자의 무한한 탐욕과 독점과 지배를 허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자체가 애초 세계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공산권의 몰락과 정보혁명은 금융자본의 세계지배에 날개를 달아주게 되었다. 다국적 기업의 자산에 비례에 세계를 지배하는 힘은 절대화되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통해 신자유정책 강요하고 가난한 나라를 부채의 수렁에 빠뜨리고 기아와 빈곤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시초축적 과정이 구조적 폭력에 의해 영구화된 모습이다.
그가 말하는 연대와 혁명을 사람들은 낭만적 이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에티오피아, 볼리비아, 브라질, 콩고 등 세계 각국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남반부 국가들의 무능력이 아니라 북반부 국가들의 무지와 사악에 경악한다. 누구의 잘못인가? 외침은 넘치고 넘친다. 이득을 본 자들의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