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보편적 생활에서 탐색하는 존재의 진실
--이서연 시집 『』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나”의 일상생활에서 인식하는 자아
일찍이 철학자 하이데거는 「시의 본질」이라는 그의 글에서 “시는 우리들이 익숙해서 믿어버리고 손쉽게 가깝고 명백한 현실에 비해서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꿈같은 느낌을 일으키지만 사실은 이와는 반대로 시인이 말하고 시인이 이렇다고 긍정한 것 그것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현실에 대한 보편적인 정서에서 괴리(乖離)된 인식은 시와 현실의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한편 영국의 비평가 리처즈도 우리의 일상생활의 정서와 시의 소재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이처럼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기교를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평범한 생활에서 체험하는 이미지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시적인 상황들은 바로 우리들의 생활주변에서 감득(感得)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이서연의 시집 『』을 일별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먼저 해보는 것은 이서연 시인이 작품의 발상이나 이미지의 창출 그리고 전개 방식, 특히 주제를 투영하는 시법들이 대체로 그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체험한 보편적인 사유(思惟)에서 취택하는 소재나 주제를 살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시인의 말>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오면서 교통사고로 큰 수술도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치료도 꾸준히 받아가면서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았”다는 진솔한 삶의 지향에 대하여 “그때마다 나를 대단하다고 믿어주는 가족들의 응원과 믿음이 있었기에 견디어 낼 수 있었고, 용기를 내서 더 열심히 살아왔”다는 고백과 동시에 그는 “제가 시를 잘 못쓰지만 시는 제 삶에 활력소입니다.”라는 진정한 그의 내적인 인생의 진실을 이해하게 하고 있어서 그의 삶에서 탐색하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우선 공감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워
전철을 타본 사람은 안다
일터로 향하는 전철 안
발 디딜 틈 없이
몸이 공중에 뜬다
출근시간 전철
미리 지쳐 업무 성과 낼 수 있을까
아침부터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간다
퇴근시간 전철
밀물처럼 밀려와
썰물처럼 빠지는 사람들
전쟁터가 된 오늘
그래도 내일이 기다려진다
--「치열한 삶」 전문
이서연 시인은 이와 같은 “치열한 삶”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사회의 한 단면에서 감응(感應)할 수 있는 것은 아침 러시아워나 퇴근시간에 전쟁터처럼 벌어지는 천철 안의 형태에서 그는 삶에 대해서 치열성과 함께 존재에 대하여 전율(戰慄)을 심하게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긍정하려는 사회적인 현상의 실체를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은 출근이나 퇴근시간에는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라서 그는 삶의 치열성에 대한 수긍이지만 “미리 지쳐 업무 성과 낼 수 있을까/ 아침부터 어쩔 수 없이 떠밀려”가는 일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내일이 기다려진다”는 어조(語調)는 자아(自我)에 관한 진실이 내재된 인생의 존재에 대한 의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많은 작품에서 “나”를 시적인 화자(話者)로 설정하고 현실 속에 상존(常存)하는 존재의 인식으로 자아와 현재의 상보적(相補的) 가치를 확인하거나 생존의 지향점을 탐구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는 작품 「촛불」 중에서 “내 몸 살라 밝히렵니다”거나 “어두운 곳마다/ 내 몸 태워/ 세상을 환하게/ 불 밝히렵니다” 그리고 「연꽃」 중에서도 “연꽃을 마주 보지 못해/ 나는 연꽃 앞에서/ 고개 숙인다”는 등의 어조로 자신에 대한 성찰적인 인식도 동시에 적시하고 있어서 그의 존재의식을 명징(明澄)하게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듬직한 어깨
까맣게 그을린 몸매
입을 맞추면 열리는 숨구멍
위로 오르는 화기
붉게 퍼지는 얼굴
뜨거운 가슴
차마 어쩌지 못하는
열정이 넘쳐난다
너처럼 제 몸을 태우다가
하얀 가슴이 된 내가 그랬을까
두 손으로 집게를 잡고
거침없이 타오를
불꽃을 그려 본다
--「연탄불을 피우며」 전문
또한 이러한 일상에서 “너처럼 제 몸을 태우다가/ 하얀 가슴이 된 내가 그랬을까”라는 어조로 연탄불의 의인화는 그 비유법이나 상징이 새로운 이미지로 발현되고 있어서 이서연 시인이 구가(謳歌)하려는 인생의 의미를 더욱 심도(深度) 있게 적시하는 시법이 우리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적인 생활에서 획득하는 작품은 「선풍기」 「열대야」 「잡채」 「처서 바람」 「넝쿨장미」 등 사소한 소재에서 그의 예리한 혜안으로 “나”의 존재에서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모색하는 시법을 공감할 수 있게 한다.
2. 사회적 현상에 대한 민감한 반응
이서연 시인은 사소한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으로 그의 정서를 화기시키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매슈 아놀드는 “시는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고 다양하게 효과적으로 사물을 진술하는 방법”이라고 전제하지만 결론은 “시는 본질적인면에서 인생의 비평이다”라고 했다.
이 인생의 비평은 곧 인간생활에서 야기하는 모든 여건이나 환경 등에 대한 시인만의 특유한 정서와 사유로 이해하고 평가하면서 성찰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혹독하게 비평으로 질책할 수 있는 “피어나지 않는 불꽃 속에서 시는 존재한다”는 그의 말을 경청(傾聽)할 필요가 있으리라.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변에서 생성하는 다양한 사건이나 제도적인 모순과 갈등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시인들은 작품으로 이를 용해하는 특징을 엿보게 하는데 이서연 시인도 이를 배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통한 비판의 인식으로 이를 작품으로 형상화는 시법을 이해하게 한다.
살아있는 생명은 고통 앞에 웁니다
사방이 눈물입니다
보고 싶은 부모 지척에 있어도 볼 수 없어요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
겨우 영상통화로 마음 달래지만
마지막 자리까지 가로막힙니다
한 줌 재 되어 흙으로 돌아가기도 어렵습니다
늙은 부모의 병든 몸,
흙도 거부하는 걸까요
자식들 눈에 피눈물 흐릅니다
부모 떠나보낼 땅 한 조각 찾느라
기도도 못 하던 시절이 지나갑니다
--「흙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워」 전문
그렇다. 이서연 시인은 얼마전에 창궐(猖獗)한 괴질(怪疾) 코로나로 인해서 고통받았던 사회적인 현상에서 비통함을 안타깝게 작품으로 그의 애절한 심정을 분출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인 심각한 문제는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서 일상생활에서 불편하거나 나아가서 위기감을 조성하는 국가적인 사건으로 확대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고 있는데 시인들은 이러한 위기의식을 적시하고 갈등의 요소들을 치유하는 시법으로 시사적(時事的) 현실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경향으로 많이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국가적인 환란(患亂)으로 병원 면회도 불허(不許)하는 부보들과 영상통화로 겨우 안부를 묻거나 “한 줌 재 되어 흙으로 돌아가기도 어렵”다는 병마(病魔)에 갖힌 늙은 부모들의 죽음마저 옆에서 위로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애절하게 토로(吐露)하고 있어서 당시의 상황들이 재생하는 시사성을 분사(噴射)하는 작품이다.
이와 같이 시의 사회성은 많은 작품들에서 읽을 수 있는데 작품 「미세먼지」 중에서 “청명한 하늘 보고 돌아와/ 맑은 공기 마셨으면/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라거나 「자유공원」 중에서도 “파도치던 그 밤의 인천상륙/ 쉴 새 없이 해변을 오르던/ 군인들의 타오르던 눈빛/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어조로 사회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 그늘 찾아
발길 옮기는 여름이다
느티나무는 정자와 같은
그늘을 만들어 놓고
우리들에게 오라 손짓했었다
행인들의 발걸음이
느티나무 앞에서
잠시 머물기도 했는데
습관처럼 다시 찾은
느티나무 쉼터
누구의 손에 잘렸나
몸통 잃은 느티나무
잘려있는 느티나무 몸통이
제 몸의 잘린 자국을 보고 있다
내려다 보고 눈물 흘린다
--「사라진 쉼터」 전문
이서연 시인은 당면한 위기의식의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주변의 상황에서도 그의 관심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느티나무와 정자가 있는 아늑한 마을 쉼터가 어느날 누군가가 느티나무를 잘라버려서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사라져버린 시적 상황에서 그는 “잘려있는 느티나무 몸통이/ 제 몸의 잘린 자국을 보고 있다/ 내려다 보고 눈물 흘린다”는 결론은 우리가 공통으로 슬퍼해야 할 현실적인 비감(悲感)의 의식이 더욱 분노로 나아가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이처럼 공감을 유발하는 작품은 「강남 대치동」 중에서 “지금은 친구 하나 없고/ 올려다보며 계속 오르는 고층 아파트/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혹은 「세월호 천사들」 중에서 “너희를 지켜내지 못한/ 못난 어른들은 / 두 손 모아 용서를빈다/ 고이고이 잠들 거라”는 사회적인 현실들이 시적으로 형상화할 때 그의 진실을 예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3. 가정 화목의 효심과 우애의 현장
우리 인간들은 일생을 통해서 가정과 가족들과의 상호 교감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부모형제들과 형성하는 가정의 화목은 옛말과 같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요체(要諦)로써 삶의 기본인 효심과 우애의 모태(母胎)가 되는 것이다.
이서연 시인도 고상한 모티브를 찾지 않고 평범하면서도 이미지의 근원이 되는 주변에서 소재를 찾고 주제를 투영하는 시법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시인들은 누구나 한번씩 탐구해보는 부모형제와 가정 그리고 고향에 대한 상상력을 가다듬어 보는 습성들을 이해하게 한다.
일찍이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는 “가정의 단란이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기쁨이며 자녀들을 보는 즐거움은 사람의 가장 성스러움이다”라는 말로 가정화목을 찬양하고 있어서 우리 인간들의 삶에서 하나의 귀감(龜鑑)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움푹 꺼진 눈자위로
빛나는 젊은 눈이 숨어있다
반쯤 벌어진 입가에
굳게 다문 젊은 입이 숨어있다
쭈그러진 주름살 뒤에
늠름히 내세우던 젊은 얼굴이 숨어있다
손을 잡으니
벽을 잡는 듯
두 어깨의 짐이
아직도 얹혀 있는 듯
무겁게 앉아계신다
가래 끓는 소리에
자꾸만 가라앉는 아버지
아버지는 가슴이 열리다가
닫힌다
--「아버지」 전문
우선 이서연 시인은 “아버지”에 대한 정감이 회한(悔恨)으로 재생되고 있어서 누구에게서나 동일한 상황의 효심(孝心)이 깃든 이미지를 추출해내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움푹 꺼진 눈자위”나 “쭈그러진 주름살”로 재현(再現)되는 아버지 생전의 모습을 측은하게 묘사하는 그의 내면에서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항상 “무겁게 앉아계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숯불 풍로에서/ 끓고 있던 양은 냄비/ 오남매 둘러앉은 밥상/ 아버지는 보고만 계신다/ 한 술 뜨시고 나는 됐다/ 너희들 먹어라 (「애호박나물」 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한 애정이 넘치는 가족 사랑의 표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시부모님들에게도 각별한 효심을 발현하고 있다. “일 년 만에 찾은 / 시 아버님 집/ 내 아들 다섯 살 때 지어드렸지 (「벌초」 중에서)”라거나 “지금은 아파트와 빌라 촌/ 시아버지 따라가던 길이/ 너무 멀다(「시아버지 상여 가던 날」 중에서)”는 등으로 그의 사유에서 불망(不忘)의 존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진달래꽃 배꽃 따다
광주리에 얹어 두던
어머니
찹쌀 곱게 빻아
가루 반죽해서
솥뚜껑에 기름 두르고
꽃 모양 그대로 화전 만들어
꿀에 담가
내 입에 넣어주던
어머니
화전 만들던 꽃처럼 피어나
웃으시던 어머니
어머니에게 달려가고 싶은
--「화전」 전문
이어서 어머니에 대한 회상에서 사모(思慕)의 정감적인 시법이 더욱 감동으로 흡인시키고 있어서 그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모녀간의 사랑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당시의 상황들을 뚜렷하게 재생하면서 “어머니”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광주리에 진달래꽃 배꽃을 넣어두는 일, 찹쌀반죽해서 꽃모양의 화전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화전에 꿀을 발라 내 입에 넣어주던 일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아련하게 그의 뇌리에서 생성하고 있어서 미소짓는 어머니에게 달려가고 싶다는 동심(童心)으로 상상력을 명민(明敏)하게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산사로 가는 길가에/ 피어나던 진달래/ 생전의 어머니 미소처럼/ 눈부시게 웃고 있네(「마당의 선물」 중에서)”라거나 “어머니 내 입에/ 쏙 넣어 주시던/ 아직도 입안에 있는/ 화전(「봄날」 전문)” 등으로 사모곡(思母曲)을 읊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작품 「고향」 중에서는 “깊어가는 겨울밤/ 등잔 밑에서 새끼 꼬시던 아버지/ 새끼 타래 커질 때/ 참숯 화롯불 올라오면/ 알밤 구워 주시며/ 오남매 오물거리는 입/ 웃음 지으며 바라보시던 어머니”와 같이 어머니를 떠올리면 고향도 동시에 현현되는 것은 보편적인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가 싶다.
이서연 시인의 가족 사랑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아들의 거친 손이/ 생크림으로/ 작은 탑을 쌓는다(「아들표 케이크」 중에서)
-아들 며느리 눈망울처럼 까맣고 큰 포도송이다(「포도」 중에서)
-그리고 지금 이 자리/ 나와 내 며느리/ 자꾸만 겹쳐지네(「생일 선물」 중에서)
-동요도 불러주고 / 율동도 가르쳐 준다/ 쉬지 못하는 며느리는/ 어린이집 선생님 같다(「엄 마의 힘」 중에서)
-질부는 막내 닮은 듯/ 사랑스럽다/ 싹싹하니 재빠르다(「조카 결혼」 중에서)
-딸이 결혼해서 떠난 후/ 나 혼자 생활하니/ 금방 알겠더라(「딸의 빈자리」 중에서)
-거실에서 타고 놀다 떨어져 울고 웃다가/ 내 볼에 입맞춤하던 딸이/ 얼핏 스쳐가 뭉클하다 (「목마와 딸」 중에서)
-딸이 부르는 엄마라는 말에/ 느닷없이 떠올려진 나의 엄마/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딸과 고향 집을 찾았다(「나의 엄마」 중에서)
4. 계절의 시간성에 탐색하는 자연 서정
이서연 시인은 만유(萬有)의 자연에 심취하는 서정시인이다. 그는 지천(至賤)으로 피어있는 꽃에서 교감하는 그의 정서는 아름다움이라는 꽃에 대한 이미지에서 보다 지향적인 시간성과 생명성을 부여하고 있어서 계절에 따라서 변화하는 자연 현상들에서 우리 인생의 삶이 투영되는 시법을 선호(選好)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사계절의 시간적인 개념에서 만물이 모습을 달리하는 변화의 자연에서 그가 탐색하는 시적인 향방은 서정성이라는 불변의 시법이 그의 뇌리(腦裏)에서 활기차게 작동하고 있어서 상당한 설득력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와서 새로운 정서와 사유를 제공하면서 미감(美感)어린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특성을 이해하게 된다.
출근길 매일 미소 짓는 너
봄이면 연분홍색으로 나를 웃게 한 너
열아홉 살 소녀는
눈물 흘리며 거기 서있네
뜨거운 햇살 아래
가냘픈 너의 모습
비라도 맞으면
활짝 생기 돋는 너
가을에도 붉은색으로
바쁜 나를 반기며
꽂꽂이 서서
삶에 희망을 선사하는 너
겨울인 지금 눈보라 속에도
계절도 잊은 채 홀로 피어
동그란 너의 입술은
붉게 웃고 있구나
--「숭의동 철쭉꽃」 전문
그렇다. 그는 철쭉곷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그의 자태가 “너”라는 의인화로 상황을 설정하고 봄이면 눈물 흐리게 하는 열아흡 소녀로, 가을에는 삶의 희망을 선사하고 겨울에는 붉게 웃고 있는 동그란 입술로 전개하면서 그의 서정성은 극(極)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서연 시인이 탐구하고자 하는 시의 위의(威儀)는 만물들이 시간(혹은 세월)과 동행하지 않으면 제대로의 섭리(攝理)를 이행하지 못한다는 철칙이 바로 우리들 인간에서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 생명성도 다양하게 성숙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사계절에 대한 감응은 다음과 같은 어조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봄 : 아기 나뭇잎/ 연둣빛 눈웃음 볼우물/ 봄이 가득하다(「연둣빛 나무 잎새」 중에서)
-여름 : 태양 아래 땀을 쏟아내야/ 아름다운 여름이 아닐까(「차가운 여름」 중에서)
-가을 : 가을의 나무와 곡식들은/ 햇살을 그리워하는데/ 가을비는 고개 돌리며/ 은근히 내리 네(「가을비」 중에서)
-겨울 : 물소리와 함께 가는 아라 뱃길/ 겨울을 간다(「겨울강」 중에서)
한편 이서연 시인은 계절과 자연에는 꽃들에 대한 교감이 남다르게 발현되고 있지만 자연 환경에 대한 사물 이미지도 다채롭게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착목(着目)하는 자연 대상물에서 시각이나 청각에 의한 상황에서 문득 재생하는 이미지들이 그의 작품의 형상화에 많은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탐색하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작품 「수국 물들다」 「나뭇잎 하나」 「느티나무」 「새길」 「모과」 「당진 대추」 「장곡사에서」 「벚꼴길」 「가시오가피」 등등에서 그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하나의 의미를 창출하는 시법을 이햐하게 한다.
그러나 청각적인 이미지는 우선 작품 「아침 찬가」 중에서 “아침 창문을 여니/ 여기저기 들려오는 새소리/ 내 귀를 트이게 한다”거나 작품 「개구리 소리」 중에서 “몇 년 만에 들어본 소리인가/ 오랜만에 내 귀가 / 아래로 향하고 있다// 도시 사람들은 개구리/ 소리마저 잊고 산다”는 등의 어조와 같이 청각에 의한 서정성을 감응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도 들었던 저 소리들
컸다가 작아지며
내 귀를 끌고 간다”
며칠째 잠을 못 자고 있는
열대야 겨우 잠든 새벽
매미 울음소리에 잠을 깬다
어제 아침 울던
그 매미가 또
울고 있는 것일까
내 새벽잠을 깨우는
7년을 기다려 울고 있는
울음소리
똑같은 울음소리인 것 같다
다시 7년 후
저 울음소리
나를 위해 똑같이
들려줄 수 있을까?
--「매미 울음소리」 전문
그는 매미의 울음소리에서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새벽잠을 깨우는 매미들의 합창은 그는 울음소리로 듣고 있는 것이다. 매미는 한해 여름을 위해서 7년의 암흑 속에서 긴 기다림 끝에 세상에 나와서 환희의 노래를 들려주는데 그는 무엇인가 아쉬운 울음으로 이미지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결론에서 “다시 7년 후/ 저 울음소리/ 나를 위해 똑같이/ 들려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의 어조로 적시하는 하는 것은 “나를 위해”라는 대칭적인 의미가 우리들 인생에서 무엇인가 아쉽거나 안타까운 내면의 의식이 침잠(沈潛)되어 있음을
엿보게 하고 있은 것이다.
이러한 청각은 “새벽 찬바람 내려오고/ 풀벌레 울음소리/ 움츠러든다(「불멸의 밤」 중에서)”는 풀벌레도 매미와 같이 울음소리 들리지만, “보리밥에 열무김치/ 썩썩 비벼주면/ 새콤달콤한 냄새가 나는데/ 가족들의 웃음소리/ 귓가로 스쳐간다(「열무김치」 중에서)”는 구절에서는 가족들의 환한 웃음소리로 청각의 상황이 바뀌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이서연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서 자신인 평소에 지각(知覺)하고 감응하는 세상의 물정(物情)이나 보편적인 일상생활에서 감지하는 느낌이나 사유의 향방이 그의 내면에서 숙성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시법으로 창작을 정리하고 있어서 찬사를 보낸다.
그는 일상의 평범에서 인식한 “나”와 사회적으로 민감한 반응으로 갈등요소에 대한 화해의 정리, 가정화목과 효심과 우애 그리고 시간성에서 투영하는 서정성이 이 시집 전체를 관류(灌流)하고 있어서 시의 위의와 본령을 명징하게 정립하려는 서정시인임을 확인하게 한다. 시의 목적은 인본주의(humanism)의 실현을 위한 지적인 지향점이 발현되어야 할 것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