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
♤ 날짜 : 2024년 1월 3일(수)
성산일출봉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출로 284-12, 성산리 78)
제주도가 만들어진 시기인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에 단성화산인 오름과는 달리 유일하게 현무암질 마그마가 얕은 바닷속에서 분출하여 만들어진 수성화산의 일종인 응회구이자 섯시형화산체이다
생성 당시에는 제주도 본토와 1km 떨어진 화산섬이었으나, 침식작용으로 바닷가까지 운반된 화산재와 화산력이 퇴적되어 바다를 향하여 얇고 완만히 경사진 신양리층을 만들면서 사주가 발달하여 간조 때마다 본토와 이어지는 너비 500m, 길이 1.5km 남짓한 '터진목'이라는 육계사주가 생겼고, 1940년엔 여기에 도로를 놓아 육지와 완전히 이었다
삼면이 절벽이고 서쪽은 육지로 이어져 있어서 적군 공격에 유리하여 예로부터 요새로 사용되었다
1271년(고려 원종 12)에 김통정이 이끄는 삼별초가 여몽연합군의 공세에 대비하여 이곳에 토성을 쌓았고, 1597년(선조 30년 - 임진왜란 때) 제주목사 이경록이 수산진성을 잠시 성산일출봉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 수산진성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시로 9, 수산리 580)
조선시대 제주의 대표적인 방어유적으로 3성(三城) 9진(九鎭)에 속하며 정의현 관할이었다
이 성은 세종 21년(1439) 목사 한승순에 의해 처음으로 축성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목사 이경록에 의하여 성산으로 잠시 이설되기도 했다
선조 32년(1599) 목사 성윤문에 의하여 다시 복원되었다
성곽 둘레 1,164척(352.72m), 높이 16척(4.84m)이며, 동쪽과 서쪽에 각각 문이 있었다
1943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이곳을 요새화하려고 2년에 걸쳐 해안절벽에 굴 24개를 판 후 폭탄과 어뢰 및 이들을 실어놓은 쾌속정 등을 감춰두고 전쟁에 대비했지만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패전했다
이 굴을 뚫을 당시 일제의 수탈이 너무 가혹하여 일부 성산리 주민들은 이를 피해 다른 마을로 이주해 갔다
이 굴은 이후 해녀들의 탈의장으로 사용되었고, 2006년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311호로 지정, 보호된 이후 현재는 일부 막아놓고 있으며, 송악산, 알뜨르비행장 등과 함께 제주 내 '다크 투어리즘' 중 한 곳으로 들르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 4.3 사건 당시 이곳 성산일출봉 주변 터진목과 우뭇개 일대에서는 당시 고성리 청년들과 오조리 마을 주민 100여 명 등 많은 민간인이 토벌대에게 목숨을 잃기도 했다
빼어난 경관과 한국 신종 생물 원산지를 비롯한 한국 대표 생물 특성 보존, 수상화산의 지질학적 가치 등 여러 이유로 1976년에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되어 보호되다가 5.02km² 넓이인 일출봉 전체와 1km 이내의 해역이 2000년 7월 18일 천연기념물 제420호로 지정, 2007년 7월 2일 성산일출봉 1.688km²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고, 2010년 10월 1일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 전체가 그대로 정상으로 큰 분화구를 형성하고 분화구 주위에는 99개의 기암이 절경을 이룬다
2.64㎢의 분화구 속에는 넓은 초지가 형성되어 예로부터 성산리 주민들의 연료 및 초가 지붕을 이는 띠의 채초지(採草地)로 이용되어 왔다
방목지로도 쓰여 매년 화입(火入)을 하였기 때문에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띠 등의 식물군락을 이루고 있다
♤ 동암사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예로부터 유명해서 매년 12월 말일이 되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제주성산일출축제가 열린다
첫댓글 성산일출봉 코로나19로 지친 2022년 여름휴가로 다녀왔던 제주도에서 참 오랜만에 일출봉 정상까지 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https://blog.naver.com/twkimjan/222810731374
참 좋으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