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이사야 49:14-17】(새번역)
14 그런데 시온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는구나.
15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16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을 늘 지켜 보고 있다.
17 너를 건축할 사람들이 곧 올 것이니, 너를 파괴하는 사람과 황폐하게 하는 사람이 너를 곧 떠날 것이다.
【핵심메시지】
하나님께서는 내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나를 항상 기억하십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말씀 나눔】
스마트 폰이 없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마침 지인이 핸드폰을 분실하여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을 듣고 스마트 폰이 없으면 나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스마트 폰이 없으면 당장 지인들에게 연락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어서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큰 어려움은 본인 인증을 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신분확인이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 인증서를 통해서 본인 인증을 하려고 해도 휴대폰을 통해 본인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결국 휴대폰이 없이 본인 인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휴대폰 보유율이 95%이상이다 보니 모든 것이 모바일 기반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은행 일도 스마트폰으로, 세금신고도 스마트 폰으로 가능합니다. 코로나 이후로 대학 강의도 스마트 폰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 이후 온라인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스마트 폰으로 영상을 제작할 수도 있습니다. 스마트 폰으로 제작된 영화도 있습니다.
이렇게 스마트 폰은 우리들에게 편리함과 유익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중독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스몸비(Smombie)’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스마트 폰과 좀비라는 단어를 합성한 단어로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해마다 스몸비 족의 안전사고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틈에 발이 빠지기도 하고, 길을 걷다가 전신주와 같은 기둥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길을 건널 때도 스마트폰을 보고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운전을 하는 중에도 스마트 폰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마트 폰이 몸에서 떨어질 때는 잠을 잘 때뿐입니다. 화장실 갈 때도, 밥 먹을 때도, 심지어 공중목욕탕에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이렇게 목욕탕에 들어갈 때까지도 스마트 폰을 들고 들어오고, 스마트 폰이 없으면 정서불안을 일으킬 정도로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삶은 어떤가요?
잠시라도 스마트 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불편해 하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무렇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루를 살아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아도 당장 생활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왜 휴대폰은 없으면 당장 불편한데, 말씀 묵상이 없는 삶은 불편하지 않는 것일까요?
첫 번째,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4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탄식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자신을 잊으셨다고 여긴 이유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자신들이 바벨론에 끌려 왔다고 생각 하거나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으셔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탄식하는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도성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실 예루살렘을 향한 구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신명기 6:8-9에 보면,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신명기 30:20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며 단지 말씀을 몸에 가까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라 말씀하십니다. 스마트 폰을 가까이 하듯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으니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알 수 없으니 신뢰할 수 없습니다.
친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합니다. 이제 한 번 본 사람과 친한 친구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겨우 이름만 알고, 어디 사는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아 하나님을 모른다면 하나님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지 않으니 하나님의 일 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휴대폰은 없으면 당장 불편한데, 말씀 묵상이 없는 삶은 불편하지 않는 이유
두 번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스마트 폰을 통해서 은행 일을 보고, 뉴스를 읽고, SNS를 통해서 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습니다. 일상의 상당 부분을 스마트 폰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려운 일에 처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기나긴 포로생활과 가뭄으로 황폐하여진 예루살렘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거주자들은 하나님이 구원자이시며 야곱의 전능자이심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도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서 사람의 상식으로는 복구가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전보다 훨씬 큰 도성으로 회복 될 것이며, 그 누구도 예루살렘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파괴하고 황폐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곧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무얼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휴대폰은 없으면 당장 불편한데, 말씀 묵상이 없는 삶은 불편하지 않는 이유
세 번째, 하나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스마트 폰 만 있으면 모르는 길도 잘 찾아다닐 수 있습니다.
차량에 있는 내비게이션도 좋지만 스마트 폰 앱은 차량용과는 다르게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실시간 교통량을 고려하여 길을 안내해 줍니다. 항상 다니는 길인데 다른 길로 가라고 하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내비게이션 안내를 무시하고 가던 길로 가면 꼭 후회하게 됩니다.
이렇게 날마다 다니는 길도 내비게이션을 통해 확인하지만,
우리가 오늘 걸어갈 인생길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삶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스마트 폰은 없으면 불편하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삶은 마른 가지와 같이 불에 던져지는 신세를 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매 순간 하나님을 기억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기억하시고 내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셨습니다.
그리고(15절)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것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부모가 어린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 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의 안전을 위해 네 성벽을 늘 지켜 보고 있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우리의 안전을 항상 살피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심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잠시 잠깐씩 잊어버릴 지라도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두 번째,)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확신의 삶을 공부하면 성도에게 꼭 필요한 영적 습관을 총 4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경건의 시간,
② 말씀 묵상,
③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
④ VIP 찾기
처음 두 가지는 말씀과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훈련이 잘되면, 나머지 습관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요즘 기독교 교계의 관심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종교개혁 당시 외쳤던 오직 말씀으로!(Sola Scriptura)라는 구호를 다시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코로나를 지나면서 젊은 성도들이 현장 예배를 기피하고, 20-40대 성도들이 플로팅 크리스천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을 조사해 보니, 요즘 매스컴에서 보도되고 있는 이단 사이비 단체들의 범죄와 코로나 초기 집단 발병지로 교회가 지목되면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아지다 보니 교회 출석을 기피하게 된 것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번 현장 예배에 빠지고,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번 출석하다가 결국은 온라인 성도로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온라인 예배는 현장 예배에 비해 집중이 어렵습니다. 현장에서 드리는 예배는 옷을 잘 차려 입고 예배자의 자리를 지키며 드리기 때문에 마음자세부터 달라집니다. 온라인 예배는 편한 복장에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경건의 정도가 다릅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육아실에서 예배를 드려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벽 하나 사이에 유리창을 통해 예배 현장을 보고 스피커로 들리는 말씀과 찬양을 듣는데도 집중도가 달라집니다. 아이를 보는 것으로 집중도가 떨어지는 원인도 있겠지만 장소가 주는 제한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육아실 개념으로 1층 친교실에 예배 실황이 모니터 됩니다. 그러나 성숙한 성도가 되길 원하신다면 건강상의 이유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꼭 본당에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현장에서 예배드린다고 무조건 신앙이 성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결단을 통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집중해서 온라인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연합을 통한 신앙훈련을 제대로 받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경험 하지도 못하고 플로팅 크리스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교회마다,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하고,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중보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오직 말씀으로! 라는 기치를 내걸고 성도들이 말씀을 읽고, 쓰고, 묵상하는 영적 습관을 갖추도록 훈련에 집중하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세 번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좋은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관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삶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경건의 훈련은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훈련입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말씀 앞에 서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옛 습관대로 행하려는 관성이 있어서 방향을 전환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오랜 시간 습관을 들여 반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말씀 묵상 훈련을 잘 받았다 하더라도 각 개인이 지속적으로 행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영적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매일 실패하더라도 매일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작심 3일이 작심 한 달이 되고, 작심 일 년이 되며, 일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의 삶에 말씀의 부재, 기도의 부재보다 스마트폰 부재가 더 큰 영향을 준다면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보다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 묵상시간보다 TV보는 시간이 더 많다면, 육신의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보다 영의 건강을 위한 묵상시간이 적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현상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건강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균형이 깨진 식단이 육신의 건강을 해치듯 균형이 깨진 영성은 매우 위험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아가도 불편하지 않다면, 혹시 내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28에 보면,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기 싫어하는 이들을 죄 가운데 그대로 두십니다.
문제는 그 죄 가운데 있지만, 자신이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스마트 폰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말씀보다 세상의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면, 내가 그만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있다는 경고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로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의 일보다 세상일이 더 좋고 즐겁다면 여전히 나는 옛 사람이 가진 습관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이 있는 교회 일수록 변화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칫 교회의 전통을 앞 세워서 변화를 거부하고,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오류들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교회의 사소한 전통(傳統)을 지키기 위해서 말씀의 정통(正統)을 잃어버리는 우둔함을 범하게 됩니다. 전통이라는 관성 때문에 바른 길로 전환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율법 자체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달을 보아야 하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또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회의를 품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지라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각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향해 외친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지만 하루 24시간 한 순간도 빠짐없이 아내와 자녀를 생각하면서 살지는 않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잊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이 있다는 것은 기억합니다.
이처럼 날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느끼며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코람데오의 삶을 살기 위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빠짐없이 하나님을 생각하며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실제의 삶에서는 이루기 힘든 매우 이상적인 삶이자 성도들이 이룰 최종 목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간혹 잊고 있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매일 상기해야 합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하나님과의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매일 반복 되는 경건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약속에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부재도 느끼지 못하는 영적 불감증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로 이 땅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어린 아이가 한참 신나게 놀다가도 엄마의 부재를 알고 찾고 우는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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