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인을 제접하는 방편 뛰어나 많은 공안 남겨
조주종심(趙州從諗)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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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불교를 공부한지도 어느덧 30년이 되어간다. 경전을 읽다보면 가끔 예전에 몰랐던 것을 불현 듯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학자의 보람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에 알게 된 것으로는, 많은 경전에‘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를 마치 병속의 물을 다른 병에 옮기듯 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예전에는 이 구절의 의미를 정확히 몰랐었다. 이 말은‘한 방울의 물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다른 병에 붓는다’ 즉, ‘부처님의 말씀을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다 듣고 이해하였다’는 의미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선에는‘전등(傳燈)’이란 용어가 있다. 전등이란 스승이 제자에게 법의 등불을 전해주는 것을 가리키는데, 하나의 등불을 다른 등불에 옮길 경우 그것들이 모두 동일한 불이 듯이 스승이 제자에게 전수하는 법도 모두 동일한 법이 아니면 안 된다. 만약 스승이 깨달은 법과 제자가 깨달은 법이 서로 다르다면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 전등록(傳燈錄)이란 ‘스승과 제자가 서로 법을 전한 기록’으로서 바로 ‘선종의 역사’를 말한다.
선에서는 기본적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 달마에서 혜능에 이르는 동토육조(東土六祖)는 모두 동일한 법을 깨달았고 또 그것을 제자에게 전하였으므로 선의 종지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것이다. 이것을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 한다. 나아가 조불(祖佛)이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조사[祖]와 석가모니[佛]는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남전보원(南泉普願)의 등불을 전해 받은 사람 가운데는 유명한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선사가 있다. 조주는 어린 시절에 출가하여 남전보원에게 참학하였고, 여러 곳을 유력하다가 나이 80이 되어서야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觀音院)에 정착하여 선법을 떨쳤다. 120세까지 장수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주선사는 많은 공안을 남겼는데 전회에서 서술한 무자공안(無字公案)도 그 중 하나이다. 조주선사가 남긴 유명한 공안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끽다거(喫茶去). 《조당집》에는 이 공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조주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그러자 그 스님이 답하기를 “온 적이 있습니다.” 조주가 말하길 “차나 마시러 가라.”했다. 또 다른 스님에게 묻기를 “일찍이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스님이 답하기를 “온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또 조주스님이 말하기를 “차나 마시러 가라.”했다. 이에 원주가 묻기를 “스님은 어찌하여 온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차를 마시러 가라하고, 온 적이 없는 사람에게도 차를 마시러 가라고 하십니까?”하니, 조주가 “원주야!”하고 불렀다. 원주가 대답하자 선사가 말했다. “차나 마시러 가라.”
‘차나 마시러 가라[喫茶去]’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마, 앉아서 차나 한잔 하게’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조주가 살았던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풍습이 없었다. 차가 일상화되는 것은 송대 이후이며, 당대에는 차가 귀해서 매일 마실 수 없었고 배가 아플 때 일종의 약처럼 마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주가‘차나 마시러 가라’고 한 것은‘차나 마시고 정신차려!’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 중국어에서 ‘거(去)’는 분명히 ‘가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② 세발우거(洗鉢盂去). 조주의 공안 중에는‘세발우거(발우를 씻으러 가라)’가 있다. 《무문관(無門關)》 제7칙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승이 조주스님에게 말하기를 “저는 총림에 갓 들어왔으니 스승님의 가르침을 바랍니다.” 고 했다. 그러자 조주스님이 “죽은 다 먹었느냐?”고 물었다. 승이“다 먹었습니다.”하니 조주스님이“발우를 씻으러 가거라.”했다. 승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제 막 출가한 신참스님이 어느 날 조주스님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그런데 조주는 단지‘아침 죽은 다 먹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승이‘다 먹었습니다’고 하니 이제는‘발우를 씻으러 가라’고 한다. 이 말에 승은 언하에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다.
과연 이 신참의 승은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당대(唐代)의 선은‘일상(日常)의 선’을 강조한다. 즉 밥 먹고 똥 누고 오줌 누는 행위가 바로 선인 것이다. 여기서도‘죽을 먹는 행위’ 그 외에 별다른 도(道)가 없음을 보이고 있다. 즉 ‘죽은 다 먹었느냐?’는 조주의 말 속에 이미 가르침이 다 들어있는 것이다. 승은 이것을 깨달은 것이다.
청규가 정비된 이후에는 먹는 그 자리에서 바로 발우를 씻었지만 당대에는 아마도 옥외의 우물이나 냇가에서 발우를 씻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조주는 ‘발우를 씻으러 가라’고 했던 것이다.
③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조당집》에는 이 공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祖師西來意]입니까?” 그러자 조주가 대답했다.“뜰 앞의 잣나무니라.”“화상께서는 경계를 들어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오.”“나는 경계를 들어 사람에게 보이지 않느니라.” 그러자 스님이 다시 물었다.“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란‘달마가 서쪽(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뜻’을 가리키는데, 불법(佛法)의 핵심을 말한다. 즉 질문자인 스님은‘무엇이 불법의 핵심입니까?’ 하고 바로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조주는‘절 마당에 있는 잣나무니라’고 답한다. 그러자 스님은‘화상께서는 경계를 들어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오’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경계란 나[我]인 주관과 상대되는 말로서 ‘객관세계’를 가리킨다. 즉‘바깥의 객관적인 사물로서 보이지 마십시오’란 불만이다. 이에 대해 조주는‘나는 객관세계로서 보인 적이 없다’고 답한다. 이에 대해 스님이 다시 조사서래의를 묻자, 조주는 다시‘뜰 앞의 잣나무니라’고 답한다.
이 공안에서 조주가 답한 정전백수자란 나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서의 객관세계가 아니라, 주객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사물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나와 백수자가 하나 된 세계이다.
④ 진주(鎭州)의 큰무우[大蘿蔔頭]. 《벽암록》 30칙에는 다음과 같은 공안이 실려 있다.
어떤 승이 조주에게 말했다.“들으니 스님은 남전화상을 친견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러자 조주가 답하기를“진주에는 큰 무가 난다네.”
진주(鎭州)는 조주(趙州) 근처의 지역으로서 당시에 아마도 무[大蘿蔔頭]의 산지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조주의 답인 ‘진주에는 큰 무가 난다네’는 무슨 의미일까? 일설에는‘큰 무’란 조주 자신을 가리킨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동국대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