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군 엑스포공원에 가면 금빛 찬란한 황금박쥐가 있다. 24k 순금으로 제작된 황금박쥐는 무게만도 무려 126kg이다. 1999년 고산봉(高山峰·359.1m) 용성리에서 처음 발견된 황금박쥐 126마리를 상징한 무게다. 2005년 매입당시 금 시세는 1돈 (3.75g)에 6만3,000원 하던 것으로 지금은 금 표준거래소 기준가 17만1,000원을 넘나든다. 총 제작비 포함 30억 원짜리가 시세에 따라 70~80억 원 가까이 호가하는 귀하신 몸이다.
고산봉은 대동면(大洞面)에 위치한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2002년 5월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붉은 박쥐의 서식지 보전’이란 사유다. 전 세계 황금박쥐의 3분의 1이 이곳에 서식한다.
- ▲ 고산봉 정상 암반지대, 주변의 산들이 낮아 고산 못지않은 조망이다
- 황금박쥐는 천연기념물 제452호로 붉은 박쥐의 애칭이다. 대동제와 고산봉 일대 폐광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고산봉이 살아 있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라 불리는 이유가 또 있다. 멸종위기의 식물 2종, 조류 11종, 포유류 4종, 양서·파충류 2종, 어류 1종, 곤충류 1종 등 총 21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한다.
함평하면 떠오르는 것은 ‘나비’다. 나비는 농약이 닿으면 바로 죽을 정도로 친환경 조건에서만 자란다. 나비와 황금박쥐 등 생태 보존의 중심지에 고산봉이 있다.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쓰레기, 음식물을 버리거나 소리를 지르고 훼손하는 행위를 삼가야할 이유다.
평야지대에 우뚝 선 고산봉
고산봉은 비옥하고 넓은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다. 석산봉을 제외하고는 완만한 육산이다. 영산기맥 산줄기를 따라 북으로 불갑산, 군유산, 남으로 곤봉산, 감방산 중간에서 살짝 비켜 있다. 주변엔 해발 200m 내외의 구릉 같은 산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산행 들머리는 전남직업능력개발원 인근 황금박쥐 기념비다. 대동면 주민들이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한 황금박쥐를 기념하며 고철 모으기 등을 통해 세운 의미 있는 조형물이다. 기념비에서 동남쪽 도로를 따라 300m 이동하면 대동면사무소다. 면사무소 복지센터 뒤쪽에 등산안내도와 또 하나의 황금박쥐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 ▲ (위부터)고산마을 삼거리 이정표에서 20여 분 된호흡을 하면 정상이다. / 고산봉 전망바위, 고산봉은 비록 높지는 않지만 영산기맥줄기가 겹겹이 에워싼 형국이다. / 고산사지 삼거리에서 마애불 만나러 가는 길, 우측 언덕은 야생녹차 군락지다.
- 등산로는 총 4개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 이곳 면사무소를 기점으로 한다. 등산로 정비에 많은 노력이 보인다. 숲이 좋아 사계절산행지로도 무난하고 이정표도 충분해 길 헤맬 염려는 없다. 급하게 내려가는 곳도, 급하게 오르는 곳도 없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길을 끊어서 산행도 가능하다.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한 제4코스는 ‘고산봉 둘레길’이란 짧은 산행구간을 보완한 연장 구간으로 보면 된다.
이정표는 ‘정상 4.1km’를 가리킨다. 고산봉에 설치된 이정표들은 특이하게 하산지점의 음식점을 표기한 것이 특징이다. 잔디처럼 부드럽고 완만한 산길은 게이트볼 경기장을 지나 금세 숲으로 들어선다. 300m 지점에 ‘향교 뒤 삼거리’ 이정표가 있다. 직진하면 향교 저수지로 곧장 가지만 지금은 저수지 공사 중이라 출입을 금한다. 왼쪽 ‘고산봉 정상’ 방향으로 느긋한 오름길이 계속된다.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는 트레킹 수준의 편안한 산책로다. 오색딱따구리가 나무에 큼지막한 구멍을 뚫어 놓은 것도 자주 보인다.
삼각점과 돌탑이 있는 150고지에 올라서면 나무 사이로 함평읍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나산천과 평야지대 그리고 무안앞바다까지 조망된다. 이곳부터는 평지나 다름없다. 오솔길 따라 10분 정도면 사각 파고라에 도착한다. 헬기장처럼 넓고 시야가 툭 트여 있어 목포로 이어지는 서해안고속도로와 함평만의 돌머리해변까지 보인다. 숲에는 한 발짝만 들어가도 야생 모습 그대로다. 예덕나무, 노간주나무, 검노린재나무, 느릅나무, 졸참나무, 산밤나무, 감태나무, 산벚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풍성한 숲을 만들고 여러 종의 생명을 키우는 정원 구실을 한다.
면사무소에서 2.5km 거리, 40분 정도를 오르면 석산봉삼거리다. 삼거리에서 석산봉까지 약 600m 구간은 잡풀이 많고 왕복 30분 정도 소요된다. 석산봉은 맘모스 등처럼 생긴 거대한 암반으로 사방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 ▲ 향교저수지가 공사 중이어서 도로 따라 함평향교를 지나고 있다. 전남유형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산마을삼거리’ 이정표에서부터는 20여 분 꾸준히 올라간다. ‘붉은박쥐 경관보전지역’ 안내판에서 우측 암봉을 우회하여 올라서면 정상이다. 2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평상이 있고 망원경이 2개 설치되어 있다. 사방에 막힘이 없어 망원경을 통하면 서해바다, 무등산, 월출산, 태청산, 불갑산, 함평읍이 손앞에 잡힌다. 정상석에는 ‘봉우리가 붓끝처럼 솟았기에 필봉(筆峰)이라는 해설도 곁들여 있다.
정상에서 600여 m를 10분 정도 내려가면 꽤 넓은 공터 있다. 고산사지(高山寺址)삼거리다. 고산사지와 마애불은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160m 숲속에 자리한다. 내력 있는 절터답게 우측 언덕에는 야생녹차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는 와편이 다수 보이고 암벽에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오랜 세월 마모되었지만 온화하게 미소 띤 얼굴이다. 조형미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 천년의 미소 고산사지 마애좌불은 조형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온화함이 느껴진다.
고산사지 삼거리로 되돌아와서 대동면사무소 방향을 잡는다.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울창하다. 중형 포클레인 1대가 지나간 흔적이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다. 파고라 쉼터에서 15분 정도면 상강삼거리다. 상강마을로 10분 정도면 하산이 가능하다. ‘한국전쟁이 부른 아픔의 길’ 안내도 지나면서부터 은근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이덕일 장군의 항일지
향교저수지가 있는 고산골삼거리까지는 정상에서 2.5km, 약 1시간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하산지점에 ‘고산골 전승지’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이곳 대동면 향교리 출신 칠실(漆室) 이덕일(李德一·1561~1622) 장군이 의병을 조직해 고산골과 동막골에서 전투한 전적지로 정유재란 때 왜적 7,000명을 격파했다고 되어 있으나 다소 과장된 듯하다.
- ▲ 1.고산봉 정상에는 성능 좋은 망원경이 2대 있다. 멀리 무등산과 불갑산까지 자세하게 보인다. /2. 함평의 새로운 상징 황금박쥐를 162kg 순금으로 제작 전시하고 있다. 사전에 예약하면 관람할 수 있다. / 3.대동면사무소 뒤에 산행안내도와 들머리가 있다.
왼쪽으로 100m 내려가면 향교저수지 입구에서 이정표를 만난다. 필자가 답사한 9월은 제방 보수공사를 하고 있으므로 국도를 따라 함평향교를 거쳐 면사무소까지 걸어갔다. 원래는 둑방 끝에서 부터 산허리를 1km 정도 감고 돌면 면사무소까지 숲길이 연결된다.
산행길잡이
■기념탑~면사무소~석산봉삼거리~석산봉~석산봉삼거리~고산봉~고산지삼거리~마애불~향교저수지~ 함평향교~대동면사무소 <약 9.9km, 4시간 10분 소요>
■면사무소~석산봉삼거리~고산봉~고산지삼거리~마애불~함평향교~면사무소 <약 7.8km, 3시간 10분 소요>
교통 (지역번호 061)
용산역에서 함평역까지 하루 8회(07:15, 10:45, 11:45, 12:50, 15:45, 17:10, 18:37, 23:10) 기차가 운행한다. 약 4시간 30분, 요금 2만4,400~3만6,300원.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는 함평공용버스터미널까지 하루 3회(08:35, 14:30, 16:40) 고속버스가 오간다. 요금 우등 2만1,800원, 일반 1만9,500원. 4시간 소요.
함평공영터미널(322-0660)에서 대동면사무소까지 군민버스로 10분 이내 거리다. 공영터미널에서 대동면사무소까지 택시는 기본요금 수준이다.
숙식 (지역번호 061)
함평 5일장은 2·7일 우시장도 함께 열린다. 시장골목에는 오랜 세월 미식가들의 입맛을 평정한 소박한 함평 3대 식당이 있다. 대흥식당(322-3953), 화랑식당(323-6677), 목포식당(322-2764)이다. 한우생고기와 생고기 비빔밥은 독특한 양념과 싱싱한 육질이 자랑이다. 검증된 최상급 명품한우를 맛보려면 ‘함평천지한우프라자(324-3367)’에 가면 틀림없다. 함평축협에서 조성한 대형 식당이며 가격도 저렴하다.
볼거리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와 도심 근교의 쉼터로 자리 잡은 함평 엑스포공원은 사계절 볼거리가 가득하다. 다육식물원, 민물고기전시관, 나비곤충관, 화석전시관, 물놀이장 등 다양하며, 살아 있는 나비와 곤충을 소재로 한 축제가 매년 열린다. 5월에는 나비축제, 10월에는 국향대전이 열린다. 특히 황금박쥐 생태관에서는 순금 황금박쥐를 만날 수 있다.
9월 추석 전후에는 함평 용천사와 영광 불갑사는 붉은 양탄자 같은 꽃무릇이 장관이다.